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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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대박날 거야. 무조건!
백곰은 정 실장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다가 뒤늦게 정의찬 실장을 발견하고서 화들짝 놀라며 춤을 멈추었다.
“죄송합니다.”
“우리 여직원들이 봤으면 난리 날 뻔했네요. 나중에 회식 때 한 번 보여 줘요.”
정 실장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백곰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얌전히 서 있었다.
그런 백곰에게 정 실장이 귓속말을 했다.
“이분이 앞으로 백 대리가 모실 배우님이십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아닙니다, 실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백곰이 손사래를 쳤다.
우혁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충분히 짐작했지만 모른 척하고 정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전화로 부탁드린 시놉시스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우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 실장이 서류 뭉치를 우혁에게 건네주었다.
“동수야, 이중에서 차기작으로 할 만한 게 있는지 찾아보자.”
우혁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첫 출근입니다. 천천히 하시지요.”
정 실장이 끼어들었다.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감싸고도시는 겁니까?”
우혁이 정 실장을 흘겼다.
“하하하!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정 실장이 물러났다.
“앉아라. 일하자. 내가 여기 있는 시놉시스들을 차례로 읽어 줄 테니까, 잘 듣고 네 느낌을 말해줘.”
“알았어.”
“완곡하게 말하지 말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돼.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느껴지는 대로 말해줘. 가능하면 신랄하게!”
“그럴게. 잠시만 기다려줘.”
백곰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우혁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자료들을 뒤졌다.
좋은 작품과 좋은 역할을 골라야 한다. 이번 작품으로 강우혁이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배우로 거듭날 것이다. 이소룡이 조연 배우로 머물렀던 미국을 떠나 홍콩으로 돌아가 주연 배우로 거듭났듯이.
우혁은 시놉시스 중에서 제목이 끌리는 영화 한 편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백곰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좀 더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다시 읽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때?”
시놉을 다 읽고 백곰에게 물었다.
“음···.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
“좀 더 신랄하게!”
“꽝이야. 먹구름이 보여.”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우혁은 미련 없이 시놉을 내려놓았다.
다음 시놉을 읽었다. 이번에도 영화였다.
“아까보다 더 형편없어.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망할 거야. 폭싹!”
탈락!
다른 시놉을 골랐다.
그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두 시간을 몰두했다.
중간에 백곰에게 잠시 쉬자고 했으나 백곰은 계속하자고 보챘다.
두 시간을 달리자 정 실장이 준 시놉이 바닥을 드러냈다. 대부분 탈락이었고, 두 작품 정도가 재검토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재검토 대상 작품은 우혁이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내일쯤 만나서 그 줄거리를 백곰에게 들려준 뒤 백곰의 느낌을 확인하기로 했다.
검토가 모두 끝났을 때 백곰은 축 늘어졌다.
“괜찮아?”
“조금 힘들어.”
말과 달리 많이 힘들어 보였다.
정 실장이 다가왔다.
정 실장의 발소리에 백곰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지 마시라니까.”
정 실장은 백곰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힐책 아닌 힐책을 했다.
“아직 여기 계셨어요?”
정 실장이 우혁에게 물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녹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싱그러운 바람 맛이 나는 녹차가 있거든요.”
정 실장이 백곰에게 미소를 보내며 우혁에게 말했다.
백곰도 정 실장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요.”
우혁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가시죠.”
정 실장이 앞장섰다.
“정 실장님이 타 주는 녹차 마셔 봤어?”
백곰이 우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니.”
“마셔 봐. 신비한 맛이야. 녹차가 그렇게 맛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니까. 은은한 향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마치 숲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지 뭐야.”
우혁의 기억에 백곰은 풀 냄새가 난다면서 녹차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회의실에는 직원들이 화기애애하면서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우혁과 백곰은 정 실장의 안내를 받아 비어 있는 휴게실 겸용 소회의실에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 실장이 나갔다.
“회사는 마음에 들어?”
우혁이 백곰에게 물었다.
“너무너무! 직원들이 엄청 친절해. 항상 웃고 다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백곰만큼 잘 웃는 사람이 있을까. 늘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가.
백곰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혁이 형! 오늘 탈락시킨 시놉시스 한 번만 더 검토해 봤으면 좋겠어.”
“왜?”
“혹시 몰라서 말이야. 내일 다시 한 번 검토해 보고 싶어.”
백곰은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우혁 형이 차기작에서 스타로 발돋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혁 형은 두 시간 동안 목이 아프도록 시놉을 읽어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낌을 말하면 두 말 하지 않고 탈락!
일개 로드에 불과한 자기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작품에 대한 느낌과 의견을 100프로 신뢰해 주는 우혁 형이 고마웠다.
우혁 형에게 좋은 작품과 배역을 찾아 주고 것.
그것이 우혁 형과 회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알량한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확 끌리는 작품과 배역이 없었다.
한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길게는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만큼 작품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만큼이나 신중하다.
우혁 형의 차기작을 고르기 시작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빨리 만나고 싶다. 우혁 형을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해줄 작품을.
우혁 형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귓속말로 자랑한 적이 있었다.
“저 배우랑 나랑 엄청 친해요. 내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에요. 저 형은 나를 동생으로 여기고요.”
그 말을 들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듣보잡 배우랑 친해서 퍽이나 좋겠다.’
우혁 형의 차기작이 개봉되거나 방영될 때 똑같은 행동을 해볼 참이다.
“정말 저 배우랑 친해요? 우와! 좋겠다!”
이런 반응을 보고 싶다.
정 실장이 녹차 다기 세트를 가지고 소회의실로 들어왔다.
보온병에서 물을 따라 차를 우리기 시작하자 소회의실 안에 녹차 향이 퍼져 나왔다.
은은한 녹차 향은 두 시간 동안 몰두하느라 진이 빠진 심신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제가 드린 시놉은 좀 보셨습니까? 마음에 드는 작품은 있던가요?”
정 실장이 우혁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직 검토 중입니다.”
“천천히 검토하십시오.”
그때 정 실장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전화 좀 받겠습니다.”
정 실장이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두 배우 모두 배역을 소화할 자신이 없다고 하네요. 저도 애를 썼습니다만, 워낙 자신 없어 해서요. 예, 알겠습니다. 한 번 더 설득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예예. 들어가십시오.”
정 실장은 통화를 끝내고 녹차 주전자 뚜껑을 열어 녹차가 얼마나 우러났는지 확인하며 통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좀 전에 통화한 분은 엄승태 피디라는 분인데 배역 하나가 캐스팅이 안 돼서 애를 먹고 있나 봐요.”
“엄 피디라면 공중파에 계시다가 외주제작사로 옮긴 분 말씀이지요?”
“예, 맞습니다. 옮긴 뒤로 성적이 예년만 못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시더라구요. 전작이 폭망하는 바람에 이번 작품 캐스팅에도 애를 먹고 계시죠. 엄 피디가 원하는 우리 소속사 두 배우 모두 시놉하고 1, 2회 대본을 검토하더니 안 하겠다고 못을 박았어요. 두 배우 중에 한 분은 좀 전에 연락을 주셨죠.”
“저한테 주신 시놉 중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인가요?”
“아뇨! 그건 드리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배우가 그 배역을 검토하던 중이었거든요.”
“혹시 그 시놉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정 실장이 밖으로 나갔다가 시놉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휴먼 가족 드라마인데 대표님뿐만 아니라 시놉을 본 회사 직원들 모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평을 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우혁은 정 실장의 말을 들으며 시놉 표지를 살펴보았다.
제목 [서울 가로등>.
감독 엄승태.
작가 유은아.
볼펜으로 쓴 글자도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지기 배역 의뢰용.’
‘가로등지기’라는 역할을 섭외하기 위한 용도의 시놉이었다.
유은아 작가는 서민의 삶을 리얼하면서도 판타지 요소를 적절히 가미해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집필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소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과거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속되고 직설적인 표현을 즐기는 이들의 용어를 쓰자면 ‘한물간’ 작가였다.
시놉의 표지를 넘기자 기획의도를 비롯해 등장인물, 인물관계도가 나왔다.
등장인물 중 ‘가로등지기’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어 눈에 도드라졌다.
등장인물 소개 순서로 보아 ‘가로등지기’는 조연이었다.
가로등지기: 어느 날 서울 재개발 예정지인 너브대 마을 공원에 나타나 가로등 밑 벤치에서 지내는 부랑자. 선하고 따뜻한 시선을 소유하고 있으며 위기에 처한 동네 사람들을 조용히 도와주는 신비한 인물. 조작 없이 가로등을 켜고 끌 수 있으며 결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늘 지니고 다니는 인형을 통해 복화술로 의사를 전달한다. 재개발 계획이 취소되자 홀연히 사라진다.
그 아래 ‘배우 요건’이라는 문항이 있었다.
‘선하면서도 신비로운 눈빛 필수. 대사가 거의 없으므로 눈빛으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어야 함. 수중 촬영 시 물 공포증이 없어야 하며 간단한 마술과 복화술 능력 필요. 격투 상황에서 현란한 발차기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역할은 조연인데 요구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웠다. 얼핏 보기에도 연기하기 만만치 않은 역할이었다. 부랑자라는 단어가 거부감을 주기도 했고.
두 배우가 왜 고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또 다시 정 실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예, 대표님! 알겠습니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정 실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호출이라 올라갔다 내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녹차는 2분 정도만 더 기다렸다가 마시면 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여긴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다녀오세요.”
우혁이 정 실장에게 말했다.
정 실장이 나간 뒤 백곰이 우혁에게 물었다.
“드라마 제목은 뭐야?”
“서울 가로등.”
“서울 가로등?!”
“제목이 확 끌리지는 않지?”
“아니! 확 끌려!”
“이 제목이 끌린다고?”
“응! 뭐랄까, 제목을 들을 때 머릿속에서 축포가 터지는 느낌이었어. 시놉 좀 읽어 줘.”
“두 시간 동안 충분히 했어. 좀 쉬자.”
“내용이 궁금해서 못 참겠어. 어서 읽어 줘. 부탁이야.”
백곰은 눈을 감고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우혁은 할 수 없이 시놉을 읽기 시작했다.
‘가로등지기’에 대한 캐릭터 설명과 ‘배우 요건’ 부분을 읽을 때에는 백곰이 두 번이나 다시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상세 줄거리까지 모두 읽었을 때,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의 백곰이 목소리를 억누르며 허공에 시선을 부려놓은 채 우혁을 조용히 불렀다.
“형!”
“?”
“이 드라마 대박날 것 같아. 그리고 가로등지기, 느낌이 엄청 좋아. 이 역할, 형이 할 수 없어? 형이 하면 무조건 대박 날 거야. 무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