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
〈 5화 〉 뭐야 돌려줘요(4)
* * *
카디낙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도시.
수상도시인 라펠른의 한 숙소.
“으응···.”
지쳐 잠든 사라와 레미아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카일은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가죽바지에 셔츠 하나를 걸쳐 입은 가벼운 옷차림이었음에도, 카일은 추위 하나 느끼지 않는다.
용사의 육체란 언제나 그랬으므로.
용사의 육체는 자질구레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구태여 단련이나 관리할 필요가 없다. 오롯이 마왕을 치기 위해 마련된 육체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
그 육체는 언제나 완벽해야만 한다.
찬 공기에도 오히려 열이 나는 육체에, 카일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그렇게 몸을 식힐 겸 새벽녘의 거리를 거닐던 카일의 눈에, 문득 어느 소년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른 새벽녘.
아직 물안개가 걷히지 않은 거리를 소년은 열심히도 달린다. 품 안에 잔뜩 든 신문을 집집마다 집어넣는 소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다.
“·····.”
이윽고 소년이 카일을 옆을 스쳐 지나간다.
교차하는 소년과 함께, 카일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은 그가 용사이기 이전의 끔찍했던 시간들이.
‘이젠 상관없는 이야기지.’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카일은 그 기억들을 떨쳐낸다.
‘그때와는 달라.’
이젠 그 누구도 카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카일의 업적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은 더이상 그때의 비참했던 자신이 아니다.
귀족의 발을 핥으며 살던 과거는 버렸다.
그 과거에 연루된 귀족은 전부 죽였다.
그러니, 그 누구도 카일의 과거는 알지 못한다. 비참하고 비굴해야만 했던 소년을, 그 누구도 지금의 찬란한 카일과 연결 짓지 못할 것이다.
‘딱, 한사람만을 제외하면 말야.’
라니엘.
카일은 그 이름을 속으로 짓씹는다.
야, 카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목소리.
네가 마왕한테서 도망친 거 들고 뭐라 할 생각 없어. 그게 맞는 선택이었으니까. 설령 나랑 사라, 레미아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용사인 넌 살아남아야 해.
그러니, 그거들고 뭐라 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다.
지금 네 태도 들곤 한마디 해야겠다.
몇 번이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던 그 목소리.
일어나.
성검을 잡아.
용사란 새끼가 언제까지 쳐 자빠져 있을 거냐? 답이 안 나오면 답을 찾아야지. 그러라고 받은 검이잖아, 그거.
그 목소리는 자신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닥쳐오던, 자신이 어떤 추태를 보이던 간 그는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온다.
안되면 도와주겠다니까.
야 시발, 내가 누구냐? 그 개쩌는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였어. 내가 널 밀어주는데 누가 널 무시하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 목소리를, 카일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의 앞에만 서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라니엘의 앞에만 서면.
언제나 앞만을 바라보는 그 마법사의 곁에 있으면.
꼭, 예전의 자신이 까발려지는 것 같았다.
“·····.”
그러나, 그것도 이젠 다 끝났다. 드디어 그 녀석은 자신을 포기해 주었다. 놓아주었다.
나 없이 잘 먹고 잘살아라, 빌어먹을 자식아.
라니엘이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를 곱씹으며, 카일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나 없이 잘 먹고 잘살아? 그 말을 해야 할게 누군데.
“네가 몰라서 다행이야. 라니엘.”
네가, 수명의 절반을 대가로 마왕의 발을 묶은 그 날.
내가 별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 말야.
2.
깜빡.
밀려드는 햇살에 나는 눈을 깜빡인다. 빛에 익숙지 않다는 듯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으음.”
파삭.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 굳은 피딱지가 갈라진다. 나는 검붉은 가루가 떨어지는 로브를 바라봤다.
마탑에서 나올 때부터, 줄곧 입고 다니던 로브.
그 로브가 오늘따라 왠지 크게 느껴졌다.
“·····.”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뜬채, 팔을 들어 올렸다. 피딱지가 눌어붙은 팔. 본래 팔뚝을 가득 메웠어야 할 스톡(Stock)된 주문들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지.’
검은 안개를 상대하기 위해선, 마나에 주문을 먹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 정도면 싸게 먹힌 편이다.
‘처음 만났을 땐, 수명의 절반이 날아갔으니까.’
그에 비하면 저장해둔 주문 수십 개 정도야 뭐···.
충분히 감안할만한 손해란 소리다.
어쨌든 간, 검은 안개와 맞부딪치곤 살아남은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내 마법이 안개에 통했다는 소소한 만족감도 있었고.
“에휴.”
그러나, 그도 잠깐이다.
나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숙였다.
‘이제 와서 알아봤자 뭐하겠냐.’
마왕을 상대하는 법을 깨달아서 뭐 하게.
이미 용사파티에서 추방당한 데다가, 더이상 저 지긋지긋한 마왕 군들하곤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과만을 나열하면 참담하다.
스톡(Stock)해둔 주문은 싹 다 날아갔지.
거기에 서큐버스퀸도, 흑기사도 놓치고 말았다.
얻은 거라곤 가슴팍에 단 이 휘장뿐이다.
‘가성비 한번 더럽게 안 나오네.’
나는 쓰게 웃으며, 로브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레페에게 돌려받자마자 다시 달아둔 휘장. 그래, 이거라도 되찾은 게 어디냐.
그렇게 가슴팍을 쓸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
가슴팍을 더듬는 손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시선을 내린다.
“···뭐냐 이거.”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잿빛 머리칼이 사락. 밑으로 흘러내린다. 그 길이가 심상치 않았다.
“뭔데 이거.”
뭔가 이상한데.
“목소리는 또 왜 이래, 시발.”
목소리도 쫌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영문 모를 일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
…라. ….!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찾아!
…께서 결계를 펼쳐놨다고 하셨다. 기사단이 눈치채기 전에 회수 해야 한다. 빨리!
빨리 움직여, …님의 명령이다!
목소리.
서큐버스 퀸은 분명히 이 안이라 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다. 찾아라!
발걸음 소리.
철컥, 철컥거리는 갑옷 소리.
“·····.”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주변을 확인한다.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가득하다. 건물은 이미 무너졌고, 우연찮게도 내가 기대고 선 기둥을 중심으로 자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든다.
머리 위로 겹겹이 쌓인 벽.
그 벽에는 자그마한 틈새가 나 있다. 빛이 들어오는 틈새에서, 소리 또한 들려온다.
검은 구슬이다!
찾는 즉시···.
구슬.
내가 기억하는 구슬은 하나뿐이다.
어젯밤, 레페가 쪼갰던 구슬. 그 빌어먹을 검은 안개를 불러들였던 구슬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분명, 이 근처였던 거 같은데.’
레페는 검은 안개에 휩싸여 구슬을 떨어트렸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테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 상태가 뭔가 이상하지만, 당장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내 몸이 아니었으니까.
전투의 흔적을 쫓아라.
할퀴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들었다.
아마도, 간간히 들려오는 저 목소리는 마왕군의 것이겠지. 그들의 말에서, 그리고 틈새 사이로 밀려오는 악취가 내게 그것을 확신시킨다.
몬스터들의 냄새.
마인들의 살갗이 썩어드는 냄새.
어째서 마왕군이 이런 대낮부터, 인간들의 도시에 있는지는 모른다. 최악의 상황은 카디낙이 마왕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시나리오인데···.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소규모 도시라 한들, 카디낙은 기사들의 주둔지에 가까이 위치해있다. 그런 곳을 하루아침에 공략 하는 건, 정말로 마왕 본인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어렵다.
그러니 남은 가능성은 하나다.
‘레페가 떨군 그 구슬.’
그 구슬을 찾기 위해 왔다는 것.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야.
탁.
나는 두발로 땅을 디디고 선다.
그리고, 느껴지는 인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콰지직!
천장의 벽이, 누군가에 의해 잡아 뜯긴다.
틈이 벌어지며 보다 많은 햇빛이 들어온다. 소리가 들어온다. 악취가 풍겨온다.
“여기 빈공간이 있다! 어서 군단장님을…?”
목소리.
“어?”
당황한듯한 눈동자.
나는 벽을 뜯어낸 병사와 눈을 마주한다.
당연하게도, 마기가 느껴진다. 그가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나는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낚아채듯 끌어당긴다.
“으헉!”
틈 안으로 끌려 들어온 병사의 발을 건다. 넘어트린다. 그대로 병사의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읍, 으으읍!”
손끝에 꺼끌꺼끌한 혀의 감촉이 느껴진다. 인간의 것이 아닌, 도마뱀처럼 갈라진 혀. 나는 조금 더 손을 깁게 쑤셔 넣었다.
“욱, 우우우욱!”
이윽고 손끝이 병사의 목젖에 닿는다.
그 상태로 나는 주문을 짜낸다.
‘강타(Smite).’
손끝에서 잿빛 마나가 번뜩인다.
급조된 주문이 병사의 목젖을 꿰뚫는다.
“커헉!”
핏방울이 튄다.
나는 축 늘어진 병사의 입에서 손가락을 뽑았다. 뽑아낸 손을 가볍게 털자 핏덩이가 철퍽,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급조한 주문은 위력도, 속도도 느리다. 효율을 내려면, 조금 더럽더라도 이 방법을 써야만 했다.
그 사실에, 나는 위화감을 느낀다.
본래대로라면, 이런 잡졸을 상대하는데 주문을 쓸 필요도 없다. 발을 걸어 넘어트린 시점에서, 그 목을 꺾어버리던가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나는 병사의 발을 걸어 넘어트린 시점에서 직감했다.
이 몸으로는 안된다고.
힘이 모자라다고.
그 직감을 믿고 곧바로 주문을 짜냈다.
과연, 그 직감은 옳았다. 이 몸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
나는 핏자국이 묻은 팔을 바라본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팔.
내 몸이 ‘어떤 식’으로 변했을지 대강 짐작이 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답은 나왔다.
서큐버스, 육체 변이, 검은 안개.
그리고 아까전 가슴팍에서 느껴진 위화감과.
유난히도 얇은 목소리.
거기서 도출되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쓸어내린다.
당장이라도 그 박쥐 년을 잡아 족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럴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
들려오던 말소리가 사라졌다.
어지러이 찍히던 발소리는, 오롯이 한 방향을 향해 찍힌다. 사방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
그 소리를 흘려 들으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머릿속을 정리한다. 내게 주어진 조건들을 하나씩 확인한다.
스톡(Stock)된 주문의 수는 충분한가?
아니, 충분하긴 커녕 하나 조차 없다.
지형이 내게 유리한가?
오히려 불리하다. 사방이 막혀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상대의 수는?
어림잡아 열 이상.
마지막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건 무엇인가.’
대답은 언제나와 같다.
‘마나.’
차고 넘칠만큼의 마나.
그거면 충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