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5)
아녜스 수녀와 세실리아 수녀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수녀님!”
아내가 두 수녀를 보더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녜스 수녀는 아내가 있었던 ‘성바오로 은혜의집’ 보육원 원장이고 세실리아 수녀는 ‘성바오로 은총의집’ 양로원 원장이었다.
두 분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하는 일이 많았고 늘 바빴다.
우혁도 이 두 분을 만난 게 결혼식 이후 처음이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두 분을 매우 좋아하지만 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았다.
전화라도 자주 하지 그러냐고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아내가 두 분의 역성을 들었다.
“두 분이 챙겨야 하는 아이만 수십 명이야. 나처럼 손을 거쳐 간 사람들까지 합치면 엄청날걸. 손 한 번씩만 만져 주려고 해도 몇 시간은 걸릴 거야. 예전에 수녀님께서 그러시더라. 보육원을 거쳐간 아이들한테서 전화가 오면 이번엔 무슨 사고가 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신대. 그래서 가능하면 전화 안 해. 무소식이 희소식이잖아.”
“그래도 뵙고 싶을 때는 전화해.”
“그러는 애들 있어. 전화해서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고, 괜히 화도 내고, 떼쓰고···. 자기한테 관심 써 달라는 건데, 나까지 그럴 수는 없잖아. 보육원에 있을 때 수녀님한테 관심 받으려고 일부러 말썽 부리는 애도 있었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나도
그랬고. 아녜스 수녀님을 독점하려고 했거든. 다른 아이들한테 눈길이라도 주면 샘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겠는 거야.”
아내는 그 말을 얘기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난 뒤에 수녀님한테 엄청 혼이 난 적이 있어. 그러고 나서 몇 개월 동안 수녀님이 눈길도 안 주시는 거야. 얼마나 섭섭하고 속상하던지 많이도 울었어. 울어도 안 봐 주시길래 내가 포기했지. 수녀님은 어떤 아이한테도 편애하지 않
으려고 애를 쓰는 분이야.”
아내는 보육원 시절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그때 들은 말이 우혁이 그동안 보육원에 관해서 들은 가장 긴 이야기였다.
우혁이 아내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아도 아내는 못 들은 척하거나 말문을 돌렸다.
그 뒤로는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보육원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녜스 수녀와 세실리아 수녀는 아내의 생일이자 세례명 축일인 양력 8월 15이면 항상 선물을 보냈다.
아내의 세례명은 스텔라.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얻게 된 것은 아내가 발견된 날이 바로 8월 15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태어난 해와 날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견된 날을 생일로 삼고, 동시에 그 날이 축일인 ‘스텔라’를 세례명으로 정하게 되었다.
아녜스 수녀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인자한 눈길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오셨어요.”
“오래 못 있어. 금방 가야 돼. 지나는 길에 들렸어.”
아녜스 수녀는 아내의 손을 잡고서 기도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내의 고통도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기도를 끝낸 아녜스 수녀가 아내를 격려했다.
“수녀님, 그만 가봐야겠는데요. 이러다 늦겠어요.”
옆에 서 있던 세실리아 수녀가 아녜스 수녀에게 말했다.
“안 바쁘면 아기 낳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봐주면 좋을 텐데 가봐야겠구나. 급한 일 끝내고 두 시간 뒤에 다시 올게.”
“바쁘실 텐데 안 오셔도 돼요.”
아내가 웃어 보였다.
“일 보고 오려다가 지나가는 길에 얼굴이나 보려고 들렸어. 이따 다시 올게. 아기도 보고 싶고.”
아녜스 수녀가 아내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예, 수녀님!”
아내가 아녜스 수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다시 통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아녜스 수녀는 아내의 손등을 어루만져 주었고, 아내는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손아귀에 힘을 푸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갈게! 잘 있어.”
세실리아 수녀가 아내에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예! 수녀님!”
아내도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간신히 대답했다.
두 수녀가 나가자마자 아내가 웃음을 지우고서 고통스러워했다.
10분 뒤 아내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우혁도 가운을 입고 분만실로 따라 들어갔다.
아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만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하고 미안했다.
여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내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나 우혁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이 이토록 처절한 전쟁일 줄은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우혁은 같은 고통을 겪었을 어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했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며 그저 마음속으로 다짐할 뿐이었다.
평생 이 빚 갚으며 살게!
아내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걸 보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아내가 죽으면 어쩌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잘하고 있습니다. 좀 더 힘을 내세요.”
한가한 소리를 하는 여의사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돌팔이 아니야?
사람이 다 죽어 가는데 잘하고 있다니!
안 아프게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거야?
산모가 이렇게 아픈데 의사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저러고도 돈을 받아먹는 건가?
속으로 의사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다.
일순, 아내의 비명이 잦아들고 여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력을 다한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졌다.
“예은아!”
아내의 이름을 다급하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낯설고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으애! 으애애! 으애애애!!”
우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능한 돌팔이 여의사와 간호사들은 갓 태어난 핏덩어리를 중심에 두고서 이런저런 조치를 취했다.
아내가 죽어가고 있건만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기! 우리 아기 건강해?”
아내가 우혁에게 물었다.
“예은아, 괜찮아?”
우혁은 아내가 더 걱정이었다.
“난 괜찮아!”
아내는 아기를 보려고 고개를 자꾸 들었다.
아내가 죽지는 않을 것 같아 안도가 되었다.
“축하합니다. 아기는 아주 건강합니다. 엄마,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의사가 우리 쪽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의사의 말에 아내가 비로소 안심을 하며 머리를 베개에 뉘었다.
“아빠, 탯줄 자른다고 하셨지요?”
여의사가 우혁에게 물었다.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탯줄은 태어나고 3분쯤 경과한 뒤에 자르는 게 좋아요. 아기 엄마한테 잘했다고 칭찬 좀 해줘요.”
“아내는 괜찮은 건가요?”
우혁이 여의사에게 물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입니다만,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몸조리 잘해야 해요.”
우혁은 아내가 죽는 건 아니냐고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아기 엄마, 잘못될 봐 걱정되세요?”
“···.”
“아기를 낳은 사람은 엄만데 아빠가 왜 그렇게 땀을 흘려요?”
여의사가 우혁에게 티슈를 꺼내 주었다.
우혁은 티슈를 받아 얼굴을 닦았다.
티슈가 땀으로 금세 젖어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느라 고생했어!”
아내가 우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고생은 당신이 해놓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서서 땀이나 삐질삐질 흘린 인간한테 무슨 위로야.”
우혁이 아내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푸훗!”
“크크!”
간호사가 우혁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아빠! 이쪽으로 오세요.”
여의사도 우혁을 손짓했다.
우혁은 여의사에게 다가갔다.
“이 가위로 이 부분을 자르는 거예요. 할 수 있겠어요?”
여의사가 물었다.
간호사가 들려주는 가위를 손에 들고 갓 태어난 핏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으애으애 울어댔다.
못생겼다!
고구마도 이것보다 예쁘겠다!
천사처럼 예쁜 아기를 기대했는데 우혁의 눈앞에 있는 아기는 아내를 조금도 담지 않은 못난이였다.
딸인데 시집이나 갈 수 있으려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에서 탯줄을 자르는 ‘사소한’ 일이 떨어졌는데 무척 겁이 났다.
차라리 100미터 높이의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비록 못생겼으나 살아 있는 생명인데 가위질을 해야 하다니 못할 짓이었다.
머리털 하나를 뽑으라고 해도 못하겠는데 생살을 자르라니!
굵기는 또 왜 그렇게 굵은지!
“자신 없으세요?”
여의사가 우혁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여기를 자르면 되는 거죠?”
“따님 이름이 뭐죠?”
“민서, 강민서입니다.”
“우선, 민서한테 나오느라 고생했다고 한마디 해주세요.”
여의사가 우혁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혁은 여의사가 시키는 대로 말을 하려는데 목이 살짝 메었다.
헛기침 한 번 하고.
“민서야! 나오느라 고생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친 것이다.
“아빠 목소리를 듣더니 민서가 울음을 뚝 그쳤네!”
여의사가 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뭉클했다.
민서가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 시간 날 때마다 동화책을 읽어 주곤 했는데 민서가 아빠 목소리를 기억한 건가?
“아이가 아프지 않을까요?”
우혁이 여의사에게 물었다.
“아프지 않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잘라 주세요.”
여의사가 응원했다.
우혁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탯줄을 잘랐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잘하셨어요. 아주 잘했어요.”
여의사가 우혁을 칭찬했다.
우혁은 가벼운 현기증이 났지만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민서를 살펴보았다.
민서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민서야! 다 됐어! 이제 괜찮아!”
울음이 멈추게 하려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민서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의사와 간호사가 민서에게 이런저런 조치를 취한 뒤에 민서를 아내에게 데리고 갔다.
“축하드려요. 엄마 고생하셨어요.”
여의사가 민서를 아내 왼쪽 팔뚝과 겨드랑이 위에 올려놓았다.
“민서야! 고생 많았어! 아주 잘했어!”
아내가 민서를 품에 안으며 소곤소곤 칭찬의 말을 건넸다.
다시 한 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민서가 울음을 멈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을 엄마 얼굴이라도 확인하려는지 눈을 뜨려고 했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눈을 뜨려고 하는 모습은, 못생긴 고구마가 더 못생겨지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민서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에는 사랑이 넘쳐흘렀다.
“민서 아빠, 밖에 나가서 어머님 아버님께 아기 건강하다고 말씀드려. 기다리느라 속이 타실 텐데···.”
아내가 우혁에게 말했다.
민서와 아내를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아내의 말에 따랐다.
가운을 벗고 밖으로 나갔다.
우혁이 분만실 문을 열었을 때 하마터면 문 앞에 붙어 계시던 아버지의 이마를 문으로 때릴 뻔했다.
“에미는 어떠냐?”
복도를 서성이고 있던 어머니가 우혁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아요. 아기도 건강하고요.”
“아이고 하나님! 부처님! 신령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모으고서 감사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껌뻑이며 뒷짐을 진 채 저쪽으로 걸어가셨다.
***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아녜스 수녀와 세실리아 수녀가 왔다.
아내는 입원실에서 잠이 든 상태였다.
“스텔라는?”
“출산 잘 했습니다. 아기도 스텔라도 건강합니다. 스텔라는 입원실에서 지금 자고 있습니다.”
두 수녀는 감사 기도를 올렸다.
두 수녀를 모시고 입원실에 들어갔다.
아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 수녀는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입원실을 나왔다.
“아기 보시겠습니까?”
“그래요. 보여줘요.”
신생아실로 가서 아기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우혁은 두 수녀에게 아기를 보여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민서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민서는 보면 볼수록 예뻐졌다.
“예쁘기도 하지!”
“어쩜 저리 예쁠까! 천사가 따로 없네!”
두 수녀가 민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생아실에서 민서를 보고 나서 휴게실로 모셨다.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내가 일어나면 왔다 가셨다고 전하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나 할까 했는데 아쉽네요. 다녀갔다고 얘기 좀 전해 줘요.”
“예, 알겠습니다.”
“이 근처에 식당이 어디 있나요?”
“식사하시게요? 2시가 훨씬 넘었는데 아직 식사 안 하셨어요?”
“벌써 2시가 됐구먼요.”
“저도 아직 점심 못 먹었습니다. 가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근처 한식당으로 가서 두 수녀님과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 어디 잠깐 갔다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식사를 마치고 아녜스 수녀가 양해를 구하고 일어났다.
“아까 여기 오는 길에 아기 옷 파는 곳을 유심히 보더니 거기 갔다 올 모양이에요. 아녜스 수녀님 옷 하나 고르는 데 한참 걸릴 테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겁니다.”
세실리아 수녀가 말했다.
“수녀님!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제가 듣기로 아녜스 수녀님께서 제 아내를 거두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스텔라가 그 얘기 안 해 줬어요?”
“아내가 그때 얘기는 별로 하지 않더라구요.”
“스텔라한테는 좋은 기억이 아닐 테니까요.”
“그 얘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
날짜도 똑똑히 기억해요.
8월 15일.
광복절이잖아요.
아녜스 수녀님하고 내가 예은이를 만난 건 시애틀이었어요.
시애틀에 수녀원이 있거든요.
수녀님하고 그 수녀원에서 2개월 정도 머물고 있었어요.
그날 오후에 수녀님하고 시내에 갔는데 어디서 ‘엄마! 엄마’ 하고 여자 아이가 우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거예요.
미국땅에서 한국말을 들으니까 귀에 쏙 들어와요.
그래서 소리가 난 쪽을 보니까 한 백인 남자가 스텔라를 안고 가는 겁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요.
수녀님하고 둘이서 그 남자한테 달려갔어요.
이 아이, 누구냐? 당신 뭐냐? 막 따졌죠.
그 남자가 상관 말라면서 화를 내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스텔라한테 한국말로 물어봤어요.
이 사람 아는 사람이냐?
그랬더니 스텔라가 고개를 흔들더라고요.
그때부터 그 남자한테 스텔라를 뺏으려고 사투를 벌였어요.
어디서 괴력이 나왔는지 몰라요.
아녜스 수녀님이랑 둘이서 덩치가 산만한 그 남자한테서 기어이 스텔라를 빼앗았어요.
스텔라를 구하긴 구했는데 난감한 거예요.
스텔라는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했어요.
이름을 물어보니까 이예은이라고 하더군요.
이해인이 아니냐고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스텔라가 그때 네다섯 살밖에 안 됐을 때라 우리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어요.
암튼 영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한국애를 미국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난감해요.
엄마 아빠 어디 있냐,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까 동서남북을 다 가리켜요.
신분증이 있나 해서 뒤져 봤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애가 놀랐는지 계속 우는 거예요.
날은 점점 저물고 해서 우선 애를 데리고 수녀원으로 갔죠.
그때부터 스텔라는 아녜스 수녀님한테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더라구요.
수녀님하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애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같은 침실에서 데리고 잤겠어요. 애가 수녀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밤새 우는데 어떡해요.
스텔라 부모를 찾아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부모가 안 나타나는 거예요.
신문, 라디오 방송 다 동원해 봐도 안 나타나요.
그렇게 한 달을 보냈나 봐요.
스텔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수녀원 수녀들이 머리를 맞대고서 회의를 몇 바탕이나 했는지 몰라요.
미국에서 발견이 되었으니까 미국 고아원에 맡기자 그렇게 결정을 내렸는데 스텔라가 눈치를 채고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 거예요.
아녜스 수녀님이 볼일이 있어서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나흘쯤이었나?
스텔라가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더니 시름시름 앓더라구요.
나흘 동안 물 한 모금 안 먹는 거예요.
이러다 애 잡겠다 싶더라니까요.
아녜스 수녀님 돌아오니까 애가 살아나데요. 밥도 먹고 말도 하고 웃기도 하고 뛰어다니고···.
그런데 큰일인 게 아녜스 수녀님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 된 거예요.
원장 수녀님이 스텔라한테 물어봤어요.
“아녜스 수녀님 따라서 한국 갈래?”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겁니다.
미국에는 부모하고 있는 애들은 신분증 없이도 비행기를 타게 해주기는 하는데, 우리는 스텔라 부모가 아니잖아요.
미국은 여권하고 운전면허증이 중요한 신분증인데 스텔라는 운전면허증도 없고 여권도 없었어요.
부랴부랴 스텔라 신분증 만들어서 아녜스 수녀님하고 한국으로 간 거예요.
스텔라 신분증 만드느라 애 많이 먹었어요.
한국 보육원 원장 수녀님 성이 정씨예요. 그때 신분증 만들면서 스텔라 성씨를 정씨로 바꾸었지요.
그렇게 해서 한국에 온 겁니다.
한국에 와서도 스텔라는 아녜스 수녀님만 졸졸졸 따라다녔어요. 전생에 부모자식 간이었는지 어쨌는지 잠시도 안 떨어졌다니까요.
그때만 해도 아녜스 수녀님하고 나는 보육원에서 일을 보조하는 일을 했는데 아녜스 수녀님이 스텔라만 예뻐하다가 당시 원장님께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어요.
편애는 다른 아이들에게 채찍을 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다른 아이들도 사랑에 굶주려 있는데 왜 한 아이에게만 배 불리 먹이고 다른 아이들은 굶기냐는 거예요.
맞는 말씀이잖아요.
그 말 듣고서 아녜스 수녀님 펑펑 울었어요.
그 뒤로는 스텔라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어 줬지요.
스텔라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왜 안 그랬겠어요.
한 1년 힘들어하는 것 같더니 스텔라도 곧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구요.
스텔라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녜스 수녀님은 스텔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요.
아녜스 수녀님이 종종 그런 말씀하세요.
“스텔라는 전생에 버린 딸인 것 같아요. 왜 그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이렇게 미어지는지 모르겠어요.”
***
세실리아 수녀의 말이 끝났을 무렵, 아녜스 수녀가 선물을 사들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아녜스 수녀가 우혁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식당에서 나와 병원 앞에서 수녀님과 헤어졌다.
“스텔라!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우혁은 아녜스 수녀와 세실리아 수녀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다.
아녜스 수녀와 세실리아 수녀와 헤어져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 로비에서 백곰과 정 실장을 만났다.
두 사람 뒤에는 풍채 좋은 반백의 중년 남성과 인자한 눈매의 중년 여인가 서 있었다.
영상통화로 뵈었던 두 분의 얼굴에 아내의 얼굴이 확연하게 보였다.
장인 장모였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