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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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길 참 잘했다
“인형 얼굴 좀 고쳐 주었을 뿐인데 돈을 이렇게나 많이 줘?”
계좌에 찍힌 돈을 보고 아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채기 인형 캐릭터 저작권 계약금이 들어온 것이다.
“재채기 인형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놀라기엔 아직 일러. 지금 들어온 건 계약금일 뿐이야.”
아내는 놀라워하면서도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오빠, 요즘 너무 힘든 거 아니야? 연기하기도 힘든데 이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 말이야. 난 오빠가 연기만 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고 있어.”
사실이다.
연기 이외의 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씩 ‘추체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마술사 토니 슬리디니와 이소룡을 추체험하고 있다.
이소룡으로부터 전이 받은 무술이 녹슬지 않도록 연마하고, 슬리디니의 마술 기법와 복화술 역시 틈날 때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수영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다.
가로등지기는 대사가 별로 없지만 짧은 대사라도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끊임없이 연습한다.
특히 대사 많은 재채기 복화술 연습은 시도 때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손재주가 좋은 아내가 재채기와 똑같은 모습의 연습용 재채기를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하도 많이 연습을 하다 보니 매일 수선을 해야 했다.
우혁의 머릿속에는 온통 연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캐릭터 저작권에 관한 업무는 ‘나무’ 법무팀에 일임하기로 했다.
정의찬 실장과 안창현 대표의 배려 덕분이다.
특히 정 실장은 이번 캐릭터 저작권 등록과 계약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주고 있다. 덕분에 우혁이 신경 쓸 일은 전혀 없다.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크게 힘든 일도 아닌 걸요. 우혁 씨 덕분에 저를 보는 대표님과 동료들이 눈빛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회사 나오는 게 즐거워요. 이게 다 우혁 씨 덕분입니다.”
“저야말로 실장님 덕분에 연기하는 게 즐겁습니다. 실장님 아니었으면 [서울 가로등> 시놉시스를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서울 가로등>에 출연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네요.”
“실장님을 만난 건, 저에게 큰 행운입니다. 그건 틀림없어요.”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희 칭찬 배틀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빈말을 할 줄 모르는 우혁은 진심으로 정 실장이 고마웠다.
“참, 국내 최고 문구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문구류에 재채기 캐릭터를 사용하고 싶은 모양이에요. 일단 제가 만나서 핵심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법무팀에서 사후 관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회사 업무도 바쁠 텐데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업무와 관련이 없다니요. 대표님 지시 사항입니다. 대표님께서 왜 이러실까요? 다른 이유 없습니다. 재계약 때 우혁 씨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아직 3년이나 남았는걸요.”
“3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때가 되면 ‘와우’ 윤대성 실장이 가만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윤 실장 만나 술 한잔했는데, 윤 실장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땅을 치고 후회를 한답니다.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더라면 우혁 씨를 데려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우혁은 정 실장의 말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윤 실장이 우혁 씨와 계약하고 싶어서 회사에 파격적인 대우를 요구했는데 회사에서 거부한 모양이에요. 와우가 워낙 큰 기획사이다 보니 윤 실장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야 대표님이 외삼촌이니까 떼를 쓸 수 있었지요. 하하하!”
“그러셨군요.”
“윤 실장 여전히 우혁 씨와 일하고 싶어 합니다. 대표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3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와우에서 벌써부터 눈독 들이고 있다, 와우뿐이겠느냐 하고 말이에요.”
우혁은 다른 기획사로 갈 생각은 없었으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3년 뒤 행동으로 보여 주면 되는 일이다.
3년은 충분히 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섣불리 입을 놀리기 싫다.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천천히 생각하면 될 일.
지금은 [서울 가로등> 종방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느새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청률은 내리막 없이 꾸준히 오르는 중이다.
시청률과 함께 우혁의 인기도 날로 치솟았다.
요즘에는 우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동네 사람들조차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때문에 아내가 조금 번거롭게 되었지만 아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혁을 알아봐 주는 이웃들을 고마워했다.
우혁도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동네 분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 사진 찍기를 원하면 흔쾌히 응했다. 사인도 정성껏 해드리고.
“쿡!”
아내가 웃었다.
밖에서 이웃집 김 씨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아내는 김 씨 아저씨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아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보육원에 있을 때 개그맨이 되겠다고 말하고 다니던 세 살 아래 이승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생이 있었어. 승룡이가 저 노래를 부르면서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곤 했거든.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 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승룡이가 추던 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와.”
♬ 우리 집 고양이는 미친 고양이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개새끼도 아닌 것이 멍멍멍 ♬
“김 씨 아저씨 오늘도 한잔하셨나 보네.”
김 씨는 노래를 크게 부르지 않았다. 작은 소리로 흥얼흥얼.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김 씨는 나비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나이는 60대. 어떤 곡절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늘 인상을 찌푸린 채 다니고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택배 배달 일을 한다.
우혁은 김 씨 집 옆을 지나다가 나비에게 야단을 치는 소리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나비야, 날뛰지 좀 말어. 성가신 놈 같으니!”
“기어이 화분을 깨는구나. 집안 물건을 다 부술 참이냐. 말썽꾸러 같으니라구.”
“망할 놈! 네놈한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어? 지금까지 네놈한테 들어간 돈이면 집을 사고도 남았어, 이놈아.”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김 씨는 나비를 거리로 내쫓지는 않았다.
술에 취할 때마다 부르는 김 씨의 노래는 ‘나비’에 대한 애증이 담겨 있는 듯했다.
김 씨가 ‘미친 고양이’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잠시 뒤 김 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비야! 나비야! 이놈의 자식이 어디로 간 거야?”
김 씨의 목소리에 아내가 우혁을 쳐다보았다.
“나비가 집을 나갔나 봐.”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날 밤새도록 나비를 찾아다니는 김 씨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튿날 정오 무렵 촬영지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김 씨와 마주쳤다.
“가로등지기 양반! 우리 나비 못 봤수? 등은 고등어 무늬고 입 주위랑 가슴은 하얀색인데.”
김 씨의 눈이 퀭했다.
“못 봤습니다. 나비가 집을 나갔나 보죠?”
“아 글쎄, 창문을 열어놓고 출근을 했지 뭐유.”
“바람 쐬러 간 거 아닐까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날씨도 추워지는데 집을 못 찾는 건 아닌지 원. 내가 야단을 쳤더니 부아가 난 모양이유.”
“너무 마음 졸이지 마세요. 돌아올 거예요.”
“돌아올까? 테레비에 보니까 마술을 부리던데 나비 그 녀석 불러줄 수는 없소?”
“···.”
“허허! 내가 실성을 했나 보오. 별소릴 다하네.”
김 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저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쓸쓸하다.
김 씨의 방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날씨가 꽤 쌀쌀하건만.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비가 돌아왔대.”
다음 날 아침 운동을 나가다가 김 씨 아저씨와 마주쳤다. 출근 차림이 아니라 성묘라도 가는 사람의 복장이다.
“나비 돌아왔다면서요?”
“망할 놈이 제 집이라고 기어들어온 모양이유.”
김 씨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디 가시나 봐요?”
“고향에 다녀오려구요. 고향 들어가서 농사나 지어 먹어야겠어요. 우리 나비가 살기도 거기가 한결 좋을 거요.”
이틀 뒤 김 씨가 1톤 트럭에 이삿짐을 실었다.
“이사 가시는 거예요?”
우혁이 김 씨에게 물었다.
“예!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후딱 해치우려구요.”
아내가 김 씨의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어드렸다.
“나비 먹을 거나 좀 사주세요.”
아내와 김 씨가 주겠다, 받지 않겠다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김 씨가 포기했다.
“고맙수.”
“고향에 가서 잘 사세요.”
“예!”
김 씨의 표정이 해맑았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김 씨가 우혁을 바라보았다.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 줬으면 해서. 고향 사람들도 가로등지기를 다 압디다. 우리 옆집에 가로등지기가 산다고 그랬더니 실없는 사람 취급하지 뭐유. 고향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데 실없는 사람이 되게 생겼어요.”
“휴대전화 주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김 씨와 나란히 서서 사진 여러 장을 찍었다.
“이건 제 전화번호입니다. 고향 분들 만나시면 전화 한 번 주세요.”
“아이구, 바쁜 사람한테 전화는 무슨 전화. ···화상 통화로다가 딱 한 번만 하리다. 고향 사람들 다 모아 놓고 전화 드릴게.”
“촬영 중일 때는 제가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전화를 주세요. 고향 분들 모이는 시간을 알려주시면 제가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럴까요? 허허허! 이제 고향 사람들한테 면이 서겠네! 허허허허!”
며칠 뒤, 김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일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 시간에 맞춰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가로등지기입니다.”
“어허이, 바쁜데 뭔 전화를 하고 그래.”
김 씨 뒤쪽으로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사는 잘 하셨어요?”
“잘 했지.”
김 씨 뒤쪽에 보이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말로 가로등지기여?”
“참말일세!”
“테레비에 나오는 가로등지기가 맞어.”
“이보시오? 댁이 테레비에 나오는 가로등지기요?”
“예, 맞습니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어이! 재채기는 잘 있는가?”
“안녕하세요?”
재채기를 보여 주며 복화술을 했다.
“오메오메 재채기가 인사를 헌다.”
노인들이 한꺼번에 말을 하는 바람에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인기 폭발이었다.
복화술로 노인들과 한참 통화를 했다.
김 씨가 노인들에게서 전화기를 빼앗아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뒤 김 씨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해서 어째. 바쁜 사람한테 못할 짓을 했구먼.”
“아닙니다. 저도 즐거웠어요. 고향 분들이 참 좋으시네요.”
“고맙소! 참말로 고마워! 객지에 나가 있었더니 조금 거리를 둡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우리 동네 스타 대접을 받고 살게 되었소.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하고 아는 사람은 이 동네 생기고 처음이라면서 나를 명사 대접을 한다니까. 허허허!”
“아저씨 인물이 좋으셔서 인기가 좋은 거겠죠.”
“내가 무슨 인물이 좋아. 거 뭐, 우리 동네에 혼자 사는 참한 할망구가 하나 있는데, 거기하고 통화하는 걸 보고 난 뒤로 자꾸 나한테 말을 거네. 허허허!”
“할머니께서 아저씨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남우세스럽게 친구는 무슨···. 이놈 나비야. 이리 와서 인사 좀 드려라. 가로등지기 아저씨여. 저놈 봐라, 이리 오라니까 저쪽으로 달아나네. 청개구리라니까. 허허허!”
“나비는 잘 있지요?”
“그럼, 잘 있지. 처음에는 낯설어서 그런가 발발발 떨기만 하더니 지금은 온 동네를 싸돌아다녀. 서울 살 때는 내가 일 나가면 나비 혼자 그 좁은 방에 갇혀 살았잖어. 그때 생각하면 눈물 나.”
“넓은 곳으로 가서 나비가 좋아하겠네요.”
“말두 마. 여기 오니까 천지 사방이 다 놀이터잖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났지 뭐. 쥐를 얼마나 잘 잡는지 몰러.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것을.”
“서울 올라오실 일 있으면 전화 주세요.”
“서울? 다신 안 가. 거길 왜 가. 그라고 인자 전화하지 마. 나도 안 할 테니까. 테레비에나 자주 나와. 연기자가 연기를 해야지.”
“명심하겠습니다.”
“건강 조심허고. 건강해야 연기도 하지.”
“예, 아저씨!”
“그럼 전화 끊네.”
“들어가세요.”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뿌듯함과 흐뭇함이 밀려온다.
배우가 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