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2)
감독인 멜라니 로랑의 표정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 앞에서는 의연한 척했으나 파티가 끝날 무렵, 우혁 옆으로 다가와 속내를 털어 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어메이징 라이프>가 제가 영화감독으로 찍는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요.”
사실 프랑스에서 멜라니는 영화감독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배우로서는 높이 쳐주지만.
프랑스 영화 시스템은 할리우드와 달리 감독에게 많은 부분을 일임한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감독의 책임이 크다.
영화의 성패에 대한 공과는 감독의 몫이다.
한 번 실패하면 투자자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멜라니는 여러 차례 감독으로서 실패를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회가 주어졌다.
세계적인 배우라는 타이틀 덕분에.
그런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영화배우이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나 할 것이지 무슨 감독까지…
-배우가 좋기는 좋구나. 계속해서 망해도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느니 말이야.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만 많은 멜라니. 연기만 하면 안 되겠니?
-옐로우 강, 실수한 듯. 어쩌다 폭망 감독에게 낚여서…
┖[플럼범 바이러스> 출연에 응하면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네티즌들의 반응에서도 멜라니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잘될 겁니다. 힘을 내세요.”
우혁이 멜라니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분히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외에 우혁이 해줄 게 없었다.
“우혁 필모그래피에 오점으로 남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멜라니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앞으로 많은 작품을 할 것이고, 한두 작품 실패한다고 해서 배우 인생에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다만, 지난 10주 동안 혼신의 힘을 다했고, 이제 막 촬영을 마쳤는데, 감독이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실망스럽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것도 아니고, 후속 작업을 앞두고 있건만.
멜라니는 지쳐 있었다.
언론은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과 일부 스태프들까지도 멜라니를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가 농후했다.
처음에는 프랑스 영화 촬영장의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으나 [어메이징 라이프>만의 특수성이었다.
멜라니가 여성이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폭망한 전작들의 선례.
그것이 멜라니의 발목을 잡았고,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플럼범 바이러스> 캐스팅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멜라니는 [어메이징 라이프>의 남주로 우혁이 출연할 것이라고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그 덕분에 투자자도 쉽게 구했고, 캐스팅도 어렵지 않았다.
작곡가 미셸 그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멜라니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기는 했지만, 우혁의 캐스팅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타란티노 감독의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면서 우혁의 티켓 파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멜라니가 몇 해 전부터 집요하게 매달리기도 했지만.
멜라니는 우혁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우혁이 한국으로 귀국한다.
중요한 후속 작업이 남았는데,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베니스 영화제에 월드 프리미어로 참가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더 큰 문제는 자금.
예상보다 촬영 비용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한 달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문제는 역시 돈.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절대적 시간이 소요되는 CG와 음반 녹음 작업은 영화 촬영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음반 녹음은 완료되었다.
CG 작업의 경우 아직 한 달 정도는 더 소요될 것 같다.
편집도 문제다.
전작들은 편집에 최소 3개월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길어야 2개월.
마케팅 비용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
우혁도 어느 정도 낌새는 차리고 있었다.
멜라니가 이번 영화를 위해 거액의 은행 돈을 끌어 썼다는 소문은 우혁도 들었다.
그만큼 멜라니는 [어메이징 라이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사활을 걸었달까.
“베니스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는 힘들 것 같아요.”
멜라니가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요.”
우혁은 멜라니를 위로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컸다.
[플럼범 바이러스>는 [어메이징 라이프>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작품이었지만 비슷한 기간 동안 촬영, 편집, 마케팅을 하고, 계획대로 베를린 영화제에 월드 프리미어로 출품했다.우혁이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프로듀서로서 리더십을 발휘해 스태프들, 출연 배우들의 협조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하지만 [어메이징 라이프>에서 우혁은 주연의 역할에 불과했다.
감독인 멜라니에게 최대한 협조했고,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멜라니도 우혁과 촬영할 때는 즐거웠다.
하지만 다른 출연자들과의 촬영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혹시 자금 때문인가요?”
우혁이 물었다.
멜라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의미였다.
“제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다 끌어 모았는데, 모자라네요. 만약 이번 영화 망하면···. 아닙니다.”
멜라니가 말문을 닫았다.
“현재 자금 상황을 감안했을 때, 개봉은 언제 가능한가요?”
“올해 안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군요.”
“죄송합니다. 진작 말씀 드려야 했는데···.”
“베니스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참가를 전제로, 얼마가 필요한가요?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해서요.”
우혁의 말에 멜라니가 고개를 들고 우혁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험 부담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보장해 준다면,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우혁이 멜라니의 눈을 응시했다.
길 잃은 강아지를 바라보는 눈길로.
“영화사와 협의할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감독님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멜라니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우혁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여자의 눈물은 버겁다.
우혁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베니스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참가가 무산된다면, 위약금을 특약으로 걸겠습니다. 그 위약금은 감독님이 감당해야 할 겁니다.”
우혁의 말에 멜라니가 눈을 깜빡였다.
예상치 못한 뺨을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감독님은 해내실 테니까요.”
우혁은 잔을 들어 멜라니에게 건배를 청했다.
멜라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잔을 들어 건배에 응했다.
***
[어메이징 라이프>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프랑스 사람들이 특히 더.
[어메이징 라이프> 출연 배우 중, 콩테 역을 맡은 프랑스의 중견배우가 그 사실을 듣고 국제 전화를 걸어와 조언을 했다.그 배우는 촬영 기간 내내 멜라니에게 비협조적으로 굴어 멜라니를 힘들게 한 사람이었다.
배역의 비중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멜라니가 받아들이지 않자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 멜라니는 영화감독 역량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단편이나 찍어야 할 사람이에요. 단편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장편을 찍겠다고 설치는 거라구요. 이런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이번 영화 절대 성공 못합니다. 성공하기 힘들어요. 멜라니의 전작 보셨나요? 투자한다는 말을 듣고 전화 드리는 겁니다. 하지 마세요. 후회하지 마시고.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겁니다.
우혁은 그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렸다.
그리고 투자했다.
왜냐하면.
영화의 성공을 확신했으니까.
처음부터 투자할 용의가 있었으나 멜라니는 우혁에게 투자 요청을 전혀 하지 않았다.
먼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생각은 없었고.
미셸 그랑과 녹음 작업을 하면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더욱 커졌다.
투자금은 영화 전체 제작비의 10분의 1 남짓.
그러나 수익금 배분은 가장 높다.
***
[강우혁,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쾌거] [[어메이징 라이프>의 어메이징한 흥행 돌풍] [[어메이징 라이프>의 사운드 트랙 美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어메이징 라이프> 개봉 2주일이 지났다. [어메이징 라이프>는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월드 프리미어로 참가해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매년 8~9월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개최되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로서 과거에 비해 그 규모와 명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베를린, 칸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로부터 2주일 뒤, 프랑스를 시작으로 한국에 이어 유럽과 북미에서 차례로 개봉하면서 흥행 가도를 달렸다.
또한 영화에 삽입되었던 곡들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 빌보드의 경우, 싱글 순위를 매기는 ‘Hot 100’과 음반 순위를 매기는 ‘Billboard 200’를 메인 차트라고 하는데, 두 곡이 ‘Hot 100’ 98위와 66위를 차지하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Billboard 200’ 74위에 각각 올랐다.
프랑스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차트인 프랑스음반협회SNEP(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 Phonographique)에서는 개봉 1주일 만에 주제곡 ‘An amazing life’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힐링을 선사하는 한국의 이브 몽땅, 줄리앙 강!]프랑스 언론에서는 우혁과 우혁의 노래를 예찬했다.
이브 몽땅은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자 국민 배우로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배우 겸 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배우로서 그는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와 알랭 레네(Alain Resnais)와 같은 누벨바그 세대들뿐만 아니라 장-피에르 멜빌, 코스타 가브라스, 끌로드 소떼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명성을 쌓았다.
중후하고 진중한 그의 연기는 멜로드라마에서 정치색이 짙은 정치영화까지 소화해내는 배우였다.
60대에 접어든 이브 몽땅은 1986년에 끌로드 베리 감독의 1920년대 초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를 다룬 대서사시 [마농의 샘(Jean de Florette)>과 [마농의 샘 2(Manon des sources)>에서 이기적인 포도 농장주 역할을 연기해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선보였다.
이브 몽땅은 탁월한 배우이기 이전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이기도 했다.
강우혁을 이브 몽땅에 견준다는 것은 최고의 칭송이었다.
[어메이징 라이프>가 개봉되자 프랑스인들은 강우혁을 ‘줄리앙 강’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어메이징 라이프>의 주인공인 ‘줄리앙’을 발음하기 어려운 ‘우혁’ 대신 사용했던 것이다. [어메이징 라이프>가 개봉되기 전부터 우혁은 프랑스인들에게 익숙한 배우였다.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우혁에게 ‘옐로우 강’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옐로우’라는 단어는 동양인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단어이다.
‘옐로우 강’이라는 애칭에는 ‘조롱’과 ‘멸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나, ‘강인함’, ‘멋짐’, ‘연기 잘하는’, ‘무시할 수 없는’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옐로우 강’이라는 우혁의 애칭에는 부정적 의미가 있는 데 반해, ‘줄리앙 강’에는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어메이징 라이프>의 어메이징한 흥행 돌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