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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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대우 해줍시다
“술값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이 피디가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뮌헨 호프집을 통째로 빌렸는지 [홍길동전> 배우들과 스텝들을 제외하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껏 마셔도 돼? 내일 촬영 없어?”
천승재가 물었다.
“물론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관계로 야외 촬영을 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촬영지에 도착해 주십시오.”
“근데 피디님은 왜 안 오셔? 우혁 씨도 안 보이고?”
“지금 오고 계십니다. 우혁 씨하고 이 국장님 면담 중이십니다. 주문 받겠습니다. 안주하고 맥주 시키십시오.”
“이 피디! 서 있지 말고 이리 앉어. 호프집 종업원 있는데 뭘 그렇게 서 있어.”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이리 앉아. 아까는 미안했어.”
“촬영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으니 제가 잘못했죠.”
“그런 잘못은 백번 해도 괜찮지. 시청률 결과가 중요하지 촬영 한 템포 쉬어 간다고 큰일 나나?”
“진동이 그렇게 시끄럽게 울릴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시끌벅적한 신이었으면 안 들렸을 텐데 마침 조용한 신이라서 그렇게 된 거지 뭐. 암튼, 윽박지른 거 미안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줘.”
“벌써 다 잊었어요. 그런 거 떠올릴 틈도 없이 바쁜 걸요 뭐.”
“내가 이런 말 할 위치는 아닌데, 그냥 연기자의 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정말 고맙다. 내가 봤을 때 이 피디가 제일 고생하는 것 같아. 성격 만만치 않은 문 피디 수발들랴, 스텝들 챙기랴, 연기자들 비위 맞추랴, 고생이 많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일이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하죠.”
“맞어. 재미있으면 끝난 거야. 나도 이게 재미있거든. 다 필요 없어. 재미있으면 된 거지. 동지를 만났네. 하하하!”
뮌헨 호프집에서 안주와 맥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담소를 나눌 때 우혁은 문 피디와 이 국장을 만났다.
이 국장도 마침 퇴근길이었다.
“같이 가자니까 그러네요.”
문 피디가 이 국장에게 보챘다.
“내가 거길 왜 가. 반기지도 않을 텐데. 나 같은 사람이 가면 배우들, 스텝들이 좋아하질 않아요.”
이 국장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 술값 우리가 계산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가세요.”
“술은 내가 산다니까 그러네. 이미 주인장한테 전화해 뒀으니까 다른 소리하지 말고 술만 먹고 조용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술을 왜 형님이 삽니까. 회사가 사야지.”
“조만간 회사에서 따로 거하게 살 거야. 이번에는 그냥 내가 사고 싶어서 그래. 고마워서.”
“우리가 형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고마워요.”
“고맙지, 왜 안 고마워. 시청률 이만큼 나오게 했지 않나.”
“형님이 지원을 해준 덕분이기도 하니까 빼지 말고 가십시다.”
문 피디가 이 국장을 잡아끌었다.
“안 간다니까 그러네. 난 집에 갈 테니까 어여 가봐. 드라마 곧 시작하겠네.”
“그러니까 빨리 가자고요.”
“술 마실 기분이 아니라서 그래. 잘리게 생겼는데 무슨 술이야.”
“잘리다니요. 왜 잘려요?”
“내일 인사이동 있어. 아무래도 내가 거기 끼일 것 같어. 소문이 파다해.”
“형님이 왜 거기 끼어요. [홍길동전> 시청률 잘 나왔는데.”
“그동안 너무 많이 말아먹잖아.”
“그게 형님 탓입니까? 책임을 지려면 사장이 지든가.”
“나 가네.”
우혁은 어제 저녁, 술친구 없어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이 국장의 모습이 눈에 밟혀 이 국장을 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오늘도 국장님 혼자 소주 하실 거면 저하고 같이 가시죠. 제가 술친구 해드리겠습니다.”
우혁이 말했다.
“그건 안 되지. 다들 기다릴 텐데.”
이 국장이 손사래를 쳤다.
얘기를 듣고 있던 문 피디가 나섰다.
“혼자 술 마셨어요? 웬 청승입니까. 정 술친구가 없으면 절 부르던가.”
문 피디가 타박을 주었다.
“혼자서 마셔 봤자 아무 도움 안 됩니다. 답도 안 나오구요. 갑시다. 가서 [홍길동전> 식구들한테 건배사는 한 번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잘릴 때 잘리더라도 이 회사 간부로서 할 건 하셔야지요.”
“그러지 뭐. 아직은 회사 사람이니 할 도리는 해야지. 갑시다.”
이 국장이 드디어 백기를 들었다.
백기를 든 사람치고는 표정이 밝다.
***
우혁이 이 국장, 문 피디와 함께 뮌헨 호프집 안으로 들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국장님, 이쪽으로 오십쇼.”
천승재가 일어나서 옆 자리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저는 이쪽에 앉겠습니다.”
이 국장이 천승재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하고 출입문 근처 자리에 문 피디, 우혁과 함께 앉았다.
우혁과 이 국장, 문 피디에게 맥주가 나왔을 때 문 피디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이 술은 SBC 공금이 아니라 국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쏘신다고 합니다. 국장님, 건배사 부탁드립니다.”
문 피디의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소하지만 제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여러분은 시청률에 만족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희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시청률입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전작 시청률 형편없었다는 거. 첫 단추 잘 끼웠으니까 마무리까지 잘 하시기 바랍니다. [홍길동전>의 대박을, 위하여!”
이 국장이 술잔을 높이 들며 선창하자 모두 큰소리로 ‘위하여’를 동시에 외쳤다.
[홍길동전> 2회 시작 5분 전.광고가 몇 편 되지 않아 넉넉잡고 5분 후에는 드라마가 시작할 것 같다.
마동춘이 이 국장을 가장 큰 중앙 테이블로 모셔갔다.
“피디님, 여기 앉아도 되죠?”
박예진이 맥주잔을 들고 문 피디 맞은편, 우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그럼.”
“시청률 잘 나와서 기분 좋으시죠?”
“한시름 놓았어.”
“축하드립니다.”
“아까 소리 지른 거 미안해.”
“괜찮습니다. 제가 야단맞을 짓 했는걸요 뭐.”
“야단맞을 사람은 나야. 불안해하는 식구들 다독거려야 할 사람이 성질이나 부려대니 누가 내 곁에 남아 있겠어.”
“저는 남아 있을 건데요. 피디님하고 또 작업하고 싶어요.”
“고마워. 박예진이 나하고 똑같은 성격이었으면 집에 가버렸을 텐데 말이야. 내가 박예진한테 배워야 할 것 같어.”
“안 되죠. 피디님이 저 같은 성격이었으면 이 많은 식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겠어요? 조금 속상하다고 저처럼 구석에 가서 질질 짜고 있으면 누가 따르겠어요. 저 야단치신 거 잘하신 거예요.”
문 피디가 박예진이 기특하고 고마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외쳤다.
광고가 끝나고 주제곡과 함께 타이틀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광고가 적으니까 많이 기다리지 않아서 좋기는 하네. SBC 입장에서는 좋아할 일이 아니겠지만서두.”
이 국장에게는 뼈아프게 들릴 말이기에 행여 이 국장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며 배우 중 한 명이 말했다.
타이틀 영상에 이어 2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 도떼기시장 같았으나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정적이 감돌았다.
조용하다가도 코믹한 장면이 나오면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집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볼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2회 중간 무렵에 그 유명한 호부호형 신이 나왔다.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들 앞에서 우혁이 선보였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길동의 작은 떨림까지 잡아내고 있었다.
“소인은··· 누구이옵니까.”
바닥에 엎드린 길동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가슴 밑바닥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슬픔과 울분, 억울함, 분노가 서려 있었다.
오디션 때보다 더욱 절절했다.
호프집에는 침묵이 흘렀다.
“하늘의 자식이옵니까. 아니면 땅의 자식이옵니까.”
길동의 목소리는 폐를 쥐어짜듯 찢어지고 뭉그러지고 갈라져 있었다.
목소리의 크기를 최대한 억눌렀으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한까지 억누르지는 못했다.
듣는 이의 목을 조르는 듯한 길동의 목소리에 다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호프집 주인과 종업원들조차 움직임을 멈추고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것도 아니면, 짐승의 자식이옵니까.”
길동이 그동안 억눌러 왔던 원망과 서러움을 객혈하듯 토해냈다.
길동의 생부인 홍판서는 듣기 민망한지 먼 데 하늘에 시선을 부려놓은 채 길동을 외면한다.
길동이 어깨를 들먹이며 소리 없이 흐느끼자 호프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눈물을 삼켰다.
“어찌하여 소인은···.”
길동은 흐느낌과 함께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바닥을 짚은 길동의 손등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형을 형이라 할 수 없는 것이옵니까···.”
길동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그 장면을 보던 사람들 중 감수성이 발달한 연기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박예진도 눈시울을 붉힌 채 TV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2회에서는 자객인 특재가 길동을 암살하기 위해 침소를 침투했다가 오히려 길동에게 사로잡히는 장면도 있었다.
몸이 잽싼 특재가 달아나려 했으나 멀리 가지 못한다.
특재를 사로잡은 길동의 눈에서는 살의가 번뜩였고, 당장이라고 목숨 줄을 끊으려는데 특재가 용서를 빌며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천애 고아로 자란 특재가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준 양어머니 미탄댁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서 저지른 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길동은 목숨을 살려줄 뿐만 아니라 의원을 데리고 가 미탄댁의 병을 낫게 해준다.
미탄댁 역은 권선자 선생이 맡았다.
원래는 미탄댁이 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으나 권 선생이 맡으면서 병에서 나아 활빈당의 무리에 합류하여 무리의 구심점이 되는 것으로 설정을 수정했다.
자신과 양어머니의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특재는 길동의 충복이 된다.
2회의 마지막은 길동을 암살하려 했던 자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생부인 홍 판서의 정실인 유씨 부인과 둘째 첩 곡산댁, 그리고 의붓형 인형이 가담했다는 사실에 길동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충격에 빠진 길동의 표정에서 드라마는 끝이 났다.
엔딩 타이틀이 오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1회에서는 길동의 무술 연습 장면과 장마당에서의 다소 가벼운 모습이 주를 이루었으나 2회에서는 길동의 상처와 아픔이 잘 드러났다.
1회가 도입이라면 2회부터는 본격적으로 갈등이 폭발하면서 극의 밀도와 재미는 더욱 배가 되었다.
2회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
SBC 인사이동 결과가 발표되었다.
드라마본부 간부들의 이동이 다른 부서에 비해 많았다.
지방 한직으로 발령되거나 명퇴도 있었다.
이 국장은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공지를 한참 동안 읽고 또 읽었다.
그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터폰이 울렸다.
“예.”
“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어요.”
이 국장은 인터폰을 끊자마자 곧바로 사장실로 올라갔다.
“공지글 보셨지요?”
“예,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국장 지방 발령 결정 났었는데 번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우혁 그 친구가 그럽디다. 국장님이 자기를 뽑아 줬다고.”
강우혁이 사장에게 그런 말을?
뽑아주긴 뭘 뽑아줘. 문 피디가 강우혁에게 꽂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거지.
“그런 친구를 뽑은 분을 지방으로 보낼 수야 없지요.”
강우혁 덕분에 살아난 셈인가?
“[홍길동전> 2회 시청률 결과 보셨어요?”
“오전에 보고 받았습니다.”
“10프로 넘은 거 오랜만 아닌가요?”
“오랜만입니다.”
“강우혁 그 친구, 어떻게 해서든 잡아 보세요. 올해는 못 하더라도 내년, 하다못해 내후년에는 한 작품 더 해야 안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계약을 이상하게 하는 바람에 우리하고 다시 계약을 하려고 할지 모르겠어요. 다음에는 제대로 대우해 줍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제 본방 봤는데, 연기의 진폭이 상당히 넓은 친구더군요.”
느낌이 온다. 사장이 강우혁에게 제대로 꽂혔다는 느낌이.
시청률 1위를 하지 않으면 출연료 받지 않는 대신 1위를 하면 회당 5000을 받겠다고 했을 때 꽂혔는데, 열악한 상황에서 시청률 1위가 되자 제대로 꽂혀 버린 듯하다.
드라마를 보고 연기에도 꽂힌 듯하다. 팬심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
“문 피디 말로는 회가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박예진이도 연기 곧잘 하더군요. 남장여자를 무리 없이 소화합디다. 이 작품 끝나면 몸값 더 오르겠어요.”
“박예진 소속사에서는 출연 반대가 심했고 본인도 흔들렸는데 강우혁이 박예진한테 하자고 했더니 곧바로 출연 결정했답니다.”
“그래요? 강우혁 그 친구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속이 잔잔한 친구입니다. 정치적 성향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지요.”
“이 국장이 보기에 배우로서는 어때요?”
“문 피디 말마따나 계속해서 진화 발전할 친구 같습니다. 뿌리가 깊어 보입니다.”
“내 느낌도 그래요. 곧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묶을 방법 없을까요? 풀어 놓으면 금세 날아갈 것 같은데.”
“호락호락 묶일지 모르겠습니다. 파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연구를 좀 해보시라구요. 파격적인 대우, 해주면 되지요. 가령 이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2~3년에 SBC 작품 하나씩 다섯 편만 하자. 원하는 조건이 뭐냐? 계약금 달라는 대로 주겠다. 인센티브? 주겠다.”
“그렇게까지 열어주신다면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시청률 이 상태만 잘 유지해도 성공입니다. 두 자리 수치는 어떻게 해서든 수성해 봅시다. 종방 때까지 이 국장이 잘 좀 챙겨 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사장실을 나온 이 국장은 복도를 걸으며 자신의 기사회생에 우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오디션 때 자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해 준 사람이라고 사장한테 나를 언급했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나?
드라마본부 국장 자리에서 배우한테 해줄 게 없겠는가.
사장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라고 했겠다, 이왕 주는 거 크게 줘?
하는 짓이 너무 예쁘지 않나.
회식 자리를 마다하고 술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지를 않나.
“마음이 가는 친구란 말이지. 무명으로 오랜 시간을 고생한 친구니까 잘됐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