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2
주문을 난사하며 아크리타가 파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창을 내지른 순간 투확, 소리를 내며 파도에 구멍이 생겼다. 한순간에 밀려드는 물길이 구멍을 메꾸긴 하지만··· 저 창은 무언가 기이하다.”
‘닿는 순간 꿰뚫려.’”
영문 모를 창이다.”
검푸르게 빛나는 창은 기적조차 꿰뚫었다. 그가 휘두르는 창날의 궤적은 간결했으며 창을 찌르고 회수하는 일련의 동작에는 걸림이 없었다.”
찌르고, 파고들고, 이탈한다.”
주문을 흩뿌려 틈을 만들고 파고든다.”
최고위주문을 난사하여 꽃잎을 멈춰 세운다.”
사령술로 불러낸 사역마들을 방패 삼아 이탈한다.”
분명 상대하고 있는 것은 한 명일 텐데, 수백, 수천 명의 군세를 상대하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클로에가 눈살을 찌푸린 채 지팡이를 휘둘렀다. 거세진 파도가 아크리타를 뒤쫓았다.”
‘빨리 끝내야만 해.’”
벨노아를 위해서라도.”
방법이 없다고는 하나, 조금이라도 빨리 싸움을 끝낸다면 벨노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붙잡으며 클로에가 이를 악물었다.”
파도가 한순간 크게 출렁였다.”
범람하는 별빛이 사방에서 아크리타를 향해 덮쳐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다. 아크리타가 덮쳐드는 파도 속에서 발을 지면에 내려찍었다. 쿠웅, 하고 갈라지는 지면에 발을 파묻은 채 아크리타가 팔을 뒤로 젖혔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덮쳐드는 파도에 가려 그 뒤의 동작은 보이지 않았다. 않았지만, 곧장 알게 됐다. 투확, 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공기를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쐐에에에에에에엑!”
흩날리던 꽃잎들이 찢어졌다. 꽃잎들을 찢어발기며 무언가 클로에를 향해 날아들었다. 광선과도 같이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밀려드는 건··· 아크리타가 쥐고 있던 검푸른 창이다.”
투창(投槍).”
마법을, 별빛을, 기적을 찢어발기며 밀려든 창날이 클로에가 쭉 뻗었던 지팡이를 꿰뚫었다. 세계수를 엮어 만든 고목 지팡이가 박살 난다. 박살 나며, 나무파편이 비산하고···.”
투확.”
더 나아간 창날이 클로에의 팔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흩뿌려지는 피. 튀어 오르는 살점. 클로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고목 지팡이와 클로에의 팔을 관통했음에도 창날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창은 클로에를 지나쳐 더 뒤로 향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클로에를 보조하던 나티다다. 그녀의 동공이 크게 뜨였다. 밀려드는 창날이 노리는 것은 나티다의 심장이다. 나티다의 눈이 크게 뜨였으나, 그녀에게 밀려드는 창을 막을 수단은 부재했다.”
밀려드는 창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무언가가 창대를 후려쳤다. 그 일격으로 하여금 궤적이 비틀린 우인의 창은 나티다의 바로 옆에 처박혔다.”
···마법으로는 멈춰세울 수 없는 우인의 창을 멈춰세웠다면, 그것은 하나 뿐이다.”
나티다가 시선을 늘어트렸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 창대의 궤적을 바꿔 자신의 목숨을 살린 것. 땅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나티다는 보았다. 보고선, 그녀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약속, 지키셨네요.””
직후 나티다의 앞에 누군가 착지했다.”
“약속, 지키셨네요.””
불어온 바람에 백발이 흔들렸다.”
찢어지고 피에 물든 옷자락이 펄럭였다. 나티다의 앞에 등을 보이고 선 청년이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하나 남은 팔을 뻗어 땅에 박힌 도끼를 쥐었다.”
치이이이이이익!”
시뻘건 쇳물을 떨어트리는 도끼를 빙글, 하고 돌리자 도끼는 부러진 성검이 되었다. 성검을 든 채 청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티다와 시선을 마주했다.”
“네 손에 죽고 싶진 않아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죽은 널 살려서라도 다시 죽여버리겠다. 그리 엄포를 늘어놓았던 나티다의 말을 되돌려주며 라크 반 그레이스가 피식 웃었다.”
상처 투성이, 잘려나간 한쪽 팔.”
그러나 라크의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
자세히 바라보니 잘려나간 팔의 단면은 깔끔하게 지혈 돼 있었으며, 큼직한 상처에는 신성술의 흔적이 가득했다. 나티다가 눈을 깜빡였다.”
···신성술? 도대체 누가?”
그리 의문을 가지는 순간이다.”
라크가 뛰어 내려온 천장의 구멍에서 누군가 차례로 뛰어내렸다. 금발을 나부끼는 레미아, 너덜너덜한 옷자락을 두른 카리옷, 성의(星衣)를 펄럭이는 데스텔.”
광인이 준비한 군세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토벌대가 전장에 합류했다. 그들이 차례로 지하공간에 착지하는 가운데, 나티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곳에는 못 보던 인물이 하나 껴있는 까닭이었다.”
“레미아의 등도 나쁘진 않네요. 카일 만큼 승차감이 좋진 않지만.””
“카일이 등이 넓긴 해.””
레미아의 등에 업혀 지하공간에 착지한 인물.”
허리춤까지 흘러내리는 벚꽃색의 머리칼과, 성녀 특유의 녹빛의 눈동자를 지닌 여인. 그 여인의 얼굴이 나티다에게 있어선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델로힘 교단에서 교육받던 시절, 초상화와 기록으로 몇 번이나 접했던 인물이다.”
“···성녀, 사라 님?””
축복의 성녀, 사라.”
최초의 성녀를 제외한다면, 역대 성녀 중 가장 강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던 인물. 무너져가던 교단의 권세를 바로 세웠으며 용사, 카일 토벤과 숱한 위업을 이루어낸··· 전대 성녀.”
그런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티다를 바라봤다.”
나티다의 녹빛 눈동자, 그녀가 입은 성녀의 사제복을 확인한 사라는 미소 지어 보였다.”
“난 성녀가 아니에요. 성녀는 당신이겠죠.””
쿠웅, 하고 데스텔이 방패를 내려찍었다.”
카리옷이 검을 늘어트렸으며, 레미아는 활시위를 당겼고 라크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들이 광인에 맞설 준비를 하는 가운데··· 사라는 나티다의 곁에 바로 섰다.”
그리곤, 콱.”
나티다의 손목을 움켜쥔 채 사라가 미소 지었다.”
“생각해보니 인수인계도 안 했었네. 늦은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 볼까요?””
신성력의 태반을 잃은 사라다.”
성녀로서의 가치조차 잃어버린 그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는 신성술을 부릴 수 있었다. 그녀의 기도에는 더는 신성력이 필요하지 않기에.”
사라의 손길에서 새하얀 빛이 피어올랐다.”
성녀였을 당시의 빛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빛. 새하얗게 빛나는 손으로 나티다의 손목을 부드럽게 움켜쥔 채 사라가 속삭였다.”
“다른 건 몰라도, 축복하고 치유는 가르쳐 줄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조금 빌릴게요.””
빛의 입자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르는 입자 사이로 그녀가 신성술을 읊었다. 그것은 최초의 성녀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그녀만이 가진 신성술이다.”
“잘 봐둬요.””
지금의 그녀로선 완성할 수 없는 신성술. 그렇기에 나티다의 신성력을 빌려 사라는 기적을 완성시켰다.”
“도움이 될 테니까.””
완성된 신성술이 빛을 뿜었다.”
백색의 입자와, 백금색의 입자가 눈처럼 흩날렸다. 흩날리는 입자에 닿은 이들의 신체에 한순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다.”
나티다가 눈을 크게 떴다.”
‘회복이라기보단···.’”
이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에 가깝다.”
살이 돋아난다. 뒤틀렸던 뼈가 제자리를 찾았다. 흘렸던 피가 돌아왔다. 잘려나간 신체 부위까지 재생시키진 못하지만, 이는 충분히 기적이라 부를만한 광경이었다.”
이런 신성술을 나티다는 본적도,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
“······.””
나티다가 말 없이 제 옆을 보았다.”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선배를 보았다.”
···델로힘 교단의 기록에서, 사라는 종종 이렇게 묘사되곤 했다. 축복의 성녀. 기적의 영역에 닿은 신성술을 펼치는 신에게 사랑받은 소녀. 그것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나티다는 깨달았다.”
신성력의 태반을 잃어버렸다 한들.”
그녀는 여전히 기적을 부리는 여인이었다.”
데스텔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흩날리는 꽃잎, 흐르는 별의 물길, 쭉 펼쳐진 화원(花園)은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다만, 계획대로 전황이 흘러가지 않았음을 그는 단번에 파악했다.”
최초의 광인은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조금 전 광인이 내던졌던 장창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어느새 광인의 손에 돌아가 있었다. 광인이 손에 쥔 창을 휘두를 때마다 그를 덮치려는 파도는 쪼개지고 포말이 일었다.”
···광인은 마법사가 아니었나?”
저 움직임은 결코 마법사의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깎아낸 일류 무인의 움직임. 하물며 저 기이한 창은 또 무엇인가. 데스텔이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늘어트렸다.”
카, 가가가가가각!”
저 멀리서 몰아치고 있는 폭풍을 보았다.”
하늘까지 치솟는 흙먼지와 폭풍. 뒤흔들리는 땅. 허공을 수놓는 수많고 수많은 주문들.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해골과 흑룡의 싸움이다.”
‘···늦었나.’”
데스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벨노아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깨달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