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5)
우혁은 프랑스어로 소감을 말했다.
여기는 칸 영화제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남우 주연상이 소개될 때, 타란티노 감독님, 레오, 윌과 내기를 했습니다. 누가 남우 주연상을 받을 것인지를 두고 말이죠. 내기에 지면 1달러를 줘야 하고, ‘딱밤’이라는 걸 맞아야 합니다. 딱밤은 손가락을 이렇게 하고서 이마를 때리는 겁니다.”
딱밤의 시범을 보였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딱밤’.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로 발음해야 제맛이다.
딱밤은 백곰이 알까기를 하면서 타란티노 감독과 출연 배우들, 스태프들에게 전파했다.
백곰의 딱밤은 어마무시하다.
힘을 제대로 주지 않았음에도.
“저는 오늘 타란티노 감독님, 레오, 윌에게 딱밤을 맞아야 합니다. 내기에서 제가 졌거든요. 제가 이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딱밤을 맞고 나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죠. 꿈만 같습니다.”
우혁은 종려나무 잎사귀 문양의 상패를 살펴보았다.
박수가 쏟아졌다.
우혁은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수상 소감을 이어나갔다.
“며칠 전에 제 딸이 걸음마를 떼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네 발로 기다가 처음으로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일어서서 두 발로 걸었지요. 두 발로 서면 네 발로 길 때보다 하늘이 더 잘 보이죠. 지금 이 순간 저는, 네 발로 기다가 처음으로 두 발로 일어선 기분입니다. 하늘이 이렇게 생겼군요. 아름답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서 객석을 응시했다.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사랑하는 내 딸 민서야!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고맙다. 네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마. 그리고, 내 딸 엄마이자 내 아내인 이해인 씨! 사랑합니다. 사랑해, 여보!!”
마지막 문장, ‘사랑해, 여보!’는 한국어로 했다.
***
해인은 민서를 품에 꼭 껴안았다.
“엄마?”
민서가 무슨 일인가 해서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민서야! 아빠가 상 받았어.”
“엄마, 뚝!”
엄마의 눈물을 발견하고서 민서가 엄마의 어깨를 다독였다.
토토도 두 눈을 빤짝이며 엄마를 빤히 올려보았다.
“너무 기뻐서 우는 거야. 너무 좋아서. 슬퍼서 우는 거 아니야.”
엄마가 민서와 토토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기쁘다.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남편이 칸 영화제 수상자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인은 전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칸 아니라 칸 할아버지라 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남편의 무명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해인의 눈에는 그 시절 남편의 연기가 가장 멋있고 근사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남편이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남편은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인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지.
취직을 하려고 여기저기 원서를 냈었고, 번번이 떨어진 경험이 있다.
글짓기나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한 적도 있었으나, 단 한 번도 합격된 적이 없다.
대학도 떨어졌다.
합격한다 해도 다닐 수 없었지만.
그래서 실력보다 높은 곳을 지원했다.
떨어질 줄 알았다.
알았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 몹시 서글프고 속상해서, 많이 울었다.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 남편도 슬펐으리라.
남편은 그 슬픔을 견딘 사람이다.
지금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기쁘다.
남편이 최고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기쁘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시상식 소감 마지막에 남편이 한 말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소감을 말해서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었다.
그냥 멋있기만 했다.
그런데.
귀에 익은 한국어가 들려왔다.
“사랑해, 여보!”
그 순간,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
***
이제 경쟁 부문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발표할 차례였다.
“자자, 내기. 10달러 플러스 딱밤 한 대. 오케이? 난 우리 영화.”
레오가 다시 내기를 제안했다.
“나도 우리 영화!”
“나도!”
우혁과 윌이 대답했다.
타란티노 감독을 쳐다보았다.
“미! 투!”
타란티노 감독이 검지로 자기를 가리켰다.
내기를 파토 놓겠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되면 파토잖아요. 그럼 난 바꾸겠어요.”
레오가 다른 후보작을 골랐다.
윌도 후보작 중 상을 탈 거라고 예상되는 작품을 선택했다.
“난 우리 영화를 선택하겠습니다.”
우혁이 대답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신중하게 고심하더니 한 작품을 골랐다.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왜냐하면 남우 주연상을 이미 수상했으니까.
칸 영화제는 여간해서 2관왕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발표와 함께 2,100석 청중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쳤다.
타란티노 감독만이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나기는커녕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서 축 늘어진다.
우혁이 팔씨름을 청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우혁의 손을 잡고서 일어나더니 우혁을 포옹했다.
우혁은 타란티노 감독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레오, 윌과도 차례로 포옹한 뒤,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갔다.
타란티노 감독이 무대 위에 올라설 때까지 박수가 이어졌다.
우혁은 뭉클했다.
남우 주연상을 받을 때보다 더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다.
타란티노 감독이 무대에 올라서자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이어서 수상 소감.
“이번에도 내기를 했습니다. 남우 주연상에서는 1달러에 딱밤 한 대씩이었는데, 이번에는 10달러에 딱밤 한 대씩으로 판돈을 키웠어요. 강에게 9달러를 주게 생겼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9달러! 어서어서!”
우혁이 레오와 윌에게 다그쳤다.
레오와 윌은 상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9달러를 우혁에게 건네주었다.
그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갔다.
황금종려상 내기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우혁은 세 사람에게 1달러씩 바치고 딱밤도 한 대씩 맞을 뻔했는데, 이번 내기에서 승리함으로써 딱밤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오히려 27달러를 벌게 생겼다.
“감독상에서 호명되지 않아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집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황금종려상을 주시는군요. 이게 무슨 일인가요? 아름다운 날입니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에요.”
타란티노 감독이 트로피를 높이 들어보였다.
박수와 환호성이 뤼미에르 대극장에 울려 퍼졌다.
“강은 네 발로 기다가 처음으로 일어선 기분이라고 했는데, 전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날갯짓을 하면 하늘로 날아오를지도 모릅니다.”
“날아 보세요.”
객석에서 누군가가 농을 던졌다.
타란티노 감독이 농을 던진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날아 보라구요? 날개가 아직 덜 말랐어요. 오늘밤 당신이 잠들었을 때쯤 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 꿈속으로 날아갈 테니까 기다려요.”
타란티노 감독의 위트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타란티노 감독은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손가락으로 우혁, 레오, 윌을 가리켰다.
진지한 표정으로.
“화이트! 블랙! 옐로우! 세 사람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당신들을 만난 건 하늘이 내게 내려준 행운이에요. 고마워요!”
타란티노 감독은 손에 들고 있던 트로피에 키스를 한 뒤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가 칸 영화제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과 남우 주연상, 2관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칸 영화제를 매혹시키다] [칸 영화제를 홀린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남우주연상을 움켜쥔 [쓰레기들>] [칸을 휘어잡은 [쓰레기들>, 전 세계 관객까지 휘어잡을 수 있을까]칸 영화제 2관왕은 분명 쾌거이다.
그러나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홍보 효과는 엄청나지만 흥행 보장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
실리를 얻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실속 없는 잔치가 될 수도 있다.
격하게 표현해서, 빛 좋은 개살구.
칸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 마켓은 숫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들은 레드카펫을 구경할 틈도 없었다.
선댄스 영화제부터 영화 마켓을 열어 수출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수출 실적은 매우 높다.
좋은 조짐이지만 수입국의 관객이 계약금을 넘어서야 흥행에 따른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2주일 후, 미국과 캐나다를 시작으로 한국, 중국, 호주, 유럽 각국에서 개봉하게 된다.
북미와 유럽, 중국과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 남미에서 어떤 흥행 성적을 올릴지 자못 궁금하다.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의 흥행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조짐은 차고 넘친다.수출 실적도 좋고.
평도 좋고.
상도 받았다.
분위기 끝내준다.
그래서 결과도 끝내줄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아침에 쾌청하다고 해서 낮에도 쾌청하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최첨단 과학 장비로 예보하는 내일 날씨도 틀릴 때가 있는데, 2주 뒤 개봉할 영화의 흥행을 어떻게 알겠는가.
2주 뒤 개봉할 영화의 흥행 성적을 알아맞히기는 기상청에서 2주 뒤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보하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결과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
개봉을 앞두고 막바지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혁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타란티노 감독, 레오, 윌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연예인 자선 축구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 일정을 소화한 다음, 한국으로 건너간다.
한국에서도 다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방송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등의 홍보 행사를 하고, ‘웰 컴 투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문화와 음식, 역사를 경험해볼 것이다.
그런 뒤, 일본에 잠시 들렀다가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살인적이구만!”
“무시무시하다!”
홍보 일정을 확인한 레오와 윌이 혀를 내둘렀다.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우혁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위대한 시민>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한국으로 귀국해 [플럼범 바이러스> 촬영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것이다.1개월 뒤, ‘스타와 저녁식사’, ‘100대 1’이라는 프로그램 출연하기로 했다.
[위대한 시민> 홍보 차원이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길게 보면 [플럼범 바이러스> 홍보이기도 하고.
***
칸 영화제 시상식 이후, 폐막작을 감상하는 것으로 영화제의 모든 행사가 끝난다.
폐막작을 감상하고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을 탔을 때, 꺼두었던 휴대전화 전원을 켜자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수도 없이 도착해 있었다.
가장 먼저 아내와 통화한 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드려야 할 사람들이 많았으나 차차 드리기로 했다.
오늘은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한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오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런 날 한잔하지 않는 건, 신에 대한 결례죠.”
우혁의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방금 말한 사람, 레오 당신이야? 윌?”
타란티노 감독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뻔히 알면서.
두 사람은 타란티노 감독의 장단에 호응하느라 ‘나 아닌데!’ 하는 표정과 몸짓을 했다.
타란티노 감독이 우혁을 바라보았다.
‘당신이야?’ 하는 눈빛으로.
“일단!”
우혁은 대답 대신, 리무진 오픈 콘솔 박스에 꽂혀 있던 샴페인을 꺼냈다.
“이놈부터 시작할까요?”
타란티노 감독은 나비넥타이를 빼서 내던지고 목을 조르던 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
레오는 아예 상의를 벗어 던지고서 셔츠 팔뚝을 걷어 붙였고, 윌은 목을 돌리는가 하면 어깨를 돌리는 등 스트레칭을 했다.
이 양반들, 얼마나 마시려고 이러시나!
우혁은 소리 나지 않게 샴페인을 따서 세 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모두 잔을 채운 뒤, 우혁이 건배 구호를 외쳤다.
“드링캔다이!(Drink and die!)”
우혁의 건배 구호에 세 사람 모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하하하! 건배 구호 마음에 든다! 멋져! 드링캔다이!”
“달려 보자고! 드링캔다이!”
“드링캔다이!”
그것을 시작으로 밤새 마셨다.
신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겠다는 명목과 핑계를 들먹이며.
드링캔다이!(Drink and die!)
건배 구호는 살벌했으나 네 사람은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할 만큼 마셨다.
밤새 마시긴 했으나 술이 중심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했다.
영화와 인생과 삶의 의미와 가치, 숙명과 책무 등에 대해서.
우혁은 자기 자신과 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툭툭!
영화를 통해 각자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영화, 배우, 감독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무는 무엇인지?
영화가 현대인들과 자기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바르게 가고 있는지···.
기쁘게 가고 있는지···.
네 사람은 그렇게, 밤을 달려, 새벽을 맞이했다.
볼 만한 영화가 넘쳐 나는 지구의 새벽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찬 새벽을.
[ 수상 소감과 건배 구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