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1
톱니가 돌 때마다 별빛이 흩뿌려졌고, 흩뿌려진 별빛은 꽃이 되어 개화했다. 세 사람의 발치에는 별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아주 작은 화원(花園). 작디작은 화원 위에서 클로에가 감았던 눈을 떴다.”
격류(激流), 클로에.”
그녀가 지팡이를 비틀었다.”
그 순간 투둑, 투두둑 하고 지팡이 끝에서 백금색의 물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진 물방울이 땅에 닿은 순간 물방울은 물길이 됐다. 물길은 흘렀고, 어느덧 거세졌으며 눈치챈 순간 강이 되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별빛으로 이루어진 물길이 흘렀다.”
격류(激流), 거세게 몰아치는 물길이 흐르는 곳마다 꽃이 피었다. 꽃의 행렬이 물길을 따라 퍼졌다. 아무것도 없을 메마른 땅에, 빛 한 줌 새어 들어오지 않는 지하공간에 백금색의 꽃은 피었다.”
작디작은 화원에서 시작된 물길은 어느덧 지하공간 곳곳으로 흘러들었고, 물길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 지하공간은 이미 거대한 화원(花園)이 되어있었다.”
사락.”
백금색의 꽃에 뒤덮인 지하공간에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서 스케발과 교전하고 있는 흑룡이 일으킨 바람인지, 아니면 저 위에서 불어온 바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백금색의 꽃잎은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에서 클로에가 외쳤다.”
격류(激流), 그리고 격류(Swift).”
연산식이 요란스레 돌아가며 빛을 뿜었다.”
별의 특성과 그녀가 일으킨 주문이 공명했다. 너울 치는 꽃잎이, 흐르는 별의 강이 찰나의 섬광과 함께 범람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꽃잎들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범람하는 강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지하공간을 휩쓸었다. 파도에 뒤섞인 꽃잎들이 찬란히 빛났다. 그 광경은 꿈이라기엔 한없이 현실 같으며, 현실이라기엔 지나치리만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오직 한 명에게만큼은.”
그것은 악몽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범람하는 꽃잎을, 파도를 바라보며 광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빛의 파도가, 밀려드는 꽃잎이, 영역을 넓혀가는 화원(花園)이··· 그에게 있어선 치명적인 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스텔라와 와쳐의 별빛은 나를 좀먹는다.’”
저들의 별빛은 아크리타 자신의 영혼을 양분 삼아 꽃피울 것이요, 영혼을 불태울 것이다. 만개하는 별의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칼날인 셈이었다. 범람하는 강이야··· 뭐 말할 것도 없으리라.”
“······.””
아크리타가 말없이 클로에를 노려봤다.”
규율의 글레투스를 빼다 박은듯한 소녀. 그녀를 흘겨보며 아크리타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태초의 시대에 자신을 패배시켰던 여인과 닮은 소녀가, 다시 한 번 자신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우연이라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 하여 해야 할 일이 변하지는 않았다.”
콱.”
광인··· 아니, 천혜(天惠) 아크리타가 창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창을 그가 길게 늘어트렸다. ”
태초의 시대, 불을 잦는 대장장이란 별명을 지닌 노인이 있었다. 수많은 영웅의 무구를 벼려낸 노인은 신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정작 노인 본인은 신의 권능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최고란 언제나 날붙이였으니.”
노인은 마법을 경멸했다. 신의 권능을 혐오했다. 기적을 벌레와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노인은 언제나 날붙이만을 신앙했다. 그런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 무구가 하나 있었다.”
삼십칠개의 걸작 중, 서른일곱 번째 무기.”
불을 잦는 대장장이가 벼려낸 마지막 금속.”
‘우인(愚人)의 창.’”
그것은 한 자루의 창이었다. ”
한 자루의 창에 노인은 자신의 삶을 담았다. 자신의 철학을 욱여넣은 것이다. 아크리타에게 창을 강탈당했던 그날, 노인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었다.”
그 창은 기적을 뚫는 창이라고.”
마법도, 주술도, 신의 권능도, 그 무엇도 가지지 않은 전사가··· 기적을 부리는 이들을 꿰뚫게 해주는 창이라고 노인은 말했다. ”
「우인(愚人), 멍청한 이.」”
「날붙이밖에 모르는,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멍청이들을 위한 무기다. 쓰다 보면 알 거다 애송아.」”
과연, 노인의 말대로였다.”
이 한 자루의 창으로 아크리타는 신의 권능을 부리는 수많은 대장군을 살해했다. 마법사들을 죽였다. 창을 아크리타에게 빼앗긴 것이 노인에게 있어 불행이었다면, 창이 본래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이 불을 잦는 대장장이에게 있어 행운이었으리라.”
‘그때도, 이것으로···.’”
규율의 글레투스를 가로막았었지.”
우인의 창에 시동을 거는 방법은 단순했다. 우인이 될 것. 마법도, 기적도, 그 무엇도 부리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는 것이 조건이다.”
사락.”
아크리타는 제 영혼에 남은 마나를 모조리 흩뿌렸다. 두르고 있던 그림자를 풀어헤쳤다.”
그렇게 대마법사는 천혜(天惠)가 된다.”
마나를 모두 털어낸 순간 아크리타는 대마법사가 아닌 날붙이를 쥔 한낱 무인이 됐다. 불을 잦는 대장장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인(愚人)이 된 것이요,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파스슥.”
그제야 우인의 창이 아크리타에게 반응했다. ”
창을 쥔 이가 마나를 지니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 창날이 검푸르게 물들었다. 우인의 창이 시동했음을 확인한 아크리타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발을 내딛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하여 기술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사실, 기술이라 해 보아야 별것 없다.”
지금부터 자신이 펼칠 기술은 가니칼트나, 숱한 영웅들이 펼치는 기적의 일격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크리타는 하늘을 가르는 묘리 따위 모른다.”
알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검의 극한이니, 검에 담아야 할 신념이니, 전사의 각오이니, 그런 것들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자신이 쥔 날붙이에 그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쓰잘데 없는 짓이지.’”
그에게 있어서 날붙이란 다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에 불과했다. 파고든다. 찌른다. 꿰뚫는다. 죽인다. 그는 언제나 효율만을 추구했기에, 그가 단련한 기술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었다.”
무기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
창이란, 찌르고 베어서 죽이기 위한 것.”
아크리타는 그 본분에 충실했다.”
수천, 수만, 수십만 번 반복해온 동작을 따라 할 뿐이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아크리타가 팔을 움직였다. 낮게 끄는 창이 호를 그리며 앞을 향했다.”
쐐엑.”
걸음을 내디디며 창을 찔러넣었다.”
스팡, 하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날이 한순간 사라졌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창의 기본이요, 가장 단순한 기술이다.”
그러나 그 여파만큼은 담백하지 않다.”
투확, 하는 소리와 함께 아크리타를 향해 흩날리던 꽃잎들이 터져나갔다. 창이 내질러진 경로를 따라 꽃잎들이 찢어졌다.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아크리타가 한 걸음 내디뎠다.”
내디디며 다시 한 번.”
밀려들던 꽃잎이 찢어진다. 창을 내지르고, 몸을 비틀며 창대를 낮게 끌며 처음의 자세로 돌아온다. 그 일련의 동작이 너무나도 매끄럽다. 내지르고, 창대를 휘둘러 베어내며 아크리타가 걸음을 내디뎠다.”
일격, 이격, 삼격···.”
검푸른 창에 닿는 순간 꽃잎은 바스러졌다. ”
튀어오른 물방울은 증발했다. 우인의 창. 날붙이밖에 모르는 멍청이를 위해 만들어진 창은 그 어떤 기적이라 한들 능히 꿰뚫는다. 창날에 닿는 순간 기적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광인은 우인으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과거 자신은 이 한 자루의 창과, 자신의 기술만을 믿고 규율에게 덤벼들었다가 패배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패배로부터 배운다. 광인이라하여 다를 바 없다. 창을 휘두르며 아크리타가 시선을 늘어트렸다.”
조금 전 체외로 배출했던 마나.”
제 곁을 맴돌고 있는 그림자.”
그것을 의식하며 아크리타가 주문을 읊조렸다. ”
체내가 아닌 체외의 마나를 운용하는 것은 막대한 연산력을 요구하나··· 자신은 이날을 위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니던가.”
초인의 연산력은 그마저 가능케 한다.”
우인의 창을 쥔 채 아크리타가 체외의 마나를 운용했다. 태초의 시대와는 다름을 보이듯이, 자신의 수만 년이 가진 무게를 자랑하듯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사령술이, 주술이, 주문이, 기적이, 모든 것이.”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꽃밭을 짓뭉갰다.”
찢어지고 짓뭉개져, 흐드러진 꽃잎 사이로 우인의 창을 쥔 천혜(天惠)가 질주했다.”
지팡이를 쭉 뻗은 채 클로에가 눈살을 찌푸렸다.”
휘몰아치는 별의 파도, 만개하는 꽃잎.”
이 모든 게 닿는 것만으로 광인을 소멸시킬 수 있는 극독이자, 광인을 죽이기 위한 칼날이었다.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만개한 꽃잎과 범람하는 파도 속에서도 광인은 쓰러지지 않는 것인가. 클로에가 눈살을 찌푸린 채 저 너머를 보았다. 와쳐의 시야를 통해 내려다보는 아크리타는 백금색의 화원 위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꽃잎들을 베고, 꿰뚫는다.”
주문으로 지면을 융기시키고, 사슬로 발판을 만들어 질주한다. 별의 꽃잎에 닿은 지면이 가라앉고 사슬이 끊어지려는 순간 아크리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미 사슬을 밟고 도약한 뒤였다.”
꽃잎들을 찢어발기며 그가 창대를 휘둘렀다.”
창대가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 완성된 주문들이 차례로 빛을 뿜었다. 주문을 삼키는 꽃잎에 닿아 주문들이 바스러지나, 바스러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광인이다.”
파고들 부분을 확인한 아크리타는 놓치지 않는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파고들어 물어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