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5
〈 45화 〉 깨달음, 그리고 성장(1)
* * *
최근 들어 사건 사고가 잦다.
문득 든 생각에, 아플리아의 학장 아론은 잠시 깃펜을 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서류 더미가 쌓여있다.
‘요즘 따라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군.’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살피며, 아론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사실, 처리해야 할 서류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아론도 알고 있다.
지난 한 달간, 사건 사고가 잦다.
유난히도 많았다.
‘로셀, 그 친구의 양녀를 교수로 올리고, 수업을 주고, 공개 강연을 준비하고···.’
물론, 뛰어난 교수에게 자리를 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로 바빠지는 것이라면 아론은 기꺼이 제 소매를 걷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바쁨은 썩 달갑지 않다. 이 바쁨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부터 발생한 까닭이다.
‘아플리아 테러 사건.’
변절자가 아플리아를 노렸다.
그 목적은 알 수 없다.
변절자들에게 선지자라 불리는 영문 모를 인물이, 아플리아에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아론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변절자로 짐작되는 인물이 없다. 전투 마법학의 조교수인 켈트 교수도 음침해 보이긴 하지만, 성실한 인물이었다.
‘그런 교수가 갑자기 변절자가 되다니.’
뭔가, 뒤가 구린 느낌이다.
‘맥하트 그 친구도 변절자니 뭐니, 기사들에게 연행되더니···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고.’
맥하트.
그 이름을 떠올리자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맥하트, 그 교수를 시작으로 이어진 ‘모종의 사건’ 때문이다.
“후우···.”
아론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놓인 서류들을 흘겨본다. 서류에 쓰인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그 내용은 같다.
휴강 신청서 / 원소 마법학 샤를롯.
휴강 신청서 / 마나 분석학 쿠르테.
맥하트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휴강 러쉬.
대뜸 강의를 쉬겠다는 교수들의 신청서에, 안 그래도 복잡한 아론의 머릿속은 꼬이다 못해 엉킬 지경이었다.
“으음, 으으으음···.”
아론은 신음한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민해보려 했으나, 쓸어넘길 머리칼이 얼마 없다.
‘옛날에 고민하며 하도 쥐어뜯은 탓이겠지···.’
조금 슬퍼졌다.
그래도 버릇은 어디 안 가는지,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손가락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움켜쥔다.
똑똑.
아론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쥐어뜯을까 말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론, 있는가?
문밖에서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익숙한 친우의 목소리.
그러나, 지금은 썩 달갑지 않은 그 목소리에 아론은 심드렁히 대답했다.
“···들어오게.”
로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론은 도끼눈을 뜬 채 로셀을 노려보았다.
“···자네는 눈을 왜 그렇게 뜨고 있는가?”
“자네, 정말 몰라서 묻는가?”
“뭐를 말인가.”
“이거 말일세, 이거!”
아론이 빽, 소리를 내지르며 휴강 신청서들을 들어 올렸다. 로셀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물론, 휴강을 신청한 교수들은 로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아론이 로셀에게 성질을 부리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자네의 제자! 양녀! 라니아 교수가 참관한 수업마다 왜 교수들이 휴강 신청을 내고 있느냐 말일세!”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 소녀가 요즘 여러 교수의 수업을 참관하고 다닌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목적이 자신에게 부족한 ‘교육’의 이해라는 걸 들었을 때, 아론은 감동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때 말렸어야 했다.’
기특하다며 원하는 만큼 듣고 오라고 했던 과거의 자신이 밉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 말렸어야 했다.
휴강 신청서.
아론은 자신의 손에 들린 신청서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가 쓰여있다.
작성자 : 샤를롯.
제가 가르치던 건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교수로서 부족함을 느낍니다···. 제가, 제 마도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데 어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아론 학장님.
당분간, 자신을 돌아보고 커리큘럼을 조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편지가.
작성자 : 쿠르테.
제가 하던 건 분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저는 교수가 아닙니다···.
도저히 교단 위에 설 자신이 없습니다.
당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한두 장이 아니다.
라니아 교수가 참관한 수업은 총 5개, 그리고 아론의 손에 들린 휴강 신청서는 4개다.
남은 한 명의 교수는 뭐냐고?
그건 맥하트다. 기사들에게 심문을 받느라 몸져누운 맥하트의 수업 역시 휴강이다.
“이러다가, 석 달은 더 땡겨서 방학을 하게 생겼단 말일세···!”
“음···.”
“도대체 자네의 양녀는 뭘 하고 다니길래, 교수들이 이 모양 이 꼴인가? 가르침에 대해 이해하고자 참관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왜 참관한 교수마다 펜을 꺾고 있느냔 말일세···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도대체 뭘 보여줬길래?
아론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 얼마 안 남은 머리숱 마저 다 빠지게 생겼다네···.”
아론의 절박한 외침이 학장실에 울린다.
그 울림에 로셀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그래도 이제 두 개밖에 안 남았네.”
“···두 개나 남은 거겠지.”
“그 두 개 중 하나는 내 강의지 않은가. 나는 휴강 같은 건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
아론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로셀을 흘겨본다.
로셀 반 트리아스.
아론이 기억하는 로셀은 언제나 계획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번 일에도 분명 계획이 있을 것이다.
···아론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지.’
그래,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아플리아다.
‘이참에 교수들도 재정비 시간을 갖추고···.’
아론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들긴 까닭이다.
아론 학장, 안에 있는가?
“···있네. 들어오게.”
문을 열고 교수 한 명이 학장실로 들어온다.
들어온 교수의 얼굴이 낯이 익다. 아론은 물론이고, 로셀과도 연이 깊은 교수 중 하나였다.
회로의 이해학 담당 교수, 게렉트.
그는 아플리아에 오기 전부터 교수로서 일한 마법사다. 교육자로서의 경험만 따지자면 그를 넘을 교수는 왕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게렉트는 아플리아의 설립 당시, 아론이 가장 먼저 섭외했던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왜?’
아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렉트 교수? 무슨 일인가?”
“그, 아론? 내가 요즘 꽤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
어째 그 첫마디부터가 불안하다.
하지만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렉트가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이다. 게렉트는 아플리아의 설립 당시부터 단 한번의 수업도 쉬지 않은 교수였으니까.
“···오랜만에 쉴까 하네.”
“···무슨 일 있는가?”
“좀, 충격을 받아서 말이지.”
아론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라니아 교수인가?”
“뭐야, 자네도 알고 있었나? 알고 있으면 말이 빠르겠군. 그 젊은 교수가 내 수업에서 제시한 이론인데, 이걸 한번···.”
게렉트가 대뜸 종이를 내민다.
휴강 신청서.
아론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런 아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게렉트는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 획기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니, 내게 한 일주일 정도만 휴가를···.”
“·····.”
아론의 손은 자연스레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로 향한다. 그것을 움켜쥔다.
툭, 투둑.
얼마 남지 않은 아론의 머리칼이 떨어졌다.
해탈한 얼굴로 아론은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어찌 말리겠는가. 푹 쉬고 돌아오도록 하게나.”
2.
로셀 교수의 마나의 거래학 수업.
수업의 시작을 앞둔 학생들은 유난히도 기운 넘친다. 평소라면 초주검 상태로 수면과 각성 상태를 오갈 학생들의 눈빛이, 오늘은 초롱초롱 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마나의 거래학 수업을 비롯한 필수 교과목들은 그 시간대가 겹쳐져 있었다. 거래학 수업 이전에 하나, 이후에 하나씩 배치되어있는 식이다.
즉, 이른 아침부터 수업 하나를 듣고, 거래학 수업을 듣고, 다시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단 소리다.
게다가, 필수 과목이라 대충할 수도 없다.
지친 상태로 마나 거래학 수업에 들어와, 3시간의 연강을 견디고 얼마 안 가 하나의 수업을 더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로셀 교수를 제외한 필수 교과목 교수들이 단체로 휴강을 냈다.
아론 학장으로선 속이 들끓을 이야기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마냥 좋을 뿐이다.
“이번 수업 끝나고···.”
“왕도에 요즘 이 식당이···.”
수업이 끝나고 뭐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그렇게 학생들이 신나게 잡담을 떨 동안.
“·····.”
레스티는 말없이 노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딱히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을 뿐 더러, 그녀는 이번 수업을 준비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오늘 진도가···.’
로셀 교수의 수업은 따라가기 어렵다.
특히, 수업에서 한번 흐름을 놓치면 곱절의 시간을 소모해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수업의 흐름을 타려면, 대충 그 흐름이 무엇인지는 알아놔야 한다. 레스티는 노트를 넘기며 예습해온 부분을 되새겼다.
툭.
그때였다.
“…?”
집중하고 있던 레스티의 옆에 누군가 필기구를 내려놓았다. 이윽고 의자를 빼고 앉을 준비를 한다. 그 사실에 레스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잿빛의 차기 마탑주라는 직위.
무뚝뚝하고 말이 적은 레스티의 성격.
그 둘이 합쳐진 탓에, 학기 초면 몰라도 지금에와서 레스티에게 접근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런데,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고?
레스티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얼굴이나 보잔 생각이었다.
사락.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제는 익숙해진 잿빛 머리칼이다. 뒤이어 새하얀 피부와 푸른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녕.”
그녀가 짧게 손을 흔든다.
레스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니아 교수님?”
“응. 앉아도 돼?”
레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니아 교수는 의자를 드르륵 빼, 자리에 앉았다. 레스티는 다시 노트로 시선을 돌렸지만,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쿵쿵.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크게 뛴다.
뭐라도 말을 걸어야 하나?
어울리지도 않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근데, 어떻게 걸어야 하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업 시작을 앞두고 지난번 과제에 관해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
잠시 고민하던 레스티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 더미를 꺼냈다. 꺼낸 종이는 라니아 교수가 나눠준 학습지다. 당연히, 빈칸은 전부 채워져 있다.
‘이번 수업에서 배울 내용하고 연관이 있으니까.’
···아마도 있을 거다.
레스티는 빽빽하게 채운 학습지를 라니아 교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혹시나 저번처럼 칭찬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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