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7)
남은 촬영 기간은 1개월.
한국에서 3개월 정도 영화 촬영을 했다면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녹초가 되게 마련이다.
출연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혁은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좀처럼 지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왜냐?
하루 8시간밖에 촬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촬영 기간은 대체로 15~20주.
개월 수로 따지면 4~5개월 정도.
한국 영화의 촬영 기간이 보통 3~6개월이니까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평균 촬영 회차는 45~60회 정도.
1개월에 15~20 회차 정도 촬영을 나가는 셈이다.
1개월에 15일만 일하니까 할 만하겠다고?
천만에.
촬영을 한 번 나가면 24~48시간 동안 작업을 한다.
24~4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뒤에 하루 쉬고 나서 다음날 다시 촬영을 나간다.
월간 노동 시간을 비교하면 할리우드는 약 200시간이고 한국은 약 400시간 이상이다.
할리우드는 한국보다 촬영 시간이 반절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촬영 기간은 비슷하거나 짧다.
유명한 스필버그 감독은 촬영 기간이 18주를 넘긴 적이 없다.
[캐치 미 이프 유어 캔>의 촬영 기간은 54일.8주 만에 끝내기도 했다.
[쉰들러 리스트>는 75일.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12주.할리우드는 한국보다 촬영 시간이 짧은 것은 촬영팀이 하나가 아니라 3개이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의 얼굴이나 전면 상반신이 등장하는 장면, 대규모 액션 장면, 영화 흐름상 중요한 장면들은 영화감독이 촬영하고, 풍경이나 조연, 단역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조감독이 찍는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주연 배우의 경우 대부분 대역 배우를 쓴다는 사실.
뒷모습이나 신체 일부가 나오는 장면의 경우 대역 배우가 연기를 한다.
한국과 할리우드가 또 하나 다른 점은 촬영 카메라 숫자이다.
한국은 카메라 1대로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아야 3대.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최소 3대로 촬영하고, 많으면 10대를 동원하기도 한다.
한국은 스태프의 임금보다 카메라 등 촬영 장비 대여비가 비싸고, 할리우드는 촬영 장비보다 스태프의 임금이 높다.
임금에 대해서는 백곰이 레오의 매니저 오스카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스텝들 너무 불쌍해. 미국하고 임금 차이가 너무 심한 거 있지. 미국은 엑스트라가 8시간 하루에 150~200달러나 받아. 한국 돈으로 약 20만 원이야.”
한국의 단역 배우는 3만 5천 원을 받는다.
“조명 스태프는 시간당 45달러, 분장사는 시간당 45달러, 메이크업은 시간당 60달러, 촬영 감독은 1주에 1~2만 달러, 스턴트맨은 1일 900달러, 의상 디자이너는 1일 3,000~12,000달러를 받는대.”
한국과 엄청난 차이였다.
조감독은 1주 8000달러.
프로듀서의 월급은 150~200만 달러,
감독은 배우와 마찬가지로 편차가 매우 심하다.
작품당 50만 달러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0만 달러를 받는 감독도 있다.
[트렌스포머>를 감독한 마이클 베이는 8,000만 달러를 받았다.“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한 편에 100만 달러를 받는대.”
한화로 10억이 넘는 금액이다.
배우, 감독과 마찬가지로 능력과 인기에 따라 1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까지 차등 지급된다.
“한국 스태프들이 너무 불쌍해.”
백곰은 훨씬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할리우드 스태프들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미국은 영화와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잘 조직되어 있어 급여가 높고 노동 강도는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노동 시간도 정해진 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 법정 공휴일은 당연히 휴무.
우혁은 할리우드 시스템 중에서 스태프의 노동 시간과 임금이 가장 부러웠다. 열정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할리우드 시스템의 장점을 적용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이다.
할리우드 시스템에 적응이 되자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의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우혁이 한국에서 일할 때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민서 아빠가 밖에 나가서 늦게 들어와도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여기선 왠지 불안해.”
“불안해할 거 없어. 치안 때문에 걱정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 생각보다 안전한 곳이야. 사실 촬영 현장에서 사고를 당할 확률은 여기보다 한국이 훨씬 커.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해. 사고가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지.”
할리우드는 무대 장치를 설치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안전이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영화과 드라마 세트장은 겉만 번드르르.
안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이 다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다친 사람만 불쌍할 뿐.
“그랬어? 몰랐네.”
아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생활 어때?”
아내에게 물었다.
“아직은 괜찮아. 1년은 참을 수 있어.”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반반이야.”
“여기에서는 몸은 편한데, 마음이 편치 않아. 한국에서는 몸은 불편해도 마음이 편했거든. 왜 그런지 모르겠어.”
“여기는 태어나서 자란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거야. 그리고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기도 했고. 익숙해지면 한국에 가기 싫을지도 몰라.”
“누가 들으면 호강에 겨운 줄 모르고 엄살을 부린다고 하겠다. 오빠는 처가살이 불편하지 않아?”
“불편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천국이라고 불편한 게 없겠어.”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야. 배울 점이 많아.”
우혁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지옥도 천국이야, 라고 하려다 그만 두었다.
너무 입에 발린 소리인 것 같아서.
하지만 사실이다.
아내와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천국이다.
물론 민서도 있어야겠지만.
미국을 너무 두려워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레오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레오와 미국, 할리우드 스타를 오해했다.
이런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수많은 총기사고가 일어나는 미국이 으스스했다.
미국에 온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을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겨우 3개월밖에 살지 않았으니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레오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미국에서 그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은 멋진 나라이다.
레오는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매년 한두 작품을 쉬지 않고 했다.
평생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벌었지만 연기를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곱상한 외모 때문에 연기의 폭이 좁아지자 살을 찌우고, 수염을 기르고, 인상을 찌푸려 주름살을 깊게 만들었다.
담배를 태우는 이유도 연기를 위해서라고 했다.
반쯤은 핑계였지만.
어제 촬영 세트장에서 브레이크 타임 때 우혁은 바람을 쐬기 위해 세트장을 나왔다.
레오가 혼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우혁을 발견하고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담배를 끊으면 흡연자 배역은 못하잖아요. 가짜로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할 수야 있겠지만, 비흡연자가 흡연자를 흉내 내면 티가 나죠. 쿨룩! 거짓말을 했더니 기침이 나오네요. 그래요. 담배를 못 끊어서 계속 피고 있어요. 연기를 위해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순 거짓말이에요. 하하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느낌에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금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놈과 싸움을 붙이려는 것 같은데요. 놈에게 얻어맞아서 코피를 줄줄 흘리는 꼴을 보고 싶은 겁니까?”
“레오 당신이라면 놈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저를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자신을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아니요. 그동안 나 자신을 과대평가해 왔어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토토 대디!”
“연기 신이 겸손하기까지 하면 어떡합니까? 살짝 재수 없어지려고 하는데요.”
“그러지 말아요, 토토 대디! 난 당신한테 미움 받기 싫어요. 내가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아요?”
“레오!”
“?”
“당신이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미국은 멋진 나라입니다.”
진심이다.
“와우!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에 최고로 기분 좋은 말이네요. 당신이 여자가 아닌 게 안타깝네요. 여자였으면 당장 결혼하자고 했을 텐데···. 하하하!”
“결혼할 생각이 있기는 한가요?”
“결혼했어요.”
“혹시 아내분 이름이 무비(movie) 아닌가요?”
“맞아요. 내 아내 이름이 무비예요.”
“무비! 이름 예쁘네요.”
“하하하! 무비는 아주 매력적인 여자죠.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따뜻하고, 우아하고 섹시하고 순수한 여자. 하하하!”
“제가 알고 있는 여자하고 비슷하군요.”
“와이프?”
“아뇨! 제 와이프는 그 여자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죠.”
“아내를 사랑하는 모양이군요. 아내와 영화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아내!”
“정말이에요?”
“예!”
“와우! 끝내주는 여자가 있는데 같이 안 갈래요?”
“혼자 가세요.”
“정말 끝내주는데?”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놈과 싸움을 붙이려는 것 같은데요. 놈에게 얻어맞아서 코피를 줄줄 흘리는 꼴을 보고 싶은 겁니까?”
“우혁 당신이라면 놈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 민서가 좀 전에 아빠라고 했어.
“그래? 민서 좀 바꿔 줘.”
– 잠깐만! 민서야! 아빠, 해 봐! 아빠!
우혁은 귀를 기울였다.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내가 지구에 살고 있는 나에게 보낸 메시지라도 되는 것처럼.
아내가 백만 번쯤 아빠를 반복했을 때, 민서가 옹알이를 했다.
– #$%*^%&빠
마지막에 ‘아빠’라고 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
이건 미국 역사 교과서에 기록해야 한다!
우혁이 미국 대통령이라면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을 것이다. 민서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한 날을 기념하여.
‘아빠’를 한 번 더 듣고 싶었으나 민서는 같은 단어를 두 번씩 하는, 가벼운 아이가 아니었다.
민서와 통화를 끝낸 뒤에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죠?”
레오가 물었다.
우혁이 한국어로 통화를 했기 때문에 통화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을 미국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만큼 기쁜 일이 있어요.”
“뭔데요?”
“오늘 제 딸이 나한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라고 했거든요.”
“푸하하하하하!”
레오가 배를 잡고 웃었다.
“형! 브레이크 타임 끝났어.”
백곰이 알려주었다.
“고마워요, 배컴!”
레오가 백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맙긴요!”
백곰이 웃어 보였다.
“레오! 빨리 와! 미스터 강은 다음 신에 등장하지 않지만 넌 등장한단 말이야.”
레오의 매니저 오스카가 레오를 불렀다.
“예예! 갑니다!”
레오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걷다 말고 문득 멈춰 서더니 뒤돌아서서 우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한국은 멋진 나라입니다.”
우혁이 빙그레 웃었다.
“멋진 말이에요. 결혼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이 말을 써먹어야겠어요. 하하하!”
레오가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친구 하나를 얻었다.
민서가 아빠라고 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법정 공휴일로 지정한 김에 함께 기억할 만한 일이다.
[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만큼 기쁜 일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