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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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연기를 위해
“어디 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안방에서 나오는 우혁을 발견한 아내가 물었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올게.”
우혁은 현관문 쪽으로 가며 대답했다.
“몸은 괜찮아?”
“멀쩡해!”
걱정스런 표정의 아내에게 우혁은 웃어 보였다.
“다녀와. 밥 맛있게 해놓을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계단을 가볍게 뛰어올랐다.
몸이 가볍다. 지상으로부터 5센티미터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돈 뒤 인근의 근린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운동 시설이 있어서 아침이면 운동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했다.
며칠 전에만 해도 다섯 개도 채우지 못했는데 오늘은 열 개를 할 수 있었다.
지난밤의 추체험으로 자신에게 전이된 이소룡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소룡을 추체험했던 지난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이소룡을 한 번쯤 흉내 내지 않은 소년이 있을까.
“아뵤!”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쓸며 이소룡 특유의 기합 소리도 한 뻔쯤 흉내 냈을 것이다.
우혁도 마찬가지였다.
개그맨들이 우스꽝스럽게 흉내를 내면서 이소룡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었다.
어젯밤 이소룡 추체험을 한 뒤로 이소룡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디션에서 발차기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서 선택한 사람이었는데 이소룡은 전설적인 무술인이기 이전에 천생 배우였다.
이소룡의 배우 경력은 33년.
그의 일생과 같은 기간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소룡을 배우가 아니라 무술인으로 존경하고 전설적인 무술인, 마초의 우상, 절권도의 창시자로 떠받든다.
그러나 이소룡은 생후 3개월에 [금문녀>라는 영화로 데뷔해 18세가 되었을 때 이미 스무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배우 생활을 했다.
이소룡의 삶을 추체험한 우혁은 연기자로서 이소룡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소룡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무술을 연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술을 통해 배우에게 필요한 덕목인 체력, 집중과 몰입, 모션, 액션, 호흡, 딕션, 기합, 시선 처리, 워킹을 터득했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엄청난 흡인력이다.
그 모든 것이 무술 연마를 통해 습득된 것이리라.
무술만 잘한다고 해서 그런 흡인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그는 분명 무술 고수이지만 배우로서 카메라 앵글, 조명, 상대 배우의 위치, 앵글 밖까지 고려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특유의 기합 소리는 무술인의 그것이 아니라 연기자의 호흡과 딕션이다.
세상 그 어떤 무술가도 그런 기합을 내지는 않는다.
그의 기합 소리 없이 퍽, 윽, 파바박 등과 같은 일반적인 격투 음향만 있다면 어땠을까?
‘치킨 무 없이 치킨을 먹는 기분이겠지.’
우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소룡을 추체험하고 나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배우로서 이소룡의 진면목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우혁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우혁은 그동안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작품만 만나면 스타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소리.
때를 기다려?
때는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소룡은 말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역시 웃기는 소리.
남이 아니라 어제에 자신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
우혁은 연기에 대해 자만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한 착각이었다.
이소룡은 기본에 충실했고, 그 기본을 매일매일 연습했다.
이소룡에 비해 자신은 게으름뱅이였다. 연습은 하지 않으면서 운만 탓하는 게으름뱅이.
연기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하지 않았다.
연기자로서 뜨지 못한 건 당연하다.
혹시 운이 좋아서 떴다 해도 좋아할 일이 아니다.
곧 밑천이 바닥날 테니까.
우혁은 턱걸이를 하며 그동안의 자신을 뼈아프게 반성했다.
턱걸이 열 개를 했을 때 힘에 겨웠으나 스무 개를 채우고서 내려왔다.
추체험 데이터베이스의 안내에 따르면 추체험으로 전이된 인물의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진된다고 했다.
소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전이된 능력을 부단히 활용해야 한다.
‘오디션에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오디션에서 무술 실력을 보여 줄 시간은 매우 짧다.
한 가지 기술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소룡의 쌍절곤을 습득해 오디션에서 보여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쌍절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지금은 빈손이니 발차기라도 해볼까.’
문득 어젯밤 이소룡을 추체험하면서 어느 인터뷰에서 이소룡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1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상대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한 가지 발차기를 1만 번 연습한 상대를 만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발차기를 1만 번?
오디션에서 발차기 하나만 제대로 보여 줘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뒤돌려 차기가 좋겠지.
“되려나?”
발차기 중에서 가장 화려한 뒤돌려 차기.
군대에서 태권도 단증을 땄기 때문에 태극 품새 8장과 발차기의 자세 정도는 취해 보았다.
운동 신경이 나쁜 편이 아니고 무엇이든 열심히 했기 때문에 고참들로부터 자세가 좋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전역 이후 발차기를 할 기회가 전혀 없어서 자세가 나올지 모르겠다.
다리 근육을 풀어 준 뒤 자세를 취하고서 뒤돌려 차기를 가볍게 해보았다.
쉬익!
군대 있을 때보다 자세가 더 잘 나온 것 같다.
1만 번을 하라고 했겠다.
일단 100번만 해보자.
50번이 지나자 숨이 찼다.
“어떤 것에도 한계를 두지 말라. 한계를 두는 순간 그렇게 되고 만다.”
이소룡의 지론을 떠올린 뒤 다시 발차기를 시작했다.
100번을 채웠다.
1만 번을 채우려면 앞으로 100일 동안 매일 100회씩 해야 된다.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방만해서는 안 된다.
선물을 준 아기를 위해서라도 피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평소의 우혁이라면 발차기를 50번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계까지 몰아 붙였다.
100번을 채우고 나자 온몸에 땀이 흘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으나 기분만은 상쾌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을 때의 쾌감이란!
연기는 체력이 기본이다.
부실한 체력으로 좋은 연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명배우는 한 줌밖에 되지 않은 육신을 쥐어짜내 명연을 펼치기도 하지만 신인에게는 어림없는 짓이다.
그림에 대한 기본 실력도 연마하지 않고 피카소를 흉내 내는 것처럼 무모하다.
워킹, 모션, 액션은 물론이고 호흡, 딕션, 표정, 시선 처리에도 체력이 그 근간이라는 걸 모르는 연기자는 없다.
앞으로 별 일이 없는 한 매일 아침에 이 공원에 와서 발차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벤치에 걸어 두었던 트레이닝복 상의를 들어 올렸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절친 설민환이었다.
민환은 우혁의 대학 동문인 데다가 체격도 비슷하고 동갑이라 금세 친해졌다.
연기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했다.
무명 시절을 겪으며 연극,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 단역을 함께 출연했다.
하지만 민환은 현재 스타급으로 떠서 우혁과는 레벨이 다른 배우가 되었다.
스타로 뜨면 사람이 달라진다지만 민환은 달랐다.
처음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여전히 해맑고 겸손하다.
우혁과의 우정도 변함이 없었다.
우혁의 전작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도 민환이 적극적으로 감독에게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은 우혁이 처음으로 맡은 무게 있는 조연이었다.
연기를 잘만 하면 부각될 수 있는 캐릭터였으나 안타깝게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 그쳤다.
민환은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이 결정돼 한 달 전부터 차기작 촬영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 혁아, 부탁 하나 들어 주라.
“말해 봐. 뭔데?”
민환은 우혁에게 해로운 일을 부탁할 친구가 아니다.
아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부탁이라는 걸 한 적이 없다.
민환에게 신세를 갚을 기회였다.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들어줄 생각이다.
– 까메오가 갑자기 펑크를 냈지 뭐야. 감독이 나한테 적당한 배우 없냐고 부탁을 하더라고. 네가 딱 떠오르지 뭐야. 혹시 너 오늘 시간 되니? 시간 되면 부탁 좀 하자.
“촬영장이 어딘데?”
– 가평 두밀리라는 곳이야. 차로 1시간 반이면 올 수 있어.
“갈게.”
차가 퍼져서 카센터에 맡겼다는 사실을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 되니까.
– 10시까지 올 수 있지?
지금이 8시니까 택시를 타고 가면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 의상은?”
– 스타일리스트한테 말해서 내가 준비할 테니까 넌 몸만 오면 돼. 까메오지만 임팩트가 강렬해. 다른 배우한테 주기가 아까운 역할이야. 시나리오하고 콘티 이메일로 보낼 테니까 읽어 봐. 콘티 보면 알겠지만 대사가 별로 없어서 크게 부담되지 않을 거야. 액션 씬이 있는데 무술 대역배우를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이따 보자.
신세를 갚으러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세를 지는 느낌이다.
까메오 역할은 일반 단역 배우와 달리 임팩트가 강하다.
잘만 하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우혁은 자신이 카메오를 할 만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배우가 펑크를 내지 않았다면 우혁에게 넘어올 리가 없는 배역이다.
다급해서 어쩔 수 없이 부른 듯하다.
우혁이 그 배역을 하는 순간 그것은 카메오가 아니라 단역일 뿐이다.
비록 단역이고 땜빰이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