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7)
제작사를 찾았다.
그래서?
100가지 고비 중 겨우 한 고비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앞으로 수많은 고비들을 넘겨야 한다.
그 고비들 중 가장 고비가 바로 투자자를 찾는 일이다.
투자자를 찾는 일에 비하면 제작사를 찾는 일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돈 없이 영화를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좋은 시나리오만 있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순진한 소리.
영화는 돈의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돈만 많이 쏟아 붓는다고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돈만 많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적어도 돈이 많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영화 제작에 자금 조달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제작사에서는 돈을 잘 끌어 모으는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바로 윤 이사가 그 능력자다.
필름박스의 오너는 따로 있지만 윤 이사는 오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번다.
최근 들어 물적 토대를 갖춘 대형 투자배급사가 감독과 직접 영화를 만들고 있는 추세이다.
멀티 캐스팅과 스타 감독 중심으로 영화 제작 판도가 바뀌고, 엄청난 제작비를 동원한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제작사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필름박스가 여전히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윤 이사 덕분이다.
윤 이사는 투자 유치의 귀재였다.
윤 이사가 끌어들인 투자자의 셋 중 둘은 이익을 남겼다. 종종 대박이 터진 경우도 있고.
망하더라도 폭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좋은 작품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영화인’
‘돈이 될 영화 냄새를 잘 맡는 장사꾼.’
‘운 좋은 행운아.’
윤 이사에 대한 세평은 다양하지만 영화를 고르는 그의 안목에는 다들 수긍했다.
저게 될까 싶은 영화가 되고.
저러다 망하지 싶은 영화가 대박이 나고.
이번에는 진짜 말아먹을 것 같은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물론 개중에는 될 것 같았는데 손익분기점도 못 넘긴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소규모 제작사들이 수도 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한국 영화판이다.
비누거품처럼 한순간에 펑!
영원할 줄 알았던 무지갯빛 찬란함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필름박스는 20여 년을 버텨 왔다.
필름박스에 윤 이사가 없다면?
다른 비누거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필름박스는 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망하면 안 되는, 어떻게 해서든 버텨줬으면 하는, 대박이 빵빵 터졌으면 좋겠는.
윤 이사가 [길 밖의 새>의 투자 유치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영화 제작사는 이 땅을 사면 노다지가 쏟아질 것이라는 뻥을 치는 땅 투기꾼처럼 투자자에게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게 마련이다.
필름박스도 당연히 그 작업이 선행된다.
그 작업에 윤 이사는 빠진다.
윤 이사는 그 뒤에 나타나 초를 친다.
“손해 보실 수도 있으니 신중하십시오.”
“은행 예금 이자도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말들은 윤 이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 주면서 투자 결정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길 밖의 새> 투자 유치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다만,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어느 구름에 단비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은행 예금 이자보다야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액이지만 저도 투자를 좀 했습니다.”
윤 이사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윤 이사가 개인 자금을 투자한다?
성공 확률이 높은 영화라는 의미다.
애석하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
과거 윤 이사가 개인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몇몇 투자자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윤 이사가 팔을 걷고 투자 유치를 나선 지 2주일 만에 110억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120억 중 윤 이사와 우혁의 투자금도 포함되었다.
윤 이사와 우혁이 각각 10억씩.
투자 결정은 우혁이 윤 이사보다 먼저 했다.
윤 이사뿐만 아니라 투자자 전체를 통 털어 가장 먼저였다.
홍보 차원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소액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10일 만에 법정 최고액인 7억 원을 모집했다.
예상 제작비를 웃도는 금액이 모였다.
이로서 큰 고비 하나를 순탄하게 더 넘었다.
이 바닥에서는 투자금 유치를 끝냈을 때 ‘5부 능선은 넘었다’고 한다.
항해를 떠날 배가 준비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배의 선장인 감독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제작사에서 투자자를 물색하는 동안 박 감독은 배우, 연출, 촬영, 조명, 음향, 작곡, CG,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의 인력을 끌어 모았다.
10년 동안 영화판에 쌓은 인맥이 위력을 발휘했다.
박 감독이 입봉작을 한다는 소문이 돌자 박 감독의 열정과 성실성, 능력, 인품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제작사 사람들도 놀라고, 우혁도 놀랐다.
“박 감독님! 내가 좀 과소평가한 것 같아.”
백곰이 우혁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나도 그래!”
우혁도 백곰에게 고백했다.
불꽃이 일어났다 금세 꺼지고 마는 검불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숯.
박 감독이 그러했다.
백곰과 우혁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윤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꿈만 꾸면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를 줄 세우면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늘어설 겁니다. 준비는 안 하지요. 그런데 박 감독은 하나에서 백까지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박 감독, 길게 갈 것 같은데요.”
윤 이사가 우혁에게 한 말이다.
투자금을 유치한 다음에도 배우 캐스팅이다 뭐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박 감독은 달랐다.
속전속결.
전광석화.
일사천리.
박 감독은 치밀하고 용의주도했다.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첫 촬영 일자가 잡혔다.
그런데 한 가지 작은 변수가 생겼다.
“변수가 생겼네요.”
우혁이 박 감독에게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변수가 아니라 경사죠. 좋은 조짐 같은데요. 우리 영화 잘 될 것 같습니다.”
박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우혁의 말에 대답했다.
변수가 아니라 경사.
박 감독의 말대로 결과적으로 그것은 변수가 아니라 경사였다. 우혁 개인에게나 [길 밖의 새>에게나.
첫 촬영 일에 백룡시상식이 있었고, 그 시상식에서 우혁이 ‘신스틸러 상’의 후보자로 선정되었으니 시상식에 꼭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것이다.
“영화 촬영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하시죠. 오전에 촬영하고 시상식에 참석하면 되니까요.”
애초에 우혁의 촬영분은 오전에만 있었다.
”오전 촬영 다음으로 늦춰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촬영 끝내고 참석하겠습니다.”
시상식은 오후 9시에 시작이다.
민환이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말만 들지 않았어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상 소감은 준비하셨어요?”
“준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카메오 출연자에게 줄 것 같지 않은데요.”
“수상 가능성 충분하다고 봅니다.”
우혁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길 밖의 새> 첫 촬영이자 백룡시상식 날.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했다.
우혁은 박 감독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봉 감독 맞아?
전혀 초짜 감독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인 감독이라 기가 센 스텝들에게 끌려가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웬걸.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촬영장을 완전히 손아귀에 틀어쥐고서 쥐락펴락했다.
박 감독은 촬영, 조명, 음향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우혁은 박 감독의 모습에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오전 촬영분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상식장으로 갔다.
수상자 후보라는 걸 잊어버릴 만큼 시상식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연신 미소를 지은 것은 박 감독 때문에 신이 나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민환과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민환이 깜짝 놀라며 우혁에게 물었다.
“영화 캐릭터가 좀 날씬해서 어쩔 수 없이 살을 좀 뺐어.”
“좀 뺀 게 아닌데. 몇 키로나 뺀 거야?”
“글쎄. 한 15키로쯤.”
“15키로나!?”
“고생이 많았겠구나.”
“너도 해외 로케가 잦아서 고생이 많다며?”
“어쩔 수 없지 뭐. 수상 소감은 준비했어?”
민환이 우혁에게 물었다.
우혁은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
“나야 뭐 준비할 게 있나. 너는 준비했지?”
우혁이 민환에게 되물었다.
“준비는 했는데 수상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스틸러상 수상자 발표순서가 왔다.
수상 후보자의 이름이 나열된 뒤에 곧바로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생강>의 고문기술자로 열연하신 강우혁!”
옆에 앉아 있던 민환과 최 감독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카메라들이 우혁을 비추고 주위 배우들이 우혁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우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나갔다.
“귀한 상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의 권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저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 아기 요정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여보! 사랑해!”
우혁은 떠오르는 대로 간단하게 수상 소감을 말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만 해도 수상 소감이 그렇게 큰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우혁의 수상 소감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아기 요정’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하늘을 올려보는 우혁의 사진과 함께.
[신스틸러다운 짧고 인상적인 수상 소감] [‘아기 요정’에게 상을 바친 신스틸러 강우혁] [수상 소감을 하며 눈시울을 붉힌 강우혁] [강우혁이 말한 ‘아기 요정’의 정체는?]‘아기 요정’에 대한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다.
어느 기자는 ‘아기 요정’의 정체를 기필코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아내와 인터뷰를 원한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그대로 뒀다가는 기자들이 아내를 못 살게 구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꿩닭 기자에게 연락해 인터뷰를 자청했다.
꿩닭 기자는 과거 우혁의 연기력에 대해 회의적인 기사들이 넘쳐날 때 우직하게 긍정적인 기사를 써주었다.
언젠가는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았다.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백룡영화제 신스틸러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수상 소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수상 소감 때문에 곤혹스럽습니다.”
“아기 요정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작년 가을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잠깐 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가 떠나갔죠.”
“아, 그러셨군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아내가 아파한 것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겠죠.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차기작 영화 크랭크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꿩닭 기자가 화제를 돌렸다.
“[길 밖의 새>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생강>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박용구 감독의 작품이구요. 자유를 찾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탈출한 남자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이야기입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소액 투자자의 투자를 받으셨지요? 저도 투자했습니다. 10일 만에 마감되었다면서요?”
“투자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을 모집하면서 공개하신 [길 밖의 새> 내용에 대해 많은 분들이 호감을 표시하셨습니다. 저도 그 내용을 읽고 투자를 결정했는데요. 주인공의 이야기가 너무 가슴아프더라구요. 줄거리 조금만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공 권혁철은 남한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굶주림과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탈출합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남한은 훨씬 부유했고, 잠시지만 행복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하죠.”
“남한도 천국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가요?”
“그렇죠. 북한이 빈곤의 평등이 극심한 곳이라면, 남한은 평등의 빈곤으로 북한 못지않은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군요. 남한에서 무시도 당하고 사기도 당하면서 남한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꼈겠군요.”
“남한 사회에 대한 환멸보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습니다.”
“북한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나요?”
“그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탈출에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왜 제목이 길 밖의 새일까요? 남한과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분단된 현실을 넘어서고 싶은 갈망, 소망, 희망을 상징할 수도 있겠구요.”
“크라우드펀딩 모집할 때 영화 소개 페이지에 철조망 위를 날아가는 흰 새 사진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네요. 철조망에 걸려 있는 반투명한 우윳빛 비닐봉지의 의미도 알 것 같습니다. 영화가 다소 무거울 것 같은데 어떤가요?”
“주제는 매우 무겁습니다만 곳곳에 코믹 요소가 섞여 있어서 웃으면서 영화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부분도 있구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영화 꼭 보겠습니다.”
***
이튿날.
꿩닭 기자의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에 떴다.
‘아기 요정’에 대한 우혁의 유일한 인터뷰였던 것이다.
– 배우님 덕분에 제 기사가 난생처음으로 메인에 떴어요.
꿩닭 기자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우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꿩닭 기자의 기사가 나간 뒤로 우라까이, 어뷰징 기사들이 난무했다.
‘가면무도회’ 최장기 가왕을 차지하고, 영화 촬영 일정을 이유로 가왕 자리에서 물러난 것과 함께 백룡영화제 신스틸러상 수상은 우혁을 다시 한 번 세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엄청난 홍보비용을 사용한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시상식의 수상 소감은 수천 만 원의 홍보비용과 맞먹는 효과가 있었다.
우혁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동반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길 밖의 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
백룡영화제 신스틸러상은 우혁이 영화배우가 된 뒤로 받은 첫 번째 상이었다.
첫 번째 상을 받기까지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첫 번째 상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두 번째 상을 받게 되었다.
신스틸러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중 있는 상이었다.
호사다호(好事多好)랄까.
좋은 일에 이어 더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 호사다호(好事多好)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