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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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할 땐 단호해야
“어때, 이 집 칼국수 맛있지?”
백곰이 우혁에게 물었다.
“맛있네.”
우혁의 대답에 백곰이 활짝 웃는다.
따뜻한 칼국수의 국물이 일품이었다. 그윽한 잣 향이 입 안에 가득했다.
혼자 집에 있을 아내 생각이 났다.
칼국수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와 스마트폰 매신저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저녁 먹고 들어갈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먹어.
-알았어.
-굶으면 안 돼요.
-먹을게. 약속!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먹기.
-안 돼. 그러면 나 배 터져 죽어요.
남들이 메시지 내용을 본다면 오글거려 힘겹겠지만 우혁은 늘 겪는 일이라 아무렇지 않았다.
예상 되는 반응이지만 싫지 않다. 싫기는커녕 좋기만 하다. 아내의 반응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아내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스러운 사람.
오늘 촬영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서로에게 수많은 하트를 날리며 메신저를 끝냈다.
“형이랑 먹으니까 마음이 편해.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이랑 먹을 땐 눈치가 보여서 마음껏 먹지도 못해. 먹고 나서도 체한 것처럼 불편하고. 식사 마치고 몇 번 토하기도 했어.”
도대체 직원들이 어떻게 했기에 좀처럼 체하는 법이 없는 백곰을 체하게 했을까.
백곰이 말하지 않아도 우혁은 짐작할 수 있었다. 외모 비하, 괄시와 홀대, 왕따, 모욕을 당했을 것이다.
회사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백곰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만 보아도.
“내 느낌에는 [생강> 대박날 것 같지는 않아.”
백곰이 화제를 돌렸다. 회사 얘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영화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우혁이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모든 한국 영화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번 영화는 민환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랬다.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고문기술자 역할을 맡은 형은 뜰 거야. 내 느낌인데, 형 곧 엄청 뜰 거 같아.”
백곰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네 까짓 게 뭘 안다고 떠들어?’ 하고 핀잔을 주겠지만 우혁은 잠자코 들었다. 백곰의 예측이 거의 들어맞았으니까.
백곰은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날씨 등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지도 하지 않았고, 예측한다 해도 어긋났다.
하지만 연예인에 관한 예측은 백발백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곰의 예측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니가 무슨 예언자야? 매니저 경력 몇 년이나 됐다고 까불어.”
얼마 전에 쫓겨난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예측을 했다가 직장 상사한테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입을 닫았다.
그런데 몇 개월 뒤 백곰의 예측대로 되었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백곰 소속사 가수의 디지털 싱글은 폭망했고, 음원 차트를 올킬시킬 거라고 했던 타 소속사 무명 가수의 신곡 미니 앨범에 수록된 네 곡은 음원 차트를 석권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 직원은 백곰의 말대로 된 것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백곰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었고, 있다 해도 조롱거리로 삼았다.
“신 내렸니?.”
“무당 집에 가 봐라.”
아니면 우연히 맞힌 거라고 여겼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거겠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혁은 백곰의 예측을 믿었고, 그 예측이 맞았을 때 아낌없이 칭찬했다.
“역시 네 안목은 정확해.”
백곰은 우혁의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우혁에게는 자기 생각과 느낌, 의견을 숨김없이 말했다.
누군가가 백곰에게 노래, 드라마, 영화, 배우, 감독의 성패를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백곰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와요.”
그랬다. 느낌이 온다. 근거나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형은 잘 될 거야. 틀림없어. 오늘 하루 종일 형을 따라다니면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
우혁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
집에 도착했다.
간단히 씻은 뒤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잤다.
눈을 떴을 땐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온몸이 쑤셨다.
하지만 기를 쓰고 몸을 일으켰다.
추체험했던 이소룡은 이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혁은 어제 아침 결심했던 대로 가볍게 조깅을 하고 근린공원에 가서 발차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몸이 풀렸다. 누워만 있었다면 며칠 동안 끙끙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쯤에 백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형형, 혁이 형! 인터넷 봤어?
“왜?”
– 어제 형이 촬영했던 게 동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어.
“영화 개봉 전에 유출되면 안 될 텐데···.”
–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반응이 엄청 좋아.
백곰과 통화를 끝낸 뒤 확인해 보았다.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찍은 듯한 동영상이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가 있었다.
올린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회수가 꽤 높았다. 댓글도 많이 달렸고.
-이 배우 누구냐? 연기 개쩔어.
-발차기 봐라. 죽이네.
-눈빛 좋고.
-강우혁. 그 이름도 유명한 무명배우.
-강우혁? 첨 들어보는디…
-나두요.
우혁은 박용구 조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려주었다.
30분 뒤 박용구가 전화를 해왔다. 스텝 중 한 사람이 휴대전화로 장면을 찍고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 친구가 공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공개했다고. 곧바로 조치 취했고 영화사에서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기로 했단다.
그로부터 3시간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강우혁 배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앤씨(U&C) 기획실장···.
이름을 밝혔으나 우혁의 귀에는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유앤씨’라는 단어만 귀에 박혔다.
‘유앤씨’는 백곰을 쫓아낸 기획사가 아닌가.
“무슨 일이시죠?”
우혁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 뵙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지요?
“용건이 뭐죠?”
– 어제 촬영하신 영화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연기가 너무 좋아서 배우님을 직접 뵙고 말씀을 좀 나누고 싶어서요.
“전속 계약 때문에 전화 주신 거군요.”
– 예, 그렇습니다.
“유엔씨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기획사죠. 이렇게 제안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직접 뵙고 말씀 나누시지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전화를 끊었다.
기획실장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백곰에게 전화를 걸어 기획실장을 만나기로 약속한 일식집 근처 카페로 나오라고 했다.
기획실장을 만나기 전에 백곰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자세히 알려주고 간단히 연습까지 시켰다.
그런 뒤 기획실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 일식집으로 갔다.
기획실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통성명과 인사를 나누고 마주앉았다.
기획실장은 장황하게 회사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은 뒤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계약 조건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계약금, 계약 기간, 회사에서 정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마인드가 정말 좋으십니다. 요즘 배우들 돈을 너무 밝히거든요. 그런 마인드를 가진 배우는 오래 못 가더라구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만 맞으면 계약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귀사에 백동수라는 매니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 매니저였습니다만 회사가 잘못되는 바람에 유엔씨로 옮겼지요.”
“백동수요?”
“예. 백동수 씨를 제 전담 매니저로 해주실 수 있는지요?
“···뭐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회사에는 열정적이고 우수한 매니저를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백동수 씨를 직접 만나 확답을 들은 뒤에 계약하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면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백동수 씨와 함께 만나서 계약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럼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일식집에서 나와 백곰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갔다.
“곧 회사에서 전화가 올 거야.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전화가 오면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내 입모양을 보고 그대로 따라해. 할 수 있겠지?”
백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백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
발신자를 확인한 백곰이 겁먹은 표정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이 전화를 받으라는 눈짓을 했다.
백곰은 심호흡을 크게 한 뒤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
백곰은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여보세요?”
– 똥수. 너 지금 어디야?
기획실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훨씬 젊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백곰을 유난히 괴롭혔던 선배였다.
나이는 백곰과 동갑이지만 입사가 1년 빠르다는 이유로 선배님이라는 호칭과 경어를 요구했다. 이름 대신 똥수, 똥덩어리라고 불렀고, 화가 나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 안녕이고 뭐고, 지금 당장 회사로 튀어와.
여기서부터 우혁이 나섰다. 입 모양으로 대답 내용을 알려주었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
백곰이 우혁의 입모양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 잔말 말고 당장 튀어와. 빨리.
“저 회사 잘렸잖아요. 계약 파기 서류에 사인까지 했는데요.”
– 그거 찢어 버려. 다시 계약하면 돼. 빨리 와.
“저 다른 기획사에 들어갈 거예요.”
– 뭐?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 뻥 치지 마, 인마.
“뻥 아니야, 인마!”
이 말은 우혁이 알려준 게 아니었다.
– 뭐?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인마라고 그랬다, 어쩔래.”
이것도 백곰 스스로가 한 말이었다.
백곰이 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잘 하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너 진짜 죽고 싶어?
“날 때리고 싶으면 회사 옆 건물 권투 체육관으로 와. 정정당당하게 1라운드만 싸우자.”
– 뭐라고? 궈, 궈, 권투?
그게 누구든 평범한 사람이라면 백곰 주먹에 정통으로 맞으면 머리통이 온전하지 않을 것이다.
– 야야, 됐고. 빨리 와. 지금 기획실장이 오늘 중으로 너 불러 오라고 했단고. 너 안 오면 나 퇴근 못해.
선배가 우는 소리를 냈다.
백곰의 표정이 흔들렸다. 우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똑똑!
우혁이 식탁을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약해지지 말라는 의미였다.
백곰도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기 싫어. 안 갈 거야. 끊을게.”
전화를 끊었다.
“잘했어.”
우혁이 백곰을 격려했다.
“형 아니었으면 회사로 달려갔을 거야.”
“달려갔으면 넌 또 그 친구들한테 시달렸겠지. 혹시라도 나 없을 때 전화를 받거나 만나더라도 절대 회사에 재입사하겠다고 하면 안 돼. 전화를 아예 받지 말고, 혹시 집으로 찾아오면 눈길도 주지 마. 알겠지?”
“알았어. 자꾸 귀찮게 하면 권투체육관에 가서 한 판 붙자고 해도 될까?”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해. 그 말을 할 때는 인상을 쓰면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백곰이 인상을 썼다. 최선을 다했지만 귀여울 뿐이었다. 토끼조차 달아나지 않을 것 같다.
우혁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곧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을 했다.
“착한 건 좋지만 짓밟히면서도 웃는 건 착한 게 아니야. 짓밟는데도 반항은커녕 싫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으면 밟아도 되는 줄 알고 계속 밟아.”
백곰은 우혁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분명히 널 찾아와서 잘 지내보자고 할 거야.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도 할 거고. 하지만 그 말 믿지 마. 다 거짓말이니까.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 단호할 땐 단호해야 돼.”
우혁의 말이 끝나자 백곰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단호할 땐 단호해야 돼.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백곰에게 했던 말은 백곰이 아니라 우혁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다. 참고만 살았다.
추체험한 이소룡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자기를 멸시하고 짓누르는 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게 자기 자신일 때는 더더욱.
“있잖아, 형! 여기 가슴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막혀 있었는데, 그게 뻥 뚫린 것 같아. 체증이 쑥 내려갔어.”
백곰이 자신의 명치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우혁의 마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