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1
그것은 광인이 바르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 까닭이었다. 그는 말했다. 자신에게 있어 ‘상정하지 못한 변수’가 될만한 것은 최초의 성검을 지닌 청년이라고. 그 청년을 다른 곳으로 꿰어내 준다면···.”
『이 아이, 이 소녀.』”
자신의 전시장에 박제해둔 아이.”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성녀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던 이 소녀를 되살려주도록 하지. 어려운 일은 아니야. 나의 목적만 이룬다면, 규율이 무너진다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지.』”
바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소녀를, 되살려주겠다고 광인은 마수의 왕에게 약속했다. 그렇기에 마수의 왕은 광인의 뜻대로 움직여 준 것이다.”
묻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첫 번째 삶의 끝에서 얻은 답을,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으니까. 인간으로서 살아본 이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뿐이라면 거짓이겠군.””
바르타는 손을 뻗었다. 손을 뻗어 제 가슴팍에 길게 남은 검흔(劍痕)을 매만졌다. 두 번째 삶이 시작된 아래, 아직 자신이 짐승이었을 시절 어느 전사가 새겨놓은 상처였다. 그 상처는 어째서인지 지워지지 않았다.”
라크 반 그레이스.”
두 번째 삶에서, 자신에게 긍지를 일깨워준 인간. 그 인간이 광인이 말하는 ‘최초의 성검을 쥔 청년’ 이란 사실을 바르타는 안다. 그 인간과는 아직 끝맺지 못한 결투가 있었다.”
···언제나 강자에게 도전해왔던 바르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 또한 어느 인간에게 도전을 받고 있다.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인간에게. 자신을 따라잡으려는 인간에게, 도전을 받는다. 그 사실에 바르타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그런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네가 나의 도전을 받을 때, 너 또한 이런 기분이었겠군. 또다시 새로운 감정을 깨닫는다. 바르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에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기에.”
온다. 도전자가.”
두 번째 삶에서, 자신의 호적수가 되어준 존재가.”
라크 반 그레이스가 마차에서 내렸다.”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황야를 청년은 걸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삭, 하고 메마른 땅이 갈라졌다.”
탁.”
라크가 걸음을 멈췄다. 모래바람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신전의 모습이다. 신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그곳에 있었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선 짐승. 스스로가 인간이길 바란 마수.”
스릉.”
그는 아무 말 없이 땅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마수의 왕, 바르타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라크 또한 허공에 손을 뻗어 성검을 움켜쥐었다.”
“라크 반 그레이스.””
이름.”
“바르타.””
호명(呼名).”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
몇 번이고 마주쳤던 호적수가, 마지막이 될 결전에 앞서 서로의 검을 보았다. 검의 형태는 서로 닮아있다. 검을 잡는 자세 또한, 닮아있다.”
같은 스승을 두었기에.”
같은 스승에게 검을 배웠기에.”
자세한 형태가 다를지언정 그들의 검의 본류에 위치한 검술은 같다. 파생되고 갈라져 저마다의 형태로 꽃을 피운 검. 눈보라 속에서 꽃피운 새하얀 꽃과, 인간의 핏물로 개화한 붉은 꽃이 서로를 겨누었다.”
——————.”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온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고, 가라앉았을 무렵 두 검사의 형상은 사라졌다. 형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카아아아아아앙! 하고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불어오는 모래바람 속에서 두 개의 검(劍)이 맞부딪쳤다. 검이 맞부딪친 순간 몰아치는 풍압에 모래바람이 걷혔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모래 알갱이들 사이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합(一合).”
검이 맞부딪친 순간 바르타의 몸은, 라크의 몸은 동시에 경직했다. 한순간의 당황. 한순간의 경직. 1초를 잘게 쪼갠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한들, 두 검사는 같은 감상을 공유했다.”
검(劍)에 담긴 무게가 다르다.”
과거 눈앞의 검사와 검을 나누었을 때와, 지금 검이 맞부딪친 순간 느껴지는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칼자루를 쥔 손가락을 타고 몸을 두들기는 울림은 거세다. 과거보다 훨씬.”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수의 왕 바르타는 죽음의 칼과 마주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성사된 재결전을 통해 바르타는 성장했다. 과거의 자신을 되찾아갔다.”
라크 반 그레이스는 숱한 난전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배교자 토벌전에서 잊힌 고대의 신들을 상대했으며, 귀신이길 바란 어느 인간이 삶의 끝자락에서 펼친 절기를 목도했다.”
두 검사 모두 경험을 쌓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전보다 앞선 곳 까지 나아갔으며, 둘 모두 극한을 한 걸음 앞둔 곳에 멈춰선 상태였다. 검을 한 번 맞부딪 친 순간 둘은 서로의 경지를 이해했다.”
캉, 카아아아앙!”
망설임과 경직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맞부딪치며 튕겨져나갔던 두 개의 검이, 같은 궤적을 그리며 다시 맞부딪쳤다. 이번에 밀리는 것은 라크이나, 라크는 이전처럼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지는 않는다. 밀려남을 받아들인다.”
촤악.”
라크의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육체의 부족함을 받아들인다. 부족함을 받아들임으로써 라크는 다른 답을 찾아낸다. 마치, 검성(劍聖) 칼트의 검처럼 부드럽게.”
카가가가가가가각!”
흐르듯이 휘둘러진 검이 바르타의 검을 후려쳤다. 세 번의 합(合). 찰나의 순간 벌어진 세 번의 격돌과 함께 라크와 바르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물러섬은 회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깐의 여유는 숨을 돌릴 틈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걱.”
바르타의 검이 잔상을 흩뿌리며 휘둘러졌다.”
칼의 궤적을 따라 터져 나오는 검기가 일대를 휩쓸었다. 닿는 것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검기. 과거의 라크는 이 일격을 막는데 목숨을 걸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쿠웅, 하고 라크가 발을 내려찍었다. 밀려드는 검기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뜬 채 검을 휘둘렀다. 라크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눈보라가 몰아쳤다. 라크의 마나이자, 라크가 형상화해낸 자신의 검기(劍氣).”
맹수처럼 물어뜯는 검기를, 눈보라가 휘감았다. 검기와 검기가 맞부딪치며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려퍼졌다. 그리곤, 투확.”
검기와 검기가 상쇄됐다.”
완전히 상쇄해내진 못했는지 라크의 팔뚝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얕다. 전투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라크는 튀어 오른 핏물을 닦아내며 검을 갈무리 했다.”
“이 정도가 아닐 텐데.””
라크가 눈을 부릅떴다.”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안다. 마수의 왕.””
라크는 알고 있다.”
눈앞의 검사가 고작 이정도 검을 펼치지 않음을. 눈앞의 검사는 손대중을 두고 있다. 마치, 자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는지 시험하듯이.”
“전력으로 덤벼라.””
라크가 쿠웅, 하고 발을 굴렀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조금 더 거세졌다. 가열된 육체에서 새하얀 증기가 피어올랐다. 붉은 눈동자가, 조금 더 붉어졌다.”
그 눈동자.”
저 강렬한 시선.”
그 시선을 마주한 마수의 왕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그래, 저것이다. 저걸 보고 싶었다. 웃음을 흘리며 마수의 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벌어진 입가 사이로 새어나온 것은 인간의 목소리.”
“과연.””
몰아치는 모래바람은 이미 걷힌 뒤다.”
저 너머에 황야가 펼쳐져 있다 한들, 거센 모래 폭풍이 불어온다 한들, 지금 이 공간만큼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유리되어있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만들어낸 풍압이 모든 것을 걷어낸 까닭이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바르타가 웃음을 흘렸다.”
그가 들어 올렸던 검을 콱, 하고 신전의 바닥에 박아 넣었다. 검을 쥐고 있던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바르타는 눈앞의 청년을 가리켰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나는 그와 재결전을 펼쳤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맞부딪침에서 과거와 같은 열망을 느끼지 못했다.””
라크를 가리킨 채 바르타는 말한다.”
“그는 여전히 긍지 높은 검사다.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위치한 검사다. 하지만···.””
바르타가 신음했다.”
“나는, 그자에게서 더는 찬란함을 느끼지 못했다.””
바르타가 열망했던 빛.”
이해할 수 없는 찬란한 빛. 그 빛이 더는 그 인간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재앙이 되어버린 그 검사는 더는 광채를 내뿜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끔찍하게도 강하지만. 끔찍하게도 아름다운 검을 휘두르지만··· 그것은 내가 바란 것이 아니다. 내가 바란 것은, 그런 괴물 따위와의 재결전이 아니란 말이었다.””
바르타가 들어 올린 손으로 제 가슴팍을 가리켰다. 제 몸에 남은 수많은 상처를 가리켰다. 수백 년 전의 어느 검사가 자신의 몸을 할퀴었던 상처들이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더듬으며 그가 말했다.”
“내가 바란 것은 인간,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과의 재결전이다. 찬란함. 제 삶을 바쳐 무언가를 증명하려던 찬란한 ‘인간’과의 재결전이었다.””
찬란함을 잃어버린 인간.”
재앙이 되어버린 검사. ”
그런 괴물과의 재결전에서 바르타는 자신의 심장이 뛰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좋은 스승이었지만, 더는 호적수라 부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대결은 결국 성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