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01
신의 불길 앞에 청년이 한평생 쌓아온 것은 한없이 무가치했다. 이길 수 없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지독한 무력감 속에서 청년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청년이 불길에 타들어 가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청년은 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그것은 언제나 청년을 외면했고, 청년이 외면해왔던 동족의 목소리였다.”
“아르만. 길을.””
“예, 단장.””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불길로 뛰어들었다.”
백발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기어코 청년을 등에 업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곁을 따라 달리는 이들이 길을 열었다. 밀려드는 신의 불길을 걷어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 청년은 신의 불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여간, 우리 단장님 무모한 건 알아줘야 해.””
“할 만하지 않았습니까. 그리 격이 높은 신도 아니었고, 걸어볼 만 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격이 높지 않다고 신한테 달려드는 인간이 어디 있어? 그래도 초월자인데. 이렇게 팔 한 짝 태우고 살아나온 게 기적이야, 기적.””
불길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
몸을 식히는 그들을 보며 청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어째서 자신을 구했는가. 청년의 시선은 자신을 등에 업었던 여인을 바라봤다.”
단장, 그리고 글레투스라 불렸던 여인.”
신의 불길에 그녀의 팔은 그을려 있었다. 불길에 휩싸였던 자신을 등에 업은 결과 그녀는 등가죽이 녹아내려, 끔찍한 흉터가 남게 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여인이 청년에게 다가왔다.”
청년은 여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보아하니 체질이 독특하여 불길을 견딜 수 있었나 본데, 내버려두면 큰 상처로 번질지도 모릅니다. 팔 이리 내십시오. 치료를 도울 테니.””
“···어째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여인을 바라보며 청년이 입을 열었다. 글을 배우지 못해 청년의 말은 끊어진 단어와 단어였다. 청년은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그러모아 여인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나를 구했느냐고.”
그 질문에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녀의 고개를 따라 새하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글레투스는 청년의 질문에 담담히 답했다.”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가식이 아니었다. ”
그녀는 정말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응급처치를 끝낸 후 그녀는 말없이 떠났다.”
처음이었다.”
동족에게, 아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청년은 글레투스의 이름을 기억했다. 목적 없이 배회하는 것이 아닌 글레투스를 쫓아 청년은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 사람이로군요. 거 보십시오, 아르만. 내가 내기하자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쫓아올 거라고.””
“와, 이걸 맞추네.””
시간이 흘러 그녀와 재회했을 때.”
청년은 처음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를 쫓아 이곳까지 오면서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니까.”
밤불전쟁을 종식한 인간.”
정령에게 사랑받는 이.”
일곱 도시를 지킨 수호자···.”
수많고 수많은 이명이 그녀를 장식하고 있었다. 종족을 가리지 않고 그녀는 수많은 이들을 구해냈다. 그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선인(善人)이었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청년이 주목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청년은 글레투스와 재회한 순간 목에 감은 천을 풀었다. 인도자에게 찍힌 신벌의 낙인을 그녀에게 보였다. 눈을 크게 떴던 글레투스는 이내 웃음을 흘리며 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목에도 신벌의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청년이 주목했던 것은 그녀 또한 인도자라는 사실이었다. 자신과 같은 신벌의 낙인을 가지고 태어난, 진정한 의미로 자신의 동족이 그곳에 있었다.”
인도자(引導者), 글레투스.”
자신과 같이 부모에게, 동족에게, 세상에게 버려졌을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나도 달라서,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한지 청년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질문했다.”
어떻게 그리 살 수 있냐고.”
질문에 여인은 질문으로서 답했다.”
“첫 번째는 우연, 두 번째는 인연이지요. 당신, 이름이 뭡니까? 당신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그 누구도 당신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더군요.””
글레투스가 미소 지었다.”
“저는 글레투스, 규율의 글레투스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던져진 질문에 청년은 답했다. 부모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단어를 발음했다.”
“요르문.””
“좋습니다, 요르문.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하셨습니까?””
“그렇다.””
“그럼 따라오십시오.””
글레투스가 요르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날 요르문을 구하며 신의 불길에 그을렸던 손이었다. 흉터가 진 손을 내밀며 글레투스가 웃었다.”
“살아가는 방법은 누군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결정지을 뿐. 나는 누군가의 결정을 돕는 인도자에 불과하겠지요.””
원한다면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어디로, 하고 요르문은 물었다.”
“최소한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글레투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콱.”
고민 끝에 요르문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붙잡았다. 붙잡은 손길은 따스했다.”
과거를 떠올리며 요르문은 현재를 보았다. ”
저 빌어먹을 후배가 말했던가? 당신은 그날 그 순간에 멈춰 선 채로 고여서 곪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알고 있다.”
별이 망가졌다는 것을.”
자신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을, 그라 한들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르문은 별을 놓을 수 없었다. 오직 저것만이 자신에게 남은 전부였으니.”
「요르문.」”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눈을 감으면, 귀를 기울이면.”
「저는 저 하늘 위의 규율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곁을 떠난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별의 일부가 되어 당신을 지켜볼 테니까.」”
「그러니, 별을 부디 지켜주십시오.」”
「당신과 나의 삶이 부디 헛되지 않도록.」”
그녀의 유언이 맴돈다. 피 흘리며 죽어가던, 싸늘해져 가는 그녀의 몸의 온도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따뜻한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던 순간을 요르문은 잊을 수가 없다.”
요르문에게 있어 글레투스는 전부였다.”
다만 모든 것이었다.”
글레투스에게 요르문은 글을 배웠다. ”
말하는 법을 배웠고, 역사를 배웠으며,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 망가졌는지에 대해 배웠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을 그녀는 자신에게 가르쳐주었다.”
부모가, 동족이,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것을.”
그녀는 요르문에게 해준 것이다.”
그렇기에 글레투스는 요르문에게 스승이었고, 친우였으며, 부모였고 또한 연인이었다. 사람의 온기를 알지 못했던 자신을 그녀는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올곧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자신을 정도(正道)로 이끌었다.”
“···모든 것이었단 말이다.””
그녀가 웃을 수 있다면, 기뻐해 준다면, 그녀가 옳다고 말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곁을 떠났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녀의 잔재뿐이었다.”
요르문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 뜬 별자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이곳에서 그녀와 함께 하늘에 새긴 별자리였다. 별을 바라보며 요르문은 글레투스의 최후를 곱씹었다. 그녀의 유언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했다.”
그녀가 사라진 세상은.”
처음부터.”
어찌되든 좋았던 것이다.”
요르문이 제 팔을 들어 올렸다. 범람하는 수로와 함께 백금 신전이 천천히 떠올랐다. 떠오르는 신전과 함께 손가락질받았으며 하늘이 쩌적, 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지는 하늘 너머로 드러나는 것은 새까만 밤하늘이다.”
갈라진 하늘의 너머, 밤하늘.”
그곳에 새겨진 거대한 별자리가 찬란히 빛났다.”
가장 거대한 규율의 아래서 요르문은 자신에게 건 제약을 모조리 뜯어냈다. 별을 떨어트리려는 침략자가 이 도시에 도달한 순간부터 섭리는 더이상 요르문을 옭아매지 않았으므로.”
투두두둑.”
떨어져나가는 제약을 요르문은 공허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아마도, 그 미래를 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마지막까지 속박을 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금기일 테니까.’”
하지만 요르문은 알고 있다.”
재의 여신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제약을 풀지 않았던 자신은 모든 것을 잃었단 사실을. 그렇기에 요르문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제약이 떨어져 나간다.”
요르문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날, 재의 여신에게 패배했던 것은 고룡의 마법사인 요르문 반 드라고닉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천재(天災)라 불리던 최초의 죄인이다. 제약을 뜯어낸 요르문이 손을 휘둘렀다.”
쏴아아아아아아.”
백금색 비가 내렸다.”
범람하는 홍수가 더욱 거세졌다. 빗물이 도시에 닿을 적, 은은한 빛을 흘리던 도시가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다. 투욱, 하고 빗방울이 노룡(老龍)의 비늘에 닿은 순간 노룡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노룡의 비늘이 백금색으로 물들었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으며 찢어진 피부가 아물었다.”
펄럭, 하고 노룡이 찢어진 날개를 펼쳤다.”
수만 년의 세월 만에 몸을 일으킨 고룡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 친우의 바람을 들어주고자. 이 도시에 침입한 침입자를 바스러트리고자.”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