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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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전
방송국 밖으로 나오자 냉기가 옷 속을 파고들었다.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로 보았던 차 세 대가 나란히 주차해 있는 곳에 스텝들이 촬영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혁이 형!”
백곰이 우혁에게 손짓을 했다.
우혁의 밴이 한쪽에 대기하고 있었다.
우혁은 차에 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스타일리스트 고현주가 우혁의 머리 스타일을 매만져 주고, 얼굴 화장도 손을 보았다.
“힘들지?”
백곰이 물었다.
“별로 힘든 줄 모르겠어. 재미있네.”
“재미있다고?”
“드라마 촬영하고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 느끼는 것도 많고.”
사실이었다. 즐겁기도 했고,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될 것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우진석이 가지고 있는 큐시트에는 진행 순서와 핵심 사항 이외에는 적혀 있는 게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순간적인 판단에 의한 액션과 애드리브였다.
우혁은 그 순발력과 재치에 감탄했다.
‘아도’ 멤버들의 과장된 리액션이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으나 곧 적응이 되었다.
“이거 한 잔 마셔.”
백곰이 보온병에 담아 온 음료를 컵에 따라 우혁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우리 엄마가 보낸 건데, 몸에 좋은 거야. 뜨거우니까 입천장 데지 않도록 조심해.”
“너 마시라고 보낸 것 같은데 날 주면 어떡해?”
“집에 많아. 마셔.”
“현주 씨, 드실래요?”
“저는 이미 마셨어요. 어서 드세요.”
고현주는 뒤쪽에 준비해 두었던 두터운 점퍼를 꺼내며 대답했다.
“날씨 추우니까 이거 입고 가세요. 협찬 받은 거예요.”
고가의 유명 브랜드 점퍼였다.
차 문이 열리면서 어시스트 스타일리스트 송유미가 들어왔다.
“조금 서둘러야겠는데, 곧 촬영 시작할 것 같아.”
차창 밖을 살피던 백곰이 말했다.
“신발 벗길게요.”
송유미가 우혁의 신발을 벗기려고 했다.
“내가 벗을게요.”
“오빠, 움직이지 마세요.”
우혁이 허리를 굽히려는데 우혁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고현주가 말했다.
우혁은 할 수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송유미는 우혁의 신발을 벗긴 뒤 양말 위에 양말 하나를 더 신겼다. 그러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서 발목에서 무릎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발 토시를 신겨 주었다.
“손 주세요.”
송유미가 이번에는 손을 요구했다.
손을 주면 장갑을 끼워 주었다.
장갑을 다 끼우고 난 뒤에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핫팩을 꺼내 우혁의 손에 하나, 외투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었다.
“새로 나온 핫팩이에요.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추울 때마다 손으로 주물러 주세요. 그러면 따뜻해질 거예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떨어지니까 버리고 새 것을 사용하세요.”
송유미가 핫팩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핫팩 사용 방법 정도는 잘 알고 있는데. 지난겨울 드라마 촬영 기간 내내 사용했던 것이고.
“고마워요, 유미 씨.”
“아닙니다.”
송유미가 환하게 웃었다.
송유미는 사흘 전에 새로 들어온 어시스트다.
어시스트는 대체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노동 강도는 말도 못하게 세기 때문이다.
메인 스타일리스트 고현주는 인간적인 사람이고 다른 팀의 어시스트보다 월급도 많이 챙겨 주는 편이지만 어시스트는 일 년을 못 버텼다.
이전 어시스트는 며칠 전에 몸이 좋지 않다면서 그만 두었다.
실제로 몸이 약해서 힘겨워했다.
그만 두면서 우혁에게 전화까지 해서 그동안 고마웠고 갑자기 그만 두게 죄송하다며 울먹일 만큼 경우도 밝았다.
이 일을 좋아했고 계속하고 싶어 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그만 두었다.
송유미는 그 뒤에 투입된 어시스트인데 눈치도 빠르고 달리기도 빠르고 시키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체력도 좋아서 몸집은 작지만 백곰을 업고 세 걸음이나 걸을 수 있을 만큼 힘도 장사였다.
백곰을 업게 된 것은 송유미를 처음 만났을 때 백곰이 한 질문 때문이었다.
“몸은 건강하세요? 저번 어시스트는 아파서 그만 뒀거든요.”
“건강합니다. 오빠 업을 수도 있습니다.”
“못 업어요.”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빠 업으면 저녁 사주십시오.”
“안 업어도 돼요. 저녁 사줄게요.”
“공짜는 싫습니다. 업히십시오.”
그러더니 백곰에게 등을 보이고는 백곰을 재촉했다.
백곰은 할 수 없이 송유미 등에 업혔고, 송유미는 백곰을 업었을 뿐만 아니라 세 걸음이나 걸었다.
고현주는 송유미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얼마 못 버티고 떠나고 나면 가슴 아프니까.
처음 몇 번은 어시스트가 그만 둘 때 엉엉 울기도 했다.
아무리 잘해 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애원해도 많은 어시스트들이 고현주를 떠나갔다.
그래서 이제는 정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대하는 건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뿐.
그런데 송유미는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이 간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양말 하나를 사 오라고 했는데, 발 토시와 핫팩까지 알아서 사 왔다.
우혁의 신발을 벗기고 양말을 신겨 주는 모습을 보고 예뻐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칭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걸까? 예뻐 죽겠다.
“형! 이제 나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백곰이 차창 밖을 살피며 말했다.
송유미가 얼른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혁이 차 밖으로 나가면 송유미는 고현주가 들고 나오는 점퍼를 받아들어 우혁에게 입혀 주었다. 까치발을 하고서.
우혁은 무릎을 구부려 송유미의 키에 맞춰 주었다.
“핫팩은 가로등지기 외투 상의 주머니에 있습니다. 파이팅!”
우혁에게 점퍼를 입힌 뒤 송유미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무릎까지 구부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뒤에서 고현주가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린다.
백곰도 히죽히죽 웃는다. 송유미가 귀여워 죽겠다. 얼굴도 귀엽고, 목소리도 귀엽고, 말투도 귀엽고, 하는 짓도 다 귀엽다.
***
야외 촬영이 시작되었다.
멤버들이 타고 갈 세 대의 차량 앞에 멤버들이 모였다.
각오를 다지는 의미로 이소룡 흉내를 내며 ‘아도’ 구호를 외쳤다.
“아름다운 도전!”
우진석이 선창하고.
“아도!”
여섯 명이 동시에 이소룡 흉내를 내며 구호를 외쳤다.
우혁도 구호 ‘아도’를 외치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소룡 흉내를 냈다.
“같은 포즈를 취하는데 어쩜 저렇게 멋있냐!”
“내 말이!”
구경을 하던 스텝이 우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근데 우혁 씨는 너무 멋있는 거 아니야?”
정중앙이 투덜거렸다.
“두 분 앞으로 나와 보세요.”
우진석이 정중앙과 우혁을 불러냈다.
“아도 구호 외치면서 포즈 좀 취해 주세요. 아름다운 도전!”
“아도!”
우혁과 정중앙이 포즈를 취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중앙이 폼은 눈뜨고 못 봐주겠다. 그것도 몸이라고.”
방문수가 비아냥거렸다.
“그럼 형이 해봐.”
정중앙이 발끈했다.
우진석이 우혁에게 한 번만 더 해달라고 부탁한 뒤 방문수와 포즈를 취하게 했다.
촬영 스텝들이 방문수의 폼을 보고 키득거렸다.
“웃냐? 니들은 다를 것 같애. 자신 있으면 나와서 해봐.”
방문수가 버럭 했다.
한바탕 멤버들의 만담이 이어진 뒤 우진석이 멤버들을 진정시켰다.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출발해야 돼요. 시간제한은 오늘 밤 10시까지입니다. 주택가를 다니게 되기 때문에 촬영 스텝이 같이 움직이면 주민들께 방해가 될 수 있고, 주민 분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 저희도 촬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 팀에 카메라맨 한 명과 피디 한 명만 따라갈 거예요. 주민 분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없게 조심하세요. 잡히면 못 움직인다는 거 아시죠?”
“형 팀이 제일 불리할 것 같은데. 두 사람 다 인기가 장난 아니잖아. 제발 주민 분들한테 들켜서 꼼짝도 못해라.”
우후가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우혁 씨도 가로등지기 복장으로 가면 안 되겠는데요.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려들겠어요.”
“점퍼 지퍼 올리면 가로등지기 복장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모자하고 마스크 착용하겠습니다.”
“저도 모자, 마스크 가지고 오겠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출발!”
우진석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각 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 모자랑 마스크!”
송유미였다.
촬영 장면을 보고 있다가 모자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쏜살같이 차로 달려가 모자와 마스크를 가지고 온 것이다.
우진석이 ‘무장을 단단히 해서 주민 분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없게 조심해 주세요. 잡히면 못 움직인다는 거 아시죠?’라는 멘트를 듣자마자 송유미는 이미 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혁이 송유미에게서 모자와 마스크를 받아드는 사이 송유미는 우혁의 점퍼 지퍼를 올려주었다.
“고마워요.”
“꼭 1등하세요. 파이팅!”
“파이팅!”
우혁은 서둘러 차로 되돌아갔다.
우진석이 매니저에게 모자를 챙겨오는 동안, 우혁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켜고서 우진석을 기다렸다.
차 안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우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찍고 있었다.
“벌써 왔어요? 동작 빠르네요.”
우진석이 조수석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서울에 가로등 없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디 추천할 만한 데 없나요?”
우진석이 우혁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가로등을 달아야 할 곳을 아세요?”
“가봐야 알겠습니다만, 몇 군데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 이 게임 우리가 이기겠는데요. 거기가 어디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살고 있는 곳이라구요? 일단 가봅시다.”
차를 몰아 우혁이 살고 있는 동네로 향했다.
우혁의 동네에 도착해 차를 주차했다. 뒤를 쫓아온 제작진도 차를 주차한 뒤 20대 후반의 여자 피디와 30대 초반의 카메라맨이 내렸다.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옛날에 제가 살던 곳하고 비슷해서 정감이 가는 동네네요. 댁은 어디세요?”
차에서 내렸을 때 우진석이 우혁에게 물었다.
“여기서 도보로 10분 거리입니다. 저희 집이 있는 골목은 큰 길에서 멀지 않고,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이쪽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가로등 필요한 곳이 나올 거예요.”
“가봅시다.”
위쪽으로 올라갔다.
두 시간 동안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가로등이 설치되어야 할 곳을 네 군데 찾았고, 깨진 가로등 두 개를 발견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좁고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여기 가로등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네요. 이 시간에 이렇게 으슥한데 밤이 되면 무섭겠어요.”
우진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두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골목을 누비느라 숨이 찼던 것이다.
그때 마침 한 할머니가 집에서 나왔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우혁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누구여?”
“이 동네 사는 사람이에요.”
“그려?”
“할머니, 여기 어둡지 않으세요?”
“어둡지. 밤에는 무서워서 못 다녀.”
“여기 가로등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등이 있음사 좋지.”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우진석이 할머니에게 질문했다.
“날 어두워지기 전에 찬거리 좀 사려고.”
할머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예예.”
우혁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골목 한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혁 씨, 무슨 생각하세요?”
“아름다운 도전, 프로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나저나 우리 여기 좀 쉬었다 가죠.”
“이쯤에 가로등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우혁이 손으로 골목 모퉁이를 가리켰다.
“그러게요.”
우진석이 우혁이 바라보는 곳을 쳐다보았다.
“저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이런 곳이 더 있을 거예요.”
우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우혁 씨 같이 갑시다. 카메라를 두고 혼자 가면 어떡해요.”
“여기 계세요. 제가 둘러보고 이리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럴 수야 없죠. 같이 갑시다.”
우진석은 우혁을 뒤따라가며 카메라를 향해 멘트를 쳤다.
“가로등이 필요한 곳을 하나라도 더 찾고 싶은 모양입니다. 드라마에서만 가로등지기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가로등지기네요. 표정을 보면 아는데 우혁 씨한테는 진정성이 느껴져요. 지금 우혁 씨한테는 방송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네요. 빨리 갑시다.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아름다운 도전! 아도!”
우진석이 구호를 외치고는 서둘러 우혁의 뒤를 따라갔다.
골목을 누비는 우혁 일행의 머리 위로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