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9)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SBC 드라마본부 이 국장이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 잘 있었소?
“저는 잘 있었습니다. 국장님도 별고 없으시지요?”
– 별고 있을 게 있나. 늘 똑같지. 요즘 아주 바쁘게 지내는 것 같더구먼. 뮤지컬 연장 공연 들어갔다면서?
“예.”
– 우리 집 여자들이 뮤지컬을 한 번 더 보러 가겠다고 예매를 했는데 한 달 치 티켓이 동이 났다고 하더구먼.
“주중 공연을 없애고 일요일 하루만 공연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초대권 보내드리겠습니다.”
– 아니야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한 달 뒤에 하는 걸로 예매를 했대요. 얼마 전에 좋은 상을 하나 탔더구먼. 축하해.
“고맙습니다.”
– 상 얘기 나와서 말인데, 매년 연말에 SBC 연기대상이라는 걸 해요. 우혁 씨가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어.
“제가요?”
– 대상 후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남우주연상이야.
“남우주연상 후보도 과분합니다.”
“남우주연상 후보?!”
통화를 듣고 있던 백곰이 놀라서 물었다.
고현주, 송유미도 놀란 눈으로 우혁 쪽으로 바라보았다.
– 수상을 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고, 시상식에는 꼭 참석해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SBC 드라마 한 편 해야 되는 거 알지?
“알겠습니다.”
– 그럼, 시상식 날 봐요.
이 국장과 통화를 마치자 백곰이 다급하게 물었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어?”
“이 국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네.”
“올해 상복이 터지는구나! 축하해, 형!”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오빠!”
백곰, 고현주, 송유미가 차례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서울 가로등>은 상 안 주나?”
“[서울 가로등>은 종편에서 방영된 거라 시상식이 없을걸요.”
백곰의 질문에 송유미가 대답했다.
“시상식이 있었으면 [서울 가로등>도 형이 후보에 올랐을 텐데···.”
“남우주연상이나 대상을 받았을지도 몰라요. 저는 오빠가 [서울 가로등>에서 가로등지기로 나왔을 때가 제일 좋아요.”
“나도 가로등지기가 제일 좋더라.”
백곰, 송유미, 고현주가 차례로 얘기했다.
“오빠는 올해 했던 배역 중에 어떤 역할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송유미가 우혁에게 물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역할이라···.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다 마음에 든다.
[생강>의 고문기술자. [서울 가로등>의 가로등지기. [홍길동전>의 홍길동. [알람>의 영준. [길 밖의 새>의 권혁철.어떤 역할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못 고르겠어요.”
우혁이 송유미에게 대답했다.
“그럴 거예요. 자식 중에 제일 예쁜 자식을 고를 수 없듯이 고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세 딸 중에 제가 제일 예쁘데요. 아마 막내라서 그런가 봐요. 헤헤헤!”
송유미가 귀엽게 웃었다.
“유미 씨는 첫째든 둘째는 가장 예쁠 거야. 하는 짓이 너무 예쁘잖아.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도 예쁘고. 나중에 결혼하면 유미 씨 같은 딸 낳고 싶다.”
고현주가 말했다.
“저두요! 유미처럼 착하고 예쁜 딸 낳고 싶어요. 흐히힛!”
백곰이 고현주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끼어들었다.
“동수 씨 딸은 유미 씨처럼 착하긴 할 텐데 예쁠지 모르겠네. 호호호!”
고현주가 팩트 폭행을 퍼붓고는 웃었다.
“나를 닮은 딸. 안돼안돼!”
백곰이 완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고현주와 송유미가 배를 잡았다.
우혁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와! 저 식당 칼국수 진짜 맛있는···.”
백곰이 무의식중에 한 식당을 가리키다가 입을 다물었다.
“칼국수 먹고 싶어? 먹고 갈까?”
우혁이 백곰, 송유미, 고현주에게 물었다.
“아뇨!”
세 사람 모두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먹겠다는 게 아니라 맛있는 식당이라고.”
백곰이 변명이라도 하듯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출출하면 먹고 가자니까.”
우혁이 다시 한 번 세 사람의 의사를 확인했다.
“먹기 싫다니까!”
“배 안 고파요!”
“그냥 가요!”
세 사람이 아까보다 더 완강하게 거부했다.
백곰은 식당 얘기를 꺼낸 자신을 책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이 그러는 이유는 우혁이 권혁철 배역을 위해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필름박스에서 [길 밖의 새>를 제작하기로 결정 난 날부터 우혁은 체중을 빼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우혁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먹는 얘기를 하지도 않았다.
군것질을 좋아해서 차 안에 군것질거리가 항상 널려 있었으나 우혁이 식단 조절을 시작하면서부터 싹 치워 버렸다.
그 바람에 세 사람 모두 체중이 줄어들었다.
15킬로그램이 빠진 우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혁은 세 사람에게 이전보다 더 자주 맛있는 식당에 가자고 했지만 세 사람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내가 못 먹으니까 세 사람이 먹는 거 구경이라도 하려고 그래요.”
우혁이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배가 고픈데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보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다는 사실을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우혁도 음식 얘기만 나와도 입에 침이 고였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본 적도 있었다.
누군가 반쯤 먹다 버린 사과를 주워서 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우혁은 권혁철 배역을 하기 위해 체중을 조절하면서 배고픔의 고통만큼 참기 힘든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초코파이 한 번 실컷 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심정으로 탈출을 결심한 권혁철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송유미가 우혁에게 올해 맡은 배역 중에 어느 배역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안쓰럽고 애틋한 배역을 고르라면 [길 밖의 새>의 권혁철을 골랐을 것이다.
권혁철은 공교롭게도 우혁과 동갑이다.
부모님도 계시고, 동생도 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있고.
하늘과 하늘을 나는 새를 좋아하는 점도 우혁과 비슷하다.
게다가 권혁철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권혁철은 우혁과 달리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을 하기도 한다.
군부대를 돌며 위문 공연을 하는 배우였으나 남한과 미국 등에서 개봉한 영화 CD를 보유하고 있다가 들켜 최전방 군대로 쫓겨난다.
죄를 지으면 양강도, 자강도, 함경북도로 보내지지만 함경북도 출신인 권혁철에겐 그곳이 고향 근처이기 때문에 최전방으로 보내진 것이다.
그곳은 그의 사지이다.
살려주려고 보낸 게 아니었다.
때려죽이든 굶겨 죽이든 상관없었다.
군인 신분이지만 죄인에 불과하다.
권혁철은 자신이 죽게 될 거라는 걸 눈치챈다.
권혁철은 평양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배고픔 앞에서는 지성이고 뭐고 내팽개친 채 먹을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공연단 시절 먹어 본 초코파이를 실컷 먹어 보고 죽자는 생각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갔어? 내래 무섭디 않아. 가자우.”
죽기로 작정하자 무서울 게 없다.
무조건 남쪽으로 걷는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서!
“어디 가네?”
권혁철을 유난히 괴롭혔던 보초병 물어보면,
“초코파이···.”
“뭐이 어드래?”
보초병이 다시 물으면, 권혁철은 손에 들고 있던 둔기로 보초병의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킨 뒤 보초병에게 쏘아붙인다.
“초코파이 먹으러 간다, 종간나새끼야!”
그러고는 저벅저벅 허리 꼿꼿하게 펴고서 남쪽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탈출 과정은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지뢰밭이 나타난다.
“지뢰밭이구만. 여기서 죽는 것도 나쁠 거 없디. 터지라우. 마음껏 터지라우!”
그렇게 말하고는 지뢰가 있을 것 같은 곳을 손가락을 가리킨다.
“너 거기 숨었니?”
밟는다.
안 터진다.
여기저기 마구 밟고 다녀도 지뢰는 터지지 않는다.
“지뢰밭 맞어? 지뢰가 없디않아! 어디 파묻혀 있는 거니? 나오라우!”
살 목숨이었는지 지뢰밭을 달리는데도 지뢰 하나 터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던 보초병이 권혁철에게 총을 겨눈다.
“이 새끼, 멈추라우!”
권혁철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킨다.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같이 갈 거네. 갈 거면 따라오라우.”
권혁철은 그렇게 말하고 남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간나새끼 멈추라우. 멈추지 않으면 쏘갔어.”
보초병이 협박한다.
권혁철이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보초병에게 말한다.
“살려주시라요. 제발! 이거나 먹고 꺼져!”
권혁철이 우는 소리를 하더니 갑자기 돌변하며 주먹감자를 먹인다.
보초병은 꼴지가 도는지 이성을 잃는다.
“너, 너, 간나새끼! 이리 오라우!”
보초병이 총을 쏘려다가 멈춘다.
“거기 서라우. 내 손으로 찢어 죽이갔어. 석 달 열흘 동안 살려 놓고서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보초병이 지뢰밭으로 들어서자마자 펑!
권혁철이 깜짝 놀라 돌아본다.
“지뢰밭은 지뢰밭이구나야!”
그제야 발을 내딛기가 두렵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꾸짖으며 뺨을 때린다.
“살고 싶은 거가? 정신차리라우!”
그러고는 다시 남쪽으로 걷는다.
지뢰는 전혀 터지지 않는다.
북한 병사들에게 발각되어 총알이 쏟아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권혁철을 피해간다.
박 감독은 슬로우모션으로 총알이 권혁철을 피해 날아가는 장면을 묘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과정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온다.
남한병사1과 2가 열심히 경계를 서는데 옆에서 똑똑똑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난 쪽을 보면 권혁철이 서 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꼴뚜기! 꼴뚜기!”
병사1이 권혁철에게 암구호를 요구한다.
오늘 암구호는 꼴뚜기, 바나나.
“초코파이?”
권혁철이 암구호 바나나 대신 초코파이를 말한다.
“초코파이? 암구호가 틀리잖아.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진짜 쏜다!”
놀란 병사2가 총을 겨누며 윽박지른다.
“쏘지 말라우! 내래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개고생했는 줄 아니? 항복할 테니까니, 총 내려놓으라우!”
권혁철이 두 손을 들고서 병사 1, 2에게 말했다.
다음 장면은 권혁철의 손에 초코파이가 들려 있다.
“너 이 새끼! 여기 있었구나야!”
권혁철은 초코파이를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힌다.
여기까지가 다음 달까지 촬영할 내용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이 부분을 읽을 때 우혁은 낄낄거리며 읽었다.
탈출 전에 권혁철이 모진 고초를 겪고 배고픔에 시달릴 때는 어둡고 암울했다.
[생강>의 암울한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하지만 박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강략과 완급 조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다.
주제와 줄거리를 들으면 몹시 무거운데, 박 감독의 시나리오와 영화는 그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아서 좋았다.
권혁철이라는 캐릭터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처절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때로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우혁은 권혁철을 연기하기 위해서 추체험을 통해 전생체험을 할 대상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 중에 권혁철의 상황과 유사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제작사와 계약할 무렵 우혁의 뇌리에 번뜻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나운규.
배우이면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일제강점기 영화인.
그가 주연을 맡아 연기하고 시나리오와 감독을 한 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나운규는 함경도 회령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만주와 연해주 지역을 떠돌았으며 남한으로 내려온 점이 권혁철과 유사했다.
나운규를 추체험하면서 우혁은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영화감독으로만 알고 있던 나운규는 광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집중력을 보유한 배우였다.
나운규를 추체험한 뒤로 함경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혜택이었다.
나운규로부터 사투리 능력을 전이받았으나 그것을 우혁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우혁의 함경도 사투리 구사에 박 감독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진짜 함경도 사람 같아요. 정말 놀랍습니다.”
배역을 위해 15킬로그램이나 감량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넘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투리 구사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우혁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혁의 연기는 [생강> 때보다 더욱 노련해졌다.
연기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
NG 한 번 내지 않을 만큼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했지만 스스로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흡족할 때까지 재촬영을 요구했다.
박 감독은 우혁이 연기에 몰입해 열연을 펼칠 때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느낌을 받으며 다짐했다.
하늘이 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쏟아 붓자!
유작이라 생각하고!
유언 남긴다 생각하고!
한번은 술에 취해 우혁에게 자신의 다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자 우혁이 웃으면서 한마디했다.
“하늘이 준 기회는 즐기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즐기십시오, 감독님! 앞으로 열 편 이상 만드셔야죠.”
우혁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박 감독도 우혁처럼 자신을 나무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우혁으로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와 능력을 즐기면서 여유 있게 허비할 수가 없었다.
“제가 배우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살살 좀 하세요!”
[ 하늘이 준 기회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