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91)
촬영장에서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이진호는 차창에 시선을 부려놓은 채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었다.
촬영장에서 보았던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눈앞에 가물거렸다.
“무슨 생각해?”
박동일이 물었다.
“그냥 뭐, 이것저것···.”
“내가 왜 널 K&B에 보내려는 것 같아?”
“글쎄!”
“K&B는 설민환 빼고 다 신인이야. 그 신인들 중에 노는 사람 아무도 없어.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고. 강우혁 배우님께 여쭤 봤는데, 앞으로도 신인 배우들을 뽑을 거래. 기성 배우들이 많은 곳에 가면 신인들이 기를 못 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니까. 네가 K&B에 들어가면 바로 배역을 얻을 거야. 와우에 있으면 계약 끝날 때까지 작은 배역 하나 얻기도 힘들어. 본부장이 널 갈굴 테니까.”
“K&B에 가려면 와우에서 나와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돼? 방법이 있다며?”
“와우 본부장 꿈이 뭔지 알아?”
“나야 모르지.”
“연예인 기획사를 창업하는 거야.”
“기획사 간부들, 누구나 그런 꿈들 꾸지 않나? 근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
“널 와우에서 빼내는 것과 관련이 있으니까 그러지.”
“무슨 관련이 있는데?”
“본부장, 1년 뒤에 와우에서 독립할 거야.”
“그래?”
“잘나가는 소속 연예인들하고 본부장 똘마니 매니저들 데리고 나갈 거라고.”
“대표이사님도 알아?”
“당연히 모르시지. 대표이사님 뒤통수치려고 저러는 건데.”
“본부장, 대표이사님하고 친척이잖아. 사촌 사이라고 들었는데.”
“사촌이 아니라 육촌.”
“육촌이면 가까운 편이네. 그런데 뒤통수를 쳐?”
“형제간에도 뒤통수치는 세상인데, 육촌이 대수겠니.”
“그래도 대표이사님이 본부장을 엄청 아낀다고 들었는데.”
“아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 만들어 줬지. 대표이사님 아니었으면, 사람 노릇 못했을 거라더라. 본부장 젊었을 때 폭행, 사기, 성폭행을 저지르고 다녔는데, 대표이사님이 매니저 일 가르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매니저 일을 하면서도 사고를 쳐서 그 뒷수습하느라 대표이사님이 돈도 많이 꼬라박았나 봐.”
“본부장한테는 대표이사님이 친형이나 아버지 같은 사람이겠네. 그런 분한테 뒤통수를 쳐?”
“본부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대표이사님은 그런 사람을 왜 옆에 데리고 있을까?”
“본부장이 대표이사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굴거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더라.”
“대표이사님은 본부장이 자기 뒤통수치려고 하는 걸 모르는 거야?”
“알면 가만히 두겠니, 대표이사님 성격에? 자기 식구들 데리고 나가는 거, 대표이사님이 제일 싫어하는 짓이거든.”
“K&B에서 윤대성 본부장님하고 형, 그리고 나까지 데리고 가면 대표이사님 열 받으시겠는데?”
“그건 경우가 다르지. 회사에서 잘라버린 사람이 다른 회사에 가는 거니까. 대표이사님이 싫어하는 건, 믿었던 사람이 자기를 배신하고 퇴사해서 연예인 기획사를 차리는 거야. 옛날에는 깡패들 동원해서 응징을 가하기도 했다는데, 요즘엔 그랬다가 큰일 나니까 못 그러지.”
“대표이사님도 좀 웃기다. 회사에 퇴사해서 연예인 기획사를 차릴 수도 있지 그걸 못하게 해?”
“대표이사님도 보통 사람 아니야. 본부장하고 다를 거 없어. 비슷한 과야. 본부장하고 다른 건, 대표이사님은 연예인들 성장하는 걸 행복해하는 사람이고, 본부장은 연예인들 짓밟는 걸 행복해하는 사람이라는 거. 나도 잘 몰라. 매니저 선배들이 그러더라고.”
“나도 그 비슷한 얘기 들었어. 본부장은 잘나가는 연예인들은 하늘처럼 떠받들다가 그 연예인이 미끄러지면 사정없이 짓밟는다고.”
“뜰 것 같은 신인한테는 간을 빼줄 것처럼 하고, 그렇지 않은 신인한테는 멸시와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야.”
“내가 당해 봐서 알지.”
“시작에 불과해. 본부장, 앞으로 너랑 마주칠 때마다 악담과 저주를 퍼부을 거야. 그렇게 망가진 애들 많아. 그래서 내가 널 거기서 빼내려는 거야.”
“그 얘기를 또 들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얘기 듣고 난 뒤로 자존감이 확 떨어졌어. 본부장 말대로 난 재수 없는 놈이고, 해도 안 될 놈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그 인간 말 새겨들을 거 없어. 넌 돼! 반드시 될 거야!”
박동일이 언성을 높였다.
“강우혁 배우님께서 그러셨어. 너 대성할 거라고.”
“정말? 진짜로? 뻥 아니지?”
“뻥 아니야. 의심나면 니가 직접 물어봐.”
“강우혁 선배님, 정말 연기 잘하지 않아? 디카프리오하고 투 샷일 때 전혀 꿀리지 않더라.”
“솔직히 말하면, 촬영 현장에서 보니까 디카프리오가 작아 보이더라. 별 거 아니던데 뭐. 강우혁 배우님이 훨씬 커 보였어.”
“[쓰레기들>에서도 강우혁 선배님이 가장 돋보였잖아.”
“K&B에 들어가서 강우혁 배우님한테 많이 배워. 네가 강우혁 배우님 같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K&B에 들어가려면 와우에서 나와야 하잖아.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는 건데.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줘.”
박동일이 말을 빙빙 돌린 건, 이진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본부장이 있는 와우에 있어 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도 할 겸.
이진호가 와우에 대한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일이 자칫 어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얘기해 달라니까.”
이진호가 보챘다.
이제 된 것 같다.
박동일은 이진호 옆으로 바짝 다가앉아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좀 전에 말했던 얘기를 본부장한테 말할 수 있겠어?”
“누가? 내가?”
“그래!”
“···.”
“본부장을 만나서 이렇게 말해. 1년 뒤에 연예인 기획사를 설립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본부장님하고 함께하고 싶다.”
“오냐, 함께하자, 그러면 어떡해.”
“본부장, 절대 그럴 사람 아니야. 한 번 실망한 사람한테 두 번 기회 주지 않아. 너 말고도 가능성 있는 신인들은 수두룩하거든.”
“하긴!”
“널 자를 거야. 왜냐?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다른 직원들이나 매니저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거든. 대표이사님 귀에 들어가는 날엔 끝장이니까.”
“본부장한테 그 말 했다가 날 때리면 어떡해?”
“땡큐지.”
“···.”
“왜? 맞을까 봐 겁나?”
“아니! 때리면 나도 때릴 거야. 정당방위가 되든 쌍방폭행이 되든. 그 인간한테 맞고, 돈 벌기 싫어.”
“장담하는데, 본부장 절대 너 안 때린다. 때리면 어떻게 될지 잘 아니까. 말로 널 괴롭힐 거야. 그럴 때 흥분하면 안 돼. 괜히 흥분해서 주먹이라도 날리면, 넌 이 바닥 떠야 된다. 절대 폭행은 안 돼.”
“알았어.”
“본부장 만나서 내 말대로 할 수 있겠어?”
“해볼게.”
“좋아. 이게 안 되면, 다음 수를 쓸 거야.”
“다음 수?”
“다음 수를 안 쓰는 게 본부장한테도 좋을걸.”
“왜?”
“그건 알 거 없고. 본부장 만나서 잘 얘기해.”
“본부장이 1년 뒤에 와우 연예인들하고 매니저들 데리고 나가려고 한다는 정보는 확실한 거야? 형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어?”
“윤대성 선배님한테 들었어. 선배님한테 본부장이 먼저 제안을 했는데 선배님이 거절한 모양이야. 그 뒤로 집요하게 공격하더니 결국 밀어낸 거지.”
“윤대성 실장님도 답답하시네. 대표이사님한테 그 사실을 말해 버렸으면 본인이 잘리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니야.”
“그게 그렇게 간단했으면 왜 안 했겠니. 본부장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치니까 조용히 물러난 거지.”
“하긴 그렇게 했다면 피바람이 불었겠다. 매니저들이랑 연예인들도 여럿 힘들었을 거고.”
“하지만 난 선배님하고 달라.”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본부장 만나서 생각했던 것처럼 잘 안 되면, 대표이사님한테 찾아갈 거야.”
“그게 다음 수야?”
“그래!”
“대표이사님 만나기 전에 증거 확보는 해야 된다.”
“당연하지.”
***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이진호는 와우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동안 10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여섯 번 만에 본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 왜 자꾸 전화질이야?
본부장이 벌컥 화를 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무슨 말?
“뵙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 시간 없어.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놈 만날 시간 없어.
본부장의 말에 울화가 치밀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동일이 화 내지 말라는 손짓을 해보이기도 했고.
“죄송합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 바쁘니까 할 말 없으면 끊어.
“연예인 기획사 만든다면서요?”
– 뭐?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본부장님 밑에서 크고 싶습니다.”
– 너,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인마! 연예인 기획사라니?
“본부장님, 1년 뒤에 연예인 기획사 차려서 나가시는 거 아닌가요?”
– 무슨 개소리야?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어떤 미친놈이 그 따위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고 다니든? 누구야?
“그건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 말해, 시끼야! 그 놈, 누구냐니까.
“사실이 아닌가 보죠?”
– 이진호! 너 입 조심해라. 아가리 함부로 놀리다가 죽는 수가 있어.
“저 입 무겁습니다. 절대 얘기 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본부장님, 나가실 때 저도 데려고 가 주십시오.”
– 그거 사실 아니야. 연예인 기획사 차릴 생각 저언혀 없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 자식 아주 불순한 놈이네, 이거! 와우에서 키워 주려고 하는구만,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뒤통수 깔 생각을 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싸가지 없는 놈! 넌 안 되겠다. 이진호!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본부장이 전화를 끊었다.
이진호가 박동일을 쳐다보았다.
“형 말이 맞네.”
***
그날 저녁, 본부장 혼자 이진호를 찾아왔다.
다행히 박동일이 본부장을 발견하고 몸을 피했다.
본부장은 이진호를 살살 달랬다.
“너하고 와우하고 안 맞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와우, 너한테 해줄 게 별로 없어. 차라리 좀 작은 기획사에 가서 해라. 계약 기간이 남아 있기는 한데, 네가 원하면 풀어줄게. 서로 응원하면서 헤어지자. 어떠냐?”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연예인 기획사 차린다는 얘기, 누구한테 들었냐?”
“누군지 잘 모릅니다. 저도 얼핏 들었거든요.”
“그거 네가 잘못 들은 거야. 그러니까 그 말 옮기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래! 몸조리 잘해라.”
“예!”
***
다음날.
본부장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파기 계약서를 가지고서.
이진호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파기 계약을 한 뒤 병실을 나서던 본부장은 박동일과 딱 마주쳤다.
“야! 너 여기 웬일이야?”
“진호 만나러 왔는데요.”
“진호는 왜?”
“병문안 왔습니다.”
“병문안.”
“그럼···.”
“야! 너 취직은 했냐?”
“예!”
“어디?”
“K&B 엔터라고···.”
“윤대성 있는데?”
“예.”
“와우 떨거지들이 거기 다 모이는구만. 잘해 봐라.”
본부장이 박동일을 비웃으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박동일은 본부장에게 깍듯이 머리를 숙였다.
병실에 들어가자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진호가 활짝 웃으며 파기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던 것이다.
박동일은 파기 계약서를 꼼꼼히 살폈다.
“아주 깔끔하군. 이제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는 일만 남았군.”
***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이진호는 K&B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계약한 지 2주일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명 영화감독의 장편영화에 주연급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와우가 발칵 뒤집혔다.
[ 새로운 둥지를 찾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