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0
〈 40화 〉 닮은 두 사람(1)
* * *
변절자에 의한 테러로부터 하룻밤이 지났다.
하룻밤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기사들은 분주하게 학사 내를 돌아다녔다. 마수의 소탕은 진작 끝났다. 문제는, 새끼를 치거나 알을 깐 마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짧은 시간 안에 마수가 번식을 했을 리는 없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미약하다.
그러나, 간과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이곳은 왕도의 중심이고, 고귀한 존재가 재학 중인 아카데미다. 완벽해야만 한다.
“완벽에 완벽을 기해라.”
호위 기사, 하벨의 주도하에 기사들은 아플리아를 샅샅이 뒤졌다. 결과적으로, 마수의 알이나 새끼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발견한 게 아주 없지는 않다.
“···이건.”
교수실이 모인 연구동의 복도.
그 복도의 초입(??)에 기사들은 모여있다. 잔해를 치우느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도착한 장소.
꿀꺽.
기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꼭 짐승이 날뛴듯한 모양새다.’
벽은 무너지고, 바닥에는 금이 가 있다. 곳곳에 깊게 파인 구덩이에는 마수들의 시체가 처박혀있다.
주륵.
구덩이에서 흘러나온 마수의 핏물이, 복도를 붉게 푸르게 물들였다.
‘끔찍하군.’
하벨은 짧게 혀를 찼다.
“···마수들은, 동족상잔도 서슴지 않다는 건가.”
머리를 잃은 시체는, 꼭 누군가 물어 뜯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끔찍한 광경이다.
하벨은 고개를 가로젓곤 복도를 걸었다.
검을 쥔 손에 땀이 찬다. 이만한 참상을 일으킨 마수라면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다.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복도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별다른 마수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끝에 한 구의 시체가 놓여 있을 뿐이다.
‘무엇이지.’
알 수 없는 마수의 시체다. 여러 마수가 뒤섞인듯한 기괴한 모습의 마수. 하벨은 머리가 없는 마수의 시체를 살폈다.
‘잡아… 뜯겼다?’
목의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다.
애초에, 절단면이라 부르기도 뭣하다. 꼭 잡아 뜯은듯한 모양새다.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마수가 날뛰기라도 했나 보군.’
하벨은 쭉 이어진 핏자국의 끝을 바라본다.
그곳엔 난리 통 속에서도 작은 흠결조차 나지 않은 문이 있다.
“윽.”
문 너머에서 악취가 풍겨온다. 코끝을 찌르는 썩은 내에 하벨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에 괴력의 마수가 있다는 건가?’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간다.
끼이익.
하벨은 악취를 견디며 문을 열었다. 코를 틀어막은 채 그 안을 살피었지만, 보이는 건 없다. 마수의 시체 같은건 없이 텅 빈 공동만이 있을 뿐이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이건···.”
그저.
“뼛조각?”
그 바닥에, 뼛조각이 굴러다닌다는 것.
하벨이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2.
중앙학관의 4층.
아일라는 멍하니 침대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호위 기사, 하벨이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방 안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 까닭이다.
“으음.”
침대에 누워, 베개를 끌어안은 채 아일라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방안에 틀어박혀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랬었죠.’
궁중 마법사, 겔릭의 변절.
그 테러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 아일라는 수많은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한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벌써, 7년 전이네요.”
그녀가 열 살 무렵의 이야기다.
아일라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모습은 선명히 그려진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잊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그날 자신을 쫓던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린다. 사나운 마수들을 막아섰던 기사들의 갑옷 소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을 쫓던 겔릭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리로 오십시오, 왕녀님.
당신만, 당신만 온다면 저들은 살 수 있습니다.
스산한 웃음소리.
당신을 데려오면, 그분께선 제게 불사의 군대를 약속하셨습니다. 상상해 보셨습니까? 불사의 군대입니다. 그 누구도 대응하지 못할 불사의 군대!
광기 들린 목소리.
왕녀님, 이리로···.
듣지 마십시요, 왕녀님.
그리고, 그를 막아서던 기사들.
이 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도망치십시오.
그때의 아일라는 뒤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에 바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어 나간 이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뛴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흐른다.
달리고 또 달렸다. 기사들의 갑옷 소리가 더는 울리지 않게 되었을 때, 아일라는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한 남자가 있었다.
왕녀님?
잿빛 머리칼.
날카로운 눈매 사이로 빛나는 푸른 눈동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일라의 뒷편에 선 마법사를 향한다. 두 마법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는다.
자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마법사로군.
궁중 마법사, 겔릭? 꼴이 왜 그럽니까?
거기서 비켜라, 젊은 마법사. 불필요한 희생을 늘리고 싶진 않으니.
잿빛 머리칼의 마법사는 비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바로 선 채, 아일라의 손을 잡아당겼다.
잠시, 실례.
그가 로브를 벗어 아일라에게 건냈다.
뒤에 가서 쓰고 계십시요. 일단은, 회로를 그려놨으니 충격에서 지켜드릴겁니다.
아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책상밑에 숨어 로브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품이 넓은 로브는 아일라의 몸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충격이 시작된다.
도서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아일라는 몸을 웅크렸다. 이불 속에서 몸을 말듯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 뒤로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는다. 땅이 몇 번 흔들렸다. 눈을 감았음에도 빛이 새어 들어왔다. 양손으로 틀어막은 귀 사이로 소음이 흘러들었다.
무언가 번쩍이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툭.
누군가 로브를 건드렸다. 아일라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그 손길에 적의가 없음을 깨닫고 천천히 로브를 들추었다.
아일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엎어진 책장. 바닥에 널브러진 서적. 수많은 마수의 사체.
그리고.
심장이 뚫린 변절자 겔릭의 시체.
그에게서 흘러나온 검은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아일라는 고개를 들었다.
······.
그곳에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아일라를 내려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그 잿빛 머리칼에 그을음이 묻어 있다. 투명했던 푸른 눈동자에는 옅은 탁기가 묻어 나온다. 빈말로도 멀쩡한 상태라곤 할 수 없었다.
만신창이인 모습.
그러나, 그 남자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일어나시죠.
그가 손을 뻗었다.
왕녀님.
그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아일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아일라는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감상을, 떠올려 보았다.
···밀려드는 햇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텔라(Stella)로서 각성한 그녀가 보았던 첫 번째 예지였을까.
그 날, 아일라의 눈에는 그 남자가.
훗날 잿빛 마법사라 불릴 라니엘의 모습이 꼭 빛나는 별처럼 보였었다.
“프흡.”
그때를 떠올리자니,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아일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살짝 고개를 가로저어 떠오르는 기억들을 털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웃긴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 치부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때는 연심이라고 생각했었죠, 아마?’
당시에는, 첫눈에 반해 콩깍지가 씌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 남자가, 라니엘이 이룬 업적들을 생각해보면···.
‘그게, 제 첫 번째 예지였겠지요.’
그건, 별의 아이로서의 예지가 아니었을까.
지금의 아일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첫사랑이었는데.”
입술을 툭 내민 채, 아일라는 중얼거렸다.
“지금쯤 뭐 하고 계실까요?”
그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고대용의 마법사에게 섭외되었단 이야기도 있고, 고대 엘프들에게 초대를 받았단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뜬 소문뿐이라는 것이다.
잿빛 마법사의 목격담은 전혀 들려오지 않으니.
‘그래도, 닮은 사람은 있지만요.’
잿빛 마법사 라니엘.
그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자꾸만 다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교수에겐 무척이나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일라는 그녀에게서 라니엘의 자취를 느끼고 있었다.
‘느낌이 비슷해요.’
그렇게 느끼는 게 잿빛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라는, 그 특징적인 외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외모로는 그 둘을 연관 짓기 힘들었다.
아일라가 기억하는 라니엘은 날카롭다.
까칠해 보이고, 예민해 보이고, 조금 날이 곤두선듯한 느낌의 인상이었다.
그에 비해, 라니아 교수는 어떠한가.
눈매가 조금 날카롭긴 하지만, 까칠하고 예민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운 느낌의 인상이다.
‘조금 초탈해 보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간, 외모는 닮지 않았다.
물론 외모를 제하고도 연결 지을 부분은 많다. 로셀의 제자 겸 양자라는 것,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 스케발의 결계를 해체했다는 것 등등.
연관 점은 많지만.
아일라의 직감을 엎을 만큼 결정적이진 않다.
아일라의 두 눈은 라니엘과 라니아가 동일 인물이 아님을 확신했다. 별조차 그 확신을 긍정했다.
‘그러니, 서로 다른 인물이 맞을 테지만요···.’
어째서일까.
아일라는 자꾸만 그 둘이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
이건 직감과는 다르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자신이 착각을 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아마, 망상이겠죠.”
아일라는 쓰게 웃었다.
애초에,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폴리모프도 아니고 성별의 반전은, 날 때부터 그 육체를 점지해주는 별에 대한 모욕이자 반역이니까.
“후우···.”
아일라는 한숨을 쉬며 몸을 뒹굴었다.
그때였다. 문득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녀님.
“예, 무슨 일이신가요.”
라니아 교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네?”
갑자기?
“잠, 잠시만요!”
아일라는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부스스한 머리칼을 빗어 내리고, 숄을 어깨에 둘렀다.
“이제 여셔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아일라는 귓가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을 흘겨봤다.
라니아 교수.
은은한 비누 향과 함께,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막 씻고 나오기라도 한듯, 피부가 뽀송뽀송하다.
그러나, 아일라의 시선을 끄는건 따로있다.
평소와 그 옷차림이 조금 달랐다.
단정한 로브 차림이 아닌, 조금 편해 보이는 일상복 차림. 그 모습에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응?’
자신이 선물해 준 로브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떠올렸다.
‘더러워져서 세탁 중이겠죠.’
마수들의 피에 절여졌었으니까. 그 사실을 떠올리며, 아일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세요, 라니아 교수님?”
“어, 그··· 반갑습니다. 왕녀님.”
“···?”
뭔가 느낌이 묘하다.
평소와는 달리, 대답하는 말투가 무척이나 어색하다. 눈도 잘 못 마주치는 것 같다.
“···왜 그러세요?”
“아니, 음. 그게···.”
그녀는 무언갈 등 뒤로 숨겼다.
아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뭐예요?”
“네?”
“방금 등 뒤에 숨기신 거요. 그거 뭐예요?”
“아, 그게···.”
아일라가 슬쩍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덩달아 라니아도 반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뭐 하세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결국 손에 쥔 것을 보였다.
‘···옷?’
새하얀 셔츠다.
셔츠의 깃에 금빛 자수가 놓인 걸 보아하니, 아일라가 선물했던 옷이었다.
“이걸 왜···?”
“그, 여기.”
그녀가 셔츠의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찢긴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엉성한 바느질 자국도.
“···찢어졌네요?”
아일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