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8
〈 38화 〉 썩은 내가 난다(3)
* * *
아플리아 아카데미는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모이는 곳이다. 비록 그 재능에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모든 학생은 저마다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마나가 됐던.
마학의 깊이가 됐던.
혹은, 직감 같은 태생이 되었던 간 저마다 특출난 점 한가지는 가지고 있단 뜻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 빛나는 것은 위기 속이다.
“이쪽이야.”
전투 마법 학부, 리나가 방향을 가리킨다.
귀족의 사냥개 출신인 그녀는 흔적을 찾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쪽이 나가는 길이야.”
어둠 속에서도 그녀는 정확하게 길을 찾아낸다.
“음, 알겠다.”
그녀가 길을 제시하면, 라크가 도끼를 뽑아 든다. 길을 가로막는 마수들 사이로 뛰어든다. 그가 뚫은 길을 따라 학생들은 달린다.
“벨노아?”
“라크?”
마수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라크는 벨노아와 마주한다. 소란스러움에 문을 열고 나온 벨노아는 주변을 살핀다.
“·····.”
슬럼가에선 빠른 상황 판단이 곧 생존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살아온 벨노아의 판단은 빠르다.
곧장 상황을 이해한 그가 그림자를 뽑아 든다.
라크의 옆에 선 그가 자세를 잡는다.
둘 간의 별다른 대화는 필요 없다.
“내가 앞을 쓸겠다.”
“보조 할게.”
라크가 앞을 향해 뛴다.
벨노아는 그림자 가시를 길게 빼, 라크의 뒤를 쫓는다. 빠른 속도로 마수들이 쓰러진다. 중앙학관을 점거하던 마수들이 줄어든다.
3층에서 1층, 현관으로 내려간 시점에서.
라크는 더이상 도끼를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
1층에 남은 마수는 없다.
더 정확하겐, 살아 있는 마수는 없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건 한 명의 학생이 부리는 소환수들 뿐이다. 늑대를 닮은 소환 수의 아가리엔 마수의 살점이 끼어있다.
“아.”
그녀가 라크를 돌아본다.
옅은 보랏빛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
서머너(Summoner), 레스티.
그녀가 문을 가리킨다.
“가자.”
모든 마수와 싸우진 않는다. 개중에는 학생들로선 상대하기 버거운 마수 역시 존재한다.
때로는 숨는다. 때로는 레스티가 소환한 소환수로 유인해 길을 튼다.
도망치고 숨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벨노아가 손가락을 꺾는다. 라크가 손도끼를 맞부딪치며 달려든다. 그 뒤를 레스티의 소환수들이 보조한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나아간다.
“학생들을 발견했다.”
“지원 바란다.”
이윽고, 기사들이 학생을 발견한다.
마수들을 베어 넘긴 그들은 학생들의 곁을 지키며 안전 구역으로 안내했다.
“라크 공자님이십니까.”
“아플리아 내에선 라크다.”
기사 하나가 라크를 알아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학생들이 마수와 교전함을 보고, 급히 달려온 기사다.
그는 모여든 학생들을 바라본다.
‘역시나, 뛰어나군.’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셋이다.
베틀 메이지(Battlemage), 라크.
샤먼(Shaman), 벨노아.
서머너(Summoner), 레스티.
‘이것이 정말 셋의 마법사로 이루어진 파티인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균형이 잘 갖춰진 파티다.
‘전열과 후열의 교체가 유연하다.’
기사의 눈에 그 파티는, 자신이 속해있는 기사단에 비해도 그 구성이 전혀 꿇리지 않았다.
‘대단하군.’
짧은 감탄을 뱉으며 기사는 앞장선다.
이윽고, 그들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인 중앙 주문 훈련실에 도착했다.
“······.”
주문 훈련실에 발을 들인 순간.
“음.”
라크는 문득 중얼거렸다.
“썩은 내가 난다.”
2.
전투 마법학 조교수, 켈트.
그는 병사 출신의 교수다.
전장의 병사 출신이었던 그는, 부상을 입고 전역했다. 자신이 모시던 기사, 맥하트와 함께.
그리고, 어느 순간 켈트는 변절자가 되었다.
켈트 또한 자신이 변절자가 된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천재들에 대한 열등감이었던가?
전장에서 입은 부상 때문이던가?
아니면, 좆같은 맥하트가 자신을 절대로 교수로 만들지 않고, 지난 몇 년간 조교수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던가?
‘아마도, 그 전부였겠지.’
지금에 와선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켈트는 선지자를 따라 변절자가 됐다.
선지자께서 말씀하셨다. 곧 그분의 군대가 왕도를 뒤덮을 거라고. 인간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인간을 배반한, 자신과 같은 변절자뿐이리라고.
‘그리고, 보상을 제시했지.’
인내는 썼고, 타락은 달콤했다.
쓴맛만을 보고 살아온 그가 달콤함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켈트는 변절자가 됐다.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다.’
지금이라면, 맥하트 그놈의 머리를 한 손으로 으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켈트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속으로 마수들을 가늠했다.
이미 많은 마수가 죽었다.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수들이 죽어 나가고 있지만, 어쨌든 간 상관없다.
‘목적은 그게 아니니.’
자신의 목적은 선지자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다. 선지자가 활동할 수 있도록 시선을 끄는 것이다.
마수는, 연막일 뿐이다.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문제는 되지 않는다.
‘슬슬 시간이군.’
켈트는 로브의 주머니에 담은, ‘제단’의 조각을 매만졌다. 이것을 학생들이 모인 이곳에서 터뜨리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는 끝이 난다.
‘그럼, 그분 곁으로 갈 수 있다.’
이런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육체를 가질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켈트가 조각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익.
삐걱거리며 문이 열린다.
피비린내가 확, 풍겨온다. 악취가 뒤섞인 피비린내, 그러나 그 사이에서 켈트는 가느다란 향을 느꼈다.
‘제단의 향기.’
제단에서 풍겨오는 마기의 향.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본다.
그곳엔 한 소녀가 서 있다.
“아.”
그녀가 로브에서 무언갈 꺼낸다.
켈트의 눈이 크게 뜨인다. 제단이다. 깊은 곳에 숨겨놓았을 제단이, 그녀의 손에 들려있다.
그걸 움켜쥔다.
콰직, 소리를 내며 제단이 비틀리기 시작한다.
켈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것이 얼마나 귀한 건데, 저걸 저렇게···.
그리고.
“하.”
그녀는 웃음을 터뜨린다.
“찾았다.”
3.
찾았다.
그 한마디에, 켈트는 숨을 헛삼켰다.
거리가 멀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는 교수들이 쳐둔 결계가 있다. 교수들이 결계의 구조를 바꿔, 그녀를 받아들이는 데까진 시간이 걸린다.
‘도망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푸른 눈동자를 본 순간.
켈트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도망칠 수 없다.’
직감이 그렇게 경고한다.
무의식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것은 라니아에게 확신을 준다.
콰직.
소녀가 땅을 박찬다.
상급 주문들을 견디게 설계된 주문 훈련실의 바닥에 금이 간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결계가 그녀를 가로막지만, 소용이 없다.
파삭.
무언가 번뜩이고.
교수들이 쳐둔 결계가 힘없이 박살 난다.
산산조각이 난 결계의 파편이 흩날린다.
파편 사이로 소녀가 한걸음 다시 내디딘다.
‘빠르다!’
켈트는 생각한다.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가? 자신의 발로 뛰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을 내린다.
‘어차피 그분이 내 영혼을 회수하기만 하면 그만인 이야기다.’
이 육체는 버려도 좋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켈트가 손을 뻗는다. 그의 옆에 있는 학생을 움켜쥐려 한다.
‘인질로 잡고, 시간을 끈다.’
그분이 영혼을 회수할 때까지만, 인질극을 벌여 시간을 벌면 된다. 그럴 작정으로 켈트는 학생에게 손을 뻗는다.
변절자가 된 켈트의 움직임은 빠르다. 학생은 켈트가 손을 뻗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빠르다.’
다가오는 속도와 거리로 계산했을 때, 자신이 학생의 목덜미를 붙잡는 게 먼저다.
그리고, 그 계산은 정확하다.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소녀가 손을 뻗는다. 그러나, 그 손아귀보다 켈트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내가 더 빨랐다!’
그렇게.
“아?”
켈트는 착각했다.
강타(Smite).
콰직!
학생의 목덜미를 낚아채려던 손가락이 꺾인다. 팔이 하늘 위로 튕겨 나간다. 무형의 충격파에 팔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꺾였다.
주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순간에 완성된 주문이 켈트의 팔을 작살냈다. 고통에 신음할 시간도 없다.
눈앞까지 다가온 손아귀가.
콰직!
켈트의 머리를 움켜쥔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머리를 쥐어짜이는 고통에, 켈트가 비명을 지른다. 소녀는 그것을 신경치 않는다. 그녀는 공중에 떠 있던 발을 내려찍었다.
쿠웅!
주문 훈련실의 바닥이 움푹 파인다.
그러고도, 그 속력을 완전히 줄이진 못한다.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그녀의 신발이 바닥에 끌린다.
빙글.
기세에 이끌리듯, 그녀의 몸이 한 바퀴 돈다. 그 목덜미를 붙잡힌 켈트 또한 덩달아 돈다.
“야.”
그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
“이 악물어라, 씹새야.”
켈트는 소녀의 얼굴을 마주 바라본다.
소녀의 손가락 틈새로, 그녀의 눈동자가 보인다.
푸르른 눈동자.
그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한다.
소름 끼치는 눈동자다. 그 안에 담긴 노골적인 적의가 켈트의 숨통을 조인다.
그 마주침도 잠시.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 하다.
부유감이 느껴진다. 균형이 무너진다. 무너진 균형에 방향을 잃는다.
잃어버린 방향.
소녀의 손아귀가, 그곳에 방향을 부여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힌다.
‘어떻게?’
두개골이 잡힌 채로.
‘어디로?’
바닥으로.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항할 방법은 없다. 켈트가 눈을 크게 뜬다. 죽음을 직감한 모든 감각이 한계까지 곤두선다.
틱, 티딕.
두개골을 움켜쥔 손가락에서 불똥이 튄다.
아주 작은 불똥. 소녀의 다섯 손가락이 빛난다.
이윽고, 주문이 터져 나온다.
가까이서 그것을 보고 있는 켈트조차, 정확하게 ‘무슨’ 주문이 ‘어떤 식’으로 ‘몇 개’가 발동했는지 알 수 없다.
빛이 번뜩인다.
다중 캐스팅(MultiCasting).
주문 강화(SpellReinforce).
주문 가속(SpellBoost).
켈트는 반사적으로 마기를 끌어 올렸다.
몸에 마기를 둘러 보호했다.
주문 해제(AntiSpell).
방벽 해제(AntiShield).
그러나, 소용없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연달아 터진 빛무리가 방벽을 벗겨낸다. 그 모든 게 찰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녀의 손바닥이 켈트의 이마에 닿는다.
분쇄(Smash).
머리를 움켜쥔 손아귀가 빛난다.
강화된 주문이 빛을 뿜는다.
우득, 우드드득.
켈트의 두개골이 지면과 맞닿는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일 테지만, 켈트에겐 그것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진다.
목뼈가 꺾인다.
두개골에 금이 간다.
그리고.
한박자 늦게, 잿빛 마나가 엄습한다.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발생한다. 교수들은 몰아닥치는 풍압에 떠밀려 넘어진다. 주문 훈련실을 뒤흔드는 충격에 황급히 기사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 무슨 일입니까!”
먼지가 피어오른다.
“이게 무슨···.”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주문 훈련실의 바닥이다.
주문을 시험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곳.
그곳의 바닥이 움푹 파여있다.
박살 난 파편들이 굴러다닌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움푹 파인 바닥에 처박힌 남자다. 그에게선 검은 피가 흘러나온다. 마기를 배양한 변절자란 증거다.
“아.”
마지막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건.
“······.”
그 중심에 서 있는 소녀다.
열린 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사락.
소녀의 상징과도 같은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하다.
“···라니아 교수?”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입에 담지 않은 이도 있다.
그들은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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