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0)
송유미는 유리처럼 투명한 사람이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혁은 송유미의 속마음을 알아채고서 잠시 갈등했다.
답은 자명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송유미의 속마음을 알지만, 말리지는 않기로 했다.
왜냐?
송유미는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까.
백곰도 마찬가지이고.
“Non!(안 돼!)”
갑자기 새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스태프 중 한 사람이었다.
한 청년이 다급하게 달아났다.
스태프가 그 청년을 따라가다 넘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멜라니가 스태프에게 물었다.
“내 휴대폰을 훔쳐 갔어요.”
그 스태프가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혁은 청년을 뒤쫓았다.
그런데 예닐곱 명의 여자들이 나타나 우혁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그러더니 노트를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소매치기와 한패 같았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여자들이 우혁을 에워쌌다.
남자들이라면 밀치기라도 하겠는데, 여자들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오빠! 조심하세요! 그 여자들 소매치기예요.”
송유미가 우혁에게 달려왔다.
백곰도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에 불과했지만.
소매치기 일당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우혁의 혼을 빼놓았다.
우혁은 소매치기 일당들과 접촉을 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어느새 뒤에도 여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비켜!”
송유미가 소매치기 일당들에게 소리쳤다. 한국어로.
여자들이 송유미의 기세에 놀라 움찔했다.
“우리 오빠한테 손대지 마! 손대지 말라고!”
송유미는 여자들이 우혁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여자들을 밀치며 경고했다.
그러자 여자들이 손바닥을 위로 펼쳐 보이며 도대체 왜 그러냐는 시늉을 하며 동시에 떠들었다.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항의하는 듯했다.
“이봐! 왜 그래?”
가까이 다가온 백곰이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들이 백곰에게 달려들었다.
백곰은 여자들을 유인했다.
그 사이 송유미는 우혁을 데리고 뒤로 빠졌다.
우혁도 송유미가 이끄는 대로 물러났다.
스태프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달아난 소매치기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동수가 당하게 생겼어.”
우혁이 백곰 쪽으로 가려고 하자 송유미가 길을 가로막았다.
“동수 오빠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송유미가 말했다.
백곰은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백곰을 에워싸고 있던 소매치기 일당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백곰도 비명을 질렀다.
백곰의 손에는 뱀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 굵기에 30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뱀이었다.
백곰은 뱀의 목을 움켜잡고서 소매치기 일당을 향해 마구 흔들어 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본 소매치기 일당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우혁은 백곰에게 달려갔다.
“이거 가짜야.”
백곰이 우혁이 뱀을 보여주며 말했다.
“쟤네들을 쫓으려고 가지고 다녀.”
백곰은 이미 소매치기를 여러 차례 당했다.
소매치기 일당들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사인을 부탁하는데, 그 종이는 소매치기 장면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종이로 가리고서 주머니를 뒤져 돈이나 지갑, 휴대전화 등을 훔쳐 간다.
백곰도 그렇게 현금을 몇 번 털렸다.
소매치기 일당이 몰려들면 알고도 당한다.
그래서 가짜 뱀을 넣고 다니며 소매치기들이 몰려들면 뱀을 꺼내 쇼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달아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파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제페니즈? 차이니즈? 코리안?”
소녀가 다가와 백곰에게 물었고, 백곰은 친절하게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오, 한국! 만나서 반가워요. 선물이에요.”
소녀는 백곰의 팔목에 끈으로 만든 팔찌를 묶어 주었다.
“정말 날 주는 거야?”
“응!”
“고맙다!”
“1유로!”
소녀가 방긋 웃으며 검지를 세워 보였다.
“아! 1유로?!”
백곰은 씁쓸하게 웃으며 지갑에서 1유로를 꺼내 주었다.
소녀는 1유로를 받은 뒤 백곰의 다른 손에도 팔찌를 해주려고 했다.
“괜찮아. 하나면 됐어.”
백곰이 거절했으나 소녀는 백곰이 주머니에 팔찌를 넣고는 다시 검지를 세워 보였다.
백곰은 그 소녀에게 다섯 개의 팔찌를 사야 했다.
여섯 개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갑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소녀의 다른 일행이 훔쳐 달아난 것이다.
다행히 지갑 속에 신분증이나 신용카드는 들어 있지 않았다.
500유로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일들을 몇 번 겪은 뒤로 백곰은 현금을 양말과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100유로 지폐들은 양말에, 10유로, 20유로 지폐는 바지 앞주머니에, 동전들은 상의 주머니에.
상의 주머니에는 동전 말고도 가짜 뱀을 넣고 다녔다.
팔찌를 팔려고 접근하는 소녀나 여인이 접근하면 손목을 보여 주었다.
백곰의 손목을 보면 모두 물러났다.
선물 가게에서 1유로를 주고 20개를 구입해 양쪽 손목에 치렁치렁 묶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계속해서 달려들면 상의 주머니에서 가짜 뱀을 꺼내 보여주며 연기를 하면 기겁을 하고서 달아난다.
소매치기가 백곰의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가짜 뱀을 꺼냈다가 놀라서 달아난 적도 있다.
“연기 잘하더라.”
우혁이 백곰에게 말했다.
가짜 뱀을 손에 들고서 진짜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던 백곰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 헤헤!”
백곰이 뱀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웃었다.
“해지기 전에 빨리 돌아가세요. 해가 지면 위험합니다.”
조감독이 외쳤다.
결국 스태프의 휴대전화는 찾을 수 없었다.
18, 19, 20구는 파리의 20개 지구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마약 사범들이 해가 저물면 활동을 시작한다.
밤에 이 지역을 다녀서는 안 된다.
소매치기뿐만 아니라 강도가 설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취객과 매춘부들, 마약쟁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래서 해가 저물기 전에 촬영을 일찍 끝낸 것이다.
우혁과 백곰, 송유미는 성당 앞 도로에 세워둔 렌트카에 올랐다.
***
파리 7구에 접어들자 한적했다.
파리 7구는 센 강 남쪽에 위치한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였다.
파리의 호화 주택들이 즐비한 부촌.
아내와 민서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아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민서가 맞아주었다.
“우리 민서, 잘 있어?”
우혁은 민서를 번쩍 들어 안으며 물었다.
“응!”
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수 씨랑 유미 씨는?”
아내가 우혁에게 물었다.
“오늘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겠대. 라면이 먹고 싶은 모양이야.”
매일 저녁 식사는 백곰과 송유미가 함께했다.
백곰과 송유미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아내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알아서 먹겠다고 했지만, 아내가 고집을 부렸다.
고생하는 두 사람에게 저녁 한 끼는 꼭 먹이고 싶다면서.
가끔 외식을 할 때도 있었으나 아내는 손수 밥을 지어 저녁을 차렸다. 물론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았지만.
“라면이 먹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를 하지. 내가 끓여 줄 텐데···.”
“라면 정도는 두 사람이 끓여 먹고 싶었던 게지. 그냥 둬.”
“그래 그것도 좋겠다. 라면 끓여 먹으면서 꽁냥꽁냥.”
아내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쇼핑했어?”
다이닝룸으로 걸어가며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 했어.”
아내는 여성 경호원과 한국인 유학생 통역사, 베이비시터, 전담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파리 곳곳을 돌아보고 쇼핑도 즐겼다.
여전히 돈을 잘 쓰지 못했으나 과거처럼 벌벌 떨지는 않았다.
명품도 과감하게 구입했다.
우혁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너무 소심한 소비이기는 하지만.
[플럼범 바이러스>의 대성공으로 우혁은 1000억대 자산가가 되었다.“돈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은 소비하는 거야. 물 쓰듯이 써야 돼.”
우혁은 아내의 소심한 소비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알았어. 열심히 쓸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의 씀씀이는 1000억대 자산가의 아내답지 않았다.
우혁도 마찬가지였고.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것에 만족했다.
수전노처럼 돈을 아끼는 않았으나 돈 관리는 철저했다.
돈을 쓰려고 작정하면 하루에 10억, 100억도 쓸 수 있다.
그렇게 쓰다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알거지가 될 게 뻔하다.
우혁은 돈을 써야 할 때 쓰지만 사치와 낭비는 경계했다.
자산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를 하는 일도 없었다.
영화 [마른 풀잎의 노래>와 [플럼범 바이러스>에 투자를 한 적이 있었으나 안전 자산을 확보한 뒤에 했다.
K&B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설립, 투자할 때에도 돈은 크게 들어가지 않았다.
충분한 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번듯한 사무실을 얻어 매니저들과 경리, 법무팀, 마케팅 직원들을 고용할 수도 있었으나 최소한의 인원과 조직으로 시작했다.
향후 1년 동안 수입이 없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곧 수입이 생길 것 같다.
설민환과 박찬익이 영화 출연 계약을 맺었다.
윤대성 본부장이 열심히 뛴 덕분이다.
“촬영은 언제 끝나?”
아내가 물었다.
“1주일만 더 찍으면 끝날 것 같아. 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국이 제일 편한 것 같아. 치안도 좋고. 밖에 외출하면 소매치기 때문에 경호원이 무척 애를 먹어.”
“경호원을 한 명 더 구해줄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쇼핑도 할 만큼 했고, 관광도 충분히 했거든.”
“민서가 토토 안 찾았어?”
작은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왜 안 찾아. 오늘도 두 번이나 영상 통화했어.”
“토토가 영상 통화로는 민서를 못 알아본다며.”
“민서를 못 알아보기는 하는데, 민서 목소리를 들으면 꼬리를 흔들면서 어쩔 줄 몰라 해.”
우혁도 토토의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토토가 울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다가 아범하고 통화만 하면 어떻게 알고 벌떡 일어나서 낑낑거리는구나.”
어머니의 말이었다.
“토토가 걱정이야.”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어머님이 그러시는데, 토토가 힘이 하나도 없대. 민서가 쓰던 물건이나 옷에 집착하는 모양이야. 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파리 체류 기간이 짧고,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토토는 부모님에게 맡기고 왔다.
토토 때문에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토토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아까 몽마르트르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잖아? 그게 뭐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백곰이 송유미에게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무슨 생각인데?”
“새장 속에 갇힌 마농, 불쌍하지 않아?”
“불쌍하지.”
“크랭크업한 뒤에, 마농을 새장 밖으로 꺼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어.”
“정말? 나도 아까 그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바보 같은 생각인 것 같아.”
“그것도 나랑 똑같네!”
“호호호···.”
“하하하···.”
“오빠랑 나는 참 비슷해.”
“다른 것도 있지. 넌 예쁘고 난 못생겼잖아.”
“오빠가 못생기긴 뭐가 못생겨.”
“콩깍지가 씌었네. 그 콩깍지, 벗겨지지 않아야 할 텐데···.”
“노력할게.”
“내가 노력해야지.”
송유미는 백곰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 달이 넘도록 같은 집에서 살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백곰 오빠와 같은 집에 산다는 게 무섭고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지켜줘서 고맙다.
고마우면서도 왠지 아주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답답하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마농을 새장에서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백곰 오빠의 닫혀 있는 문을 활짝 열어 주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자신의 문도.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 경험이 없다.
친구들은 다 있다는데···.
백곰 오빠도 여자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여자 경험은커녕 키스도 못해 봤을지도 모른다.
“잘 자라.”
“오빠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송유미가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백곰 오빠가 마농의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새장의 문을 열어 주고 싶다.
아니면.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든가.”
송유미가 혼잣말을 했다.
“미쳤나 봐!”
송유미는 도리질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백곰은 이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끝내 두 사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백곰과 송유미의 꿈에서는 문이 열렸다.
마농의 새장 속에서!
다음날 촬영장에서 마농의 새장을 보고 백곰과 송유미는 얼굴을 붉혔다.
[ 몽마르트르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