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9)
영화 관계자들과 언론이 올해의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영화 [플럼범 바이러스>가 금곰상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시상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이들이 박수와 환호로 놀라움을 드러냈다.
언제나 예상을 비켜가며 의외의 결과를 내곤 했기 때문에 올해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작품을 수상작으로 발표함으로써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들이 우혁과 박 감독, 멜라니 로랑, 데이빗이 앉아 있는 쪽으로 향했다.
우혁은 박수를 치며 박 감독을 바라보았다.
“배우님이 나가시면 안 될까요?”
박 감독이 우혁에게 속삭였다.
“그건 안 되죠. 감독님이 나가셔야지요. 이 상은 감독님께 드리는 상입니다.”
우혁이 카메라를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답변했다.
“배우님은 프로듀서이기도 하시잖아요.”
박 감독이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도 이 상은 감독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우혁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 감독은 별수 없이 일어나서 무대로 나갔다.
[플럼범 바이러스>가 금곰상 유력 후보라는 예상이 들려오자 박 감독은 우혁에게 혹시라도 금곰상을 수상하게 되면 수상자로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원래 금곰상은 영화감독이 수상하는 겁니다. 저는 주연 배우예요.”
우혁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감독이 사정이 생겨 수상식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혁이 프로듀서이긴 하지만 [플럼범 바이러스> 촬영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박 감독이다.
촬영 현장에서 우혁은 철저하게 박 감독의 지시에 따랐다.
특히 스태프와 출연 배우들이 보는 앞에서는.
가끔 박 감독이 상의를 해올 때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시나리오 집필 때 우혁이 도움은 준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집필을 한 사람은 박 감독이었다.
그러나 박 감독은 크래디트의 극본에 우혁의 이름을 기어이 넣었다.
프로듀서 타이틀도 도드라지게 크래디트에 삽입했다.
극본에서 이름을 빼주고, 프로듀서 타이틀도 도드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박 감독에게 요청했으나 박 감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똥고집.
박 감독은 가끔 똥고집을 부렸고, 한 번 부리면 꺾을 수가 없었다.
편집은 박 감독의 권한이었기 때문에 우혁이 물러났다.
하지만 수상식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혁이 [플럼범 바이러스>에 큰 역할을 했고, 그에 대한 고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박 감독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작품상에 해당하는 금곰상 수상자로 나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박 감독이 수상자로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무대 울렁증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요.”
“자꾸 올라가다 보면 괜찮아집니다.”
속내를 드러낸 박 감독을 격려했다.
박 감독은 혹시 모를 수상을 위해 수상 소감을 준비한 뒤 암기하기 위해 애를 썼다.
무대 위로 올라간 박 감독은 어색한 자세로 시상식을 한 뒤, 수상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며 주머니를 뒤졌다.
수상 소감을 달달 외우더니 죄다 까먹은 모양이다.
박 감독은 소감문을 찾지 못했는지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상을 수상하게 될지도 몰라서 며칠 전에 수상 소감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달달 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죄다 까먹어 버렸습니다. 소감문도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구요. 주머니 속에 넣어 뒀는데 없습니다.”
박 감독의 수상 소감을 동시통역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시상식장의 관객들이 박 감독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박수를 쳤다.
박수가 잦아들자 박 감독이 소감을 말했다.
“소감문에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의 이름을 적었는데, 지금 이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강우혁 배우님!”
박 감독이 손으로 우혁 쪽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들이 우혁 쪽으로 향했다.
시상식장 무대 한쪽에 마련된 대형 모니터에 생방송 중인 TV 화면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그 모니터에 우혁의 얼굴이 비춰졌다.
우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강우혁 배우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플럼범 바이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전작을 완전히 말아먹었거든요. 적당히 말아먹었으면 모르겠는데 쫄딱 망했습니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큼요. 다시는 장편 영화를 만들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실패한 감독에게 누가 기회를 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주셨죠. 강우혁 배우님을 만난 겁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다들 아시겠지만, 강우혁 배우님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타란티노 감독의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올리버 스톤 감독의 [위대한 시민>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입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셨고요. 5일 뒤에 있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지요.”
다시 한 번 TV 모니터에 우혁의 모습이 나타났다.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사에서 강우혁 배우님을 캐스팅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두 뿌리치고, 실패한 감독인 제 손을 잡아 주신 겁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제작비 마련, 캐스팅, 출연, 마케팅까지 프로듀서로서 영화 전반을 이끌어 주셨지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안 해 주신 게 있어요.”
궁금해 하는 관객의 모습이 TV 모니터에 잡혔다.
곧이어 무대 위의 박 감독.
“좀 전에 시상자께서 수상자 발표를 했을 때, 제가 강우혁 배우님께 수상 소감을 부탁했거든요. 그런데 거절하더라구요. 이 상은 감독에게 주는 거라면서요. 만약 이 상이 영화를 위해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이 상은 강우혁 배우님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멜라니 로랑, 제 말이 맞지요?”
멜라니 로랑이 환한 표정으로 박수로 화답했다.
“모든 스태프와 출연 배우님들, 멜라니 로랑, 데이빗, 그리고 강우혁 배우님!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멜라니 로랑은 프랑스로, 박 감독은 한국으로 떠나고, 우혁과 데이빗, 백곰, 송유미는 미국 로스엔젤리스로 향했다.
비즈니스석은 두 개의 좌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백곰은 우혁과 나란히 앉고 싶어 했으나 우혁은 데이빗 옆으로 가서 앉았다.
“유미 씨하고 같이 앉아서 가라. 데이빗하고 할 얘기도 있고.”
우혁은 매몰차게 백곰을 쫓아 보냈다.
백곰은 어쩔 수 없이 송유미 옆으로 가서 앉았다.
“무슨 얘기?”
데이빗이 우혁에게 물었다.
우혁은 별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우혁은 가끔 나란히 앉은 백곰과 송유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1시간 동안 붙어서 가야 할 것이다.
동수야! 눈 좀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라.
우혁은 마음속으로 백곰을 응원했다.
백곰과 송유미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 뭐하나.
백곰이 마음을 열지 않는데.
언감생심.
두 사람은 서로를 과분한 상대라고 여겨 함부로 다가서지 못했다.
송유미라도 적극적이면 좋을 텐데, 연애 쪽은 영 소질이 없다.
관심도 없고.
지금까지 여러 남자들로부터 대시를 받았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사귈 마음의 여유도, 의사도, 시간도 없었으니까.
기획사 나무의 직원으로 근무할 때, 송유미를 유난히 괴롭혔던, 알까기 내기로 백곰에게 딱밤을 맞았던 그 친구도 송유미에게 사귀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그에 앙심을 품은 그 친구는 그 뒤로 송유미를 집요하게 괴롭혔고, 결국 회사에서 내쫓았다.
그 친구는 송유미를 진심으로 좋아한 게 결코 아니었다.
정복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송유미도 그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고.
송유미는 그 친구가 자기에게 사귀자고 했고, 거절했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백곰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1년 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백곰 오빠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웬걸!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1년 전에는 육체적 접촉이 있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손끝만 닿아도 뒷덜미와 귓바퀴, 오금과 꼬리뼈까지 찌릿찌릿하다.
예전에는 차 안에 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제는 혀가 귀 같고, 귀가 혀 같아 어색하고, 이마가 뒤꿈치처럼 가렵다.
그래서 둘만 있는 상황과 지근거리를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 사이가 예전보다 서먹해졌다.
우혁은 예전과 달리 내외하는 모습에서 송유미가 백곰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눈을 떴을 때, 송유미가 백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모습이 우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렇게!
우혁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백곰 오빠가 잠이 들었을 때, 자는 척하면서 오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 편하다.
커다란 곰 인형에 기댄 것 같다.
그러고는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백곰 오빠가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코끝에 바르고 있었다.
팔다리가 저릴 때 코에 침을 바르면 조금 괜찮아진다.
2년 전, 백곰 오빠에게 알려준 방법이 아닌가.
어깨를 빌려준 채 팔이 저리도록 움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백곰 오빠는 척추측만증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백곰 오빠의 어깨에서 머리를 떼고 똑바로 앉았다.
백곰 오빠가 팔 운동을 했다.
잠시 뒤, 백곰 오빠의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움직여 오빠의 커다란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 손길이 부드러웠다.
에라, 모르겠다!
잠결에 뒤척이는 척하며 백곰 오빠에게 팔짱을 꼈다.
백곰 오빠가 사레가 걸린 것처럼 캑캑거렸다.
놀랬나?
팔짱을 뺄까 하다가, 눈 딱 감고서, 그냥 그대로 있었다.
자세가 너무 편하고 기분이 좋아서 자세를 바꾸기 싫었다.
백곰 오빠의 사례가 잦아들었다.
다시 잠이 들었고, 어느새 목적지인 LA에 도착했다.
11시간이 왜 이렇게 짧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LA 공항 출국장을 나가자 로버트와 찰리라는 보디가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저택에 도착했다.
우혁 오빠의 처갓집, 민서의 외갓집이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게 집이야, 성이야?
민서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처음 뵙건만 가족처럼 대해 주었다.
백곰 오빠를 아들처럼 대했다.
그날 저녁,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르오와 윌 스미스가 방문했던 것이다.
우혁 오빠하고 친한 건 알았지만, 백곰 오빠하고도 친한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은 백곰 오빠를 ‘배컴’이라고 불렀다.
“배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패션 감각이 확 바뀌었네. 왜 이렇게 멋있어진 거야?”
“연애하는구나? 내 말 맞지? 솔직히 말해, 배컴! 내 눈은 못 속여. 머리 위에 하트가 날아다니고 있잖아. 너한테 눈독을 들이는 여자들, 불쌍하게 됐군.”
백곰 오빠한테 눈독을 들이는 여자들이 있어?
여기 미국에?
미국, 위험한 곳이네!
[ 베를린에서 로스엔젤리스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