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3
“···데스텔 님.””
데스텔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클로에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신음했다. 벨노아가, 하고 그녀가 떨리는 입술로 발음했다.”
“정신 차려라. 클로에.””
데스텔이 콱, 하고 클로에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해라.””
데스텔이 클로에를 응시했다.”
“광인을 쓰러트리고 이 상황을 정리해야 벨노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집중해.””
얼핏보면 유약해 보이는 소녀이나, 그녀가 그리 약하지 않다는 것을 데스텔은 안다. 이 정도의 이야기만 들려줘도 충분할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 줄 누군가일 테니까.”
“내 말, 알아들었어?””
“······.””
클로에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무렵, 클로에의 표정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시간.””
클로에가 말했다.”
“시간을 끌어주세요. 광인의 발을 묶어주세요. 한순간이라도 좋아요. 한순간이라도 좋으니까···.””
그녀가 광인이 손에 든 창을 가리켰다.”
“저 창이 파도에 닿지 못하게 해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데스텔이 클로에의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클로에는 후우, 길게 숨을 내뱉고선 허공을 움켜쥐었다. 흩날리던 꽃잎들이 그녀의 손으로 모여들어 막대의 형상을 이루었다.”
별빛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움켜쥔 채, 그녀가 다시금 파도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기세가 죽었던 파도가, 더 뻗어 나가지 않던 꽃밭이 다시금 범람했다. 거세게 광인을 향해 덮쳐들었다.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데스텔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길게 늘어트린 창이 쥐어져 있었다.”
탁.”
구원의 가뉘르의 창을 움켜쥔 채 데스텔이 선두에 섰다. 그 곁에 라크 반 그레이스가 바로 섰으며, 카리옷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꽃밭에 발을 파묻었다.”
“라크.””
“예.””
“괜찮겠냐?””
라크가 짧게 숨을 뱉었다.”
“잘 안 움직이긴 하지만···.””
빙글, 하고 라크가 제 손목을 돌렸다.”
부러진 성검에서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시뻘건 쇳물이 꽃밭 위로 떨어졌다. 어느덧 라크의 손에는 한 자루의 도끼가 들려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도끼가.”
“머리를 쪼개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데스텔이 라크를 흘겨봤다.”
팔은 뜯어져 나갔으며 신성술의 회복을 받고 있음에도 상처의 회복은 더디기 짝이 없다. 이미 육체를 한계에 넘어선 곳까지 혹사한 까닭이겠지.”
당장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이거늘.”
라크의 눈동자에 깃든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하고 라크의 몸 위로 증기가 피어올랐다. 데스텔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놀라운 정신력이다. 정말이지.”
“카리옷.””
“대충 눈치는 깠다.””
데스텔의 곁에선 카리옷이 한숨을 내뱉었다.”
“저 창, 딱 봐도 기괴한 창이구만. 닿으면 불사고 나발이고 다 뚫리겠어. 그러니까, 불사를 활용한 전략을 쓰지 마라. 그거 아니냐?””
“맞습니다.””
“알았다. 노력해보마.””
불사(不死)조차 꿰뚫을 창이 저곳에 있다.”
카리옷과는 상극인 존재이나,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랜만에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죽음의 감각에 카리옷이 쓰게 웃었다.”
“애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뭐라도 해야지.””
그가 빙글, 십자가 검을 고쳐잡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각자의 호흡으로, 각자의 보법으로, 광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세 명의 인형(人形)이 가려졌다.”
그리고, 광인은.”
천혜, 아크리타는 꽃잎을 가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문제는 저들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박!”
비처럼 내리는 달빛을 창대를 휘둘러 쳐내고, 밀려드는 파도를 베어내며 아크리타가 길게 숨을 뱉었다.”
“돌겠군, 정말이지.””
더욱이 거세진 파도.”
전황에 합류한 전대 성녀, 신궁, 초인과 자신이 변수라 생각했던 청년, 그리고 용사까지. 분명 전장에서 이탈시키고 판의 아래로 치워버렸다 생각한 이들이 전장에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나, 비굴(卑屈)이라 불리는 저 용사가 거슬렸다.”
저자가 자신이 준비한 군세를 꺾어버렸음을, 그리고 전대 성녀와 라크 반 그레이스를 이 전장에 끌고 왔음을 아크리타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짙은 위화감을 느꼈다.”
‘비굴(卑屈)에게 저런 무력은 없을 텐데?’”
저만한 무력을 단기간에 어떻게 손에 넣었는가.”
잠에 들어있을 성녀를 어떻게 깨웠는가.”
수많은 의문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저자야말로 가장 큰 변수였다. 자신도, 하물며 라니엘 반 트리아스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판을 뒤엎어버렸다.”
‘잠깐.’”
아크리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성녀, 사라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랄 맞군.””
아크리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대 성녀가 눈을 떴다면, 그자 역시 눈을 떴으리라. 단신으로 판을 뒤엎고 전황을 역전시킬 존재. 카일 토벤이 판 위에 검을 들이밀었다.”
···이곳에 그가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혹은 불행으로 여겨야 할까.”
대륙의 반대쪽 끝자락에 서 있을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더이상 마왕과, 죽음의 칼과 함께 공멸하지 않으리라. 카일 토벤이 그곳에 향했기에.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광인의 창이 거칠어졌다.”
판이 엎어졌다.”
계획이 뒤틀렸다.”
모든 것이, 망가졌다.”
별의 농간 덕분에 죽음의 칼, 마왕과 함께 공멸하리라 예상했던 잿빛 마법사는 살아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다만 그녀가 바라는 결말을 손에 넣으리라.”
마수의 왕 바르타에게 죽임당하리라 예상했던, 하다못해 바르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리라 확신했던 라크 반 그레이스는 살아서 전장에 합류했다.”
스텔라와 와쳐는 자신을 죽일 칼날을 완성했다. 그들은 더이상 마(魔)를 담아낼 그릇이 아니게 됐다.”
자신이 만들어낸 군세에 휩쓸려 전장에서 이탈하리라 여겼던 신궁이, 불사의 초인이, 비굴의 용사가 부상 하나 없이 이 자리에 합류했다.”
모든 게, 그 모든 게 그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아크리타가 쌓아올린 계획이 망가졌다. 완벽했던 그림이 엉망이 됐다. 아크리타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바라봤다.”
얼룩지고, 물감이 튀고, 찢어지고, 뒤섞여서.”
그림은 더는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게 됐다. 이 그림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가치가 없어진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던 광인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조소였다.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비웃음.”
망가진 계획, 망가진 그림.”
빙글, 하고 광인이 창대를 고쳐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였다.”
전장에서 이탈한다. 도망쳐라.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때를 노려라. 수만 년 전에 글레투스에게서 도망쳤던 것처럼, 수천 년 전에 가니칼트에게서 도망쳤던 것처럼, 또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라.”
기나긴 시간을 기다린다면 기회는 다시 온다.”
그러니···.”
“······.””
아크리타가 침묵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장창을 보았다. 그가 길게 웃음을 흘렸다. 비웃음이 웃음으로 변질했다. 입가를 타고 광소가 흘러내렸다. 아크리타가 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아니지.””
그가 중얼거렸다.”
“아직 끝을 내기엔 이르지.””
그가 창대를 고쳐 쥐었다.”
우인(愚人)의 창이 검푸르게 번들거렸다.”
으적, 으드드드드드득.”
정신이 흐릿했다.”
귓가에 울리는 건 무언가를 씹고, 바스러트리는 소음이다. 소음 속에서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뚝뚝 끊어진 낱말만이 벨노아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입을 벌려라. 불을 토해라.”
발톱을 휘둘러라.”
날갯짓. 화염. 폭풍. 물어뜯어라.”
귓가에 들리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는 움직였다. 왜 자신이 이렇게 됐던가? 그 사실조차 벨노아는 잊어버렸다. 떠오르는 것은 목적뿐이다. 눈앞의 적을 죽이고 짓밟아라. 그거면 충분했다.”
단순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목적.”
그 목적을 이행하고자 벨노아는 몸을 움직였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자신이 몸을 움직 일 때마다 시야가 일변했다. 무언가 몸을 꿰뚫고 찢어발겼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 】”
【 】”
【 】”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울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짙게 깔린 어둠 탓에 시야는 좁았고 귀는 막혔다. 그렇게 벨노아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영혼이 바스러졌다.”
파스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