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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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 박예진 씨 캐스팅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피디가 전화로 우혁에게 알려왔다.
문 피디의 오피스텔에서 박예진을 특재 역으로 캐스팅하기로 결정한 지 꼭 1주일 만이었다.
“차기작이 정해졌나 보죠?”
– 그건 아니에요.
“소속사 반응은 어떤가요?”
– 심드렁합니다. 박예진 씨에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것으로 봐서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피디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절을 당한 목소리였다.
박예진을 여주로 결정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니 실망스러울 것이다.
박예진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캐스팅 2, 3순위까지 정했을 때, 이 피디는 자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예진을 캐스팅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1주일 동안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박예진 씨 의사는 들어보셨나요?”
– 직접 통화를 못하다가 오늘 오전에 간신히 통화를 했는데 완곡하게 거절하더라구요.
“그랬군요.”
소속사도 적극적이지 않고 본인도 싫다고 했다면 캐스팅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문 피디님께는 보고 드렸나요?”
– 예.
“피디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 별 말씀 없이 2순위 캐스팅 작업 시작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전화했는데 이미 드라마 출연 계약이 끝난 상태더라구요. 그것도 피디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그럼 3순위 캐스팅 해야겠군요. 그것도 안 되면 여주 캐스팅 논의 다시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 죄송하지만 박예진 씨를 직접 만나봐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요?”
– 예. 박예진 씨가 우혁 씨와 함께 작업하는 건 좋다고 하더라구요. 배역도 마음에 들구요.
“그런데 왜 안 한다는 거죠?
– 그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는 자세한 말을 안 하더라구요.
배역과 상대 배역이 마음에 든다는 말은 예의상 한 말인 것 같다.
이 피디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박예진의 캐스팅이 여의치 않다니 아쉽고 실망스러웠다.
특재 역할에 박예진만큼 어울리는 연기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박예진에게 섭섭해 할 필요도 없고.
“본인이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제가 만나서 무얼 하죠?”
– 통화를 하면서 갈등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조금만 당기면 할 것 같더라구요. 저는 역부족이고 문 피디님께 부탁하자니 무섭고요.
박예진이 갈등을 한다? 그렇다면 여지가 있다는 말인데···.
–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건 압니다. 배우님이 박예진 씨한테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하면 캐스팅 설득하려고 하는구나 알아채고 만나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포기할 수밖에 없구요. 문 피디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고 제 개인적으로 부탁드리는 겁니다. 놓치기 너무 아까워서요.
팬심이든 열정이든 이 피디의 근성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전화는 해보겠습니다.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어서 받기나 할지 모르겠네요.”
– 고맙습니다. 문 피디님, 말씀은 안 하시지만 박예진 캐스팅 불발로 실망이 크신 것 같더라구요.
왜 안 그렇겠는가. 믿었던 김길빈에 이어 두 번째인데.
문 피디는 박예진이 스케줄만 비어 있으면 달려올 줄 알았을 것이다.
문 피디의 영향력이 옛날만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성적이 점점 떨어지지 않았던가.
만약 성적이 과거처럼 좋았다면 김길빈이나 박예진의 반응도 달랐을지 모른다. 씁쓸하지만 세상사 이치다.
“이 피디님께서 문 피디님 용기 북돋아드리십시오. 실망이야 되시겠지만 좋은 배우들 많으니까요. 그럼 전 박예진하고 통화해보겠습니다.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 부탁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참, 그리고 문 피디님께서 오늘 오피스텔에 들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피디와 통화를 끝낸 뒤 연락처 목록에서 박예진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역시···.
이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네요.”
– 아···.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뭐. 그렇게 알고 3순위 캐스팅 시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 예.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끝냈을 때였다.
착신음이 울렸다.
박예진이었다.
막상 전화가 오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말을 놓기로 했던가?
[서울 가로등> 촬영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박예진의 간곡한 부탁으로 말을 놓기로 했다.단톡방에서 톡을 주고받을 때에도 그렇게 했고.
“여보세요.”
– 오빠, 전화 주셨네요?
“여행 잘 다녀왔어?”
– 예.
“···.”
– 그렇지 않아도 전화드릴까 했었는데···.
전화를?
– 상의드릴 게 있었거든요. 지금은 결정을 했지만요.
알 것 같았다. [홍길동전> 캐스팅에 대해 상의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전화를 걸어볼 걸 그랬다.
– 기분 좋네요. 오빠가 저한테 전화도 다 주시고. 오늘 커피 한 잔 사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자. 어디니?”
SBC 방송국 근처였다.
문 피디의 오피스텔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침 잘 됐네. 그쪽에 갈 일이 있거든. 그 근처 카페에서 보자. 자주 가는 카페 있으면 문자로 상호명하고 위치 알려 줘.”
– 저 혼자 나갈 거니까 오빠도 혼자 나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그렇게 하자.”
박예진과 통화를 마친 뒤 백곰과 함께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백곰에게는 오피스텔에 먼저 가 있으라 하고 혼자 약속 장소인 카페로 들어갔다.
조용한 카페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박예진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박예진 맞은편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박예진이 얘기를 하고 우혁은 들었다.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들었던 것들···.
그러다가 박예진이 캐스팅 얘기를 불쑥 꺼냈다.
“오빠가 남주이고 권 선생님이 출연하신다는 건 정말 좋아요. 배역도 마음에 쏙 들고요.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데···.”
박예진이 말을 멈추었다.
우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피디님이 무서워요.”
그럴 줄 알았다.
“피디님이 저한테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으시지만 배우들 혼내는 거 많이 봤거든요. 어릴 때는 어리니까 야단을 치지 않으셨지만 이제는 저도 컸으니까 피디님이 불같이 화를 내실 거예요. 그게 무서워요. 바보 같지만.”
박예진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해한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의 문 피디가 어른 배우들을 다그치는 모습이 어린아이에게는 공포였을 것이다.
남자인 김길빈이 두려워할 정도인데 아역이었던 박예진이야 오죽할까.
김길빈도 그러더니 박예진까지? 문 피디가 배우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이런 반응이 연거푸 나오는 걸까?
우혁은 문 피디와의 작업이 다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겁이 나는 건 전혀 아니다. 아무리 지독한 사람이라 해도 추체험을 하며 겪었던 몇몇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허균을 추체험하면서 추국당할 때 극도의 공포를 맛보았다.
문 피디가 아무리 무섭다 한들 허균을 추국하고 고문하던 자들에 비할까.
기껏해야 소리나 벅벅 질러 대겠지.
다만,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이 하나같이 문 피디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걱정이다.
“예진아!”
“예, 오빠!”
예진이 우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니? 너도 잘 알겠지만 나, 얼마 전까지 무명이었다. 가끔 무서워 떨곤 했지. 아무도 나에게 배역을 주지 않을까 봐.”
“···.”
“한국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 90퍼센트 이상은 그 공포를 느끼고 있을 거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꾸지람이었다.
표정과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질책.
엄살 부리지 말라는 거였다.
‘피디가 무서워? 그런 정신으로 무슨 연기를 하겠다는 거냐.’
박예진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인기를 얻은 뒤로 그 누구도 박예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소속사 대표, 감독, 피디, 방송사 간부들···. 심지어 아빠까지.
그런데 지금 우혁은 꾸지람을 하고 있다.
고마웠다. 코끝이 찡하도록.
잘못하는 게 있으면 야단 쳐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면서 수많은 연기자들이 나가떨어지는 걸 보았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가 한순간에 주저앉는 모습을 한두 번 목격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매니저, 소속사 대표, 아빠,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모두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 가로등>을 하면서 뭔가 불안했다.
강우혁에게 밀린다는 느낌.
아니, 재채기 인형에게도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다들 잘했다고만 한다.
영혼 없는 반응들.
건성으로 하는 찬사들.
잘했어, 예뻐요, 연기 좋더라, 짱이에요, 티를 찾을 수가 없어요, 완벽해, 넌 최고야···.
고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앞에서는 칭찬하면서 뒤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연기의 발전이 없다 하면서 흉을 본다.
그리고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정하려 든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건 하지 마라, 이건 해라···.
그래서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진다.
댓글은 솔직해서 좋다. 칭찬도 좋고, 비평도 좋다. 그들은 솔직하니까.
하지만 댓글을 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또는 고민이 있을 때 상담을 해주지는 못하니까.
진심어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절실했다.
필요하다면 꾸짖어 줄 수도 있는 사람.
오늘 비로소 그런 사람을 만났다.
우혁은 지금 꾸짖고 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아무도 배역을 주지 않는 공포.
잠깐이지만 느껴 본 적 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연기를 그만 두고 싶었다.
놀고 싶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고 수다도 떨면서.
그래서 1년 동안 푹 쉬었다. 잘 놀았다.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전했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갈등, 헛헛함.
친구들은 호기심에서 잠깐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외톨이.
왕따는 아니었지만 외로웠다.
헛헛함의 정체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었다.
연기가 다시 하고 싶었다.
그런데 1년쯤 놀고 나니 아무도 찾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쉬었다.
연영과에 지원했으나 낙방.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학은 합격할 줄 알았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제 나 뭐하지?
오디션을 보고 또 보았지만 붙지 않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보았던 오디션에 붙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죽을힘을 다했다.
그 작품이 끝나자 배역이 들어왔다.
이듬해 대학 연영과에 합격했고, 졸업도 했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렸다.
어느 순간 스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일이 싫어졌다.
지치기도 했고, 발전도 없는 것 같고, 연기가 재미없다.
시집도 가기 싫고, 연애도 싫다.
남자들은 죄다 종처럼 군다. 굽실굽실.
아니면 외모 좀 되고 인기 좀 있다고 자기가 무슨 왕자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린다.
또는 나쁜 남자처럼 굴며 군림하려 든다.
다 싫다.
부드럽게 끌어주고, 부드럽게 꾸짖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우혁 오빠처럼.
“죄송해요, 오빠! 엄살떨어서···.”
박예진은 울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사과했다.
“그 역할, 예진이한테 꼭 어울려. 박예진보다 이 역할 잘할 배우 없어.”
우혁이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늘어놓는 말이 아니었다.
우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예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피디가 보내준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특재 역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그래서 소속사와 엄마에게 하겠다고 하자,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홍길동 하나이고 나머지는 들러리라면서.
“너 문 피디 무서워하잖아.”
엄마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역 시절에 보았던 문 피디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자!”
우혁이 말했다.
주르륵.
그예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박예진은 손으로 얼른 눈물을 훔쳤다.
‘하자!’
이 말이 듣고 싶었다.
예! 하고 대답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개부터 먼저 끄덕이고 간신히 대답했다.
“예!”
“울지 말고.”
“예!”
***
“어떻게 됐어요?”
이 피디가 오피스텔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우혁에게 물었다.
문 피디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우혁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이 피디는 예상대로 잘 풀리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우혁은 뒤로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문 밖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들어와.”
우혁의 말에 모두들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박예진이었다!
이 피디가 놀라서 2미터쯤 뒤로 달아났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백곰도 놀랐는지 자기 옆으로 도망 온 이 피디를 부둥켜안았다.
그러고는 이 피디의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때렸다.
‘누가 왔는지 좀 보세요? 박예진이에요!’ 하는 의미의 애교 주먹이었으나 이 피디는 많이 아픈지 캑캑거리며 주먹을 피해 몸을 웅크린다.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던 문 피디의 입이 헤 벌어졌다. 팔짱도 스르르 풀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