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1)
–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로카르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제 개막을 열흘쯤 앞두었을 때였다.
김 실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우혁에게 전화를 걸어와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을 알려주었다.
“영화제 기간에 발표하는 게 아니라 미리 알려주는 모양이군요.”
– 예, 그런가 봅니다.
“감독상은 어떻게 되었지요?”
– 수상 못한 것 같습니다. 배우님 수상 소식만 이메일로 왔길래 전화를 걸어 수상 결과를 확인하면서 감독상에 대해 슬쩍 물어봤는데 다른 작품으로 결정 난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감독상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 박 감독은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봐야지요 뭐. 암튼 수상 축하드립니다. 제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김 실장과 통화를 한 뒤 아내에게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을 전했다.
“우리 아기가 복덩어리는 복덩어린가 봐. 상복이 계속 터지잖아.”
아내가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상도 타는데 당신도 같이 가면 좋겠구만.”
우혁이 아내에게 말했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 거잖아. 동수 씨도 함께 가니까 심심하지 않을 거야. 잘 갔다 와.”
“일은 무슨 일. 영화제 행사에 잠시 참석하고 나머지 시간은 할 일도 없어. 당신하고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관광도 하고 그러면 좋잖아. 그림 같은 풍경도 보고. 스위스가 풍경이 그렇게 좋대.”
“나중에 같이 가. 지금은 안 돼.”
“아기 때문에?”
“응!”
“지금은 안정기라 비행기 탑승해도 괜찮다고 의사가 말했잖아.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면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어.”
“의사 선생님이 그 뒤에 했던 말은 기억 안 나? 비행기 타도 괜찮지만 산모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마라. 무조건 산모가 원하는 대로 해라. 산모가 스위스에 가고 싶어 하는데 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산모한테 좋지 않고,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데려가는 것도 좋지 않다.”
“억지로 데려가겠다는 건 아니고. 함께 가면 좋겠다 이거지.”
“내가 자신 없어서 그래. 스위스에 딱히 가고 싶지도 않고. 다음에 같이 가자.”
우혁은 아내가 유산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다음에 꼭 같이 가자. 그때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일주를 하자고.”
“그래. 그런데 저건 뭐야?”
아내가 거실 TV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내는 1층에서 어머니와 TV 드라마를 보고 있어서 우혁 혼자 2층 거실에서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환데 갑자기 보고 싶어서. 같이 볼까?”
아내가 우혁 옆에 앉았다.
어제부터 호르스트 부흐홀츠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있다.
어제는 [황야의 7인>을 보았다.
[황야의 7인>에는 우혁이 뮤지컬 [알람>을 연기하기 위해 추체험을 한 적이 있는 율 브리너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이다.하지만 우혁이 [황야의 7인>을 다시 본 것은 율 브리너가 아니라 치코 역을 맡은 호르스트 부흐홀츠를 보기 위해서였다.
부흐홀츠는 1933년 베를린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궁핍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길거리에서 빵을 훔치던 ‘양아치’였다. 양아치는 부흐홀츠가 그 시절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단역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타고 난 끼와 연기력, 출중한 외모로 1955년 프랑스의 대감독 쥘리앙 뒤비비에가 연출한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 출연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한다.
독일의 제임스 딘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당시 유럽의 청춘스타로 이름을 떨치며 할리우드에 진출해 1960년에 개봉된 [황야의 7인> 치코 역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다.
우혁이 부흐홀츠라는 배우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황야의 7인>을 통해서였다.
당시에는 배우의 이름도 모르고 영화 속 등장인물인 치코라고 기억했다.
[황야의 7인>을 볼 때만 해도 호르스트 부흐홀츠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연기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하고 좋은 감독과 좋은 배역을 만나 성공한 배우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그 생각을 바꾸게 된 영화를 만났다.
1997년 제작해 199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9년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우혁이 그 영화를 본 것은 대학 졸업 무렵이었고, 그때는 개봉한 지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그 영화에서 부흐홀츠는 독일군 장교 레싱 박사 역으로 출연했다.
“치코잖아!”
우혁은 노인이 된 치코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레싱 박사 역은 존재감이 크지 않은 조연에 불과했다.
많은 청춘스타들이 한때 반짝 하고는 사라진다.
스타도 나이가 들고 인기도 내려가게 마련이다.
주인공 배역은 들어오지 않고, 연기 생활을 계속하려면 조연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청춘스타들은 여기서 무너진다.
“조연을 어떻게 해. 차라리 연기를 안 하고 말지.”
깊은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부흐홀츠는 비록 빛나지 않는 조연으로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우혁은 그를 배우로서 존경하게 되었다.
2016년 4월 [인생은 아름다워>를 재개봉했을 때 영화관을 찾아 관람했다.
그날 우혁은 감독이자 주인공 ‘귀도’ 역을 맡아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로베르토 베니니보다 부흐홀츠가 등장하는 장면을 기다렸다.
당시 우혁은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때였다.
연기를 포기해야 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끝까지 가자.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연기를 하는 거다.
조연이든 단역이든 악역이든 상관하지 않고!
“좋은 영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 본 뒤 아내가 말했다.아내의 말이 이명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좋은 영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
***
그날 밤, 우혁은 호르스트 부흐홀츠를 추체험했다.
추체험 후 부흐홀츠의 능력이 우혁에게 전이되었다.
부흐홀츠는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소년 시절과 달리 청춘스타로서 화려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배역도 끊임없이 들어왔고, 여자들도 많이 따랐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해 결혼 이후에도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부흐홀츠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배우라는 직업이었다.
배우로서 치열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혁이 부흐홀츠를 추체험함으로써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와 치열함을 본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독일어 실력.
부흐홀츠는 독일 태생이라 독일어가 모국어였다.
그는 독일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우혁은 부흐홀츠에게 전이받은 능력 중에서 언어 능력을 습득하기로 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6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독일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다.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가장 큰 장벽이 언어 문제일 것이다.
제작사 필름박스의 김 실장도 이 문제를 가장 염려했다.
“통역을 해줄 스위스 현지 유학 중인 친구를 구해 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독일어 잘하는 친구가 한국에 있는데 그 친구를 데려가려면 왕복 항공비에 체류비, 통역비까지 책임을 져야 해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구요.”
“정 여의치 않으면 저희끼리 가도 됩니다. SBC 연예인뉴스에서도 동행하니까 그쪽에서 독일어나 프랑스어에 능통한 스텝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SBC 연예인뉴스 박소연 작가와 통화를 하고 나서 우혁의 추측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희 팀은 영어밖에 못하는데요. 영어로 소통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휴대전화 번역 앱 도움 받아가면서 하는 수밖에 없죠 뭐. 혹시 모르니까 통역해줄 현지 유학생을 섭외해 두겠습니다.”
우혁은 통역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간단한 대화 정도는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배우가 바로 호르스트 부흐홀츠였다.
언어 능력을 전이받고 싶다는 욕심에서 부흐홀츠를 추체험했지만 언어 능력보다는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황야의 7인>을 다시 본 것도 즐거웠고, [인생은 아름다워>를 아내와 감상하며 부흐홀츠의 연기 인생에 대해 생각해본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부흐홀츠를 추체험한 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스위스로 떠나기 2주일 동안 세 개의 언어를 익히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덕분에 기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출 수 있었다.
다시금 추체험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감사했다.
***
우혁은 SBC 연예인뉴스 팀과 박 감독, 백곰과 함께 로카르노 영화제 개막 7일째 되는 날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로카르노에 도착했다.
영화제는 10일이지만 10일 동안 체류할 필요는 없었다.
폐막식 하루 전에 하는 시상식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다.
“날씨가 왜 이래?”
SBC 박소연 작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긴 비행 시간으로 지친데다가 날씨까지 우중충해서 다들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늘 환한 표정을 짓는 백곰조차 시차 적응을 못해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스위스 출발 일주일 전부터 흥분해서 들떠서 진을 빼더니 정작 스위스에 도착하자 표정이 심드렁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시차 적응이나 날씨도 문제지만 함께 동행한 SBC 연예인뉴스 팀의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 겸 통역을 해주기로 했던 현지 유학생이 갑작스런 복통 때문에 나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박 작가는 멘붕에 빠져 버렸다.
통역이 없으면 영화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할 수 없을 테고, 시상식 때 시상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호텔에 가서 짐부터 풀고 생각해봅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
우혁이 박 작가를 달랬다.
“죄송해요. 이런 변수가 있을 줄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어떻게 되겠지요. 날씨가 쌀쌀하네요. 이거 입으세요?”
따뜻한 날씨를 예상하며 얇은 옷을 입고 있던 박소연 작가는 부들부들 떨었다.
캐리어 속에 옷이 있지만 길거리에서 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혁이 가방 속에 넣어 온 비닐 비옷을 꺼내 박 작가에게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백곰도 가방 속에서 비닐 비옷을 꺼내 리포터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박 작가와 리포터는 따뜻한 날씨를 예상하고 얇은 여름옷을 입고 왔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에 비를 맞기로 했다.
부슬비라 맞을 만했다.
“택시를 타고 갑시다.”
우혁이 말에 따라 다들 택시를 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어디로 나가야 택시를 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통역 문제에 책임을 지고 있던 박 작가가 나서서 지나가는 서너 명의 사람들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Can you speak English?”
공교롭게도 모두 손을 내저으며 지나갔다.
영어가 되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이었는데 그들도 초행이라 어디에서 택시를 타는지 몰랐다.
“죄송해요.”
박 작가가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상을 지었다.
“여행 안내하는 데가 어디 있을 텐데 그것도 안 보이고···.”
그때 현지인으로 보이는 중년남자를 발견하고 우혁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Scusi!(실례하겠습니다.)”
“?”
“Dov’è la corsa in taxi?(택시 타는 곳이 어디인가요?)”
“Vai laggiù.(저쪽으로 가세요.)”
“Grazie.(감사합니다.)”
남자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지나갔다.
박 작가와 리포터, 박 감독, 백곰이 모두 우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곰은 역시 우리 형이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에 그거 이탈리아어죠? 이탈리아어 하실 줄 아셨어요?”
박 작가가 놀란 눈으로 우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 이상은 못해요. 어서 가시죠.”
우혁은 그렇게 말한 뒤 중년남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가자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였다.
박 작가가 탄 택시 기사가 영어를 하기는 했지만 박 작가의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우혁은 제작사에서 영화제 주최 측의 도움을 받아 유명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지만, SBC 직원들이 묵기로 한 호텔은 유명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제 기간이라 일류 호텔들은 한두 달 전에 이미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작은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는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분이었다.
우혁은 프랑스어로 호텔명과 주소 등을 택시 기사에게 알려주고 기사에게 팁까지 미리 건넸다.
택시에 탄 박 작가와 리포터가 환한 표정으로 우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탄 택시 기사는 독일어와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에 능통했다.
택시 기사는 우리 일행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우혁은 일본어라곤 사요나라, 곤니찌와 정도밖에 아는 게 없어서 독일어로 우리는 일본이 아니라 남한에서 왔다고 얘기했다.
영어도 조금 했지만 지난 2주일 동안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영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했다.
택시 기사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기는 뼛속까지 이탈리아 사람이다, 스위스 여자한테 반해서 여기 와 있는 거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한 손으로 던지고 놀 수 있을 만큼 가벼웠는데 지금은 어림없다, 밑에 깔리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거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한국에서 여긴 왜 왔느냐?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없어 미안하다, 노래는 몇 곡 안다, 오픈 콘돔 스타일···.
호텔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을 때 백곰은 존경의 눈빛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거야? 일본어 빼고 전 세계 말을 다 하는 거야?”
박 감독도 백곰의 말에 동의하며 놀라워했다.
“이탈리어, 독일어, 불어까지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우혁도 조금 놀랐다.
택시 기사의 말이 빠른 편이었는데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기사의 질문에 대답도 술술 나왔던 것이다.
간단하고 쉬운 문장이긴 했지만 큰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백곰은 정갈한 객실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모든 게 다 신기한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스위스 호텔은 이렇게 생겼구나. 근사하다! 창밖 풍경도 멋있어. 비가 오니까 더 멋있는 것 같아.”
“빨리 짐을 풀고 밖에 나가서 영화제도 둘러보고 맛있는 것도 먹자.”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비가 와서 우산을 하나 사야겠다. 참, 영화제 상영관이 야외 영화관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일 우리 영화 상영할 때도 날씨가 이러면 관객들 하나도 없겠다. 시상식도 밖에서 하려나?”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백곰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며 반복해서 추체험했던 호르스트 부흐홀츠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읊조렸던 말이기도 하다.
“평생 내일 걱정만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늙어 버렸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절대 내일 걱정 따윈 하지 않을 텐데···.”
부흐홀츠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헤헤!”
백곰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했던 대사를 읊었다. 못쓸 흉내까지 내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백곰은 스위스에 와서도 행복 바이러스를 마구 퍼뜨렸다.
우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짐 정리를 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달라진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니다.
닥치면 겪는 거다.
즐길 수 있다면 즐기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개면 개는 대로.
[ 로카르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