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7)
“박용구 감독님! 아침 식사 하셨으려나?”
우혁은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 쪽으로 걸어가며 백곰에게 물었다.
“전화해 볼까?”
백곰이 되물었다.
“내가 전화 드릴게. 넌 타란티노 감독님께 전화 드려서 아침 식사 하실 건지 여쭤 봐.”
“알았어.”
휴대전화를 꺼내 박용구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배우님!
신호가 가자마자 박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잘 주무셨어요?”
– 예예.
“혹시 주무시는데 깨운 건 아닌가요?”
– 아닙니다아닙니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 예. 뭐 간단히···.
파크 시키는 스키 시즌과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만 사람들이 붐비는 마을이라 숙소 잡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박 감독이 묵는 숙소는 조식을 하는 호텔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면 아침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은 드물었다.
전날 마트에서 아침으로 먹을 것들을 사 갖고 가지 않았다면 점심때까지 굶어야 한다.
얼버무리는 것으로 보아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듯하다.
“아침 식사 안 했으면 이쪽으로 오실래요?”
– 아침 식사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것보다도 배우님을 잠깐 뵙고 싶은데···.
“저도 감독님 뵙고 싶습니다.”
– 1시간 뒤에 호텔로 찾아뵈면 될까요?
“예, 알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럼 이따 1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박 감독의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어제 영화관 앞에서 박 감독을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그 표정이 너무나 쓸쓸해서 마음이 아렸다.
박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참담한 실패를 했다는 소식은 잘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랐는데···.
미국도 비슷하지만 한국 영화판은 실패한 감독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천만 감독조차도 한 번 쓰러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손익분기점은 넘겨야 한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만만치 않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영화감독으로 입봉하기도 어렵지만, 두 번째 작품을 하기는 더 어렵고, 세 번째 작품을 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아침 안 먹겠대. 박 감독님하고 통화해 봤어?”
백곰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1시간 뒤에 여기로 오기로 하셨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타란티노 감독님은 점심 약속이 있어서 30분 뒤에 여기서 출발하신다는데, 형은 어떻게 할 거야?”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오늘은 특별한 스케줄 없어. 내일 오전에 인터뷰가 있고, 오후에 스톤 감독 미팅이 잡혀 있어.”
“그럼 오늘은 박 감독님하고 함께 보내야겠다.”
“오늘 오후에 레오 만나기로 한 건 알고 있지? 비행시간에 맞추려면 여기서 오전 11시에는 출발해야 돼.”
레오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깜빡 잊고 있었다.
“상황을 보고 레오와 약속을 미루던가 해야겠다. 만약 박 감독이 시간이 된다면 박 감독과 함께 LA로 가서 레오를 만날 수도 있고.”
지금으로서는 레오보다 박 감독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레오와는 중요한 약속이 아니라 둘 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만나기로 했다.
보나마나 백곰과 알까기나 하겠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박 감독을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지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박 감독이 처한 상황이 좋다면 또 모르겠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 모른 척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박 감독님이 잘됐으면 좋았을 텐데···. 표정이 너무 안 좋더라.”
백곰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박 감독님, 재기할 수 있을까?”
“글쎄!”
“두 번째 작품은 성적이 별로 안 좋기는 했지만, [길 밖의 새>가 성공했는데···.”
백곰도 영화판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박 감독님이 재기하는 것보다 등나무 의자에서 잎이 나고 등나무 꽃이 필 가능성이 더 높을 거야.”
백곰이 과장법을 사용해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했다.
“기회가 올 거야. 박 감독님이 포기하기 않고, 좋은 시나리오를 찾는다면···.”
“과연 그럴까?”
백곰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백곰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타란티노 감독이 짐을 챙겨 내려왔다.
“나 먼저 갈게요.”
타란티노 감독이 서둘렀다.
촬영이 끝났어도 타란티노 감독은 정신없이 바쁘다.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은 촬영이 끝나면 편집과 홍보 등의 후속 작업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 촬영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전문가 또는 기술자이다.
하지만 타란티노 감독은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편집과 홍보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타란티노 감독을 로비까지 배웅하고, 객실로 올라가 짐을 챙겨 내려오자 박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감독은 피곤해 보였으나 눈빛만은 초롱초롱했다.
“감독님,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우혁이 박 감독에게 물었다.
“특별한 일정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하고 함께 보내시죠.”
“저야 좋지만, 바쁘실 텐데···.”
“오늘은 스케줄이 없습니다.”
박 감독은 그런 우혁이 고마웠다.
어제 하루 종일 함께 다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또 하루를 함께하겠다니 황송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자신은 잘나가는 천만 감독도 아니고 차기작을 할 가능성이 희박한 쪽박 감독에 불과하지 않은가.
“영화 보실래요?”
“아뇨! 영화는 충분히 봤습니다.”
“여기서 영화를 안 보면 할 게 없는데요.”
“LA에 가서 할리우드 구경이나 좀 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저하고 같이 LA에 가시죠.”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저한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십시오. 지금까지 시간 내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저하고 있는 게 불편하세요?”
“그럴 리가요. 배우님 만나서 너무 기쁘고 즐겁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에요. 선댄스 영화제에 와서 배우님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요.”
“저도 감독님 뵙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게 아니라면, 오늘 오후까지만 저하고 같이 계시죠.”
코끝이 찡하다.
“고맙습니다.”
박 감독은 짧게 대답한 뒤, 주먹으로 콧잔등을 문질렀다.
우혁은 못 본 척했다.
박 감독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호텔 직원에게 아침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을 박 감독을 위해서였다.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형! 박 감독님하고 식사하려고 호텔에서 거의 안 먹었구나?”
백곰이 속삭였다.
백곰은 아침 식사를 했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겼다.
“올리버 스톤 감독님과 작품 한다고 들었습니다. 촬영은 언제 시작하세요?”
박 감독이 우혁에게 물었다.
“두 달 뒤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촬영 기간은 3개월을 넘지 않을 거구요.”
“올리버 스톤 감독님 작품 이후 차기작도 결정이 되었겠네요?”
“아닙니다. 아직 결정된 거 없습니다. 고르고 있는 중이에요.”
“캐스팅 제의 많이 들어오죠?”
박 감독의 질문에 백곰이 대신 대답했다.
“프로모 영상 공개된 뒤로 엄청 들어와요. 그런데 형이 다 거절하고 있어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나 보죠?”
“형이 다음 작품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하고 싶어 하거든요.”
“아, 그러세요?!”
박 감독이 반색했다.
하지만 곧 자기 처지를 상기하며 반색을 거두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한국에 자기보다 능력 좋은 감독과 PD가 어디 한둘인가.
“할리우드에 계속 계시지 않고요?”
“애초에 두 편만 하고 한국에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럼 할리우드 작품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건가요?”
“아뇨! 계속해야죠.”
시기가 맞고, 끌리는 작품을 만난다면 계속할 것이다.
다만,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과정일 뿐.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에 진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 뿌리를 내릴 생각은 없다.
연어가 회귀하듯 한국으로 돌아갈 터이고, 한국을 주된 활동 무대로 삼을 것이며, 한국에서 연기 생활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애국자라서?
아니다.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계시기도 하지만, 아내의 몸에 잠시 머물다 떠난 아이의 피와 살과 영혼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곳이 가장 마음 편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겠어. 난 한국이 제일 편해. 늑대 소년이 그렇다잖아. 사람들은 늑대 무리에서 자란 아이를 위한답시고 인간 세상에 살게 하려고 하지만, 늑대 소년은 한사코 늑대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길 밖의 새>에서 주인공 권혁철과 [마른 풀잎의 노래>에서 주인공 남원댁이 지옥일망정 가족이 있는 고향을 찾았듯이 우혁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저···.”
식사를 거의 마쳤을 무렵, 박 감독이 주저하며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말씀하세요, 감독님!”
박 감독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이메일 하나를 보냈습니다. 염치없지만 의견을 여쭙고 싶어서요. 시나리오도 아니고, 오늘 새벽에 문득 떠오른 이야기입니다.”
강 배우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이메일로 보냈다.
강 배우의 의견을 꼭 묻고 싶었다.
강 배우가 별로라고 하면 접을 생각이다.
꿈속의 주인공은 강 배우였다.
프로모 영상 같은 짧지만 강렬한 꿈.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네요.”
식사를 마친 우혁이 냅킨으로 입 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저두요.”
백곰도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어 먹으며 박 감독을 바라보았다.
박 감독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박 감독의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우혁은 박 감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이 이야기, 영화로 만들 생각인가요?”
“영화로 만들고는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오늘 새벽에 떠오른 이야기라구요?”
“예!”
“감독님!”
“예?”
“이 이야기, 영화로 만드시죠.”
“···.”
“꼭 만드세요. 꼭요.”
백곰이 끼어들었다.
박 감독이 우혁과 백곰을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두 번째 영화를 폭망시켰기 때문에 그에게 기회를 줄 영화사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에.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우혁이 말했다.
우혁의 말을 들은 백곰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감독은 놀란 눈으로 우혁을 쳐다보았다.
“배우님께서 투자를요?”
“전액 투자하겠습니다.”
우혁의 말에 박 감독이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배우님! 말씀은 고맙지만, 제가 배우님께 바라는 것은 투자가 아닙니다.”
“?”
“주인공이 필요합니다. 배우님께서 주인공으로 출연하지 않으신다면, 영화화할 생각 없습니다!”
“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정말이세요? 제 영화에 출연해 주시는 겁니까?”
“노개런티 아닙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달라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 이익금이 생긴다면 배우님이 다 가져 가셔도 됩니다.”
박 감독이 의자에서 엉덩이 떼었다 붙였다 하며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진심이기도 했고.
“하하하! 그렇게 할 수는 없구요. 러닝 개런티를 받겠습니다. 구체적 조건은 다음에 말씀 나누시죠.”
“···.”
박 감독이 멍한 눈길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 눈길로 백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동수 씨! 저 한 번만 꼬집어 주실래요?”
백곰은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꿈 아닙니다, 감독님!”
백곰의 대답을 듣고 나서 박 감독은 우혁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 식사 다 하셨으면 LA로 갑시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감독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 줄지도 몰라요. 그건 동수한테 맡기세요. 동수가 알아서 해줄 겁니다.”
백곰은 우혁의 말뜻을 알아듣고 손가락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소리를 냈다.
우두둑!
[ 차기작을 만나다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