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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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자
♬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
카페에서 일어나려 할 때 백곰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우혁과 백곰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서 통화를 시작했다.
우혁은 백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백곰이 도움을 요청할 때만 입 모양을 만들어 도와주기로 했다.
– 백동수, 나 유엔씨 기획실장이야.
일식집에서 만난 기획실장 목소리였다.
“예, 실장님.”
– 어디냐? 내가 그리로 갈게.
“여기 서, 설악산 정상인데요.”
백곰이 무리한 거짓말을 했다. 상대가 거짓말이라는 알아차릴 만큼 말을 더듬으면서.
– 설악산 정상? 천왕봉?
“예, 천왕봉. 헤헤!”
자기 거짓말이 통했다고 생각하는지 백곰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말려든 줄 모르고.
– 천왕봉은 지리산 정상이다.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백곰은 기획실장의 말에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예.”
이왕 시작한 거짓말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지, 백곰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순순히 자백했다.
– 이렇게 어리바리한 친구를 뭐가 좋다고 전담 매니저를 요청하는지···. 내일 회사 출근해.
기획실장이 화를 억누르며 고압적으로 명령했다.
“저 회사 잘렸는데요. 제가 무릎까지 꿇고 자르지만 말아 달라고 빌었는데도 저희 팀장님이 위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무릎까지 꿇었구나.
그 장면이 눈에 그려졌다.
부아가 났으나 우혁은 눈을 감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 계약서 새로 쓰면 되니까 회사 나와.
기획실장이 아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명령했다.
백곰이 갈등했다.
똑똑!
우혁이 백곰의 주의를 환기시킨 뒤 입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백곰은 우혁의 입 모양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죄송하지만 회사에 출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 야야, 백동수!
전화를 끊었다.
***
다음날 정오 무렵, 유앤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 안녕하세요, 강우혁 배우님! 기획실장님과 오늘 저녁 7시 약속 기억하고 계신지 확인 차 전화 드렸습니다.
여직원이었다.
– 나오실 때 통장 사본,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을 지참해 주세요. 본인 도장 있으시면 갖고 나오시구요. 도장 없으시면 그냥 나오시면 됩니다.
어떻게 된 거지? 백곰을 설득한 건가?
우혁은 여직원과 통화를 끝낸 뒤 곧바로 백곰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앤씨 직원하고 통화한 적 있니?”
– 모르는 전화로 기획실장이 전화를 했지 뭐야.
“그래서?”
– 전화가 안 들리는 척하고 끊었어. 그 뒤로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어.
“집에 찾아오진 않았고?”
– 왜 아니야. 선배가 집으로 찾아왔더라고. 없는 척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그냥 돌아갔어.
백곰에게 좀 전에 여직원과 통화한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 형은 어떻게 할 거야?
“나가서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야지.”
***
약속 시간에 맞춰 일식집으로 갔다.
유앤씨 기획실장과 두 명의 젊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우혁 씨!”
두 번째 만남이건만 기획실장은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사람처럼 우혁을 반겼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우혁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듯했다.
“우리 회사 매니저입니다. 배우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왔습니다.”
기획실장이 두 명의 매니저를 장황하게 소개했다. 그동안 두 사람이 맡았던 유명 연예인들을 일일이 거론했다.
“백동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획실장의 소개가 끝났을 때 우혁이 물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이에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배우님이 언급한 전담 매니저 얘긴 내가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일단 식사부터 하면서 차근차근 얘기를 나눕시다.”
기획실장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혁의 질문을 눙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계약 문제만 해결하고 일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계약 진행합시다.”
기획 실장이 매니저 중 한 사람에게 눈짓을 했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잘생긴 슈트 차림의 매니저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우혁 앞에 공손히 펼쳐 보인 뒤 계약 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 목소리가 낯익었다. 어제 백곰에게 전화를 했던 목소리였다. 백곰을 유난히 괴롭혔다는 동갑내기 선배.
우혁은 계약 사항에 전혀 관심이 없어 흘려들었으나 핵심 사항은 귀에 들어왔다.
계약 기간 7년, 계약금 1천 만 원.
“계약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럴 수는 없고 소액이지만 드리기로 했습니다. 계약금 없이 계약하겠다는 그 순수한 마음은 잘 알지만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기획실장이 말했다.
기획실장의 말이 끝나자 슈트 매니저가 펜을 꺼내 우혁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우혁은 펜을 받아 계획서 위로 얌전히 올려놓았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백동수 씨 의사를 확인한 후에 계약하겠습니다.”
우혁의 말에 기획실장이 난감해하더니 슈트 매니저에게 지시했다.
“백동수 씨한테 전화 좀 해봐요.”
“지금 전화를 받지 못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걸어보겠습니다.”
슈트 매니저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갔을 때 백곰이 전화를 받았다.
슈트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며 통화를 시작했다.
“동수 씨, 지금 어디야? 아, 그래? 그럼 혹시 지금 좀 올 수 있어?”
슈트 매니저가 밝은 표정으로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고 기획실장에게 보고했다.
“올 수 있답니다.”
“그래요? 어서 오라고 하세요.”
기획실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슈트 매니저가 위치를 알려준 뒤 통화를 끝내고서 기획실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마침 이 근처를 지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2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구만. 하하하!”
신이 난 기획실장이 이런저런 얘기를 떠벌였다.
우혁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잠시 뒤 백곰이 나타났다.
“어서 와요, 동수 씨! 어서 와!”
기획실장이 격하게 반겼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백곰도 밝은 표정으로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슈트 매니저와 다른 매니저에게도 차례로 인사를 했다.
슈트 매니저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우혁의 시선을 피해 힐책과 멸시, 분노의 눈빛으로 백곰을 노려보았다.
“우혁 씨, 알지? 인사해.”
기획실장이 백곰에게 우혁을 가리켰다.
“잘 알죠. 제가 모시던 분인데요. 안녕하세요.”
백곰이 우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다.”
우혁이 백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우혁 씨가 동수 씨를 콕 찍어서 전담 매니저로 해달라고 하셨어. 앞으로 잘 모셔.”
기획실장이 백곰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 다른 기획사에 취직했거든요. 그래서 실장님이랑 선배님께 작별 인사드리러 왔어요.”
백곰의 말에 기획실장과 두 매니저가 놀란 표정으로 백곰을 바라보았다.
“동수 씨, 지금 농담하는 건가. 우리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다른 기획사에 취직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기획실장이 백곰을 힐책했다.
“저 유앤씨 직원 아닌데요. 잘렸잖아요. 그래서 다른 기획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나무에서 급하게 매니저를 뽑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면접 보고 입사하기로 결정했어요.”
“나무? 안창현 씨가 대표로 있는 그 나무?”
“예, 실장님! 유앤씨보다 회사 규모도 훨씬 크고 유명 배우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연예인 기획사 나무요.”
“나무에서 동수 씨를 채용했다고?”
“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선배님도요. 나무에 가서 잘 적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회사 근처 지날 일 있으면 놀러 가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안녕히 계십시오.”
백곰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기획실장과 두 매니저는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였다.
“저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우혁이 일어났다.
“배우님, 계약은 어떻게?”
“죄송합니다. 없던 일로 해주십시오.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뵙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우혁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객실을 나갔다.
기획실장이 깨우치는 바가 있기를 바랐다.
백곰의 말에 의하면 유앤씨 간부들이 매니저를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였지만 특히 기획실장의 횡포가 심했다고 한다.
갖은 욕설과 고압적 지시, 인간적 모욕과 멸시 등등.
그런 대접을 받은 고참 매니저는 부하에게 화풀이를 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우혁이 오늘 일을 벌인 건, 매니저를 일개 소품으로 여기는 유앤씨의 횡포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물론 백곰에게 횡포를 가하고 가혹하게 내쫓은 것에 대한 소박한 복수가 우선이었지만.
***
오늘 낮.
유앤씨 여직원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나서 백곰과 통화를 끝냈을 때 와우(WOW)의 윤 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혁이 요청했던 핵심 계약 사항에 대한 문서를 이메일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 기간 5년, 계약금 1억, 수익 배분 5대 5.
백곰 전담 매니저 수용은 윤 실장의 입을 통해 들었다.
경력 인정하지만 직급은 사원.
연봉도 그에 준할 것 같다고 했다.
윤 실장이 보내준 계약 사항을 확인하는 순간 결정했다. 나무와 계약하기로.
정 실장은 어제 점심 때 자료를 보내 주었다.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3억, 수익 배분 5대 5.
백곰 전담 매니저 수용하고 타사 경력을 인정해 대리 직급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와우가 나무보다 규모와 재정 상태가 좋다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조건이 와우보다 나무가 좋았다.
나무는 와우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매우 탄탄하고 실력 있는 기획사였다. 재정 상태도 튼실했고, 향후 발전가능성도 좋았다.
소속 연예인의 수는 와우보다 훨씬 적었지만 가수보다 연기자 쪽에서는 와우 못지않은 배우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윤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와 계약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이해를 구했다.
“정말 아쉽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혀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부터는 순수한 팬으로서 배우님을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지나다 뵙게 되면 아는 척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계약하지 않았다고 모른 척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연하죠. 건강 잘 유지하시고, 좋은 연기로 승승장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윤 실장과 통화를 마친 뒤 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나무와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쁜 소식이네요. 하하하!”
“핵심 조건은 보내주신 대로 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직접 뵙고 협의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찾아뵐까 하는데 괜찮은신지요?”
“물론이죠.”
“백동수 매니저 입사 처리도 오늘 가능할까요?”
“그럼요.”
“그럼 오늘 같이 가겠습니다.”
“예,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 실장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정 실장과 통화를 마친 뒤 백곰에게 전화를 걸었다.
“면접 보러 갈 거니까 샤워 깨끗이 하고 제일 좋은 옷으로 입고 나와.”
– 면접?
“기획사 나무 알지?”
– 당연히 알지.
“거기서 널 면접 보고 싶대.”
– 정말?
“어서 준비해.”
– 알았어알았어. 그런데 형!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자신이 없어.
“떨어지면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 어쩌겠어.”
– 나무에 꼭 붙고 싶은데. 내가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기획사거든.
“얼른 준비하고 와.”
– 알았어, 형!
말끔하게 차려 입은 백곰과 나무 기획사를 찾아갔다.
백곰이 2층에서 면접을 보는 동안 우혁은 안창현 대표 등과 인사를 나눈 뒤 계약서에 사인했다.
“형형, 혁이 형! 나 면접 붙었대.”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곰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우혁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너무 떨려서 면접을 잘 못했거든. 떨어진 줄 알았는데, 붙었다지 뭐야. 면접 보고 나서 적어도 1주일 뒤에 연락을 하잖아. 그런데 여기는 면접 보고 나와서 10분간 대기하라고 그러더니 합격 됐다고 전해 주더라고.”
백곰은 우혁의 뒤를 따라오며 말을 이었다.
“입사계약서까지 썼다니까. 직급이 대리야. 그리고 연봉이 얼만 줄 알어? 놀라지 마. 자그마치···.”
백곰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입사 축하한다.”
“고마워, 형! 믿어지지가 않아. 내가 나무에 입사하다니. 다시는 매니저 생활 못할 줄 알았는데.”
백곰은 기획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격에 겨운 듯 눈시울을 붉혔다.
우혁은 백곰의 등을 두어 번 토닥여 주었다.
‘동수야, 우리 이제 꽃길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