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8
움켜쥔 검을 휘둘러, 자신과 카일 사이에 드리운 흙먼지를 모조리 걷어내며 가니칼트가 말했다.”
“보여라, 네 전부를.””
네가 가진 최선을.”
용사였고.”
초인이었으며.”
마왕을 베어낸, 역천(逆天)의 검사.”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역천의 경지에 도달한 단 두 명의 검사. 같은 경지에 선 두 명의 검사가 비스듬히 갈라진 하늘 아래 서로를 마주했다.”
더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같은 속도로, 같은 보폭으로, 같은 자세로, 같은 시간 선상에서 두 자루의 검(劍)이 마치 한 자루처럼 겹쳐졌다.”
검에 의해 갈라진 땅. 검에 의해 베여버린 하늘. 그리하여 천지가 검이 남긴 흔적에 뒤덮인 어느 황야에서, 두 명의 검사가 맞부딪쳤다.”
같은 속도, 같은 자세, 같은 시간선상에서 두 자루의 검이 겹쳐진 순간 울려 퍼지는 것은 절삭음도, 공간이 삐걱이는 소리도 아니었다. 어느 한 쪽이 밀리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검기가 공명하는 소음도 아니었다.”
카아아아앙!”
울려 퍼지는 것은 담백한 소음.”
쇠와 쇠가,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울리는 소음만이 황야에 맴돌았다. 카앙, 소음과 함께 두 자루의 검은 서로를 밀어냈다. 두 자루의 검이 비슷한 기울기로 기울어져 호각을 이루었다.”
호각(互角).”
호각을 이루는 두 자루의 칼이 다시 한 번 기울어졌다. 기울어지며 서로를 향해 치솟았다.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치솟는 검격과 검격이 서로를 할퀴었다.”
카앙, 캉, 카아아앙!”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흙먼지가 빨려 들어가 용솟음쳤다.”
“하···.””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니엘은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카일, 저 녀석이 갑작스레 일어났단 사실만 해도 놀랍거늘··· 곧장 전장으로 달려온 카일은 검(劍)을 뽑아들었다.”
검을 뽑아들고 달려든 상대는 가니칼트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 자신을 몇 번이고 패배시킨 상대를 향해 카일은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곤, 지난 수년간의 공백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카일은 가니칼트와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하여간.””
여차하면 둘의 싸움에 개입하려던 라니엘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검을 맞부딪치는 모습을 바라보던 라니엘은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방해겠지. 어느 쪽이든 간에.”
캉, 카앙··· 울려 퍼지는 소음들 사이로 라니엘은 가니칼트를 바라봤다. 검을 휘두르는 재앙을, 과거 용사였던 인물을 흘겨봤다.”
호흡이 다르다. 자세가 다르다. 분위기가 다르다.”
라니엘이 상대하던 것은 죽음의 칼, 가니칼트였으나··· 지금 카일이 상대하는 것은 ‘검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었다. 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이해한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싸움에 앞서 가니칼트는 말했었다.”
자신을 쓰러트리는 데 무엇을 쓰던 상관 없다고. 자신은 재앙이며, 재앙을 쓰러트리는 데 수단을 가리는 것이 미련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
그 말은 분명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라니엘은 알고 있었다.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니칼트에게도 그가 떠올리는 최선의 결말이 존재했다. 자신에겐 과분하다고 여기면서도 어쩌면, 하고 떠올려봤을 소망.”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라니엘은 그 바람을 이루어줄 수 없었다. 가니칼트에게 최선의 결말을 마련해줄 수 없었다. 그야, 자신은 검사가 아니었으니까. 그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카아아아아아아앙!”
카일 토벤, 저 녀석뿐일 테니까.”
캉, 카앙!”
소음 사이로 라니엘은 카일을 흘겨봤다.”
가니칼트에게 몇 번이나 도전했던 녀석이기에, 용사였고, 초인이었으며, 마왕을 베어낸다는··· 가니칼트와 같은 위업을 이뤄낸 녀석이기에. 그런 카일 토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결말이 저곳에 있었다.”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며 가니칼트는 자세를 잡았다. 과거처럼 보여주듯이, 가르치듯이, 따라 해보라는 듯이 자세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눈앞의 적을 베어내기 위해 가니칼트는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갈라트릭 류 제 1식, 초견살(初見殺).”
쾌속의 검격. 공간을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검격에 카일은 정확하게 같은 일격으로 맞섰다. 초견살과 초견살. 쾌속의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공기가 터져나갔다. 찢어진 공간이 맞물리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카아아아아앙!”
서로의 일격에 튕겨져나간 두 자루의 검은 또다시 호각을 이룬다. 상대가 그리할 줄 알고 있었다는 양, 두 명의 검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검로(劍路)를 이었다.”
제 2 식, 허상검.”
제 3 식, 절검···.”
같은 기술. 같은 자세.”
가니칼트가 어떤 검을 펼치더라도 카일은 곧장 대응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정면에서 기술을 받아쳤다. 과거처럼 피를 토하지도, 밀려나지도, 몸을 비틀며 잔기술을 펼치지도 않았다.”
정면에서 같은 검술로 받아칠 뿐이다.”
검을 휘두르는 가니칼트는 느낀다.”
눈앞의 검사가 더욱 날카로워졌음을. 그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했음을. 카일이 휘두르는 검은 날카롭다. 간결하다. 틈이 없었다. ”
카아아아앙!”
하지만 그렇다 하여, 저자의 검이 자신의 검과 같지만은 않다. 가니칼트는 보았다. 검을 쳐낸 카일의 자세가 일변함을. 마치, 지금부터 자신의 것을 내보이겠다는 것 마냥··· 자세를 달리함을.”
쿵, 하고 카일이 땅을 내려찍었다.”
그 순간 가니칼트의 눈에 수많고 수많은 검로(劍路)가 펼쳐졌다. 한순간에 가짓수가 늘어났다. 쳐내야 할 것이 늘었다. 지금 카일이 펼치려는 검술은 가니칼트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난검(亂劍), 검의 그물.”
그것은 어느 귀신의 검이요.”
갈라트릭류, 초견살(初見殺).”
어느 긍지 높은 검사의 검이리라.”
전혀 다른 두 개의 검로를 가로지르는 것은 카일이 쥔 한 자루의 검(劍)이다. 두 개의 검로를 하나로 엮어내며 카일이 검을 휘둘렀다. 휘두름은 한 번이나, 쏟아지는 검격은 하나가 아니다.”
카아아아아아앙!”
쾌속의 검격이 가니칼트의 검을 밀어낸 순간, 카일을 중심으로 일대의 모든 것이 한순간 멈춰 섰다. 직후 밀려드는 것은 거센 바람이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지면이 갈라졌다. 수십, 수백의 검흔이 한순간에 지면에 찍혔다. 휘몰아치던 흙먼지가 잘려나가고, 튀어 오른 돌바위가 잘게 조각났다. 그물처럼 밀려드는 쾌속의 검격을 받아내며 가니칼트가 피를 흘렸다. 피를 흘리며 그는 웃었다.”
다르다. 다른 것이다.”
자신의 검(劍)이 섞여 있으나, 저것은 자신의 검이 아니다. 카일 토벤이란 인간이 완성시킨 전혀 다른 검이었다. 검의 그물을 찢어발기며 가니칼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카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카앙, 캉!”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가니칼트는 느낀다. 눈앞의 검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걸어 완성에 이른 인물임을. 자신과 닮았으나, 자신과는 다른 검(劍)을 휘두르고 있음을.”
‘···아아.’”
그렇기에 저자는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덤비라고. 당신의 최선을 보이라고.”
검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에게 재결전을 바란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리라.”
‘바라지 않았다. 이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재앙임을.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음을. 인류에게 있어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든 쓰러트려야 할 상대에 불과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죽음의 칼은 생각했다.”
성장한 인류의 손에 쓰러진다면, 별이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로 제 앞에 선 인류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죽음일 것이라고. 자신에겐 그런 결말만으로도 족하다고 그는 여겼다.”
용사, 가니칼트 역시 마찬가지다.”
재앙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쓰러질 수 있다면, 인류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영웅으로서도, 수호대장으로서도, 여왕의 충신으로서도, 그 무엇으로도··· 가니칼트는 자신에게 예정되어있을 최후를 받아들였다. 재앙으로서 쓰러지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의 결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하지만,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은.”
검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은 자신에게 주어질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찌 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는 검사다. 긍지 높은 검사요, 검(劍)으로 생(生)을 살아온 이다.”
자신이 쓰러진다면 그것은 검(劍)에 의해서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다만 검을 휘두르다 맞이한 죽음이어야만 한다고 그는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바랐다.”
누군가 자신을 검(劍)으로 꺾어주기를. 다만 검사로서 자신을 죽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깊은 곳에 품은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이루어질 일이 없어 단념했을 바람이었다.”
‘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