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8)
“아, 좋다!”
송유미가 호텔 창문을 열어젖히고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2월 20일 오전 10시.
봄날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이마 위에 내려앉는다.
시상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 마지막 날.
영화제는 예년보다 5일 일찍 시작했음에도, 날씨는 예년보다 따뜻했다.
영화제 10일 중 삼사 일은 겨울 특유의 음산한 날씨였다.
유럽 특유의 축축한 겨울 추위.
한국의 겨울 추위는 살을 에지만, 유럽은 뼛속으로 스며든다.
그제와 어제, 유럽의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오늘은 4월의 봄날처럼 햇살이 따사롭다.
이렇게 햇살이 좋은 겨울이면, 유럽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햇살을 즐긴다.
겨울 햇살은 유럽인들에게 축복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을 하거나, 카페테라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아니면 집 앞에 의자를 내어놓고 의자에 앉아 독서나 뜨개질을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집 앞을 지나가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송유미는 손으로 턱을 괸 채 베를린의 풍경을 감상했다.
좋다!
모든 게 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지 않았던가.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될까?
가끔 쉬는 날이면 몰아서 자곤 했다.
꼬박 24시간을 잔 적도 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물을 마시느라 중간에 잠깐 깨기는 했지만, 가수면 상태였다.
일어나자마나 출근.
출근을 하면서 울었다.
출근하기 싫어서.
다 때려치우고,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서, 유럽 여행이나 다녀오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알거지가 되겠지만.
어차피 희망도 없는 내일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오늘만 살다 죽을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참았다.
뚝!
울지 마!
아무도 날 동정해 주지 않아!
자기연민은 못난 짓이야!
그만두더라도, 할 일은 하고 그만둬야 해!
스스로를 윽박지른 뒤, 눈물 닦고, 출근했다.
용기가 없어서?
용기가 없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출근 대신 유럽 여행을 떠났다면 팀장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었겠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가더라도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길 참 잘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날이 오지 않았는가!
꿈만 같다.
베를린 영화제에 참가하게 될 줄이야!
꿈이라면 깨지 마라.
제발!
우혁 오빠를 만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어제는 추억으로 아련했고.
오늘은 기쁨으로 화사했고.
내일은 희망으로 찬란했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 것이다.
게다가.
사랑이, 사랑이 찾아왔다.
비록 짝사랑이지만.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사랑에 빠질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1년 동안 헤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났을 때, 문득 깨달았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알까기를 하는 모습도 멋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다.
막내 동생 취급이다.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걸까?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데, 일어났을지 모르겠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베를린 하늘이나 찍자.
띠링!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다.
야호!
그 사람이다!
-백곰오빠♥: 뭐해?
-나: 하늘 보고 있었어. 베를린 하늘! 넘넘 예뻐! 노란색 햇살이 노란 꽃잎처럼 쏟아지고 있어. ^^ 오빠는 뭐해?
유미 생각!
그런 답변을 받고 싶었으나.
-백곰오빠♥: 나갈 준비하자.
에휴!
-나: 네!
미련곰퉁이!
정말 곰인가?
왜 내 맘을 모르지?
애먼 ‘백곰오빠♥’를 흘겨보았다.
원망의 눈초리는 2초도 지나지 않아 살며시 구부러졌다.
백곰 오빠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잠옷 소매로 휴대전화 화면을 닦았다.
좋은 사람!
“알았다구요. 준비할게요. 헤헤!”
송유미는 싱긋 한 번 웃고는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이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될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 시상식이 있고,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미국 로스엔젤리스로 날아가야 한다.
5일 뒤에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다.
우혁 오빠가 시상식에 올라 상을 수상했으면 좋겠다.
한 달 전부터 시상식에 입고 갈 의상을 고민했다.
우혁 오빠에게는 수트가 가장 잘 어울린다.
요란하지 않은, 평범한 스타일의 수트.
고민할 것도 없겠다고?
모르는 소리.
그래서 더 어렵다.
튀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난해도 안 되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베를린 영화제 시상식에 입고 갈 우혁 오빠의 수트를 점검했다.
솔리드 그레이 수트.
삭스 블루 셔츠.
네이비 스트라이프 타이.
삭스 블루 셔츠와 네이비 바탕에 화이트 & 그레이 스트라이프 타이의 조합은 상대방에게 밝고 쾌활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무난하다.
솔리드 그레이와 삭스 블루 색상이 어우러진 도트 무늬 머플러로 포인트를 줄 것이다.
타이와 머플러는 중복 같지만 잘 어울리기도 하고, 추위를 막아 주기도 한다.
아무리 봄 날씨 같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늦겨울이니까.
더블 코트를 준비했으나 날씨가 따뜻해 팔에 걸치게 될 것 같다.
송유미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회심의 포인트가 있다.
바로 구두와 양말.
세련된 하프 브로그 윙 팁스 패턴을 적용해 멋스러움을 더한 브라운 색상의 소가죽 정장화에 겨자색 양말을 준비했다.
양말을 통해 우혁 오빠의 내면에 숨겨진 밝고 따뜻하면서도 온화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더 밝은 색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과유불급.
‘날 좀 봐줘! 안 봐! 여길 보라고!’
보는 이의 시선을 강탈하는 색깔은 우혁 오빠와 어울리지 않는다.
브라운 색깔의 하프 브로그 윙 팁스 구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쾌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마치 지상에서 1밀리미터쯤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상자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구두가 있을까?
수상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 구두와 양말을 골랐다.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쩌지?”
걱정스러웠다.
윙 팁스 패턴의 구두를 다소 경박해 보인다고 꺼리는 분들도 있다.
우혁 오빠는 평소에 윙 팁스 패턴의 구두를 신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다.
지금까지 우혁 오빠는 자기가 코디해 준 패션에 대해 군말을 한 적이 없다.
가져다주는 대로 입고, 신고, 걸쳤다.
“괜찮으세요?”
하고 물으면,
“예!”
그게 다였다.
까다롭지 않아서 편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건 결코 아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스타일리스트만 아는 즐거움과 행복.
***
“어때?”
객실에서 복도로 나오는 백곰에게 물었다.
“어디 봐!”
백곰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서 우혁을 바라보았다.
“멋져! 특히 구두랑 양말, 끝내준다.”
백곰이 감탄했다.
“유미는 정말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야. 패션 센스가!”
백곰은 서술어 대신, 엄지를 세워 보였다.
“동수야!”
우혁이 걸음을 옮기며 동수의 이름을 불렀다.
“응?”
“유미 씨! 참 좋은 사람 같지 않아?”
“그럼! 정말 괜찮은 친구지.”
“누군지 몰라도 유미 씨하고 결혼하는 남자는 행운아일 거야.”
“전생에 인류를 구원한 인간이겠지.”
백곰의 표정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혁은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동수야! 눈 좀 크게 뜨고 살아라!”
“눈을?”
우혁의 말에 백곰이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
그래 봤자 큰 차이가 없었지만.
우혁은 송유미가 백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아챘다.
그동안 백곰에게 힌트를 주었지만, 백곰은 송유미에게 한 걸음도 다가서지 않았다.
언제나 똑같은 곳에 서 있었다.
한 발짝만 더 다가가면 될 텐데, 꼼짝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송유미가 용기를 내서 다가섰다.
그러면 백곰은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서고.
“유미 씨가 널 좋아한다는 건 아니?”
“형도 참! 당연히 좋아하겠지. 같은 팀이고, 동료잖아.”
“같은 팀이나 동료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말이다.”
“남자? 말도 안 돼!”
백곰이 걸음을 멈추고서 손사래를 쳤다.
태양에 곰팡이가 폈다는 말이라도 들은 양.
“유미 씨, 널 남자로서 좋아하고 있어.”
“아니야, 형! 유미가 나 같은 걸 왜 좋아하겠어. 그렇게 예쁘고, 능력 있고, 밝고, 씩씩하고···.”
하다가 우혁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나 같은 거라니! 동수 네가 어때서?”
우혁이 정색을 했다.
“형이야 날 좋게 보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안 봐. 특히 여자들은. 어느 여자가 나한테 매력을 느끼겠어. 커다란 곰 인형으로 생각할 거야. 귀엽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 곰 인형이 사귀자고 하면, 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날걸.”
***
‘그렇지 않아! 다른 여자들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나는!’
송유미는 속으로 외쳤다.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만, 두 사람의 말을 엿들은 게 들통 날 테니, 그럴 수는 없었다.
복도 라운지에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로 나온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의 대화에 ‘유미’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지금은 의자 뒤에 숨어 있다.
두 사람은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있고.
“곰 인형이 사귀자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니까.”
“없어!”
“있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4년 전에 형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많은 여자들한테 고백을 했는데, 모두 퇴짜를 맞았어. 그래서 알았지. 여자들은 날 안 좋아한다는 걸.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너무 아프거든.”
“오디션에 수도 없이 떨어져 봐서 그 마음 조금은 알 것 같다.”
“형 오디션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여자들한테 퇴짜를 맞을 때가 생각났거든.”
“한 가지만 물어보자. 동수 너, 유미 씨를 여자로 생각해 본 적, 없니?”
“···.”
송유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 안 되잖아!”
백곰이 대답을 듣고, 송유미는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콩 쳤다.
왜 안 되는데?!
“왜 안 되는데?”
고맙게도 우혁이 대신 물어주었다.
“유미는··· 나 같은 사람 말고, 형처럼 멋지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야지.”
백곰 오빠의 말을 듣고 송유미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쳤다.
백곰 오빠도 멋지고 능력 있어! 왜 그걸 모르냐?
“동수 너도 멋지고 능력 있는 남자야. 네 나이에 10억 모은 사람 흔치 않다. 앞으로는 더 많이 벌 거고.”
“유미가 왜 안 나오지?”
“말 돌리지 말고.”
“전화해 볼까?”
“그럴 거 없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데이빗은?”
“먼저 내려갔어.”
***
포츠다머 플라츠에 위치한 영화제의 메인 극장인 베를린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는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우혁은 박 감독, 멜라니 로랑, 데이빗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베를린 영화제는 다른 영화제보다 진보적이며 다소 정치적인 특징을 보여 왔다.
올해는 총 25편의 작품이 경쟁 프로그램(Competition)에 초대되었고, 그중 18편이 경쟁 심사에 이름을 올렸다.
25편 중 21편이 [플럼범 바이러스>처럼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프리미어(Worldpremier=WP)였다.
금곰상을 어느 작품이 받을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들과 기자, 일반 관객들은 [플럼범 바이러스>가 금곰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이 맞을지는 알 수 없는 일.
매번 의외의 결과로 반전과 충격을 안겨 주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다.
않았는데.
“올해의 금곰상은··· [플럼범 바이러스>!”
[ 베를린 영화제 마지막 날은 따뜻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