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00
“그러니, 거기서 멈추라고 말하는걸세.””
“······.””
“내가 내 손으로 영웅들을 죽이지 않게끔, 거기서 멈춰달라고 부탁하는 걸세.””
라니엘이 요르문을 바라봤다.”
거짓을 입에 담는 모습은 아니었다. 애초에 라니엘이 아는 요르문은 사실을 숨기면 숨겼지, 거짓을 입에 담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괴로운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라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그대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이루어주겠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하지만, 하지만 말일세···.””
어쩌면 그것은 애원이었다.”
“딱 하나.””
그가 길게 숨을 뱉었다.”
“별을 떨어트리겠다는 금기를 바라지는 말게. 영웅은 영웅으로서 있어야 해. 금기를 범한 죄인으로 이 세상에서 잊히는 것은, 그대들에게 어울리는 최후가 아니야.””
죄인, 금기, 최후.”
“혼란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나. 드디어 그대가 그토록 바라던 평화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그러니 거기서 멈추게. 부탁일세.””
혼란의 끝, 그리고 평화.”
그 단어에 라니엘이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이미 세상은 기울었습니다. 그것을 당신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요르문.””
“······.””
“혼란이 끝났다. 평화의 시대가 왔다. 예, 맞지요. 잠깐뿐인 평화도 평화는 맞을 테니까요.””
라니엘은 안다.”
“더이상 별은 섭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별과 상응하는 존재가 천칭의 맞은편에 한번 나타나고 말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늘이 사라진 지금··· 세상은 별에게 강요할 테지요. 균형을 맞추라고. 제 말이 틀립니까?””
요르문은 침묵했다.”
라니엘은 말했다.”
“나타날 겁니다. 십 년이든, 백 년이든, 언젠가 또다시 나타납니다. 별과 상반되는 존재는 나타나고 맙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는 몰라도···.””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별이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신(神)인 이상, 상반되는 존재는 인류를 멸하고자 하겠지요.””
“···그에 대한 대비를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야.””
요르문이 제 미간을 짚었다.”
“용사와 같은 존재가 이어진다. 나타난 존재를 척살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그늘은 예상외의 경우였고, 내가 대응하지 못하게 묶여버린 경우였다. 하지만 다음은···.””
“다음, 다음, 다음··· 도대체 언제까지요?””
라니엘이 요르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개입한다고요? 그럼 더 큰 균형을 맞춰야겠지요. 당신의 맞은 편에, 당신과 대응할 존재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순간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녀라 하여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째서 요르문이 움직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는 순간 천칭은 더욱 크게 기울고 말 테니까. ”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지금, 라니엘의 눈에 요르문은 핑계를 대고 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투쟁은 끝없이 이어질 겁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별은 더욱 망가지겠지요. 당신 또한 더 망가질 겁니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라니엘이 조소했다.”
“그늘의 탄생과 함께 별은 망가졌습니다.””
그늘의 탄생으로 저울에 올라가게 된 이후, 별은 급속도로 망가졌다. 균형에 매몰되고 말았다.”
“별이, 당신이, 인류를 위해서가 아닌 다만 균형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었단 사실을. 그날 태초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당시의 별과··· 지금의 별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음을.””
지금의 별은 규율의 글레투스의 바람에서 멀어졌단 사실을 당신이 모를 리가 없지 않나.”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요르문.””
“······.””
“당신은 그저 과거의 잔재를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그만 놓으십시오.””
“그럴 수는 없네.””
요르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별은 내게 남은 전부야.””
그가 쓰게 웃었다.”
“내게도 물러설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그녀는 유언했다. 다만 규율을 지켜달라고. 내게 있어 규율은 별이고,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별이다.””
“지금의 별이 최초의 인도자가 말한 별과는 멀어졌음에도?””
“멀어졌음에도, 여전히 내겐 이것뿐이다.””
“그렇습니까.””
라니엘이 길게 숨을 뱉었다.”
라니엘과 요르문이 서로를 마주 본 채 쓰게 웃었다.”
“협상 결렬이군요.””
“그렇게 됐군, 결국.””
그 누구라 한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오랜 세월 투쟁해왔다. 자신이 믿는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하고자. 지금 이 순간이라 하여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요르문.””
“라니엘.””
요르문 반 드라고닉.”
라니엘 반 트리아스.”
“내려오십시오, 이젠.””
“멈춰라. 거기가 네 길의 끝일 테니.””
라니엘이 발을 들어 올려 선을 넘었다. 그녀를 뒤따라 카일과 데스텔이 선을 넘었다. 그 순간 요르문이 들어 올린 지팡이로 신전을 내려찍었다.”
구웅, 구우웅······.”
장엄한 종소리가 고룡의 도시에 울려 퍼졌다. ”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도시의 수로가 범람했다. 범람하는 물길과 함께 그가 두 눈을 감았다. 감았던 두 눈을 뜰 무렵,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더는 요르문 반 드라고닉이 아니다.”
천재(天災), 요르문.”
만신을 떨어트린 최초의 죄인이 눈을 떴다.”
처음부터 세상이야 어찌 되든 좋았다.”
부모에게 버려졌고, 동족에게 버려졌으며, 기어코 세상에게마저 버려졌던 어느 소년은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다. 소년의 유년기는 불우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신벌(神罰)의 흔적이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신벌(神罰).”
그것은 하늘 위의 만신들은 저들에게 위협되는 유일한 존재, 인도자를 보다 쉽게 색출하기 위해 이 땅에 퍼뜨린 하나의 저주였다.”
인도자의 자질,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지닌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저주를 받는다. 그 몸에 새겨진 낙인은 신이 죽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으며, 낙인이 새겨진 이들이 머물렀던 곳을 신들은 철저하게 짓밟았다. 잿더미 하나 남지 않도록.”
그렇기에 소년은 버려졌다. 제 피붙이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은 것은 부모의 마지막 자비였을 테지만, 소년이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
버려졌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동족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졌음에도 소년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받았으며, 자신을 겨누는 동족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그 어디에도 아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선 독해져야 했고, 소년은 기꺼이 독을 품었다. 독을 품은 채 살아남고 살아남았다.”
소년은 청년이 됐고 성인이 된 순간 인도자로서의 자질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재능, 경험, 자질, 그 모두를 갖춘 청년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젠 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으며, 동족들이 자신에게 겨누는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경지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신께선 영웅이십니다.””
자신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어느 신의 장군을 죽였던 날이었던가. 장군에게 수탈당하던 마을의 장로가 자신에게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 마을에서 장군이 죽음을 맞이했으니, 필시 이곳으로 장군의 별동대가 몰려올 것입니다. 부디 저희 마을을···.””
그는 청년에게 애원했다.”
마을을 지켜달라고. 그 애원에 청년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장로는 어느 겨울날 밤 이 마을에서 쫓아냈던 어린 소년을 기억하지 못하는듯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은 허리를 숙여, 자신의 기억보다 더 늙어버린 장로에게 제 목덜미를 보여주었다.”
“그건···.””
장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청년의 목덜미에 새겨진 천벌의 낙인을 본 순간 장로는 기억을 떠올린듯싶었고, 청년은 숙였던 몸을 일으킴으로서 대답을 대신했다. 그대로 청년은 마을을 떠났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일어났다.”
청년은 계속해서 성장했고, 자신을 추격해온 장군들을 수도 없이 죽였다. 그가 살해한 이들 중에는 종족의 대표쯤 되는 대장군 또한 몇 존재했다. 대장군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인간이 많았다, 몹시도.”
어느순간부터 인류는 자신을 영웅이라 불렀다.”
인류의 해방군이 접선해왔으며,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는 이들이 동료가 되지 않겠느냐고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모든 것을 청년은 거부했다. 그래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동족으로서···.””
“망가진 세상을 수복하고, 인류를 위해···.””
“같은 인간이지 않은가. 같은 인간으로서···.””
동족의 정에 호소하는 그들의 말에 청년은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동족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기억이 청년에겐 전무했으니까. 오히려 발길질을 당했으면 당했지, 도움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청년에겐 모든 것이 적일 뿐이었다.”
청년은 홀로 걸었다. 홀로서 완벽해지고자 했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자신은 그리할 수 있노라고 청년은 확신했다. 완벽해진다면, 저 하늘의 신과 같은 위치에 선다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가 한 가지 착각한 것은.”
그가 성장할수록, 그가 두각을 드러낼수록 신들 또한 그를 주시하리란 사실이었다. ”
【찾았다.】”
어느날 청년의 앞에 신이 강림했다.”
신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불태웠다. 우거진 숲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잿더미 속에서 신은 청년에게 손짓했다. 손짓할 때마다 불길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