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4
그래서였을까.”
카일은 문득 떠오른 것을 말했다.”
“술 사준단 약속, 아직 안 잊었다.””
“···뜬금없이?””
“안 돌아오면 술값 받으러 찾아간단 소리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라니엘은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듯, 웃음을 흘렸다.”
“그래.””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쿵, 하고 발을 내디딘 순간 백금 도시가 뒤흔들렸다. 도시의 온갖 곳으로 튀어 오른 신전의 파편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갔다 올게.””
바벨(Babel).”
하늘로 향할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늘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금이 간 푸르른 하늘의 너머, 별이 걸려있는 밤하늘로 향하는 문은 열렸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 하여 아무나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격을 얻었으며, 수호자를 꺾어 자신(自身)을 증명한 이만이 저 문턱을 넘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곳에 한 명의 마법사가 있다.”
현자였고, 현인이었으며, 용사의 동료였고, 용사였으며, 인류를 이 자리까지 끌고 온 인도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서서히 제 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백금 신전이 부유했다.”
쪼개지고, 바스러지고, 망가진 것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을 잃지는 않은 옛 탑의 파편들을 그녀는 발굴해냈다. 바스러진 것들로 그녀는 자신만의 탑을 세웠다. 그녀의 탑은 여타 마탑들과는 달리 첨탑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다. 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계단에 가까운 형태다.”
하늘로 쭉 뻗은 계단, 그게 끝이다.”
그녀의 탑은 그 위용을 뽐내지도, 거대한 규율을 품고 있지도 않다. 담백하기 짝이 없는 탑이다. 정말로 하늘을 오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탁.”
백금의 계단을 밟고 그녀가 하늘을 향해 올랐다. 얼핏 보면 글레리아의 등천(登天)과도 같은 모습이나, 지금의 라니엘은 어떠한 신성조차 품고 있지 않다. 신의 권능 또한 쓰고 있지 않다.”
오직 인간으로서.”
한낱 인간으로서.”
그녀는 신이 아닌 인간의 대표로서 하늘에 오를 뿐이다. 하늘에 대고 해야 할 말이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인류를 보호했던 부모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탁, 하고.”
그녀는 걸음을 내디뎠다.”
언제나처럼 다만 앞을 향해.”
* * *”
“······.””
무너진 신전의 기둥에 기대어 요르문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언제나 고개를 숙여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신은, 이제 인간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으로 추락한 신은 보았다.”
하늘로 향할 길이 열리는 것을.”
자신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탑으로 하늘에 오르는 라니엘의 모습을.”
“···아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요르문은 쓰게 웃었다.”
글레투스와 함께 쌓아올렸던 탑, 그녀를 잃고 자신의 손으로 무너트렸던 탑, 그녀를 기리기 위해 신전의 재료로 쓰였던 탑. 바스러지고, 뒤섞여서 본래의 목적을 잃었다고 생각한 탑의 조각들.”
그러나, 보라.”
지금 바스러졌던 것들은 다시 한 번 빛나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탑이 되어 하늘로 향할 길을 잇고 있지 않은가? 그 광경을 보며 요르문은 웃었다.”
웃으며 그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알던 시대는 끝이 났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에. 이제는 그 사실을 그만 인정해야만 했다. 빛나는 탑을 바라보며 요르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오래 걸렸군. 너무나도.”
인간으로 추락해버린 그의 눈동자에 더는 미래도, 과거도 비추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현재뿐이다.”
예로부터 인류는 과거로부터 학습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더듬으며 현재를 살았다. 지금의 요르문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불확실한 것투성이나.”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세상은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다가서며 라니엘은 독백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
가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들 뿐이다. 마왕군의 손에 의해 불타버린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던 여정이 어느새 이런 곳까지 와 있었으니까.”
「왕도로 가자. 이런 곳에 있으면 안 돼.」”
「거기에 가면, 뭐라도 될 수 있겠지.」”
마왕군에 의해 고향이 불타올랐다. 불타버린 고향과, 가족의 시체를 뒤로하고 왕도로 향했다.”
「네게는 재능이 있다, 아이야.」”
왕도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스승을 만났고, 스승의 도움을 받아 마탑에 입적했다. 마탑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낸 끝에 차기 마탑주 자리에 앉았다.”
「함께 가자, 라니엘.」”
「그 누구도 무시 못할 위업을 세우는 거야.」”
쌓아온 것들을 모두 버리고, 고향 친구와 함께 마왕의 멱을 따기 위한 여정 길에 올랐다. 업적을 세우고, 누군가 흘린 피를 마시며 앞으로 하염없이 나아갔다.”
「일어서.」”
「나는, 못한다. 나는 더 이상···.」”
「일어서라고 말했다.」”
갈등하고, 망가지고, 망가트렸다.”
「나는 너처럼 될 수 없다.」”
「여기까지다, 라니엘.」”
「우리에겐, 더는 네가 필요 없다.」”
그 결과 반목했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걷게 됐다. 다시 왕도로 돌아왔고 어쩌다 보니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게 됐다. 자질을 갖춘 아이들을 만났으며,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너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저는, 그래도 괜찮다고 봅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건 옳은 삶일 테니까요.」”
자신의 실수를, 과오를, 잘못을 마주했다.”
자신이 망가져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 누구라 한들 망가진단 사실을 알게 됐다.”
「가라, 카일.」”
「길은 열어줄 테니까.」”
다른 길이 있단 사실을 받아들였다.”
「죽고 싶지 않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끝에,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음을 공포 속에서 체감했다.”
「나는 너야. 미래에서 온 너.」”
「나를 봐, 라니엘. 최선을 포기하지 마. 나처럼 살아선 안 돼. 나와는 다른 길을 걸어줘.」”
「나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게끔.」”
그 어느 것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만족할만한 최선의 결말을 찾기 위해 투쟁했다. ”
「그래.」”
「눈을 뜨면 술 한잔하자.」”
최선을 손에 넣었다. 쌓인 것을 모두 털어냈고, 털어낸 덕분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교수 때려치우겠습니다.」”
「전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전장으로 돌아와 이제는 자신만이 아닌, 모두에게 있어 최선이라 불릴 길을 찾기 위해 멀고 먼 길을 걸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들이 제 삶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고맙다 라니엘.」”
「고마워요, 후배님.」”
「감사한다. 너희의 모든 것에.」”
「감사를 표하지. 그대 덕에 본녀는 마지막까지 왕으로서 책무를 다할 수 있으니.」”
그렇게 나아갔다.”
지금에 이르러 자신이 나아간 길을 돌아보면, 죽음의 공포에 시름하던 때와는 다른 감상이 드는 법이다. 그때의 자신은 제 삶을 돌아보며 ‘참 지독하게도 살았다’ 하고 신음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잘 살았네.””
무심코 라니엘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녀가 웃으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후회는 없었다.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산 삶에 후회는 없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됐다.”
잘못을 깨닫고, 고집을 버리고, 성장한 끝에 어른이 된 아이는 제 부모의 앞에 바로 섰다.”
자, 이제 담판을 지을 차례다.”
자신이 걸어온 길, 살아온 삶으로서 탑을 쌓아 라니엘은 하늘에 도달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무너진 하늘의 저편이 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은 뒤, 그녀가 무너져내린 하늘의 저편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밤하늘은 라니엘의 출입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가 쌓아올린 탑과 그녀의 삶이 그녀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