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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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연기로 압도하다
“감독님! 정말 강우혁으로 가는 겁니까?”
조감독을 맡은 박용구가 최희락 감독에게 물었다.
“강우혁이 몰라?”
최 감독이 박용구에게 되물었다.
“알죠. 아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도 잘 아시잖아요. 강우혁, 이 역할 소화 못합니다.”
“그래. 소화 못해. 나도 알아.”
‘아는데 왜 이러십니까?’ 하려는데 최 감독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마, 강우혁으로 안 갈 거니까.”
박용구는 그제야 안도가 되었다.
“민환 씨 얘기로는 강우혁이 지금 촬영장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던데요. 올 거 없다고 전달할까요?”
“그럴 거 없어. 강우혁 도착하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
이건 또 무슨 소리?
강우혁으로 안 간다면서 촬영 준비를 하라니.
“찍기만 할 거야.”
최 감독이 부연했다.
박용구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찍기만 한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예 찍지 않으면 되는 것을.
“내가 설민환한테 배우 추천 부탁했어. 강우혁을 추천하더군. 이 역에 꼭 어울리는 배우라면서 강우혁을 추천했다고. 내가 난색을 표했는데도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면서 매달리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해. 설민환이 우리 영화 주인공이야. 섭외하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너도 알잖아. 촬영 초반이다. 살살 달래면서 가야 할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고문기술자 역할은 누가···?”
“자!”
최 감독이 메모지를 박용구에게 건네주었다.
메모지에는 세 명의 배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용구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 정도 급이라면 괜찮지.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장일곤에 비하면 약하지만.
박용구는 펑크를 낸 장일곤에게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최 감독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일정 늦춰서 장일곤으로 가는 게···.”
“그 인간 얘기 내 앞에서 꺼내지 마.”
최 감독이 버럭했다.
이유 없이 화를 낼 사람이 아닌데 평소와 달리 매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넌 지금부터 전화 돌려. 셋 중에서 오늘 오후에 오는 사람으로 갈 거야.”
최 감독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박용구 역시 최 감독 못지않게 화가 난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총괄 감독이 시키는 일이니 하기야 하겠지만 배우가 퀵서비스나 택배 직원도 아닌데 오란다고 예 알겠습니다 하면서 달려올까? 각자의 스케줄이 있을 테고, 없더라도 소속사와 상의도 해야 될 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무리다.
“오늘 오후에 오라는 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박용구가 토를 달았다.
다른 감독이었으면 여기서 폭발했겠지만 최 감독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조감독의 의견을 경청, 수렴하는 감독이 아닌가.
감독 자신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오늘 하루를 이대로 공칠 수 없으니 해보는 데까지 해보려는 것일 터이다.
“오늘 안 되면 다음에 스케줄 잡아야지 어쩌겠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오늘 오후에 될 수 있도록 설득하겠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강우혁 대신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하게 되면 설민환이 화를 내지 않을까요?”
“화 내나 안 하나 지켜봐. 강우혁이 촬영 끝난 뒤에 모니터 보여 주면 찍 소리 못할걸. 강우혁이 그 곱상한 천사표 얼굴에서 그게 나오겠니?”
“안 나오죠.”
“결과를 보면 설민환도 납득할 거야. 나하고 한 얘기도 있고.”
“장일곤이 펑크만 내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참···.”
“내 앞에서 그 인간 얘기 꺼내지 말랬지.”
“죄송합니다.”
“영화를 안 찍으면 안 찍었지, 앞으로 그 인간하고는 상종 안 해.”
최 감독은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터졌다.
장일곤 그 인간 때문에 모든 게 어그러지고 말았다.
몸이 좋지 않아 못 온다는 매니저 전화를 받고 돌아버릴 것 같았다.
장일곤을 위해 오늘 낮 시간을 할애했고, 새벽부터 일어나 이곳 가평 산골짜기 마을에 들어왔는데, 장일곤의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장일곤이 병원에 입원해서 올 수가 없다고.
병원에 입원을 해? 개뻥치고 있네.
어젯밤 룸살롱에서 진탕 놀다가 술병이 났다는 걸 최 감독은 알고 있었다.
못 올 것 같으면 어젯밤 늦게라도 전화를 줬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저녁 통화할 때만 해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빠듯한 제작비 지원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압박이 심한데 오늘 하루를 공치면 외주 장비 대여비, 단역배우 출연료를 포함한 인건비 등을 고스란히 날리게 생겼다.
장일곤의 일정상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어렵게 비운 하루가 아닌가.
장일곤 매니저와 통화를 끝낸 뒤 열불이 나서 식식거리다가 옆에 서 있는 설민환에게 추천할 배우 있냐고 물었다.
“있기는 한데 오늘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전화 한번 해볼까요?”
“누군데?”
“강우혁입니다.”
“강우혁. 좋지.”
“그럼 시간 되는지 물어보고, 된다고 하면 부르겠습니다.”
“오케이!”
실수였다.
송준혁과 헷갈렸던 것이다.
장일곤 때문에 화가 나서 잠시 뇌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설민환이 강우혁과 통화를 끝낸 뒤에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우혁이 시간 괜찮답니다. 10시까지 오기로 했습니다.”
“우혁이? 강우혁?”
“예.”
“같은 소속사 송준혁이 아니고?”
“송준혁 선배는 영화 촬영으로 지금 러시아에 가 있는데요.”
“나는 강우혁이 아니라 송준혁으로 들었어.”
“제가 분명히 강우혁이라고 했는데요.”
“민환 씨가 잘못 말했다는 건 아니고. 이거 참 난감하네.”
“강우혁은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그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마스크가 너무 선하잖아. 고문기술자는 미친놈이야. 카메라를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눈빛이 필요하다고. 무술 실력도 있어야 하고 말이야. 강우혁 씨, 액션 돼?”
“액션은 대역 쓰기로 하시지 않았나요?”
최 감독은 강우혁을 거절할 핑계를 끌어 모으려다 액션 얘기까지 들먹였다.
“대역을 쓰기는 할 텐데 액션도 좀 되면 좋다는 얘기지. 암튼, 강우혁 씨 마스크는 너무 선해.”
“선한 인상에서 나오는 잔인성이 오히려 더 강렬하지 않을까요?”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강우혁의 연기는 아직 설익었다. 특히 눈빛에 깊이가 없다.
“감독님께서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쩔 수 없죠 뭐. 근데,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우혁이 그 친구, 운대를 못 만나서 그렇지. 머지않아 저보다 더 뜰 겁니다.”
“이거 참···.”
난감했다. 설민환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일단 찍어 보고, 그림이 안 나오면 다른 배우를 섭외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정각 9시 50분.
촬영장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민환이 우혁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자자, 촬영 시작해야 하니까 준비해 주세요.”
최 감독이 서둘렀다.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민환은 우혁과 연기 합을 맞춰 볼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섭섭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우혁이 분장을 하는 동안 대본 리딩을 하고, 촬영 의상으로 갈아입을 때 동선과 시선 처리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직 안 됐나요?”
연출부 막내가 보챘다.
“정말 너무하네. 합을 맞춰 볼 시간은 줘야 될 거 아니야. 잠깐만 기다려 봐. 감독님 좀 만나고 올게.”
민환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우혁이 민환의 팔을 잡았다.
“그냥 하자.”
“괜찮겠어?”
“배우가 감독 지시에 따라야지 어쩌겠어. 해보자.”
“괜히 오라고 한 것 같다. 이렇게 괄시할 줄 알았으면 오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별 소릴 다한다.”
우혁은 민환의 어깨를 툭 한 번 치고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최 감독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박용구에게 다가갔다.
박용구가 막 통화를 끝냈다.
“섭외 됐어?”
“두 사람은 스케줄이 있고 한 명은 아직 통화 못했습니다. 지금 매니저한테 전화할 참입니다.”
“알았어. 계속 통화해봐. 통화 되면 곧바로 결과 알려주고.”
“예, 알겠습니다.”
평소라면 박용구가 스텝들을 총괄하고 배우에게 액션과 컷 지시를 외쳐야 하는데 그 역할을 연출부 세컨에게 맡겼다.
최 감독은 헤드폰도 끼지 않은 채 모니터 앞에 앉았다.
“준비 됐으면 가자!”
최 감독이 헤드폰 스피커로 연출부 세컨에게 지시했다.
“준비 되셨죠? 슛 들어갑니다.”
막내가 목청껏 외쳤다.
그 와중에도 합을 맞춰 보던 민환과 우혁은 서둘러 준비 자세를 취했다.
곧이어 세컨이 외쳤다.
“스텐바이. 액션!”
갑자기 훅 들어왔으나 우혁은 이미 완전 몰입된 상태였다.
연출부 막내가 슬레이트를 쳤다.
딱!
우혁이 멸시와 환멸, 조롱의 시선으로 민환을 응시했다. 민환을 갈아 마셔 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
민환은 그 눈빛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최 감독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의자에서 등을 떼고서 헤드폰을 썼다.
“뷰티풀! 아주 아름다워! 이 흉터, 내가 만들어 준 거지?”
우혁이 메마른 목소리로 대사를 쳤다.
“그래, 이 개자식아!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민환이 NG를 냈다.
좀처럼 실수를 내지 않는 민환이 계속해서 두 번이나 NG를 냈다.
한편 모니터를 응시하던 최 감독은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모니터에 코를 박았다.
“뭐야 이거!?”
박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감독님!”
박용구가 최 감독 옆으로 다가왔다.
“왜?”
“방금 통화했는데, 소속사하고 상의한 뒤에 연락 주겠답니다.”
“비싸게 굴기는! 연락할 거 없다고 그래.”
“예?”
“올 필요 없다고.”
박용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혁 연기 봤어?”
“전화하느라 못 봤습니다.”
“이거 봐봐!”
모니터를 가리켰다.
“어때?”
“죽이는데요.”
“그 친구가 강우혁보다 잘할 것 같아?”
박용구는 대답 대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예, 저 박용구입니다.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