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9
〈 59화 〉 썩어버린 것(2)
* * *
제단.
전선파괴의 주범.
전장의 악몽 혹은 비극.
내가 제단을 처음 마주한 것은, 최전선에서 주술사들을 상대할 때였다. 주술사들을 상대하는 건 까다로웠으나,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대부분의 싸움에선 우린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카일이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마수들이, 주술사들이 무더기로 쓸려나갔으니까.
어?
그러나.
이거, 뭐냐? 이거 멀쩡한데?
쓸려나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전선을 밀어버리고, 예전에 빼앗겼던 땅을 탈환한 우리는 기이한 것과 마주했다.
뼛조각을 닮은 것.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
그 난리 통 속에서도, 그것만큼은 멀쩡했다. 우리는 그것을 뽑아서 기사들에게 보였다. 어느 기사가 그와 비슷한 것을 찾아왔다.
그렇게 네 개의 조각이 모였다.
회로의 완성도로 보아, 나는 한 조각이 비어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당시 우리와 함께하던 마법사가 있었다.
기사단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 마법사의 심장에 조각과 똑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말릴 틈도 없이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가 나타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는 기사단의 막사 중앙에서 나타났다. 뒤집힌 검은 눈동자로 그는 하늘을 바라봤다.
■■■■■■■■.
하늘을 바라본 채, 주문을 읊었다.
네 개의 조각이 그의 심장과 공명했다. 공명한 조각은 하나의 회로가 되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마계의 중심과 연결된 문이.
문 안에서 마왕군이 쏟아져 나왔다.
문이 열린 곳은 기사단의 주둔지였다. 주둔지의 상공에서 쏟아지는 마왕군은 악몽 그 자체였다.
‘···난리도 아니었지.’
그 날, 기사단은 궤멸 직전까지 갔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제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제단이 열렸을 때는···.’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나마 대처를 했다.
똑같이 한 조각이 모자랐다. 모자란 조각은, 근처에 있던 마법사의 심장에 박혀있었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법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마법사가 사라진 순간부터, 나는 그를 추적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이거, 못 건드려.
그게 무슨 소리냐, 라니엘! 당장 저걸 막지 않으면 그때와 똑같은···!
씨발, 이계(??)로 들어갔다고. 정령과 사역마를 불러내는 이계. 이계에 있는 거, 나는 못 건드려.
이계로 떠난 마법사를 건드릴 수 있는 건 내 영역이 아니었다. 그건 정령사의 역할이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우연히도, 그때 곁에 있던 백색 마탑의 정령사가 이계를 쥐잡듯이 뒤졌다. 그리곤, 이계에서 실종됐던 마법사를 찾아냈다.
끌어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틀린 방법이란 걸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끌어냈습니다! 당장···! 어···?
퍼석!
눈앞에서 백색 마탑의 정령사가 터졌다. 그것을 터뜨린 건, 그가 끌어낸 실종됐던 마법사였다.
아■■■■■■■?
이계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폭주했다. 그 정신을 지배하던 ‘무언가’가 그 폭주를 도왔다.
‘가진 재능이 완벽하게 개화했었지.’
어떻게 한진 몰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사와 우리는 대면했어야만 했다. 끔찍했다. 팔다리를 꺾어도, 목을 베어도 죽질 않았으니까.
기사단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미쳐 날뛰는 마법사를 제압해야만 했다. 그것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둘의 기사단이 전멸했다.
두 번의 실패.
그 실패로부터 우리는 실패의 원인과, 제단이 무엇인지에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세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지.”
“·····.”
“하나는, 조각이 자리 잡은 뒤에는 제단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단 것이고.”
나는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둘은, 하나의 조각을 가진, 의식의 ‘매개’가 되는 인물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 그게 의식의 시작 전이든, 도중이든 말야.”
다시 하나를.
“마지막으로 셋은, 매개가 된 마법사는 의식 동안에는 꿈에 빠진다는 거야. 꿈에 빠트려놓고 제단을 만든 그놈이 그 몸을 차지하는 거지.”
마지막 남은 손가락을 접었다.
그때 칼트가 내게 질문했다.
“···왜 본인이 나서지 않고, 굳이 매개를 써가면서 의식을 진행하는 걸까요? 본인이 나선다면 훨씬 편할 텐데.”
“그 녀석이 겁쟁이니까.”
내 대답에 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부분은 딱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간, 이계로 들어갔던 매개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 주문을 읊기 직전에 막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거지.”
“···예, 저도 그건 기억합니다. 시간 싸움이었죠. 제가 전장을 떠난 뒤로 더 밝혀진 건 없습니까?”
칼트 또한 제단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앞선 두 번의 실패에서 칼트는 나와 함께했으니까.
“더 있지. 시간을 조금 더 벌 방법이.”
“그게 뭡니까?”
“제단의 조각을 부수는 것.”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조각을 가리켰다.
“이건 내가 쓰는 주문의 스톡(Stock)하고 비슷해. 제단이 발동될 때, 그순간에 맞춰 여기 새겨진 회로가 발동해. 문을 여는 주문의 영창을 단축화 시켜주는 거지.”
“그렇다면···.”
“그래, 이걸 부수면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어. 내가 기억하기로, 조각 하나당 2분 정도 될 거야 아마.”
지금 우리의 수중에 있는 조각은 네 개였다.
“즉, 10분이란 소리지.”
“···여전히 촉박하군요.”
“2분밖에 시간이 없던 옛날에 비하면, 이 정도면 여유로운 편이야.”
칼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저 넓은 숲에서 매개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잖습니까. 이계에서 튀어나올 텐데, 저 포화상태의 마나 때문에 추적도 먹통일 거고요.”
옥상에 선 우리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숲은 넓다. 하르메인 삼림까지 뒤집어 삼킨 마기는 지나치리만치 탁했다. 포화상태의 마나 덕에 그 안을 꿰뚫어 보는 것도 어렵다.
저 안에서 한 명을 찾아내는 건, 제아무리 개 코인 칼트라 해도 불가능 할 것이다.
제단이 좆같은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어도, 정작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제단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경우가 조금 달랐다.
“정상적인 제단이라면 그렇겠지. 근데, 이번은 아니야.”
나는 천천히 턱을 괸 채 말했다.
“찾을 방법이 다 있어.”
“예?”
“제단을 만든, 그 겁쟁이 놈이 이번에는 실수한 모양이거든.”
2.
꿈을 꿨다.
행복한 꿈이었다.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 * *
“아이야, 네게는 재능이 있다.”
“재능이요?”
“그래, 내가 너만 한 재능을 보는 건 이걸로 두 번째인 것 같구나. 이런 곳에서 보물을 발견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야.”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 그런 고아들을 모아놓은 고아원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저 사람은 누구지?’
어린 레스티는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저, 평소에는 딱딱했던 선생님들이 그 사람 앞에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걸 보아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네 이름이 뭐니?”
“레스티에요.”
“그래, 레스티.”
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크렌벨 엘레노아, 잿빛 마탑의 장로(??)란다.”
레스티는 어렸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다.
모든 마법사들의 꿈, 마탑.
그 색을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그곳의 장로라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사람이었다.
“안,안녕하세요.”
“하하, 겁먹을 필요 없다. 네게 한 가지 제안을 하러 온 거니까.”
자신을 장로라 소개한 노인은, 레스티의 공책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레스티가 한 달간 그린 회로가 담겨 있었다.
“그 나이부터 벌써 정령 회로를 다룰 줄 아는구나. 여기에 마력을 집어 넣어본 적이 있니?”
“···그게.”
“눈치 볼 필요 없다. 나는 너희 선생님들과 달리 널 혼낼 생각이 없으니까.”
“···밤중에, 몰래 나가서 한 번씩 써봤어요.”
“그래, 호기심이 많은 아이구나. 거기서 무엇이 튀어나왔니?”
“바람을 두른 여우가 나왔어요.”
툭, 하고 노인이 회로를 건드렸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잦아들 적, 노인의 어깨 위에는 레스티가 보았던 바람을 두른 여우가 앉아 있었다.
“그래, 이렇게 생긴 아이더냐?”
레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책에는 바람 정령이라고 소개돼 있었어요.”
“음, 바람 정령이라고만 부르면 이 아이가 슬퍼하겠지. 이 아이의 이름은 실피란다.”
“실피?”
“그래, 실피.”
노인은 여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레스티는 눈을 반짝이며 여우를 만져봤다. 그 감촉이 신기했다.
“레스티.”
“네?”
“내 아래서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
그렇게 노인은 손을 내밀었다.
“네게는 재능이 있다.”
레스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미소지었다.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재능이.”
그 손을 레스티는 붙잡았다.
그렇게, 레스티는 마법사가 되었다. 그 뒤의 이야기가 빠르게 레스티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마법을 배웠고, 하루마다 새로운 정령과 계약을 했고, 그때마다 장로는 레스티를 칭찬해 주었다.
대단하구나, 레스티.
늙고 주름진 손길이 레스티의 보랏빛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갈라진 손끝이 이마를 건드릴 때마다 꺼끌꺼끌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그러나, 그 추억은 머지않아 끊어진다.
장로는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되어 의식을 잃었다. 레스티는 마탑에 홀로 남겨졌다.
그 삼 년간의 기억을 꿈은 보여주지 않는다.
행복했던 기억만을 보여줄 뿐이다.
“·····.”
기억 속의 레스티는 웃고 있다.
환하게 웃으며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
현실의 레스티는 손을 들어 올렸다.
무심코 자신의 입가를 매만져봤다. 딱딱하게 굳은 입가였다. 거울에 비춰 보이는 건,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눈을 감으면 꿈이 보인다.
눈을 뜨면 현실이 보인다.
꿈은 달콤했다.
현실은 썼다.
꿈은 보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현실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된 자신이 있다.
레스티는 눈을 감았다.
조금 더 꿈을 꾸고 싶었다.
바스락.
그녀가 꿈을 꾸는 동안에도, 그녀의 몸은 충실히 움직인다. 제단의 중심을 향하여.
3.
“또 제단이라고 들었어, 카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긴 힘들어 보이던데요? 그게 왕도에서 열린다니까요.”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더군.”
사라와 레미아가 속삭였다.
그들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왕도의 골목길을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여러분.”
그들을 인도하는 건 하운드(Hound) 게일이다. 게일은 마른 침을 삼키며 골목길을 누볐다. 아플리아로 향하는 최단 거리를 안내했다.
‘···칼트 선배님이 지원병력을 불러오신다더니··· 설마 용사님이었을 줄이야.’
게일이 아는 칼트는 신중한 인물이다. 전장을 경험한 기사답게, 낭비하는 행위를 꺼린다. 하운드 중에서도 유난히도 효율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용사를 불렀다.
그만한 사건이 왕도에서 터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안내역만을 맡은 게일로선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리라 추측할 뿐이다.
“이쪽으로···.”
“하운드라고 했나.”
“아, 예.”
뒤를 따라오던 용사, 카일이 입을 열었다.
“하나 묻지.”
그는 발걸음 속도를 유지한 채 게일에게 물었다.
“이 사건에 지원병력은 우리뿐인가?”
“예, 제가 지시받은 지원 병력은 카일님을 포함한 용사파티뿐입니다.”
“그 녀석··· 아니, 잿빛 마법사는 지원 병력으로 참가하지 않나?”
“제가 전해 들은 바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왕도에 계시지는 않는 것 같군요.”
애초에 잿빛 마법사가 어디있는지는, 하운드들 조차 모른다. 그 마법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무려 추적자, 칼트 선배님이 두 달 내리 탐색하고 있는데 작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었으니까.’
적어도 왕도에는 없다는 게 하운드들이 공유하는 의견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게일이 발걸음을 마저 옮기려 할 때였다.
“이상하군.”
문득, 카일이 멈춰 섰다.
그가 멈춰선 채 말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지만, 이 상황 자체가 거짓이라 느껴진다.”
“···예?”
“둘 중 하나겠지.”
그 손가락이 칼자루를 매만졌다.
칼자루 위로 별빛이 피어올랐다.
“성검(??)이 잘못된 예지를 줬거나.”
카일의 붉은 눈동자가 게일을 바라본다.
“단순히 네가 전달받지 못했거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별이 예지했다.”
그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어떤 방향으로든, 그 녀석과 만나게 될 거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