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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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날 거예요
정 실장은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젯밤 윤 실장과 과음을 한 탓도 있지만 오디션에 떨어졌을 강우혁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윤 실장한테 전화해서 오디션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았을 때 착신음이 울렸다.
백 대리였다.
백 대리도 오늘 하루 종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지.
강우혁을 만나러 간다면서 대본을 한 아름 챙겨 나갔다.
회사 복귀하지 말고 바로 퇴근해서 편히 쉬라고 일렀는데 왜 전화를 걸었지?
지금쯤 강우혁을 만났을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실장님! 합격했어요.
귀청 떨어질 뻔했다.
“뭐라고?”
– 혁이 형이 홍길동 역 따냈다구요, 실장님!
“정말이야?”
정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예, 실장님!
“예쓰!”
정 실장이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놀라 정 실장을 보았다.
좀처럼 흥분을 하지 않는 정 실장이었기에 직원들 눈에는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양반나리가 아니던가.
한일 국대 축구전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터트려도 조용히 앉아서 박수만 치는 양반나리.
“방송사에서 연락 왔어?”
– 문웅현 피디 선생님께서 멋진 목소리로 직접 전화를 거셨더라니까요.
“우혁 씨는? 옆에 있으면 좀 바꿔줘.”
– 잠시만요.
– 예, 실장님!
우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 고맙습니다. 실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들러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악담이나 지껄였지 제가 한 게 있나요.”
– 그 말씀 덕분에 마음 비우고 차분하게 오디션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튼 정말 기분 좋네요.”
– 내일 회사로 찾아뵙겠습니다.
“내일은 주말입니다. 저는 출근합니다만 백 대리가 쉬어야 하니까 월요일에 나오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 실장은 책상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정 실장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좀 전까지 드리워져 있는 그늘은 흔적도 없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돌이켜보니 오디션 준비 과정에서 도와준 게 아무것도 없다.
자기뿐만 아니라 회사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속사야! 있으나마나잖아.
다른 소속사에서는 심사위원에게 로비를 하든 매수를 하든, 하다못해 식사 대접이라도 했을 텐데, 우린 뭘 했지?
“실장님, 무슨 일이에요?”
이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강우혁 씨가 홍길동 오디션에 합격했대.”
“정말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대리가 물었다.
이 대리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정 실장을 바라보았다.
“사극 한 번 출연한 적이 없는 배우가 어떻게···?”
이 대리가 말끝을 흐렸다.
짚이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우리 대표님이야.”
이 대리가 넘겨짚었다.
안 대표가 수완을 발휘한 거라고 여기는 거였다.
“우리 대표가 뭘 한 게 있는데?”
정 실장이 이 대리에게 힐책성 질문을 던졌다.
이 대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힐책에 당황해 눈만 껌뻑였다.
누군가를 뒤에서 험담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정 실장이 직원들 보는 데서 안 대표를 험담한다.
안 대표는 정 실장의 외삼촌이 아닌가.
그래서 직원들은 절대 정 실장 듣는 데서는 안 대표 험담을 하지 않는데 정 실장 본인이 안 대표 디스를 하고 있다.
정 실장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는 이 대리를 두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대표실 앞에 도착해 노크한 뒤 대표실로 들어갔다.
“강우혁이 오디션 합격했답니다.”
“그래?! 여어, 경사로구만!”
안 대표가 놀라워했다.
“김길빈이도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하지 않았어?”
“참가했는데 김길빈은 떨어지고 강우혁이 붙었습니다.”
“문 피디가 김길빈을 떨어뜨릴 사람이 아닌데.”
“그만큼 강우혁이 오디션을 잘 봤다는 의미겠죠.”
“강우혁 그 친구 대단하네.”
“적진에 혼자 쳐들어가서 1만 대군을 무찌른 거나 다름없죠.”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습니다.”
“왜?”
“강우혁 씨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서 말입니다. 이럴 거면 강우혁 씨 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오디션 준비하고, 혼자 성과 거둬서 돌아오는 동안, 회사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정 실장이 옆에서 응원해 줬을 거 아니야. 배우한테는 그게 가장 큰 도움이지.”
“마음으로야 응원했지만 김길빈 들러리가 될 수 있으니까 오디션 나가지 말라면서 초를 쳤을 뿐입니다.”
“회사에서 아무것도 지원 안 해 줬다고 강우혁이 섭섭하다고 하던가? 그럴 친구는 아닌 것 같던데.”
“그렇게라도 했으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덜하죠. 저보고 고맙답니다.”
“인성이 된 친구야.”
“이런 식이면 3년 뒤 재계약, 제가 말릴 수도 있습니다. 와우에서는 본부장이 심사위원을 찾아가서 식사 대접도 하고 그랬답니다.”
“험!”
안 대표가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달랬다.
“강우혁한테 지원한 차가 뭐지?”
“5년 전에 뽑은 건데, 20만이 훨씬 넘었습니다.”
“아직 쓸 만하···.”
“외삼촌!”
“알았어알았어. 새 차 하나 뽑아 줘.”
“옙!”
정 실장이 씩 웃는다.
“그리고···.”
“또 뭐!”
“심사위원들 뵙고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시죠.”
“내가?”
“제가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분들을 상대할 급이 아니잖아요.”
“알았어. 그럴게. 두 탕 뛰어야겠구만.”
“두 탕이라니요?”
“이 국장하고 문 피디, 앙숙이라 붙여 놓으면 큰일 나. 밥상 엎을지도 몰라. 그러니 두 탕을 뛸 수밖에.”
“아무튼 앞으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정 실장이 알아서 좀 챙겨. 필요한 거 있으면 그때그때 얘기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정 실장이 나고 나서 안 대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조카지만 마음에 든다.
배우 챙기는 모습이 옛날 자기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강우혁 그 친구, 여간내기가 아니다.
“어떻게 그 까다로운 이 국장, 문 피디 마음을 움직였지?”
***
– 누구요?
걸걸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문 피디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강우혁입니다.”
– 어, 그래! 강우혁 씨!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 당장 만납시다. 거기 어디요?
“피디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시면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문 피디가 장소와 위치를 알려주었다.
“지금 곧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백곰이 술에 취한 것이다. 겨우 맥주 한 병에.
대리기사를 불렀다.
백곰을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가려고 했지만 백곰이 펄쩍 뛰었다.
“안 돼! 피디님을 뵙는데 매니저가 같이 가야지.”
“너 지금 취했어.”
“안 취했어. 멀쩡해.”
혀가 꼬부라졌는데···.
“형, 데려가 줘. 제발! 문 피디님 직접 뵙고 싶단 말이야. 인사만 드릴게. 응? 응? 응?”
“그래, 같이 가자. 대신 비틀거리면 안 돼. 초면에 취한 모습 보이면 안 되잖아.”
“알았어. 걱정 마.”
걱정 된다.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백곰이 잠들기를 바라며 말을 걸지 않았다.
고맙게도 잠이 들었다.
백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 실장이었다.
“예, 실장님! 강우혁입니다.”
– 백 대리는요?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 아, 그래요. 지금 어디세요?
“문 피디 만나 뵈러 가는 길입니다.”
– 지금 문 피디 만나러 가신다구요?
“예.”
– 각오 단단히 하고 가셔야 될 거예요. 문 피디, 배우들한테 가혹하기로 유명하거든요. 특히 첫 만남 때 군기를 잡느라고 굉장히 무섭게 할 겁니다. 김길빈은 문 피디 처음 만났던 날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이것저것 숙제도 많이 내줄 거예요. [홍길동전>에 대해서 질문도 많이 할 거구요.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가 따라갔으면 좋겠는데요.
“백 대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약속 장소인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백곰이 어떻게 알고 벌떡 일어났다.
차에서 기다렸으면 했는데 기어이 따라 나섰다.
약속 장소인 오피스텔 호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노크를 했다.
“어서 와요.”
장 작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 피디의 서재이자 개인 사무실이었다. 집에 들어갈 상황이 되지 못하면 침실로 사용하기도 하는.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서자 문 피디가 의자에 앉은 채 강우혁을 흘낏 쳐다보더니 의자를 가리켰다.
그때 백곰이 문 피디를 향해 머리를 깊이 숙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피디 선생님! 우리 형 뽑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강우혁 매니저 백동수입니다.”
“혹시 내 전화 받은···?”
“예, 제가 받았습니다. 우리 형,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가시게? 그러지 말고 앉아요. 매니저가 있어야 일정 짜기가 수월할 테니까.”
“제가 술을 좀 마셨습니다. 원래 술을 못 마시는데 형이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뻐서 맥주 한 병 마셨습니다. 피디 선생님을 꼭 뵙고 싶어서, 인사만 드리려고 왔습니다.”
“축하주를 하셨구만!”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언제 마시겠습니까. 축하주 마시려고 모이신 거죠? 근데 술이 없네요?”
“한잔할래요?”
“딱 한 잔 정도는 더 마실 수 있습니다.”
문 피디가 일어나더니 양주 한 병을 들고 나타났다.
우혁이 말릴 새도 없이 백곰은 문 피디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러고는 완전히 취해 버렸다.
“대표님 목소리 처음 들었을 때 소도둑놈일 줄 알았어요.”
“허허!”
문 피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직접 뵈니까 진짜 소도둑···. 아니지아니지.”
백곰이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허허허허!”
문 피디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백동수 씨, 말 놔도 되지?”
“그럼요. 몸무게 순으로 하면 제가 형이지만 나이로 하면 제가 한참 어리죠. 피디님, 제가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 아무한테나 형이라고 하는 사람 아닙니다. 영광인 줄 아세요.”
“우하하하하···.”
문 피디는 백곰이 입만 열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백곰이 슬그머니 소파로 가더니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때부터 문 피디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이게 바로 그 악명 높은 군기잡기인가?
하지만 우혁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원작의 줄거리는 물론이고, 등장인물을 줄줄 꿰고 있는데다가 허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장 작가가 감탄할 정도였다.
오디션을 준비하며 [홍길동전> 관련 자료를 섭렵하기도 했고, 허균을 추체험하지 않았던가.
문 피디는 인터넷에 떠도는 우혁의 승마, 검도, 궁술, 그리고 [생강> 동영상 속 인물이 본인 맞는지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문 피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좋았는지 캐스팅 추천까지 청했다.
“권선자 선생님 어떠신지요?”
“권선자 선생 좋지. 그런데 그분이 날 싫어해서 안 오려고 할 거야. 내가 배우들한테 막 대한다고 거칠게 항의한 적이 있거든. 그 뒤로는 아무리 섭외를 해도 응하지 않으시더라고.”
“제가 한번 부탁드려 볼까요?”
“쉽지 않을 텐데···.”
“지금 전화드려 보겠습니다.”
권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선생님! 저하고 작품 하나 안 하실래요?”
– 나야 좋지. 드라마야?
“예.”
– 피디가 누군데?
“문웅현 피디님이십니다.”
– 문웅현 피디? 그 양반 성격 아주 고약한데. 어쩌다 그 양반한테 걸렸어.
“문 피디님께서 선생님과 작업하고 싶어 하십니다.”
– 그럴 리가 있나. 그 양반, 날 싫어할 거야. 웬수처럼 여길걸.
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문 피디가 전화를 달라고 손짓했다.
“피디님이 옆에 계신데 선생님과 통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잠깐만요.”
전화를 문 피디에게 건넸다.
“선생님 목소리가 하도 커서 다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왜 싫어합니까. 선생님이 절 미워하시지.”
– 배우들한테 함부로 하시니까 그러지요.
“옛날에나 그랬지 지금은 안 그럽니다.”
– 전화 바꿔 줘요. 피디님하고는 할 말 없으니까.
캐스팅은 물 건너갔구나 실망하며 우혁에게 전화를 넘겼다.
– 그려. 하자. 강우혁이가 하자는데 해야지.
“고맙습니다, 선생님! 들어가세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려. 들어가.
전화 끊고 문 피디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하시겠답니다.”
“우리 드라마하시겠대?”
“예.”
“허허허. 조짐이 좋구만. 권 선생 출연하면 시청률 기본은 한다는 전설이 있거든.”
그때 백곰이 고개를 들고서 소리를 빽 질렀다.
“기본이 아니라 대박 날 거예요. [홍길동전> 시청률 1위 할 거라구요.”
그러고는 고개를 뚝 떨구더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곤다.
문 피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