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5)
우혁은 최희락 감독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최 감독이 최근작을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했지만, 초청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들었다.
함께 출품했던 [플럼범 바이러스>는 초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금곰상을 수상했다.
흥행 성적은 엄청났고.
반면 [플럼범 바이러스>보다 한 달 늦게 개봉한 최 감독의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홍보도 많이 했고, 시사회 반응도 좋아서 큰 기대를 했던 모양인데···.
“감독님 작품, 이번에는 대박날 줄 알았는데···.”
박 감독은 최 감독의 최근작이 기대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두고 몹시 애석해했다.
[플럼범 바이러스>의 성공을 송구스러워할 정도였다.영화 개봉 이후 최 감독이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 작품 말아먹었을 때 감독님께서 큰 힘이 되어 주셨거든요. 길게 생각하라고, 힘내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단편영화라도 계속해서 찍으라고 격려해주셨는데···. 정작 감독님이 힘드실 땐 아무에게도 말씀을 안 하세요. 혼자서 끙끙 앓으시는 거예요.”
[어메이징 라이프> 촬영 차 프랑스로 가기 전에 최 감독을 만나고 싶었다.최 감독의 영화 [침묵의 소리>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침묵의 소리>는 최 감독의 최근작을 개봉하기 전에 백곰에게 전달한 시나리오다.영화를 개봉하기도 전에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에 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 감독과 연락할 방법이 있었으나 그냥 두었다.
최 감독은 영화 개봉을, 우혁은 프랑스 출국을 앞두고 있어서 서로 경황이 없었다.
최 감독의 최근작이 개봉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프랑스에서 최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 출연 의사를 밝혔다.
“[침묵의 소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주 캐스팅 결정되지 않았으면 제가 하고 싶습니다.”
최 감독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 촬영하느라 바쁠 텐데···. 귀국하면 전화 줘요. 술이나 한잔합시다.
그게 다였다.
우혁은 한국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캐스팅 0순위가 아닌가.
자신의 위상을 생각하면, 최 감독의 반응이 기분 나쁠 수도 있었으나, 우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영화 촬영 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최 감독의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장례식에서 만난 최 감독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머리는 반백이었고, 볼은 훌쭉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살집이 있었는데, 당시 최 감독은 뼈만 남아 있었다.
2년 만에 노인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났을 때, 최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장례식이 끝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 [침묵의 소리>에 출연하겠다고 했지요?
“감독님! 너무 서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 감독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 줄 용의가 있었으니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 혹시 차기작 결정했습니까?
“예!”
– 한발 늦었군요.
최 감독의 목소리에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우혁이 다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거라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프랑스에서 우혁이 [침묵의 소리>에 출연하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는데···.
– 저는 급할 거 없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저는 [침묵의 소리>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침묵의 소리>라면···.
“감독님 작품요.”
– ···시나리오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우혁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죠 뭐.”
– ···.
“술 한잔하시면서 말씀 나누실까요.”
***
그날 저녁.
최 감독과 단둘이 만났다.
최 감독은 장례식 때 만났을 때보다 더 말라 있었고, 표정에는 깊은 슬픔이 흉터처럼 선명했다.
그런데 눈빛은 형형했고, 희망과 의지로 이글거렸다.
의외였다.
실의에 빠져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날 최 감독은 아들 얘기를 꺼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아들과의 추억들.
아들과의 추억을 말할 때, 최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소주 두어 병을 비울 때까지 우혁은 최 감독의 추억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요즘은 사춘기가 빠른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니까 비딱해지더라니까. 엄마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요. 한마디도 안 져. 그 전에는 아주 순종적인 녀석이었거든.”
이때까지만 해도 최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엄마하고는 말이라도 섞지, 나한테는 근처에 오지도 않더라고. 그 전에는 목욕도 같이하고 그랬는데, 같이 목욕을 하기는커녕, 이도 같이 안 닦으려고 합디다. 단순히 사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나한테 맺힌 게 많더구만. 하긴,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해준 적이 없으니까. 영화한답시고 밖으로만 나돌았으니···.”
간간이 자작하며 말을 잇던 최 감독이 술에 취해 들어온 아들의 뺨을 때리게 된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막말을 하고 대드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하듯이 장황하게 얘기했다.
“아들녀석이 나한테 그렇게 화가 쌓여 있는 줄 몰랐어요. 당황스럽고, 화도 많이 나고, 억울하기도 합디다. 내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고, 저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자식이라는 놈이 아버지를 개똥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더라고. 망할 놈의 자식!”
다음날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 입원했고, 췌장암 말기라는 게 밝혀졌다는 말까지 최 감독은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을 보려고 병실을 찾아갔는데··· 날 안 보려고 합디다.”
최 감독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신문지처럼.
그러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누라한테 부탁해서 아들이 잠들었을 때 찾아가서 봤지요.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는데, 아들 얼굴은 봐야 할 거 아니오.”
최 감독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최 감독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연거푸 술만 마셨다.
우혁은 최 감독과 보조를 맞춰 술잔을 기울였다.
최 감독이 휴대전화에서 이메일을 열어 우혁에게 보여 주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최 감독에게 남긴 마지막 동영상.
‘아빠한테 화낸 거, 잘못했어.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만 감독, 꼭 돼!
응원할게.
···.
아빠, 안녕!’
동영상을 보고 나서 우혁은 가슴이 먹먹해 움직일 수 없었다.
“천만 감독, 되어야겠습니다! 아들 유언, 꼭 이루어야겠어요. 나 좀 도와주시오.”
최 감독은 우혁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토록 간절한 눈빛은 처음 보았다.
***
우혁은 다음날부터 달렸다.
K&B 엔터를 총동원했다.
백곰과 윤대성 본부장을 비롯해 새로 채용한 매니저와 법무팀원들까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보유하고 있는 메이저 영화사를 찾아갔다.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우혁의 티켓파워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나리오도 괜찮았고.
최 감독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폭망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혁이 투자를 하겠다는 것도 반가웠고.
언론에서도 우혁의 차기작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 전에는 잘 나가지 않던 ‘텔레비전 스타’ 등의 예능 프로에도 출연했다.
차기작 [침묵의 소리>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조금씩 노출시켰다.
월드 프리미어는 내년 2월 베를린영화제.
그러려면 늦어도 11월까지는 촬영을 끝마쳐야 한다.
지금은 9월.
“조감독 안 구하셨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침묵의 소리> 조감독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박용구 감독이 날린 말이었다.“무슨 소리야. 입봉까지 한 감독이 조감독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최 감독이 박 감독에게 면박을 주었다.
“저만큼 감독님 의중 잘 아는 조감독 있습니까? 없잖아요.”
박 감독은 막무가내였다.
최 감독이야 천군만마를 얻었으니 춤을 출 일이었다.
그러나 박 감독이 누군가?
10년 동안 자기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감독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런 사람이 조감독을 해?
듣도 보도 못한 소리다.
“안 돼!”
최 감독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요?”
박 감독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글쎄, 안 된다면 안 돼!”
“그러니까 왜요? 제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박 감독 이제 내 밑에서 일할 군번이 아니잖아. 세계적인 감독이 듣보잡 감독 밑에 기어들어가서 조감독을 한다고 해 봐.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겠어. 미친 거 아니냐고 쑥덕거릴 거라고.”
“쑥덕거리라고 하세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자기 입 가지고 자기가 떠들겠다는데 어쩌겠어요. 나는 내 귀 가지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 겁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좋아서가 아니라, 강우혁 배우님하고 작업하고 싶어서 이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우혁 씨한테는 내가 잘 부탁해 볼 테니까 따로 해.”
“아, 거 참···. 감독님한테 좀만 더 배우고 싶어서 그래요. 두 번째처럼 폭망할까 봐 불안해 죽겠습니다. 감독님 도와드리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 제가 살기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나한테 배울 게 뭐가 있어. 오히려 내가 박 감독한테 배워야 할 처지구만. 아무튼 안 돼.”
“정말 너무하시네. 개런티 안 받을게요.”
“···박 감독이 와준다면, 내 개런티까지 다 줄 수 있다. 허나···.”
“주세요.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마십시오.”
***
일사천리.
박 감독이 조감독으로 합류하면서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캐스팅도 순조로웠다.
주연이 우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몰려들었다.
[플럼범 바이러스> 촬영 스태프들도 합류했다.그즈음 좋은 소식 하나가 날아왔다.
– [플럼범 바이러스>가 아카데미상 한국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윤대성 본부장이 우혁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아카데미상 주최 측에서는 매년 각국에서 하나의 작품을 추천받아 그 작품들 중에서 다섯 편을 노미네이트한 뒤에 한 작품을 선정해 외국어영화상을 수여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 해 동안 제작된 한국 영화들 중에서 한 작품을 선정해 아카데미상 측에 보낸다.
올해 후보작은 [플럼범 바이러스>.
지금까지 영진위에서는 매년 한 작품을 골라 아카데미상 측에 열심히 보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수상은커녕 최종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적도 없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출품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후보작으로 결정되기도 해서 구설수에 오르지만 영화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그 내막을 잘 알지 못했다.
대중들은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왜냐?
한국 작품이 상을 수상할 리 없고, 최종 후보에 오를 가능성도 희박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최종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것도 아니고 출품을 했을 뿐인데, 언론에서 크게 다루었다.
올해도 로비는 뜨거웠다.
그 결과 얼토당토 않는 작품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진위 측은 [플럼범 바이러스>라는 막강한 작품을 버릴 수가 없었다.
비난을 감당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우혁은 영진위에 로비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언론에 슬쩍 흘렸다.
꿩닭 나윤희 기자.
꿩닭 기자는 인터넷신문사 ‘Star Life News’의 편집장이 되었다.
‘Star Life News’는 메이저 신문사도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가진 연예인 전문 인터넷신문사로 성장했다.
꿩닭 기자의 활약이 신문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우혁과 관련된 특종만 해도 여러 개를 터트렸고, 단독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아카데미상 한국 후보작 결정이 임박했을 때, 꿩닭 기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 기사화하게 함으로써 영진위를 압박했다.
그 기사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는 [플럼범 바이러스>로 결정이 났다.
우혁은 [플럼범 바이러스>가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플럼범 바이러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침묵의 소리>이 크랭크인했으니까. [ [침묵의 소리> 크랭크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