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9)
6월 초순의 프랑스 파리는 아름다웠다.
[어메이징 라이프>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촬영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크랭크업까지 2주 남짓.
우혁은 오늘의 촬영지인 사크레 쾨르 대성당 앞 테라스에 서서 파리 시내 전경을 바라보았다.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몽마르트르.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파리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서울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지만 파리는 산이 없다.
해발 130미터에 불과한 몽마르트르는 해발 260미터인 서울의 남산보다 낮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몽마르트르를 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언덕이라고 굳이 ‘언덕’이라는 단어를 붙여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몽마르트르(Montmartre)의 ‘몽(Mont)’은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몽마르트르를 굳이 해석하자면, ‘마르트르 산’이 될 것이다.
몽마르트르 정상에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생피에르 교회와 비잔틴 양식의 하얀 돔이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대성당 앞의 테라스에서는 파리 시가를 내려다볼 수 있고, 그 서쪽의 테르트르 광장에는 과일 가게, 레스토랑, 꽃집, 기념품 가게, 서점, 빵집, 테라스가 있는 노천카페들이 평화롭게 늘어서 있고, 화가들이 이젤을 세워 놓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초상화를 그려준다.
남쪽 기슭의 피카르 광장과 블랑슈 광장 일대는 환락가로서 유명한 물랭루주가, 몽마르트르 묘지에는 스탕달, 하이네, 공쿠르 형제, 베를리오즈 등의 예술가가 잠들어 있다.
몽마르트르는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장 피에르 쥬네 감독의 [아멜리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뛰어내린 관광객에 깔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유일한 친구 금붕어마저 자살하면서 외톨이가 된 아멜리에.
몽마르트르 근처의 카페 점원으로 일하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외롭겠다고?
그게 정상인데, 아멜리에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맑고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주변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지긋지긋할 법도 하건만.
“인생은 재밌어, 어릴 땐 시간이 안 가다가 갑자기 쉰 살이 되거든.”
아멜리에에게 인생은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사랑.
뻔하디뻔한 사랑 타령이냐고?
맞다.
결국엔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영화의 중심은 수줍은 많은 몽상가 아멜리에.
“아멜리에를 보고 있으면 행복해져.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함께 영화를 본 아내가 한 말이다.
“지긋지긋하고 멋대가리 없는 인생에 짓눌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당신처럼!”
“오빠처럼?”
우혁의 말에 아내가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외모까지 아멜리에와 비슷하다.
아멜리에는 인생 예찬가다.
외적 요건만 보면 딱히 행복할 만한 요소가 많지 않은데, 아멜리에는 마냥 행복하다.
돈도 없고,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화목한 것도 아니건만.
“아멜리아가 행복할 수 있었던 건, 상상력 때문인 것 같아.”
아내가 말했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선물로 받은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잖아. 아멜리아가 찍은 구름은 토끼 모양이 되고, 곰 인형이 되거든.”
아멜리아의 카메라는 눈으로 본 것을 찍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찍는 어떤 것, 즉 내면의 기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멜리에의 주관적이고 황당하고 희한한 사진은 남자 친구 니노가 모으는 자동증명사진의 기계적 이미지와 대조를 이룬다.
아멜리에의 상상력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물들, 즉석카메라, 텔레비전 같은 현대적 기계들조차도 말을 하고 춤을 추게 한다.
아멜리에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공상의 힘으로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아멜리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기쁨을 발견하잖아. 오빠처럼 말이야. 두 사람, 꼭 닮았어.”
아내가 말했다.
남편을 생활비나 벌어다주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아내가 고마웠다.
아내의 말마따나 연기는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주는 일이다.
[어메이징 라이프>를 촬영하면서 새삼 그 사실을 떠올리곤 했다.일상이 기적이고, 기적이 일상인 동화처럼 따뜻한 이야기.
뒤로 돌아서자 대성당 앞 계단에서 촬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성당 앞 계단은 파리 시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풍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버스킹을 하기에도 딱 좋고.
실제로 계단 앞은 버스킹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오늘은 영화 촬영 때문에 버스킹을 할 수 없다.
버스킹을 하러 왔다가 영화 촬영 현장을 발견하고는 별 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
계단에 앉을 수 없게 된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영화 촬영 현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고맙게도.
***
“컷!”
모니터를 보고 있던 멜라니 로랑이 조감독에게 신호를 주었다.
조감독이 큰소리로 ‘컷!’을 외쳤다.
그것으로 오늘 촬영이 모두 끝났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들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쉬! 수고 많았다.”
우혁이 앵무새 ‘아쉬’에게 말했다.
아쉬(Hache)는 프랑스어로 ‘도끼’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아쉬는 그저 평범하고 귀여운 앵무새일 뿐이다.
극중 이름은 마농.
마농은 갓난아기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이리저리 짐짝 취급을 받다가 결국 거리로 나앉게 된 뒤로 버스킹을 하며 살아가는 줄리앙에게 기적을 가져다주는 앵무새다.
아쉬는 수다쟁이 마농처럼 말을 잘하지는 못했다.
단어 몇 마디를 할 줄 알 뿐이다.
아쉬는 비록 말을 잘하진 못하지만 타고난 연기자였다.
무엇보다 카메라 울렁증이 전혀 없었다.
우혁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도망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켰다.
마농처럼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춤을 추는 모습과 말을 하는 장면은 MCS(Motion Capture System)와 CG로 후속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집에 가자. 아쉬.”
아쉬의 주인인 멜라니가 우혁 옆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멜라니가 우혁에게 말했다.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우혁은 아쉬의 발에 묶여 있던 나일론 끈을 풀어 새집 속으로 넣어 주었다.
“[플럼범 바이러스>를 진행했던 방식으로 촬영했다면, 벌써 촬영 끝났을 텐데···. 죄송해요.”
“죄송할 거 없습니다.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사실이다.
2개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즐겁게 촬영했기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고, 연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메이징 라이프>를 연기하기 위해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이브 몽땅과 조니 알리데를 추체험했다.두 사람 덕분에 프랑스어를 더욱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샹송도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연기의 폭도 더욱 넓어졌다.
백곰과 송유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쉬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농!”
백곰과 송유미는 아쉬라는 이름의 뜻이 도끼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마농이라고 불렀다.
이름이 너무 무섭다나.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에게 도끼라니!”
“마농이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
백곰과 송유미는 안타까워했다.
우혁의 통역을 통해 멜라니에게 이름을 바꿔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두 사람은 아쉬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모이를 먹을 때 보세요. 도끼질을 하는 것 같잖아요.”
멜라니가 백곰과 송유미에게 해명했지만 두 사람은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멜라니는 ‘마농’이라고 부르겠다며 두 사람을 달랬다.
하지만 두 사람이 듣지 않을 때면 여전히 아쉬라고 불렀다.
악의는 전혀 없었다.
아쉬에 대한 멜라니의 애정은 각별했다.
10년이 넘도록 아쉬를 돌보고 있었으니까.
[어메이징 라이프>에서 마농이 주인공 줄리앙에게 영감을 주듯이 아쉬도 멜라니에게 그런 존재였다. [어메이징 라이프>라는 시나리오에 아쉬를 등장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아쉬는 저의 나른한 감성을 일깨우는 각성의 도끼예요.”
멜라니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1999년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1~4편의 영화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영화감독은 2008년, 영화 [점점 더 적게(De moins en moins)>를 연출하여, 그해 칸 영화제 단편영화 경쟁 부분에 진출했으나 그 뒤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배우로서 성공했음에도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기질이 제 안에 숨어 있나 봐요.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요.”
멜라니는 우혁에게 자신의 꿈을 스스로 폄하했으나 본심은 아니었다.
아멜리에가 그렇듯 멜라니는 아름다운 상상의 힘으로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고 싶은 것이다.
“욕심이라기보다는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일회성의 삶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나 의무 같은데요.”
우혁의 대꾸에 멜라니는 물끄러미 우혁을 바라보았다.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일회성의 삶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나 의무! 우혁 씨 얘기로군요. 그렇죠?”
부인 못하겠다.
하지만 가끔은 욕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아니, 누가 봐도 욕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선택과 판단을 하곤 한다.
멜라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멜라니와 우혁은 아멜리에보다 조금 더 속물적이다.
반면 백곰과 송유미는 아멜리에 그 자체다.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욕망의 빌딩을 세울 때, 두 사람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욕망의 빌딩이 세워진 뒤에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는 존재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멜리에가 그러했듯이.
우혁은 백곰과 송유미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짓게 된다.
행복해진다.
“퇴근하세요. 내일 봐요. 내일은 사요궁입니다.”
멜라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우혁과 백곰, 송유미에게 손을 흔들며 새장을 들고 자리를 떴다.
“마농, 안녕!”
“잘 가, 마농!”
백곰과 송유미는 아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마농을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네.”
“내 말이.”
두 사람은 멀어지는 아쉬를 바라보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앵무새 한 마리 사 줄까?”
우혁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아뇨!”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사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좁은 새장에 갇혀 있는 새는 가지고 싶지 않아.”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를 볼 때마다 슬플 거예요.”
“만약 형이 새장에 갇힌 새를 선물한다면, 선물을 받자마자 새장 문을 열어줄 거야. 하늘로 날아가게.”
“그러면 되겠구나. 오빠, 천재다!”
백곰과 송유미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오빠!”
“왜?”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무슨 생각?”
“아니야! 나중에 얘기할게.”
송유미가 우혁을 의식하며 말문을 닫았다.
우혁은 송유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송유미의 생각,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말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 아멜리에와 아쉬 또는 마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