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2)
우혁은 객실 의자에 앉아 박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소에 잘 도착하셨나요?”
– 배우님 덕분에 잘 도착했습니다. 지금 객실에 막 들어왔어요. 염려했던 것보다 시설이 깨끗하네요. 게다가 여기선 영어가 통해요.
박 작가의 목소리가 밝았다.
“다행입니다. 식사도 하고, 영화제 사전 답사도 하셔야 할 텐데 어떡하실래요?”
– 저희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쪽이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그란데 광장하고도 가깝고 번화가라 식당도 많을 거예요. 쉬고 계시면 호텔에 도착해서 전화드리겠습니다.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가 그쪽으로 가도 됩니다.”
– 여긴 근처에 식당도 안 보여요. 이쪽으로 오시면 어차피 그란데 광장으로 다시 택시 타고 나가야 하잖아요. 저희가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오세요.”
– 예, 배우님! 쉬고 계세요. 30분 내로 가겠습니다.
박 작가와 통화를 마친 뒤 백곰과 박 감독이 머물고 있는 옆 객실로 가서 문을 노크했다.
원래는 백곰과 우혁이 같은 객실을 쓰려고 했으나 5분 전에 박 감독이 백곰을 자기 객실로 데리고 가버렸다.
“배우님이 혼자 쓰셔야지요.”
박 감독이 백곰을 데리고 가며 우혁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동수하고 같이 있겠습니다.”
“동수 씨, 저하고 객실 쓰는 거 괜찮지요?”
박 감독이 백곰에게 물었다.
백곰은 우혁과 같은 객실을 쓰고 싶은 눈치였으나 박 감독이 잡아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을 박 감독의 객실로 끌려갔다.
“저 밤에 코 고는데요.”
백곰은 박 감독에게 끌려가며 코골이를 고백했다.
“그러면 더더욱 배우님하고 같은 방 쓰시면 안 되죠. 저도 코 고니까 잘 됐네요. 사이좋게 골아 보자구요.”
박 감독은 백곰의 변명을 가볍게 묵살하고는 자신의 객실로 백곰을 밀어 넣었다.
“감독님이 독방을 써야 되는 거 아닌가요? 연세도 많으시고 감독님이신데···.”
백곰도 객실 안으로 밀려들어가며 말했다.
“저하고 같은 객실 쓰기 불편하세요? 아직도 저한테 감정 남아 있는 거예요?”
우혁이 천만 감독인 서윤식 감독의 캐스팅 제안을 뿌리치고 [길 밖의 새>에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백곰이 동전 던지기로 결정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 말을 들은 박 감독이 제대로 된 매니저라면 천만 감독 작품에 출연하도록 설득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백곰을 힐책한 적이 있다.
“감독님한테 감정 없어요. 저는 단지 우혁 형이랑 있는 게 편해요.”
“그 말은 저랑 있는 게 불편하다는 거잖아요. 사과할게요.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잘못했어요. 동수 씨가 그때 서 감독님 작품 하라고 배우님 설득했으면 제가 지금 스위스에 올 수 있었겠어요? 어림도 없죠.”
“그건 알겠는데 그거랑 제가 감독님이랑 같은 객실을 사용해야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
“배우님이 편하게 독방을 쓰시게 해드리자는 거죠. 동수 씨 코 곤다면서요. 매니저가 모시는 배우님 배려를 이렇게 안 해도 되는 겁니까? 배우님 생각은 안 해요? 배우님을 모셔야 할 사람이 자기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합니까?”
박 감독이 정색을 하고서 백곰을 힐책했다.
백곰은 갑자기 정색을 하고서 힐책하는 박 감독이 무서워 어깨를 움츠렸다.
“저야말로 배우님하고 같은 방 쓰고 싶습니다. 동수 씨는 늘 붙어 다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럴 기회가 별로 없어요. 배우님하고 같은 방 쓰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다고요. 제가 배우님하고 같이 쓸 테니까 동수 씨 혼자 이 방 쓸래요?”
“그건 안 되죠.”
백곰이 펄쩍 뛰었다.
“배우님 편히 쉬게 해드리자구요. 시상식 준비도 해야 되고,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시나리오 읽으시던데, 연기 연습도 편히 할 수 있게 비켜드리자는 거죠. 통역까지 배우님이 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무슨 나라가 국어가 없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어쩌라는 거야?”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백곰이 박 감독에게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에게 꾸지람 들은 학생의 표정과 자세였다.
“동수 씨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닙니다. 전혀 배 안 고픕니다. 욕을 많이 먹어서···.”
“에이, 왜 그러세요? 화났어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
“감독님, 무섭고 불편해요.”
“저 무서운 사람 절대 아닙니다. 자하고 같이 작업한 분들한테 여쭤 보세요. 저 무섭다는 사람 아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는 무섭게 그러세요?”
“그건···.”
두 사람이 티격 대는 동안 우혁은 박 작가와 통화를 끝내고 옆 객실로 와서 노크를 했다.
똑똑똑!
박 작가가 문을 열어 주었다.
“박 작가하고 통화했습니다. 30분 내로 오겠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그거 알려주러 오셨어요? 그냥 쉬시지.”
“혼자 있기 심심해서요.”
“들어오실래요?”
“고맙습니다.”
우혁이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백곰이 격하게 반겼다.
“형! 감독님이 나한테 화냈어.”
백곰은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고자질했다.
“남자가 무슨 입이 저렇게 싸냐!”
박 감독이 구시렁거렸다.
세 사람은 스위스에 머무르는 동안 어디에 갈지, 무얼 먹을지 등에 대해 의논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났다.
“SBC 팀이 올 시간 됐는데 호텔 로비에 내려가 있을까요?”
박 감독이 우혁에게 물었다.
“그러시죠.”
그렇게 해서 세 사람 모두 객실에서 나와 계단을 통해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헙!!”
로비에 도착했을 때 박 감독이 눈을 크게 뜨며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왜 그러세요, 감독님?”
백곰이 박 감독을 쳐다보았다.
“저기 좀 보세요. 줄리엣···.”
“비노쉬!”
박 감독이 퍼스트 네임을, 백곰이 라스트 네임을 말했다.
줄리엣 비노쉬는 백곰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백곰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서 비노쉬에게 반했다고 한다.
백곰의 방에는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비노쉬는 우혁도 매우 좋아하는 배우였다.
특히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우혁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2016년 1월에 개봉되어 한국에서는 1만 명도 보지 않은 영화였다.
한국 관객 수만 놓고 보면 참패작이다.
그러나 그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및 토론토영화제, 런던영화제, 스톡홀름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 초청된 수작이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세계적인 여배우 비노쉬는 내로라하는 유명 감독들의 출연 제의를 뿌리치고 피에노 메시나라는 신인 감독의 입봉작인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을 선택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대저택에서 두 여자가 한 남자를 기다린다. 한 여자는 그 남자의 엄마이고, 다른 여자는 그 남자의 애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기다리는 남자는 돌아올 수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 엄마는 세상을 떠난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들의 애인에게 아들의 죽음을 숨기며 그녀를 통해 아들의 존재를 느낀다.
하지만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의 애인은 그 집을 떠나 버린다. 홀로 남은 엄마는 다시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는다.
영화의 반은 침묵이다.
비노쉬가 연기하는 엄마의 상실감이 스며들었다.
우혁은 그 영화를 보며 비노쉬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비노쉬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우혁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세 가지 색 : 블루>.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서도 상실의 아픔이 그려지고 있다.
삶과 사랑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돋보이는 한편의 시 같은 영화 [블루>에서 비노쉬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깊은 슬픔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슬픔이 너무 깊어서 울 수도 없는 절망을 대사 하나 없이, 오로지 섬세한 표정과 몸짓만으로 전달하는 비노쉬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블루’라는 가장 차가운 색으로부터 따뜻한 치유를 그려낸 아름다운 영화 [블루>를 보고서 우혁은 비노쉬가 출연한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봄>,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그때 이후로 비노쉬는 생존하고 있는 여배우 중 우혁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 비노쉬가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우혁은 넋을 잃은 채 비노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비노쉬를 발견한 백곰이 자기도 모르게 자석에 이끌리듯 비노쉬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우혁이 말리려 했으나 이미 백곰은 비노쉬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줄리에트 비노쉬!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백곰이 비노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비노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인지 매니저인지 알 수 없는 남자가 백곰을 가로막았다.
마침 SBC 팀이 로비로 들어서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비노쉬를 알아본 것이다.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백곰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며 비노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Si vous ne reculez pas, j’appelle la police.(물러서지 않으면 경찰 부를 거요.)”
남자가 프랑스어로 백곰에게 경고했다.
비노쉬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줄리에트 비노쉬! 베리베리 뷰티풀! 섹시 뷰티풀!”
백곰은 비노쉬에게 두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섹시’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다니!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용어이지만 외국에서는 함부로 쓰다가는 성희롱으로 잡혀갈 수도 있었다.
백곰은 비노쉬에게 엄청난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남자가 백곰을 노려보며 검지로 자신의 눈 아래를 만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검지로 자신의 눈 아래를 만지는 행위는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쓰는 프랑스인의 몸짓이고,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것은 너, 미쳤냐라는 뜻이었다.
몸짓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박 작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백곰은 남자의 손짓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 계속해서 비노쉬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화가 난 남자가 백곰을 밀쳤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박 작가와 리포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Désolé!(죄송합니다!)”
우혁이 남자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남자는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우혁을 경계했다.
“J’espère qu’il n’y a pas de malentendu. Et le mot “sexy” est un mot qui signifie qu’il est si beau dans notre pays.(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섹시’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우혁이 남자에게 해명했다.
“Je m’excuse. Mais vous devez également présenter des excuses à cet ami.(미안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이 친구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군요.)”
우혁은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백곰에게 했던 손짓을 해보였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Je m’excuse.(미안해요.)”
남자가 아니라 줄리엣 비노쉬였다.
“Je m’excuserai au nom de cette personne.(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비노쉬가 우혁과 백곰을 번갈아보며 사과했다.
우혁은 비노쉬에게 백곰이 [퐁네프의 연인들>에 출연한 뒤로 팬이 되었고, 팬으로서 존경을 표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휴대전화를 꺼낸 건 비노쉬와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는 의미였다는 것까지.
우혁의 설명을 듣고 비노쉬가 방긋 웃더니 손짓으로 백곰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사진 같이 찍어 주시겠대. 어서 가 봐.”
우혁이 백곰에게 말했다.
“정말!?”
백곰이 놀란 눈으로 우혁과 비노쉬를 번갈아보았다.
비노쉬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백곰에게 손짓했다.
박 감독이 그 모습을 보고서 부러운지 자신도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서 우혁 옆으로 다가왔다.
백곰은 비노쉬에게 연신 머리를 숙이며 옆으로 다가가 셀카를 찍었다.
비노쉬가 백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곰은 사진을 찍고 나서 연신 비노쉬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비노쉬가 백곰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까지 해주시다니! 평생 이 손 안 씻을 거야!”
백곰이 감격해했다.
백곰이 한 말을 우혁이 비노쉬에게 통역하자 비노쉬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백곰을 다시 불러 포옹을 해주었다.
백곰은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편 박 감독은 백곰이 부러워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박 감독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서 우혁에게 어떻게 좀 해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비노쉬가 그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박 감독을 손짓해 불렀다.
비노쉬는 이번에도 박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비노쉬는 우혁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Enchantée de vous connaître.(만나서 반가웠어요.)”
“Moi aussi.(저도 반가웠습니다.)”
우혁과 악수를 나눈 뒤 비노쉬는 일행과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어떡해어떡해! 사진 못 찍었어.”
리포터가 발을 동동 구르며 멀어지는 비노쉬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우혁이 리포터를 위로했다.
“이런 멍청이, 눈 감았어!”
백곰이 비노쉬와 찍은 사진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사진 좀 볼 수 있을까요?”
리포터가 백곰에게 부탁했다.
백곰은 리포터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리포터가 백곰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자 박 작가도 옆으로 다가와 비노쉬 사진을 보았다.
그러다가 박 작가가 한숨을 내쉬며 자책했다.
“세상에! 비노쉬를 눈앞에서 놓치다니! 인터뷰 신청했어야지, 바보야!”
“계단을 올라가는 걸 보니 이 호텔에 묵는 것 같은데요.”
리포터가 박 작가에게 속삭였다.
“영화제에 참석하러 온 건가?”
“내일이 시상식이잖아요.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일 만나면 인터뷰해야지. 그런데 불어가 돼야 인터뷰를 하든 말든 할 텐데···.”
박 작가가 우혁을 바라보았다.
“다시 뵙게 되면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우혁이 박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서 박 작가에게 말했다.
“통역도 좀···.”
박 작가가 염치없다는 표정으로 우혁에게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우혁이 흔쾌히 대답하자 박 작가가 감사와 존경 가득한 눈길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식사하러 가시죠.”
[ 줄리엣 비노쉬를 만나다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