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0)
“권 선생님··· 위암이세요!”
신여랑 감독이 말했다.
“예!? 권 선생님께서 위암이라고요?”
우혁은 놀란 눈으로 신 감독을 쳐다보았다.
“선생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셔서 그동안 말씀 못 드렸어요.”
신 감독이 우혁의 시선을 피했다.
우혁은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위암이라도 초기라면 완치율이 높다고 들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병의 진행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3기셨어요.”
“수술은 하셨나요?”
“예!”
“언제 하셨죠?”
“6개월 전에 하셨대요.”
6개월 전이면 뮤지컬 [알람>과 영화 [길 밖의 새>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다.
권 선생님은 [홍길동전>이 끝난 뒤 차기작을 고르며 휴식기를 가지는 줄 알았다.
권 선생님은 잘 알려진 배우라 기자들이 눈치를 챌 법도 한데 언론에서 보도된 걸 본 적이 없다.
권 선생님이 투병 사실을 얼마나 철저하게 감추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수술은 잘 끝나신 건가요? 치료는 잘 받고 계시고요?”
“선생님은 수술도 잘 끝났고, 치료도 잘 받고 계시대요.”
“선생님께서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언제 아셨어요?”
“두 달 전에요.”
두 달 전이면 촬영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선생님한테 짜증 부리고 신인 배우한테 화냈다가 우혁 씨한테 한소리 들었던 그날 하루 전에요.”
***
그날 선생님 따님이 절 찾아오셨어요.
다른 사람으로 배역 바꿔 주면 안 되겠냐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더라고요.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이제는 그만 좀 쉬셨으면 좋겠대요.
따님이 미국에 거주하시는데 교포 2세 사업가 남편하고 비교적 윤택하게 사시나 봐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까 선생님을 미국에 모시고 가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게 하고 싶으셨나 봐요.
몇 년 전부터 한국 생활 접고 선생님께 미국에 가자고 설득을 했는데 안 들으시더래요.
빚을 갚아 주겠다고 해도 돈도 안 받으시고요.
스스로 벌어서 빚 다 갚으셨죠.
연세도 많으시고 이젠 쉬셨으면 좋겠는데 고집을 부리시고.
그러다 위암 수술까지 하게 되니까 따님이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겠다 생각을 했나 봐요.
선생님은 그 수술도 따님한테 알리지 않았대요.
그러니 따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더 기가 막힌 건 수술 끝나고 두 달 뒤에 제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하신 거예요.
무슨 영화를 하는지도 따님한테 말씀을 안 하셨대요.
그냥 계약했다고만 말씀하시면서 영화 촬영 때문에 미국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셨나 봐요.
따님은 할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선생님이 우리 영화를 한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그래서 절 찾아오신 거예요.
일단 따님한테는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죠.
선생님은 완강하시더라구요.
미국 절대 안 가신대요.
수술 잘 끝났다는 거예요.
그러시면서 다른 사람한테 이 사실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라구요.
저는 선생님 따님 마음 이해해요.
저희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저한테는 끝까지 숨기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 의사한테 들었죠.
선생님 따님 얘기 듣는데, 엄마 생각이 나는 거예요.
따님 말대로 선생님을 미국으로 보내고, 다른 사람 캐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저한테는 목숨 같은 영화이지만 아무리 목숨 같은 영화라 해도 선생님 목숨만큼 중요하겠어요.
제가 얼마나 못됐냐 하면요. 이러다 선생님이 중간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우리 영화 어떻게 되나 걱정이 되더라구요.
잠도 못 자고 다음날 촬영장에 나와서 선생님 연기 하는 걸 보는데 화가 나는 거예요.
선생님께 걱정하는 딸 생각은 안 하느냐, 퍼붓고 싶었어요.
그날 저녁에 권 선생님 따로 뵈었죠.
미국 가시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우시면서 저한테 영화 계속 찍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시더라구요.
한 시간은 싸웠을 거예요.
결국 제가 졌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한 달이 지났는데 즐겁게 연기하시는 선생님 보다가 갑자기 울음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일하게 해드리자.
그렇게 마음먹으니까 저도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는데···.
***
“어제 다시 따님이 전화를 하셔서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을 하시더라구요. 모든 피해 비용은 지불하시겠대요.”
“그 정도는 저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닌 것 같네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는 게 선생님을 위하는 길이고, [마른 풀잎의 노래>를 위하는 길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도 감독님께서 그동안 마음고생이 크셨겠네요.”
우혁이 신 감독에게 위로의 말을 던졌다.
신 감독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서 감정을 추슬렀다.
우혁은 조용히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제가 만약 선생님 상황에 처했다면 저도 선생님과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겁니다. 친구도 없는 이국땅에 가서 뭘 하죠? 북극곰에게 너 추워 보이니까 따뜻한 데로 가자고 하는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혹독해 보여도 북극곰에겐 북극이 천국입니다. 병에 걸린 북극곰이 불쌍하다고 동물원에 가두겠다는 건데, 제가 북극곰이라면 동물원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감독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선생님 모시고 끝까지 가시죠. 대신 병은 전 스텝들에게 공개하는 걸로 하죠.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죄 지은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 받고, 폐 끼치는 게 싫으실 수도 있겠지만 배려 받고 도움 받으셔야 합니다. 옆에서 약 챙겨 드리고, 술자리 안 만들고, 힘들어 보이면 쉬어 가야겠지요. 요즘 막걸리도 한잔씩 하시는 것 같던데···.”
“막걸리를 드셨다구요?”
“감독님 없을 때 스텝들하고 한잔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어요.”
“내가 못살아!”
“선생님 투병 사실 스텝들한테 알려야 합니다. 아니 언론에 알려서 사람들이 모두 알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식당 주인들도 선생님이 막걸리 달라고 하면 안 줄 거 아닙니까. 선생님 막걸리 좋아한다는 거 온 국민이 다 아시잖아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선생님만 보면 막걸리 한잔하자고 하시잖아요. 지금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홍길동전> 촬영 때 동네 사람들하고는 가끔 마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선생님께서 병이 알려지는 걸 너무너무 싫어하시던데요.”
“싫어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기자한테 귀띔하겠습니다.”
우혁은 곧바로 꿩닭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권 선생님의 암 투병 사실을 귀띔했다.
***
이튿날.
스텝들과 배우들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촬영장 근처 식당에 모여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혁과 신 감독은 식당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막걸리 한잔 마셨으면 좋겠네.”
권 선생님이 냉장고에 진열된 막걸리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선생님! 막걸리 드시고 싶으세요? 시켜 드릴까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연출부 막내가 권 선생님의 혼잣말을 듣고 나섰다.
“그래. 한잔 마시자.”
“여기 막걸리 한 병 꺼낼게요. 막걸리 잔 좀 주세요.”
연출부 막내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한 병 꺼내며 부탁했다.
막걸리 잔이 나오자 막내는 막걸리를 잘 섞은 뒤 잔에 따랐다.
“고맙다! 너도 한 잔 할텨?”
“저는 안 돼요. 감독님한테 걸리면 혼나요. 촬영도 안 끝났는데 마실 수는 없죠.”
그때 우혁과 신 감독이 스텝들과 배우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여 와!”
권 선생님이 식당으로 들어서는 우혁과 신 감독을 손짓해 불렀다.
우혁과 신 감독은 권 선생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선생님!”
신 감독이 놀란 눈으로 권 선생님을 불렀다.
“왜?”
권 선생님이 신 감독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신 감독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막걸리 병과 권 선생님 앞에 놓여 있는 막걸리 잔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긴 뭐야, 막걸리지! 한 잔 할텨? 아참, 신 감독은 술 입에도 안 대지?”
권 선생님이 젓가락으로 막걸리를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누구야? 누가 선생님 막걸리 드렸어?”
신 감독이 스텝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연출부 막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내가 시켰어. 쟤는 아무 잘못 없어. 갑자기 왜 화를 내고 이래?”
신 감독이 선생님의 막걸리 잔을 낚아채더니 벌컥벌컥 마셔 버렸다.
“야야, 내 술을 왜 마시니?”
권 선생님이 신 감독에게 핀잔을 주었다.
신 감독이 술을 다 마시고는 몸서리를 쳤다.
“앞으로 선생님 막걸리 사 주는 사람 잘라 버릴 거야. 명심해. 진짜 잘라 버릴 거라고.”
“강 배우!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막걸리 한 잔도 못 마시게 하는 감독이 어디 있어.”
권 선생님이 우혁의 역성을 기대하며 우혁을 끌어들였다.
“감독이 마시지 말라면 말아야죠. 배우가 감독 말을 안 들으면 어떡합니까.”
우혁의 말에 권 선생님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스텝들과 배우들 모두 스톱 모션을 취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으니까.
스텝들과 배우들은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주고받거나 우혁을 흘낏거렸다.
“왜들 이래? 막내야 술 따러!”
권 선생님은 정말 화가 나셨는지 목청을 높여 연출부 막내에게 명령했다.
막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권 선생님과 신 감독, 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권 선생님이 직접 술병을 집어 들고 사발에 술을 따랐다.
막걸리를 사발 가득 따랐을 때 누군가가 사발을 가져갔다.
이번에도 신 감독이었다.
벌컥벌컥!
대학 신입생 오티 때 처음으로 마신 술에 체해 병원에 실려 간 뒤로 술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백곰은 한 잔이라도 마시는 사람이지만 신 감독은 아무리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도 거절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신 감독이 막걸리 두 사발을 원샷했다.
“감독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연출부 막내였다.
“선생님께서 막걸리 한잔 드신다고 해서 촬영을 못하시는 거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한잔 드시고 연기하시면 더 좋은 장면 많이 나오는 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좀 심하십니다.”
이번에는 조명팀 막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감독님 오늘 심하시네요. 배우님, 실망입니다.”
조명팀의 팀장까지 거들었다.
신 감독과 우혁을 제외하고 모두 권 선생님 편이었다.
“선생님 가까이 계신 친구, 술 따라 드려라!”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순둥이 촬영 감독이 말했다.
촬영 감독은 아무리 화를 낼 상황이어도 화를 내지 않고 허허 웃는 사람이었다.
연출부 막내가 막걸리 병을 잡더니 권 선생님 사발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때 우혁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연출부 막내에게 보여주었다.
연출부 막내가 휴대전화 화면을 보는 사이 신 감독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막걸리를 원샷했고.
“꺼억!”
세 잔째 원샷한 신 감독이 트림을 했다.
냄새가 고약했는지 신 감독은 손으로 얼굴 앞으로 휘저으며 냄새를 날렸다.
트림에 이어 딸꾹질이 이어졌다.
권 선생님이 막걸리 병을 잡았다.
그런데 그 병을 잡는 손이 있었다.
연출부 막내!
“넌 또 왜 그래?”
권 선생님이 연출부 막내에게 눈을 부라렸다.
“감독님 말씀 들으십시오.”
연출부 막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서 권 선생님에게 말했다.
“연출부 막내! 너 이 자식, 죽고 싶어?”
조명팀의 팀장이 화를 버럭 냈다.
신 감독이 딸꾹질을 하며 조명팀 팀장에게 가서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주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꿩닭 기자가 쓴 기사가 떠 있었다.
권 선생님이 위암 투병 중이라는.
조명팀 막내가 막걸리를 따라주러 일어나려고 하자 조명팀 팀장이 막내의 팔을 잡아 앉히더니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휴대전화는 그렇게 스텝들과 배우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따라 드리겠습니다.”
연출부 막내가 권 선생님에게 말했다.
권 선생님이 막걸리 병에서 손을 놓자 막내가 병나발을 불었다.
권 선생님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막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신 감독이 권 선생님 앞에 철퍼덕 앉았다.
“기사 떴어요, 선생님! 딸꾹!”
“무슨 기사?”
누군가가 권 선생님에게 휴대전화를 갖다 주었다.
권 선생님은 휴대전화를 멀찌감치 들고서 기사 제목을 읽었다.
[권선자 배우, 위암 투병 사실 밝혀져]“누가 이 따위 기사를 썼어? 이거 가짜 뉴스야.”
권 선생님이 잡아뗐다.
“따님한테 다 들었어요, 선생님! 딸꾹!”
“윤영이가 신 감독을 찾아왔었어?”
“예!”
“걔는 왜 그런 짓을 한다니?”
“엄마가 걱정 되니까요. 딸이 엄마 걱정하면 안 돼요?”
우혁이 신 감독을 제지하려 했으나 팔을 뿌리쳤다.
“아픈 엄마 걱정 돼서 날 찾아왔더라구요. 미국에서 말이에요.”
권 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영이가 나 미국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겠구만.”
“예!”
“나 미국 안 가!”
권 선생님이 옆으로 돌아앉았다.
“안 되죠.”
“글쎄, 안 간다니까.”
“안 보낸다구요. 못 보내요. 선생님, 미국에 가시면 친구가 있어요, 용돈 줄 막내가 있어요. 없잖아요. 거길 왜 가요. 제가 못 보냅니다. 가신다고 해도 제가 잡을 거예요.”
“그럼 됐어!”
“되긴 뭐가 돼요, 선생니이이임? 우리 영화 끝까지 하셔야 되잖아요. 그러려면 건강하셔야죠. 약도 잘 드시고, 병원에도 잘 다니시고, 필요하면 수술도 받으시고, 이런 막걸리 드시지 마셔야지요.”
“아이고야! 막걸리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다니!”
권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연출부 막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선생님! 감독님 말씀 들으십시오. 진짜···.”
“넌 또 왜 그러니?”
“막걸리 드시지 마세요.”
“알았어알았어. 안 마실게. 안 마시면 될 거 아니야.”
권 선생님이 연출부 막내의 등을 토닥여 주며 약속했다.
그날 이후 권 선생님은 막걸리는 물론 맵고 짠 음식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농담으로라도 막걸리 마시자고 하는 사람 없었고, 식당과 가게에서는 선생님에게 막걸리를 팔지 않았다.
아무리 팔지 않아도 선생님이 마시려고 들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으나 끊기로 했다.
권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술 끊고, 음식 조심하고, 병원 정기적으로 다니고, 운동하면서 즐겁게 연기했다.
[ 북극곰에겐 북극이 천국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