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0
〈 50화 〉 레스티 엘레노아(1)
* * *
잿빛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레스티는 재능 있는 마법사다. 그녀의 재능을 잿빛의 장로(??)가 인정했다.
배우는 것이 빠르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최상급 회로를 그릴 줄 안다.
소환사(Summoner)로서의 재능을 타고났다.
무려, 잿빛 마법사 라니엘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장로의 추천이다. 그녀가 가진 재능에 의심을 가질 여지는 없다.
절대적인 기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레스티가 수준 높은 마법사임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 흑과 백의 차기 마탑주 후보로 언급되는 두 인물이 있다. 주술사 벨노아와, 배틀 메이지 라크.
희대의 천재들이다.
미래의 일면을 장식할 이들이다.
그 둘의 수준을 감탄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과 레스티를 동일 선상에 올려 두었을 때 가장 먼저 호명되는 것은 레스티다.
수준이 다르다.
그 나이에, 그만한 사역마와 정령을 동시에 부리는 건··· 배교자 글레투스 밖에 없었다.
그만한 재능이다. 그녀의 재능은 상대적으로 평가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적이란 말이 으레 그렇듯, 결국 그 기준에 따라 평가는 갈리는 법이다.
“실망이군.”
“·····.”
툭 내뱉은 한마디가 레스티의 숨통을 조인다.
“한 달의 여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한 달 하고도 반의 여유이지만··· 아카데미에서의 일정도 있으니, 한 달이라고 가정하지.”
마탑의 최상층, 원로들의 계층.
반원의 단상을 따라 배치된 여섯 개의 좌(?).
여섯의 자리 중 넷이 채워져 있다.
빈 자리는 둘이다.
전 차기 마탑주를 키워낸 로셀 원로와, 가장 오래된 원로인 질레온.
“한 달간의 연구 결과는 이게 전부인가?”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레스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다.
넷의 원로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 시선에는 어떠한 기대도 깃들어 있지 않다.
한 달간의 연구 결과.
잠을 줄여가며 완성한 연구였지만, 원로들의 시선은 차갑다.
툭.
지루하다는 듯 원로 하나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누군가는 심드렁히 턱을 괸다. 또 누군가는 하품을 하기까지 한다.
“한 달간 진행한 연구는 하나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완성도조차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레스티는 고개를 숙인다.
“아플리아에서의 성적은 수석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던가? 그래, 그거라도 해야겠지. 연구 결과가 이리 허접하거늘 그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차기 마탑주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비웃음이 들린다.
“지금 보니, 딱 그만한 수준이 어울리는군.”
조금 더 레스티는 고개를 숙였다.
원로들의 비웃음과 함께 툭, 하고 레스티의 눈앞에 서류 뭉치가 떨어졌다.
제대로 읽어본 흔적도 없다.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잔뜩 구겨진 종잇더미가 발아래 굴러다닌다.
“·····.”
레스티는 허리를 숙여 종이를 주웠다.
무릎을 굽혀 한 장씩, 한 장씩 정리했다.
“5년 전이 그립군.”
“그 아이··· 아니, 그분은 한 달은 고사하고 열흘마다 마학계를 뒤집어 엎으셨건만···.”
“그때 그분을 붙잡지 못한 우리의 잘못 아니겠는가. 더욱 정확히는···.”
“비어있는 저 자리의 주인 때문이기도 하지.”
원로들은 저들끼리 떠들고 있다.
이미 그들의 안중에 레스티는 없다. 레스티는 종이를 전부 주워들곤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 인사를 받아주는 원로 역시 없다.
그렇게 레스티가 자리를 뜨려고 할 때였다.
“장로도 늙었지. 저런 반푼이를 차기 마탑주 자리에 앉혀 두었으니.”
들려온 한마디가 레스티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종잇장을 쥔 그녀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누군가 그 이름을 입에 담는다.
또다시 그 이름이다. 질리도록 듣고 또 들어서, 이제는 듣기도 싫은 그 이름이 귓가에 울린다.
라니엘.
라니엘 님이었더라면.
라니엘 님은 네 나이에.
라니엘, 라니엘, 라니엘···.
“·····.”
레스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원로들의 비웃음을 흘려들으며 옮기는 발걸음은 무겁다. 푹 숙인 고개는 들릴 생각을 하질 않는다.
언제나 그렇다.
그 누구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 자신에게서 이미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러기를 몇 년째이던가.
레스티에게 마탑은 더이상 꿈의 장소가 아니게 됐다. 숨이 턱턱 막혀, 돌아오고 싶지 않은 장소로 변했다.
‘정말 싫어.’
꾹 깨문 입술에서 핏물이 흐른다.
레스티는 고개를 숙인 채 마탑을 빠져나왔다.
2.
“알렌씨.”
“왜 그러십니까? 라니아 교수님.”
내 부름에 알렌은 커피콩을 볶다 말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알렌은 연금 공방 장인 출신의 바리스타였다. 그러니까, 내가 단골이 된 아플리아 학사 내의 카페의 점주.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알렌씨는 안 쉬세요? 오늘 휴일 아니에요?”
얼마 전, 아플리아는 단기 방학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카페도 휴점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혹시나 싶어 학교에 와봤더니 문이 열려있더라고. 당장 달려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의 자리에 앉아있는 마당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 휴일이 있긴 하나?’
새삼스레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폐점 시간이 좀 이르긴 하지만, 온전히 쉬는 날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자니, 알렌이 커피콩을 볶던 손을 멈췄다.
“···그러게요?”
“예?”
그녀는 내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그 목소리가 묘하게 낮다.
“제가 왜 못 쉬고 있을까요, 라니아 교수님?”
그렇게 웃는 알렌의 눈동자는 퀭하다.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듯 싶었다.
‘누가 괴롭히기라도 하나?’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어··· 글쎄요?”
“···모르시면 됐습니다.”
알렌은 궁시렁거리며 커피를 볶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흘겨보다,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반들반들한 창문.
그 창 너머로 비춰 보이는 아플리아는 한산하다.
‘휴일이니까 그러겠지.’
아카데미에 학생들이 돌아다니지 않으니,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끔가다 바닥을 기듯이 움직이는 조교수들만 몇 보일 뿐이다.
옛날이라면 기겁했을 테지만··· 지금이야 뭐.
‘조교수들은 원래 저렇게 다니니까.’
요 한 달간 그런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익숙해졌다. 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턱을 괸 채 빨대로 커피를 홀짝인다.
따사롭게 햇살이 내리쬐는 아플리아의 모습은 한 달 전, 내가 이 카페에 처음 들렸을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변하지 않는 풍경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형이 뒤바뀌는 전장만 보다 보니, 이런 게 또 낯설기도 하네.’
변하지 않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게 일상이었지 싶기도 하고. 지난 오 년간의 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다.
시야의 한 편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교수는 아니다. 아플리아의 실무진들도 아니다. 양복을 차려입은 초로의 노인이다. 그 복장과 걸음걸이에선 기품이 느껴진다.
물론, 그 복장 자체는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노인이 쥐고 있는 지팡이.
저 지팡이는 단 여섯 명에게만 주어진 지팡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다.
‘스승님이 내게 주신 거니까.’
본래 내 스승님을 포함한 여섯명 만이 가진 지팡이. 그것을 저 노인이 쥐고 있다는 건, 저 노인이 잿빛 마탑의 원로(??)임을 가리켰다.
노인은 내게로 다가온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내 앞에 선다.
그 시점에서 나는 노인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질레온 원로.’
잿빛 마탑의 가장 오래된 원로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
따각, 따각.
지팡이가 보도블록을 건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한때, 이 지팡이는 마법을 부리는 데 사용됐다. 마수들을 불태우고 미개척지를 개척하며 잿빛 마탑을 세울 기반을 다졌던 역사가 담긴 지팡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옛말이다. 지금의 지팡이는 땅을 짚는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늙은 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이 무심하구나.’
그 사실에 질레온은 조금의 씁쓸함을 느낀다.
젊고자 노력하지만, 육체는 늙어만 간다. 영약을 부리면 연명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추한 연명을 질레온은 원하지 않는다.
제 주제에 맞게 산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갈고 닦는다.
도 넘은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것이 질레온이 한평생 지켜온 신념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 신념마저 흔들리려 한다.
한평생을 지켜온 신념이 흔들릴 적.
그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한평생을 바쳐온 것이 흔들리려 하니까.’
질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한다.
‘현재, 잿빛 마탑은 위태롭다.’
그가 한평생 바친 잿빛 마탑. 그 마탑의 흔들림을 질레온은 느끼고 있다.
‘차기 마탑주에 관련한 문제로 하여금.’
레스티 엘레노아.
물론 질레온은 레스티 엘레노아의 자질은 의심하지 않는다. 무려 잿빛의 장로가 직접 선정한 아이니까.
‘게다가, 소환사로서의 자질도 있고.’
전 차기 마탑주에는 못 미쳐도, 그 소녀는 하나의 마탑을 이끌어나가기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레스티 그 본인이 아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문제다. 모두가 그녀의 자질을 의심한다.
그 중심에는 원로들이 있다.
원로들을 필두로 한 구세대의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그녀의 자질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잿빛 마법사를 그 예시로 올려 그녀의 업적을 난도질한다.
‘잿빛 마법사를 비교 대상으로 두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잿빛 마법사가 쌓아올린 것을 앞에두면, 흔들리지 않는 업적이 없다. 역대 마탑주들의 업적 또한 흔들릴테니까.
질레온은 그를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마법사들은 모른다. 보다 정확히는 알면서도 모른척 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미 마탑을 떠난 이의 잔상만을 쫓고 있다.
마법사는 언제나 앞만을 바라봐야 한다.
지나간 것을 묻어 둔 채, 미지를 탐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잿빛 마탑은 아니다.
지금의 잿빛은 5년 전, 그 찬란했던 시기만을 떠올리며 과거를 더듬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본래대로라면, 차기 마탑주가 이를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자신과 로셀을 제외한, 넷의 원로들의 지나친 파벌싸움과 압박으로 인해 현재 차기 마탑주의 권력은 미약하다.
‘그 인식부터가, 좋지 못하다.’
차기 마탑주에겐 권력이 없다.
장로는 탑을 이끌어나갈 상태가 아니다.
로셀은 탑에 염증을 느끼고 반쯤 자리를 떴다.
남은건, 자신 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질레온은 이미 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레스티, 그 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새로운 차기 마탑주를 들이는 게 정답이겠지.’
답을 알고는 있지만, 실행하진 못했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의 뒤를 이을 명분이 보장된 새로운 마법사가 필요했으니까.’
지금까진, 그런 인물이 나타나질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따각.
질레온은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뻗었다.
그가 멈춘 것은 어느 카페의 앞이다.
“·····.”
카페의 안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다. 질레온은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 또한 질레온을 바라본다.
잿빛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진 소녀.
질레온은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로셀의 양녀이자, 두 번째 제자.
라니엘과의 연관 점이 있는 출신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녀만큼 라니엘과 연관이 있는 인물도 없을 테지. 그럼, 다음 문제다.
‘그녀에게 자격이 있는가?’
질레온은 그녀가 단기간에 쌓아 올린 업적을 떠올린다.
그 업적은 그녀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가 그 뒤를 이을 자격을 가졌음을.
‘이 아이뿐이다.’
질레온은 결심을 굳힌다.
처음으로, 제 주제를 벗어난 일에 손을 벌린다.
자신의 일생을 바친 잿빛 마탑을 위하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