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7)
오늘은 촬영이 없는 날.
우혁은 오랜만에 K&B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명색이 창업자인데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나와 본 것이다.
회사는 잘 돌아갔다.
윤대성 본부장이 큰 역할을 했다.
대표를 맡은 백곰도 대표로서 역할을 잘해 주었다.
백곰은 대표이면서도 현장에 나가는 걸 좋아했다.
우혁의 전담 매니저로서 역할을 하면서 방송사 간부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다녔다.
그 덕분에 회사 규모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커졌다.
새로 계약한 신인 배우만 여섯.
그 배우들 모두 영화, 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있다.
백곰은 오늘도 방송사 간부를 만나러 갔다.
사무실에는 내근 직원들과 윤대성이 지키고 있었다.
우혁이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윤대성은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마침 통화를 마친 윤대성이 우혁에게 다가왔다.
“[침묵의 소리> 촬영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무슨 사고죠?”
“이진호 씨가 쓰러진 모양입니다.”
“많이 다쳤나요?”
“매니저가 이진호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K&B 소속 신인 배우 중에서 [침묵의 소리>에 출연하는 배우가 있고, 그 배우의 매니저가 오늘 촬영이 있는 배우를 데리고 촬영장에 갔다가 사고 현장을 보고서 윤대성에게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왠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요.”
윤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와우(WOW)에 있을 때, 이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배우가 역할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더 좋은 배역이 나타났을 때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겁니다. 이진호 씨는 신인이기 때문에 본인 의사가 아니라 회사에서 시켰을 겁니다.”
“설마 그랬으려구요.”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와우 본부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거든요. 이진호 씨, 본부장이 아끼는 배우라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하면 오히려 배우한테 손해일 수도 있을 텐데요.”
“본부장이 아낀다는 건, 계약 기간 동안 뽑아 먹을 게 많다는 의미입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이진호 씨가 모 드라마 주연급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거든요.”
우혁은 윤대성의 말을 믿지 않았다.
우혁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걸 알지만, 우혁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K&B 소속사 배우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겠지만, 촬영을 하다 말고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이진호가 [침묵의 소리>에서 맡은 배역은 임팩트가 강하긴 하지만 비중이 약하고 분량이 적었다.
이 배역 때문에 주연급 조연 배역을 놓친다면, 본인으로서는 속상한 일일 것이다.
소속사에서도 안타까울 것이고.
소속사 입장에서는 수익과 직결된 문제니까.
***
이진호의 이탈이 사실화되고 있다.
한 달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호의 매니저와 팀장급이 최 감독을 찾아와 사과했다.
촬영에 지장을 주게 되어 죄송하다, 배역이 크지 않으니 다른 배우로 교체해 주시면 안 되겠냐, 영화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신인 배우의 건강을 생각해 달라, 이진호보다 연기 잘하고 경력 많은 다른 배우로 교체해 주면 안 되겠느냐···.
최 감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우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소속사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프다는 사람을 끌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최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혁은 병문안을 위해 윤대성과 함께 이진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이진호가 입원한 병원은 중소 규모의 정형외과 전문 병원이었다.
“큰 병원을 두고 왜 이렇게 작은 병원에 입원시켰을까요?”
윤대성이 병원 건물을 살피며 말했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 표정이었다.
3층에 위치한 이진호의 병실을 찾아갔다.
한 병실에서는 환자들끼리 화투를 치고 있었다.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입원해 있는 나이롱환자들 같은데요.”
윤대성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진호는 2인실 병실을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우혁이 병실로 들어서자, 이진호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내려와 허리를 굽혔다.
허리가 아파서 입원을 한 사람이 이래도 되나?
요대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이진호의 매니저가 요대를 몸으로 숨기며 이진호에게 눈짓을 했다.
침대로 올라가라는 거였다.
이진호는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괜찮아요?”
우혁이 이진호에게 물었다.
“예? 아, 예!”
이진호가 더듬었다.
이진호는 우혁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 연신 곁눈질로 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이진호의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윤대성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김 대리, 잘 있었어요?”
윤대성이 매니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예, 실장님! 아, 지금은 본부장님시죠? 안녕하세요.”
매니저가 윤대성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 의자 두 개를 잽싸게 가져와 우혁과 윤대성에게 권했다.
“형! 귤 좀 사다줘.”
이진호가 매니저에게 부탁했다. 뜬금없이.
“귤? 갑자기 무슨 귤! 사과도 있고, 바나나도 있는데···.”
“귤이 먹고 싶어서 그래요. 좀 사다주세요. 아니면 제가 가서 사올까요?”
이진호가 매니저를 노려보았다.
“알았어알았어. 갔다 올게.”
매니저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매니저는 병실을 나가면서 이진호에게 눈짓을 했다.
이진호는 그 눈짓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매니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가 병실을 나가자 이진호가 병실 문을 흘낏거렸다.
이진호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러자 병실 문 앞에서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이진호가 침대에서 내려가 문을 벌컥 열고서 복도로 나갔다.
“안 가고 여기서 뭐해요?”
“갈 거야. 지금 가잖아.”
“전복죽도 좀 사다줘요.”
“전복죽? 알았어. 너··· 알지? 응?”
이진호의 매니저가 목소리를 낮추고서 무언가를 말했다.
“빨리 사다주세요. 배고파 죽겠다구요.”
이진호가 퉁명스럽게 보챘다.
“아, 진짜···.”
이진호의 매니저가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진호가 병실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매니저에게 퉁명스럽게 굴던 이진호였으나 우혁과 윤대성에게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진호는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저는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윤대성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실장님! 죄송합니다만, 혹시 저희 회사 사람이 오면 좀 알려주십시오.”
이진호가 윤대성에게 송구스러워하며 부탁했다.
윤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윤대성이 나간 뒤에도 이진호는 망설였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우혁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사실은··· 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 계속 촬영하고 싶습니다. 선배님께서 출연하는 작품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거든요. 작은 역할이지만 전혀 불만 없습니다. 그런데···.”
이진호가 다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저는 그러기 싫었지만, 본부장님께서 시켰습니다. 비중 있는 배역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소속 배우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싶을 테니까요.”
“이 작품 계속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한테 좋은 기회인 줄은 알지만, 전혀 고맙지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신인이지만 배우 의사를 묵살하고 회사 마음대로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장에서는 회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럴 겁니다.”
“선배님께는 사실대로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저한테 정말 잘해 주셨는데, 이렇게 떠나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진호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아쉽기는 우혁도 마찬가지였다.
백곰의 말에 의하면, 아우라가 매우 화려한 친구라며, 연기자로 대성할 거라고 장담했다.
우혁이 보기에도 그러했다.
비록 작은 역할이었지만 이진호는 매우 진지하게 임했고, 무엇보다 연기가 좋았다.
외모도 출중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도 촬영장에 와서 우혁의 연기를 지켜보곤 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와우는 국내 최대 연예인 기획사답게 좋은 신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신생 기획사 대표로서 백곰은 그 사실을 몹시 부러워했다.
“사실대로 말해 줘서 고마워요.”
우혁이 이진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잠시나마 배우님과 연기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이진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
우혁은 함구했다.
이진호의 고백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
이 사실을 최 감독이나 영화사에 알리면, 이진호를 붙잡을 수는 있겠지만, 이진호가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하루 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진호가 빠지면 재촬영이 불가피할 것이다.
임팩트 있는 역할이긴 했지만,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다.
빼고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배우를 찾아야 하는데, 최 감독은 와우 소속사에서 이진호 대신 교체해 주겠다는 배우를 쓰진 않겠다고 말했다.
최 감독도 뭔가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길면 2주일 정도 딜레이되겠는데요.”
박 감독이 최 감독과 우혁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장소 섭외를 다시 하고, 출연 배우들의 일정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지. 이진호를 대신할 배우를 빨리 찾지 못하면 그만큼 더 딜레이될 테고.”
최 감독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우선 이진호를 대신할 배우부터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좋을까요?”
박 감독이었다.
최 감독은 묵묵부답.
“외국 배우는 어떨까요?”
우혁이 나섰다.
“외국 배우요?”
박 감독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국내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외국 배우라니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배역은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여야 한다.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배우들은 연기력이 썩 좋지 않았다.
최 감독은 여전히 같은 자세를 취한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혁의 의견이 탐탁지 않다는 의미였다.
원래 이진호가 맡은 역할을 외국인 배우로 설정했었다.
캐스팅 단계에서 국내 체류 외국인 배우들 중에서 찾아보았으나 실패했다.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 가서 캐스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배역의 비중이 너무 작았다.
결국 애초 계획을 바꿔 국내 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렇게 해서 캐스팅한 배우가 바로 이진호였다.
우혁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탁자 위에 소리 나지 않게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레오나르도 정도면 괜찮을까요?”
최 감독이 눈을 번쩍 떴다.
커피를 마시던 박 감독은 사래가 들려 콜록거렸다.
“콜록! 디카프리오 말씀인가요?”
박 감독이 물었다.
“어떠세요?”
우혁은 박 감독과 최 감독을 번갈아 보았다.
“디카프리오가 해준다면 최고죠! 그런데···.”
박 감독이 대답했다.
“어림없지. 그렇게 작은 배역을 그 배우가 하겠어?”
최 감독이 박 감독의 말꼬리를 잘라먹으며 툭 내뱉었다.
박 감독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최 감독은 다시 눈을 감았다.
“레오에게 의사를 물어봤는데, 출연할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우혁의 말에 최 감독이 다시 눈을 떴다.
“정말요?”
박 감독이 물었다.
“한 달 뒤에 한국에 들어오는데, 1주일 정도 체류할 겁니다. 그때 일정 잘 맞춰서 촬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감독님만 괜찮으시다면요.”
레오가 한국에 들어온다.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영화 촬영을 위해.
그 영화에 우혁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플럼범 바이러스> 때에는 레오가 카메오로 출연해 주었다.그 때문에 촬영 팀이 미국으로 갔었다.
이번에는 우혁의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레오의 촬영 팀이 한국에 들어온다.
오늘 오전에 레오가 우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레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혁이 맡은 배역의 비중을 조금 더 키울 수 없겠냐는 것이다.
우혁은 레오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침묵의 소리> 카메오 출연을 제안했다.
배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난 뒤 레오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말 그 양반이 우리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소?”
최 감독이 물었다.
팔짱을 풀고 오랑우탕처럼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예!”
우혁이 대답했다.
“허허! 불행 중 다행이로구먼.”
최 감독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전화위복인데요!”
박 감독이 쾌재를 불렀다.
[ 전화위복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