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6)
“이게 얼마만이냐? 한 일 년 되지 않았어?”
정의찬이 맞은편에 앉은 윤대성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일 년이나 됐나? 시간 빠르네.”
윤대성이 술을 받으며 대답했다.
일 년 만이라 그런가, 말을 놓기도 서먹서먹하다.
정의찬이 대표가 된 뒤로 소원해졌다.
정의찬은 연락을 꾸준히 했지만, 윤대성이 거리를 두었다.
기획사 대표가 된 정의찬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술 한 병을 비웠음에도 불편함은 여전했다.
“참, 네가 애정하는 강 배우, 기획사 차렸다.”
“기획사를?!”
“강 배우 전담 매니저 백동수 알지?”
“알지.”
“그 친구를 대표로 앉힐 모양이야.”
“백동수 씨, 아직 30대 중반이잖아. 강 배우보다 두 살 어리지 않나?”
“그렇지. 백동수는 별로 내키지 않은 모양이야. 겁을 잔뜩 집어먹었더라고. 사람은 참 좋은데, 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이게 만만치 않은 사업인데 말이야.”
“백동수 씨 나이가 어린데 대표에 앉히는 거 보면, 강 배우가 완전히 신뢰하는 모양이네.”
“회사 이름이 K&B 엔터테인먼트야. 강우혁의 K, 백동수의 B. 강 배우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대단한 배우지.”
“기억나? 강 배우 차지하려고 경쟁했었던 거.”
“기억나지. 그때 강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더라고.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그런 기분일 거야.”
“내가 꼭 그랬다니까. 무조건 잡아야겠다, 이대로 두면 누가 채갈 것 같은 거야. 아니나 달라. 네가 눈독을 들이더라고. 뺏길까 봐, 어찌나 몸이 달던지···.”
“너한테 강 배우 빼앗기고 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내가!”
“그랬어? 괜히 미안하네.”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지금에사 말이다만, 강 배우 덕분에 대표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표 처조카라는 것 때문에 몹시 불편했거든. 직원들이 날 인정하질 않는 거야.”
“자격지심이겠지.”
“아니라니까. 강 배우 안 만났으면, 다른 회사로 옮겼을지도 몰라. 내가 데리고 온 강 배우가 승승장구하니까, 그제야 직원들이 날 인정하더라고.”
윤대성은 소주잔에 시선을 부려놓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그때 정의찬에게 강 배우를 빼앗긴 게 아쉽고 속상하다.
만약 그때 강 배우를 ‘WOW’로 데리고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회사에서의 입지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술맛이 쓰다.
***
불편하게 마신 탓인지 다음날 숙취가 심했다.
회사에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회의가 있는 날이 아닌가.
오전에는 간부회의와 팀장급 회의, 오후에는 팀 회의.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오전 내내 회의를 했고, 회의 내내 본부장에게 깨졌다.
자기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농후한 미래의 경쟁자에 대한 공격.
1년째 가해진 공격에 윤대성은 전의를 상실했다.
퇴사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오전 동안 현장에 다녀온 박 대리가 또 한 번 대형 사고를 쳤다.
담당 배우 방송 스케줄을 빠뜨린 것이다.
회의 중이라 박 대리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박 대리가 부랴부랴 회사로 달려왔다.
“내일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인 거예요. 승질 나서 정말!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모르겠네! 누가 시비만 걸어 봐. 받아버릴 테니까. 에이, 재수 없어!”
박 대리가 보고를 했다. 욕지거리를 섞어 가며.
윤대성은 박 대리의 태도와 자세, 말투가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지금 기분 나쁘니까 건드리지 마라, 받아버리겠다, 이건가?
“박 대리!”
“예!”
“그 일, 누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입니까?”
윤대성은 화를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저죠.”
당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실장님! 이제 와서 그걸 따져서 뭐하시게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엎질러진 물 아닙니까. 해결책을 생각해야지 누가 엎질렀는지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기가 막혔다.
방귀 낀 놈이 성냈다더니!
자기 뒤에 본부장이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이건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으나,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눈을 조용히 떴다.
그 순간.
온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심이 섰던 것이다.
“해결책? 그걸 왜 나한테 묻지요? 일을 저지른 사람이 해결해야지.”
“실장님이 제 팀장님이잖아요. 저는 팀원으로서 마땅히 보고를 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 일어나면 보고 안 드려도 됩니까?”
“그래요. 보고하지 마세요. 나는 더 이상 박 대리 팀장이 아니니까.”
“예?”
“본부장님한테 가서 보고하세요.”
“하!”
박 대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윤대성은 담담했다.
마음이 가벼웠으니까.
“뭐해요? 본부장님한테 가지 않고.”
“나 참···.”
“박 대리!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 알아요?”
윤대성은 가방을 챙기며 박 대리에게 물었다.
박 대리는 윤대성을 흘겼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그런 뜻도 모를까 봐?
사람을 뭘로 보고!
박 대리는 윤대성을 외면한 채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서 손가락 끝에 묻어 나온 귀지를 입으로 불었다.
“후!”
“사냥개 씨! 잘해 봐요!”
윤대성이 박 대리의 어깨를 툭 치고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실장님! 어디 가세요?”
박 대리가 윤대성을 쫓아와 길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토끼가 볼일이 있습니다.”
윤대성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비켜!‘
목소리는 낮았으나 윤대성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박 대리가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내 말 안 들려!?”
윤대성이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박 대리는 펀치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직원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윤대성 쪽을 보았다.
박 대리가 옆으로 비켜나자 윤대성이 걸음을 옮겼다.
윤대성이 사무실을 나가고 난 뒤, 박 대리가 구시렁거렸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고막 나가는 줄 알았네!”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사무실을 둘러보았으나 직원들은 모두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직원들 중 박 대리 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속으로 윤대성 실장을 응원했다.
“큰일 났네. 이거 어떡하지?”
박 대리가 좀 도와달라는 의미로 목소리를 크게 냈으나, 직원들 중 그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윤 실장한테 얘기하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감하게 되었다.
사고도 사고지만, 4음절의 단어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토사구팽토사구팽토사구팽토사구팽···.
불길했다.
토끼가 사라지면···.
안 되는데!
본부장이 가만 둘 리가 없는데!
토끼를 잡아야 한다.
토끼를!
“실장님!”
박 대리는 윤 실장을 따라 달렸다.
엘리베이터가 막 닫히려고 했다.
“실장님!”
박 대리가 외쳤으나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
버튼을 눌렀으나 엘리베이터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B2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 계단을 이용해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윤 실장의 차가 막 움직였다.
“실장님!”
박 대리의 목소리가 주차장 가득 울려 퍼졌으나 윤 실장의 차는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설마···.
윤 실장이 회사를 관두는 건 아니겠지?
윤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본부장한테 보고를 해야겠다.
토끼가 없어도 쓸모가 있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
***
“어서 들어와, 박 대리!”
본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다!
박 대리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박 대리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적당히 포장해서 보고를 했다. 뺄 건 빼고, 뻥 튀길 건 뻥 튀겨서.
“그래서?”
얘기를 다 듣고 난 본부장이 질문을 했다.
그랬어? 잘 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내려가 봐.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그래서라니!
박 대리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윤 실장하고 좀 전에 통화했다. 회사 관둔다고 하더라.”
본부장이 앓던 이를 뺀 사람처럼 시원해했다.
이런!
토끼가 죽어 버렸다.
큰일이다!
본부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박 대리는 얼른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여 드렸다.
“영리한 회충은 숙주를 죽이지 않는데, 멍청한 것이···. 하하하하!”
본부장이 담배를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내뱉으며 뜻 모를 말을 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박 대리도 일단 따라서 웃었다.
영리한 회충?
본부장의 말은 뜻 모를 말이 아니라 분명 박 대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오물을 던진 것 같은
왠지 느낌이 쎄하다.
“어떡할 거야?”
본부장이 담배를 박 대리 얼굴을 향해 뿜었다.
“쿨룩! 쿨룩!”
“사고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
“벌써 몇 번째야? 응?”
“죄송합니다.”
“책임을 지라니까 사과를 하고 그래. 사과 말고, 책임을 져! 책임! 책임 몰라?”
이게 바로 토사구팽이라는 거구나!
“윤 실장은 이 일에 책임을 지고 퇴사를 하는 판에, 사고를 친 당사자는 태평일세.”
숙주를 죽인 멍청한 회충!
***
윤대성은 결심했다.
‘WOW’를 떠나기로.
시원섭섭하다.
본부장에게 전화로 의사를 밝혔고, 본부장은 윤대성의 뜻을 애석해하는 척하며 즉각적으로 받아들였다.
윤대성이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를 한 뒤에 퇴사하겠다고 했으나 본부장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회사 직원들과 소식 연예인들에게 인사는 하겠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막았다.
“나가기로 했으면 조용히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 짐들은 우편으로 보내줄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
“직원들하고 안면 있는 연예인들하고 인사는 하겠습니다. 본부장님이 막아도 그건 제 권리이고 의미입니다. 도리이기도 하고요.”
“뭐 원하면 그렇게 해. 단, 지저분한 짓은 하지 말자고.”
“지저분한 짓이라뇨?”
“연예인 빼가는 거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 없을 테니까요.”
“어디 갈 데는 정했나? 아니면, 기획사 차리는 건가?”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달 정도는 유예 기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예의상으로라도 말리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말 꺼내자마자 그만 두라고 할 줄은 몰랐다.
차라리 고맙기도 하다.
어차피 떠날 회사, 끌어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후련하다.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던 1톤짜리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했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왜 지금까지 참고 살았는지 억울할 지경이다.
일 년을 참았으면 많이 참았다.
한강 둔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한강 둔치를 걸었다.
아내에겐 뭐라고 말해야 하나?
당분간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아침에 출근을 해야겠다.
매니저 자리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행이 이 바닥에서 나쁘지 않은 평판을 쌓았다.
갈 곳은 많다.
정의찬이 대표로 있는 ‘나무’도 있고.
정의찬에게 자리를 부탁하면 실장 자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 것이다.
다만, 윤대성이 내키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알량한 줄 아는데, 그걸 허물고 싶지가 않다.
차라리 신생 기획사에 가서 로드부터 시작하고 말지, 정의찬 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정의찬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면 또 모르겠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가 아닌가.
친구이기도 하지만, 경쟁자다.
만약 회사를 구하지 못하면, 마지막으로 정의찬에게 부탁을 할 생각이다.
가장 먼저 두드려보고 싶은 회사가 있다.
K&B 엔터테인먼트.
어제 정의찬에게 강우혁 배우가 기획사를 차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확 끌렸다.
매니저 한 사람 구하지 않으려나?
로드부터 할 수도 있는데···.
술에 취했을 때, 정의찬에게 속마음을 드러냈다.
“K&B 가고 싶다. 강 배우하고 일해 보는 게 소원이야.”
“WOW를 버리고 신생 기획사를 간다고? 정신나갔구만. 아서라. 들어가더라도 안정된 뒤에 들어가. 지금 들어가면 개고생이야. 그 개고생을 왜 하려고 그래.”
“내가 K&B 가도 섭섭해하지 마라.”
“거기 갈 거면 차라리 나한테 와라.”
윤대성은 정의찬을 졸라 강 배우의 개인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려니 뭐라고 말문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강우혁 배우가 출연한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물론이고, 예능 프로와 인터넷 기사를 섭렵했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알면 알수록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영화관 폭행 사건부터 최근의 멜라니 로랑과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강 배우에 관한 일들을 보면서 팬심이 더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가 이룩한 업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경이로울 정도다.
특히 최근에 개봉한 [플럼범 바이러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2주일째 유지하고 있다.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엄청난 성공 신화를 기록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개봉 3주가 지난 지금, 누적 관객수 천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플럼범 바이러스>에서 강 배우는 주인공이자 투자자,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아직 수입이 정산되지는 않았겠지만 [플럼범 바이러스> 한 편으로 강 배우가 벌어들일 수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K&B 엔터테인먼트에 가고 싶은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금력!
발전 가능성!
만나고 싶은 배우!
K&B는 신생 기획사지만, 엄청난 메리트를 가진 곳이다.
K&B의 개국공신이 되고 싶은 야망!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만들어 보고 싶다.
팬이기도 한 강우혁 배우의 재산을 지켜주고 싶기도 하고.
기획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사기꾼들이 몰려들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강 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강우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동안 함께했던 연예인들을 주워섬긴 뒤, 영화 [생강> 촬영 현장에서 뵌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데.
– 윤대성 실장님이신가요?
감동이다.
“아, 예! 윤대성입니다.”
–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뵙고 싶었습니다.
먹먹하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목이 멘다.
“예! 저도··· 뵙고 싶습니다.”
– 뵙고 싶은데, 시간 내주실 수 있는지요?
온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 온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