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0
많은 시간이 흘렀다, 라고.”
아플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날부터 라크의 삶은 바뀌었다. 아카데미에서 겪었던 사건이, 얽혔던 사건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많은 일이, 있었지.’”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현자에게 마법을 배웠고, 로얄 가드에게 백병전을 배웠다. 성배의 속에서 마주한 과거의 용사에게 각오와 신념을 배웠다.”
기연(奇緣), 혹은 필연(必然).”
수많은 이들과 얽히고, 수많은 사건에 얽혀들었다. 때로는 재앙을 마주했고, 때로는 죽을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지난 9년의 세월 동안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라크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9년이다.”
아플리아에 다니던 4년, 아플리아를 졸업한 뒤 보냈던 5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 끝에··· 라크가 마지막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신의 호적수다.”
“···바르타.””
그 이름을 라크가 조용히 읊조렸다.”
바르타. 마수의 왕 바르타.”
스스로가 검사이길 바란 그 짐승이야말로 라크의 삶에 그 무엇보다 강렬한 목적을 제시해준 존재였다. 그 존재로 하여금 라크는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 그 짐승으로 하여금, 라크는 강함을 갈구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닿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마차. 시시각각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와중에서도 라크는 확신을 가지진 못했다.”
‘부족하다.’”
이걸론 부족함을 알고 있었으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죽음의 칼과 마수의 왕이 격돌하던 순간의 장면이다. 공기가 찢어지고, 공간이 삐걱이며 협곡이 무너지던 풍경. 라크는 아직 자신이 그 수준의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음을 알았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한걸음일 터다.”
한 걸음 너머에 그들이 서 있는 경지가 있었다. ”
그러나, 그 한 걸음을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라크는 알 수 없었다. 몸을 단련하고, 검술을 정교하게 깎아보아도 그곳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도리어 멀어진다.”
기술이 아니다. 훈련이 아니다.”
다른 무언가를 충족해야만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라크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것을 찾아낸다면 닿을 수 있을 텐데. 라크는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하염없이 어느 풍경을 떠올렸다.”
「검이란, 베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베어내는 것.」”
「형태 따위 필요 없다.」”
「이것이, 검의 극한이다.」”
성배 속에서 보았던 풍경.”
그것은 자신이 펼치는 기술의 원본이요, 검(劍)의 끝에 도달한 검사가 내놓은 답이다.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일격.”
“형태가 없는 검이기에, 무형검···.””
입 밖으로 내뱉은 외침은 언제나처럼 공허히 흩어졌다. 흩어지는 소음 사이로, 라크의 귀에 무심코 누군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것은 나의 길이다.」”
「너는, 너의 길을 걸어라.」”
나의 길.”
그 말을 라크는 곱씹었다.”
대륙의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버려진 유적.”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대륙의 끝자락에 있는 이 유적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이 유적에 ‘포투나 신전’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론 그들은 포투나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곳이 무엇을 모시는 신전인지도 모른다.”
그저, 버려진 유적에서 ‘포투나’라는 이름을 발견했기에. 그저, 유적이 신전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포투나 신전이라 이름 지었을 뿐이다. 그렇게 버려진 유적은 포투나 신전이라 불리게 됐다.”
···모두가 ‘포투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
포투나 신전의 무너진 기둥.”
그 기둥에 걸터앉은 마수의 왕, 바르타. ”
적어도 그만큼은 포투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포투나는 신(神)의 이름이 아니다. 포투나는, 불운을 떠맡는 인형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너는 누구니?」”
바르타는 떠올린다. ”
과거에 이곳에서 마주했던 어느 여인을.”
「나는 포투나, 바쳐질 제물.」”
모두가 그녀를 포투나라 불렀다. 그녀에겐 다른 이름이 있었을진대, 그 누구도 그녀의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 나라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어.」”
「가뭄이 올 때, 홍수가 올 때, 좋지 않은 일이 이 나라를 덮칠 때마다··· 포투나의 일부를 신에게 공양하는 거야. 부디 노여움을 푸시라고.」”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내가 흘린 핏물이 신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나도 모르지. 정말로 이게 효과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저, 사람들은 매달릴 구석이 필요한 걸 거야.」”
「아, 신께서 노하셨으니 이런 재앙이 일어났구나. 신의 노여움을 푼다면 이 또한 지나가겠구나. 제물을 바쳤는데도 여전히 비가 내리지 않는 건, 제물이 부족한 까닭이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테니까. 썩 나쁜 방식은 아니야. 정확하겐, 나쁜 방식은 아니었지. 세상이 이 모양이 되기 전에는.」”
포투나는 자신의 눈에 감긴 붕대를 더듬었다.”
아름다운 녹빛의 눈동자를 가졌던 그녀였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세상을 바라볼 눈동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세상이 엉망이 됐어.」”
「너무 많은 재앙이, 너무 많은 불운이 온 세상을 덮치고 있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사람이 소중한 걸 잃었어.」”
「잃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의 불운을 타인의 부족으로 탓하고 싶어하겠지. 다만 자신이 운이 없었음, 어쩌다 마주한 불행이란 사실은 받아들이긴 힘드니까.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니까. 왜, 나는. 왜, 어째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긴 싫으니까.」”
그래서, 하고 그녀가 쓰게 웃었다.”
「포투나를 탓하는 거야.」”
「아, 제물이 부족했구나. 부족해서 신께서 노하셨구나. 불운을 떠맡을 인형이 일을 하지 않았구나.」”
처음에는 머리칼, 약간의 핏물, 약간의 살점을 공양하는데 그쳤지만.”
「여전히 사람은 죽고.」”
「여전히 가뭄은 오고.」”
「여전히, 재앙은 활개치지.」”
세상은 여전히 다만 망가진 채였다.”
세상이 망가질수록 사람들은 포투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니 그다음에는 손가락, 다음에는 발가락, 또 다음에는, 다음에는, 다음에는···.」”
마침내, 눈동자마저 빼앗아 갔다.”
「그냥, 그게 다야.」”
「그래서 너는 누구니?」”
아직 짐승이었을 시절, 마수의 왕은 이 신전을 홀로 지키고 있는 그녀를 마주했다. 그녀에겐 제 앞에 선 재앙을 바라볼 눈동자가 없었기에, 그녀는 마수의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짐승은 처음으로 마주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을.”
그렇기에 마수의 왕은, 눈앞의 인간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그는 신전에 숨어든 채 인간과 함께 생활했다. 그녀의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삶을 관찰했다.”
신기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미지였다.”
「그럴 수도 있지. 저 사람들한테 잘못은 없어.」”
눈동자를 잃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을 상처입힌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다. 짐승은 자신을 상처입힌 이를 철저하게 짓밟고, 똑같이 피를 흘리게 하여야만 한다고 여겼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내 역할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증오에 가득 찬 인간들을 바라보며 그저 무엇을 바쳐야 할까요, 하고 말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망가져 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웃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사제들은 마침내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고자 했다. 포투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그들은 확신했다. 그렇게 신전을 찾아온 사제들이 포투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려는 순간.”
처음으로, 포투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렇기에 마수의 왕은 사제들을 죽였다.”
망해가는 나라에 쳐들어가, 그녀를 상처입히려 하는 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한다면 포투나가 다시 웃으리라 굳게 믿었기에.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마수의 왕은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론 모든 것이 수틀렸다.”
「나는, 포투나야.」”
포투나는 웃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아니게 됐구나.」”
「너는 내게서 모든 걸 빼앗은 거야.」”
「내가 한평생 지켜왔던 포투나로서의 가치마저.」”
피비린내를 진동하며 자신을 찾아온 마수의 왕을 포투나는 원망했다. 원망과 함께 그녀는 더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해 주었다.”
「네가 가져.」”
「나는 네게 그 무엇도 줄 수 없지만, 너를 위해 무엇도 바쳐줄 수 없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나의 이름만큼은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가져.」”
「그게 나를 포투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 봐주었던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여인은 자신을 사랑했던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르타.」”
「그게 내 이름이야.」”
그 이름을 떠올리며 바르타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감았던 눈을 뜨면, 수백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곳에서 바르타는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서, 바르타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인간이길 갈망했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녀가 남긴 말의 뜻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인간을 동경한 마수의 기원이었다. 언젠가 잊어버렸던 자신의 기원(起原)이었다. 제 시작점을 떠올리며 바르타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숨이 새어나왔다.”
···바르타가, 광인의 뜻대로 움직여 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