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
〈 43화 〉 수업 참관(2)
* * *
“여러분들은 가끔, 여러분이 선택하신 위자드(Wizard)라는 클래스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아요.”
원소 마법학, 중급반의 교수 샤를롯.
그녀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 있는 교수다. 다른 교수들에 비해 젊다는 것, 그리고 융통성 있는 수업의 진행 덕에 그녀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다.
“보나 마나, 배틀 메이지(Battlemage)야 말로 작금의 마법사가 추구해야할 방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들 계시죠?”
오늘만 해도 그렇다.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진 걸 보자마자, 그녀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꺼내며 자연스레 잡담을 시작했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는 없겠네요. 배틀 메이지는 무려 그 잿빛 마법사, 라니엘님이 직접 창안하신 클래스니까요.”
라니엘, 그 유명한 잿빛 마법사의 이름이 나온 순간 학생들의 눈이 반짝인다.
‘역시, 집중하게 만드는 데는 그분만한 소재가 없긴 하네요···.’
샤를롯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배틀 메이지 클래스의 유용성은 타 클래스에 비해 월등하죠. 하지만, 다들 그거 알고 계신 가요?”
샤를롯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였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님도, 위자드(Wizard) 클래스 라는걸요.”
“네? 배틀 메이지 클래스 아니세요?”
“클래스의 창시자인데···.”
학생들의 반응에 샤를롯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분께서 마법사로 등록하셨던, 15년 전부터 그분은 줄곧 위자드 클래스셨어요. 한 번도 클래스의 변경을 요청하지 않으셨죠.”
왜 배틀 메이지란 클래스를 창시해놓고, 정작 본인은 그 클래스로 변경하지 않았는가?
한동안 미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주제였다.
그 의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오갔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클래스 변경을 요청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스승인 로셀을 존중한 까닭이다, 잿빛 마탑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서다···.
등등, 수많은 가설이 오갔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샤를롯은 입을 열었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님께서는 전장에 서기 이전에는 마법을 연구하시고, 난제를 푸는 것을 좋아하셨던 분이세요.”
뛰어난 마학자.
수많은 난제를 풀어낸 인물.
잿빛 마법사는 본디 마법으로 마물을 토벌하는 모험가라기보단, 한 명의 학자에 가까운 마법사였다.
“그리고, 언제나 마법사의 기초를 강조하셨죠.”
마법사란 미지를 밝히는 존재들이다.
미지를 탐구하여 정의하는 것이 마법사의 본질이다.
잿빛 마법사가 입버릇처럼 담고 다녔던 말이다.
“결국 전장에 서며, 마법을 ‘전투’의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셨지만···.”
샤를롯은 존경을 담아 마지막 문장을 입에 담았다.
“자신의 근본은 미지를 밝히는 마법사, 위자드(Wizard)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가설의 일부분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전장에서의 효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투 마법학을 개발해냈지만 자신은 전쟁을 위한 마법사가 아닌 마학자로서 남고 싶다.
전장에서 은퇴한 이후로도 클래스의 변경을 신청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마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
학생들이 은근한 감탄을 뱉어낸다. 샤를롯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수업 자료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가설도 있었죠.’
그러다 문득, 한 가설이 떠올랐다.
잿빛 마법사께서 클래스를 변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가설 중 가장 황당무계한 가설.
그냥 본인이 새로운 클래스를 만든 것을 몰랐던 게 아닌가?
‘말도 안 되는 가설이죠.’
샤를롯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샤를롯만이 아니었다.
‘그 몰상식한 발언을 한 마법사는 몰매를 맞고 마학계에서 퇴출당했다던가요?’
분명, 그랬던 것 같다.
“잿빛 마법사님이 그럴 리가 없죠.”
샤를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2.
‘씨발, 도대체 이 무근본 클래스가 뭔데?’
라니엘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쌍욕을 씹어 삼켰다. 도무지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플리아 아카데미.
이곳은 마학(??), 그러니까 마법사들을 위한 아카데미가 아니던가?
‘근데 왜 체술을 배우고 있냐고.’
이해가 가질 않는다.
라니엘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는 맥하트 교수를 노려봤다.
“어서 따라 하게!”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닌다.
이 따사로운 날씨에 주먹을 휘두르고, 보법에 대한 공부를 하랜다. 라니엘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가르침은 그럴 수 있다 쳐.’
라니엘도 이런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은 기사단에 소속된 만큼, 반쯤 강제로 이런 훈련에 참여해본 적은 있었다.
이 정도 훈련쯤.
좆같긴 해도 그래,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개새··· 아니, 교수지.’
“어서 따라하게!”
귀청이 떨어져 나가게 소리를 질러대는 교수.
그 목소리도 짜증 나 죽겠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저 교수가 입에 담는 대사다.
“하면 되는데 왜 못하나!”
아니 안되는 걸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이렇게! 이게 어렵나!”
저런 걸 보고 도대체 어떻게?
그 대사들 하나하나가 라니엘의 신경을 긁어댄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줬음, 하고 그녀는 속으로 몇 번째인지 모를 소원을 빈다.
그러나, 맥하트의 잔소리는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단어까지 입에 담는다.
“이건 기본일세!”
기본(??).
라니엘이 좋아하는 단어.
‘이게 기본?’
라니엘은 차오르는 헛웃음을 참는다. 입가를 비집고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그런다.
‘기본이란, 이런 게 아니라···.’
이건 기본입니다.
멈칫.
순간, 라니엘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
그녀는 맥하트의 말투에서 정체 모를 기시감을 느낀다. 뭔가, 뭔가가 익숙하다.
그 익숙함을 곱씹으며, 라니엘은 맥하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자, 들리기 시작한다.
“하면 되는데, 왜 못하냔 소리다!”
하니까 되던데요?
맥하트의 목소리에 따라붙는, 자신의 목소리가.
“예시를 보여줬잖아. 따라 하면 될 문제 아닌가?”
보여드렸잖습니까. 따라 하심 됩니다. 어렵습니까?
아.
“자네는 기본이 없는가? 이 정도도···.”
어··· 그, 기본이 없으십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라니엘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녀는 무언갈 깨달은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다 내가 했던 말이구나.’
말 할 때는 몰랐다.
그러나 듣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해가 간다.
‘듣는 입장에선 이런 식으로 들리는구나.’
라니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아주 큰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다.
물론, 라니엘과 맥하트는 다르다. 맥하트가 보여주는 예시는 볼품 없다. 그의 말에는 악의가 담겨있다. 반면, 라니엘의 예시는 완벽하다. 그 말에는 악의가 아닌 진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라니엘은 그를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뱉었던 말이 ‘어떤 식’으로 들릴지에 대해 고찰할 뿐이다.
고찰은 이윽고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라니엘이 가진 문제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그게 이런 뜻이었군요, 스승님.’
분명, 로셀이 원한 ‘깨달음’이 이런 식은 아닐 테지만··· 어찌 됐든 라니엘은 깨달음을 얻었다.
라니엘은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여전히 툴툴거리고 있는 맥하트가 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는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교수를 보고 있자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음.’
라니엘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단어로 조합했다.
‘대가리를 찍어버리고 싶다.’
뭘로?
‘아주 큰 돌로.’
라니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깨달았습니다, 스승님.’
깨닫는 건 자신의 실수다.
무려 12년 만에 성공적으로 자아 성찰을 마친 라니엘은 조금 멍한 눈초리로 맥하트를 흘겨봤다.
“이렇게! 이렇게···으음?”
열심히 시범을 보이던 맥하트의 몸이 짧게 경직했다. 맥하트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방금, 살기가 느껴졌는데.’
전장에서나 느꼈던 살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거라곤 조금 멍해 보이는 소녀뿐이다.
‘착각이겠지.’
맥하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 이렇게! 어서 따라 해보게!”
그리곤 조금 전처럼 열심히도 예시를 보였다. 그것을 보는 라니아의 눈동자가 조금씩 탁해져 가는 것도 모른 채.
3.
“수업의 2교시는 외부 실습이다. 따라오거라.”
맥하트 크레펠트.
그는 이번 수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그것이 꼭 라니아라는 애송이 교수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맥하트는 기사다.
그러나, 그 마음가짐이 기사로서 올바르진 않다.
그는 과시욕이 무척이나 강한 인물이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인정받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과시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진 않다. 그 결과 전장에서 명예전역이란 형태로 도망친 맥하트에는 ‘교수’라는 직업에 몹시 만족하고 있었다.
가르침이란 형태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다.
아직 배움이 모자란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인정욕구를 채울 수가 있다.
‘이번 마수 테러 사건은 안타까웠어.’
그런 그에게 있어, 이번 테러 사건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기사들을 따라 마수를 소탕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 활약했어야 했거늘.
그때 학생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맥하트는 이번 수업을 공들여 계획했다.
현장 실습.
마수와의 실전.
최근 아플리아는 마수들의 테러 사건에 휘말렸다.
맥하트가 파고든 부분이 바로 그 점이다.
아론 학장에게 직접 찾아가, ‘학생들에게도 마수와의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라는 핑계를 들이밀며 따낸 현장 실습이다.
“며칠 전 학사공지로 안내했다시피, 이번 수업은 크레펠트 가문의 영지에서 진행된다. 크레펠트 가문의 외곽 숲에는 마수들을 사육하고 있지.”
맥하트가 속한 크레펠트 가는 기사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이다. 당연히, 훈련을 위해 사용되는 마수도 몇 가지고 있단 뜻이다.
“물론 사육 중인 마수에게서 마기는 적출해낸 상태다. 물려도 오염될 일은 없지. 상처를 입더라도 신관들이 곧바로 치료해 줄 것이야.”
그 말을 듣는 학생들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마수라는 존재 자체에서 거부감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걱정 마라. 마수의 수준은 낮은 편이다. 너희들 나이만 했을 때 내가 맨손으로 떄려잡은 마수들이다.”
맥하트는 숲의 깊은 곳으로 향한다.
그의 뒤를 따라 학생들이 걷는다.
“상대하기 어려운 마수들은, 내가 보고 있다가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그렇게 말하던 맥하트는 잠시 멈춰 섰다.
무언가 이상했다.
본래 마수를 사육하는 이 숲에는 경비병들이 쫙 깔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다.
‘···뭔가?’
하물며, 걸어 잠근 철창의 자물쇠는 박살 나 있다.
“···조금 빨리 걷도록 하지.”
맥하트는 잰걸음으로 철창을 넘어 마수 사육지로 향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짙어지는 혈향이 코끝을 찌른다.
‘피비린내.’
어느 순간부터.
마수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마수의 시체가 깔려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는 쭉 이어져 있다.
그 피를 따라 맥하트는 걷는다.
그리고.
“맥하트 크레펠트.”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맥하트가 향하던 방향의 끝에 목소리의 주인이 있었다.
“후우.”
갈색의 머리칼에, 감색 코트 차림의 사내.
한 손에는 칼을 쥔 사내가 마수들의 시체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피어오르는 연기.
칼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마수들의 피 섞인 살점.
섬뜩한 모습이었다.
“변절자의 용의 선상에 오른 이유가 있군.”
그가 입을 연다.
“크레펠트 가문은 많은 기사를 배출한 가문이지. 마수들의 서식지? 충분히 지어놓을 만 해. 인정하지. 정식으로 등록한 지도 오래됐으니까, 이건 문제없어.”
“그게 무슨··· .”
“그리고 이 수업.”
후우.
남자가 담배 연기를 한번 뱉는다.
“아플리아가 마수들의 테러 사건에 휘말렸으니, 마수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라. 확실히 괜찮은 핑계야. 그럴싸하군. 여기까지도 넘어갈 만 해.”
맥하트의 말을 무시한 채,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꼭 술집에서 잡담을 나누는듯한 말투다. 몰아붙이는 것 같지도, 추궁하는 것 같지도 않은 말투.
“하지만.”
그 말투에 변화가 생긴 건 한순간이다.
“이건 넘어갈 수 없군.”
바닥에 반쯤 박아두었던 칼을 뽑은 그가 툭, 하고 옆에 놓인 마수의 사체를 건드린다.
“이 마수는 학생들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전장에서 은퇴한 맥하트, 당신이 상대할만한 수준도 아니지.”
맥하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마수를 살폈다.
‘저건··· 다크 트롤 아닌가?’
맥하트가 기억하는 한, 사육지에 그런 마수는 없었다. 있더라도 일반 트롤종이었지, 다크 트롤 같은 상위급 마수를 배양한 적은 없었다.
“이, 이건 뭔가 잘못된···.”
“그래, 뭔가 잘못됐을 수도 있겠지. 지난번 아플리아 테러 사건에서 발견된 ‘파편’으로 인근의 마기가 증폭됐고, 사육지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됐을 수도 있지. 그럴 가능성도 있어.”
남자가 담배를 손등에 비벼 껐다.
“이것도, 그런 ‘이상 현상’으로 치고 넘어갈 순 있겠지. 그러나,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가 두 손가락을 펼친다.
“하나는 현재 맥하트 크레펠트, 당신이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올라와 있단 점이고.”
중지를 접고.
“둘은, 당신이 학생들을 끌고 여기까지 왔단 뜻이다. 우리로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거지.”
이어서 검지를 접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주둔지에서 나누지.”
“자, 자네가 누구길래 이런 무례한··· !”
“무례해도 되는 위치에 있어서.”
툭.
남자가 자신의 칼집을 던졌다.
“·····.”
맥하트는 자신의 발밑에 놓인 칼집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별다를 바가 없어보이는 칼집이다.
그러나, 맥하트의 눈에는 칼집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맥하트가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는 것은, 칼집에 새겨진 문양이다.
‘왕가의 문양···.’
칼집에 왕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다만, 그것은 역으로 뒤집혀 배치되어있다. 꼭 문양에 드리운 그림자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맥하트는 그 문양을 알고 있다.
‘왕가의 뒷면을 상징하는 문양.’
꼴깍.
맥하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이런 미친.’
턱을 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정체를, 맥하트는 불현듯 깨닫는다.
왕가만이 휘두를 수 있는 검.
왕가가 소유한 가장 날카로운 비수.
왕가에 충성을 다하는, 특수부대.
혹자는 존중을 담아, 그들을 로얄 가드(RoyalGuard)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은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하운드(Hound).
왕가의 사냥개.
“이번 심문은, 지난번처럼 신사적이지 않을 거다.”
그 사냥개가 이빨을 드러낸다.
4.
“이번 심문은, 지난번처럼 신사적이지 않을 거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그 목소리가 묘하게 낯이 익다.
나는 슬쩍 행렬에서 벗어나, 맥하트와 대치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이마 위로 올려 넘긴 갈색의 머리칼.
가늘게 뜬 눈동자.
그리고, 꼬나문 담배.
‘아.’
그 담배를 보는 순간 기억이 떠오른다. 전장에서 담배를 태우던 기사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저 독특한 담배의 모양은 기억하고 있다.
‘추적자(Tracker), 칼트.’
기사들 중에서도 유난히 마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 개 코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녀석이었다.
‘내 보좌관으로도 일했던 것 같은데.’
그런 기억이 있다.
칼트가 마기를 특정하면, 내가 가서 쓸고 오는 식으로 종종 같이 작전을 수행하곤 했으니까.
‘오랜만이네.’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옮겼다.
그 곳에는 칼트가 던진 칼집이 놓여있다. 그 칼집에 새겨진 문양을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왕가의 사냥개, 하운드(Hound).’
못 알아보는게 이상하지.
부상을 입고 전장에서 은퇴하는 칼트에게, 내가 추천한 직장이 바로 하운드였으니까.
‘짜식, 출세했네.’
전장에서 동료를 만나서 그런가, 반가움이 들어 손을 흔들려던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왜 저렇게 꼴아봐?’
칼트가 나를 보는 시선이 매섭다.
마치, 전장에서 마기를 쫓을 때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칼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주머니?’
내가 주머니에 뭘 넣어놨던가?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있어 아무거나 다 집어넣어 놓긴 했는데···.
‘아, 맞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건이 하나 있다.
지하수로하고, 교수실 복도 끝에서 주워온 것들.
아무데나 놔두기 뭐해서 봉인 마법을 몇 겹으로 걸어서 들고 다녔었던걸로 기억한다.
그걸 어디에 넣어두었던가.
아마도, 주머니였을 것이다.
“·····.”
나는 말 없이 칼트를 바라봤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은 칼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목을 빙글 돌리며 칼을 고쳐 잡는다. 그 일련의 동작이 향하는 곳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범인은 따로 있었군.”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더러운 변절자.”
어···.
‘이게 이렇게 된다고?’
탁, 하고 칼트가 땅을 박찬다.
전장을 구른 기사답게 그 움직임은 날렵하다. 가감이 없다.
후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칼트가 칼을 휘두른다.
“하이고.”
나는 밀려드는 칼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뙤약볕에 뭔 되도 않는 체술 훈련을 하게 되질 않나,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교수한테 기본에 대해서 듣질 않나.
‘이젠 오랜만에 만난 부하 놈이 칼질까지 해대네.’
순간 뒷목이 땡겼다.
그래도, 여기서 무작정 이 좆같은 놈들을 때려 죽일 수도 없는 일이니, 인내심을 발휘해 최대한 화를 억눌러 봤다.
‘그래, 씨발, 내가 누구냐. 그 좆같은 사라와 레미아의 개지랄을 무려 5년간 버틴 남자야.’
머릿속으로 사라와 레미아의 지랄 질을 견뎌내던 나날들을 떠올려 본다. 그 숱한 좆같음 속에서도 잘 견뎌 왔잖은가.
조금만 참으면 깔끔···.
‘어?’
이상하다.
‘생각해 보니까 좆같네?’
왜 더 화나는 것 같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