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좋아하게 될 줄 알았어
“수운태?”
“순대요.”
“순대. 그래, 순대. 잘 알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요리 이름에 토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해한 척했다.
아, 저거 완전히 이해 못 한 표정이네.
그래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순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돼지의 부속 고기와 야채를 잘 갈아서 돼지 선지와 함께 돼지 창자에 넣어서 익힌 요리입니다.”
“선지?”
“돼지 피를 말합니다.”
“아하!”
내 설명을 듣자 토르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카잔카를 말하는 거로군.”
카잔카(Kaszanka)는 곡물과 돼지의 피와 고기를 섞어 내장에 넣은 소시지 요리였다.
지금은 폴란드 요리로 알려졌지만, 그 유래는 독일과 덴마크 지방에서 건너간 요리로, 게르만족들이 먹던 요리기도 했다.
“옆 동네 인간들도 비슷한 걸 먹더군.”
북유럽 신화가 주로 믿어졌던 곳은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한 게르만 지역.
아마 그가 말하는 옆 동네란 핀란드나 폴란드, 헝가리 쪽을 말하는 걸 터였다.
핀란드에는 무스타막카라(mustamakkara)라고 불리는 돼지 선지와 호밀을 넣어 만든 소시지가 있었고, 폴란드에는 카잔카가, 헝가리에도 후르카라는 선지 소시지가 있었다.
바이킹들이 건너갔던 영국에는 블랙 푸딩이라는 영국식 피순대가 있었고.
“돼지를 잡고 나서 순대나 소시지를 만드는 건 보편적인 요리니까요.”
돼지의 다른 부분은 고기로 먹기 편하지만, 내장이나 피, 먹기 애매한 부위는 먹기가 힘들고 버리자니 아깝다.
그래서 그걸 전부 갈아서 창자에 넣고 익히는 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선지가 고기와 함께 들어가면 순대, 고기만 들어가면 소시지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 그 순대라는 음식을 어서 내오도록!”
내 설명을 완벽히 이해한 토르가 신이 나서 오픈 키친 바를 두드렸다.
토르의 힘도 그렇고 손도 솥뚜껑만 해서 오픈 키친 바가 부서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힘 조절을 한 건지, 아니면 알비스가 만들어서 튼튼한 건지 부서지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을 들으면 부술 것 같기도······.
나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 토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드릴 수 없으니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뭣이?!”
요리를 줄 수 없다는 말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토르.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그의 투구가 천장에 닿을 뻔했다.
뭐 하나 할 때마다 가게가 부서지지 않나 걱정해야 할 판이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지금 토르가 꺼낸 망치 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지금 요리를 못 하겠다고?!”
“자, 잠깐만 진정하시지요. 망치 좀 집어넣으시고요!”
부웅하고 휘둘러진 망치의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날리는 걸 보며 식은땀이 등 뒤로 주르륵 흘렀다.
저 망치가 그 유명한 묠니르겠지?
본인은 무언가를 박살 내려고 휘두른 게 아니라 흥분해서 휘두른 거겠지만, 난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고.
“당장 왜 요리를 못 주는지 대답해라! 이 토르는 네 음식을 기대하고 왔단 말이다!”
······진심으로 휘두른 걸 수도 있겠네.
요리에 진심이라 몹시 흥분한 토르를 보며 나는 난처함 반, 기쁨 반을 느껴야 했다.
내 요리를 기대해주는 건 기쁘지만, 이걸 어떻게 설득한다?
내가 지금 요리를 못 해주는 이유가 있었다.
“순대는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요리라서요.”
순대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혼자서 만들기가 어려운 요리이기도 했다.
일단 돼지 창자부터 냄새가 나지 않게 깨끗하게 손질해야 했고, 좁은 창자가 찢어지지 않게 속을 채우고 찌는 동안 해가 떠버릴걸?
그러니 지금 당장 만들어 준다는 건 무리였다.
“토르 님.”
나는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토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요르문간드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이 드시고 싶으신 거죠?”
“그렇다!”
“그렇다면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드시지 않으시겠죠?”
“······그렇다.”
아까에 비해 한층 줄어든 목소리.
나는 속으로 웃으며 설득을 이어 나갔다.
“뱀을 씹어먹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요리는 제가 확실히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맛도 보장하고요. 하지만 그러려면 준비가 필요해서요.”
“으음······.”
요르문간드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과 당장의 배고픔 사이에 갈등하는 토르를 보며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내일 오시면 제가 최고의 순대를 보여드리죠.”
“최고의 순대?”
내 미끼를 문 토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다양한 순대를 한자리에서 맛보실 수 있는 순대 오마카세를 준비해보겠습니다.”
“오마카세? 그게 뭐지?”
“요리사 특선 추천 요리 코스입니다. 제게 맡기시면 가장 맛있는 요리로 대접해 드린다는 뜻이죠.”
“내일 오마!”
순대 오마카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문으로 달려가는 토르.
나는 순식간에 문밖으로 사라진 토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일은 바빠지겠네.”
순대는 특히나 밑 준비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일단 돼지 창자부터 깨끗이 씻어야 했다.
“식용 콜라겐 케이싱을 써도 되지만, 거기엔 마력이 안 들어가 있으니까.”
콜라겐 자체를 몬스터에게서 추출하면 만들 수도 있지만, 순대 하나 만들겠다고 거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순대는 돼지의 창자로 만드는 거였으니 내겐 딱 좋은 재료도 있었고.
“에녹 씨가 잡아 온 블러디 보어를 이제야 쓰게 됐네.”
우리 가게 냉장고에는 에녹이 잡아 온 블러디 보어의 고기와 돼지 창자와 선지를 포함한 부산물이 가득이었다.
“그나저나 나 혼자서 되려나 모르겠네.”
스루드만 해도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었다.
토르는 그런 스루드의 아버지인 데다, 원래 많이 먹기로 신화에서 유명하기도 했다.
토르는 서리 거인 우르가트르 로키의 수작으로 바다와 연결된 술잔을 마셔서 지구 전체의 바닷물 수위를 낮출 정도로 위장이 컸다.
그 덕에 밀물과 썰물이 생겼다나?
토르를 굳이 내일 오라고 돌려보낸 것도 그 이유였다.
그의 배를 채울 정도로 순대를 만들려면 꽤 오랜 시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아무튼, 에녹과 미야, 천오는 지금 다 휴가를 가 있었기에 나 혼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 가게에는 설기도 있었지만,
“끼잉.”
이 녀석, 토르의 위엄에 겁을 먹고 아기 진돗개 모습으로 변한 다음에 집 안에 들어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긴, 처음 보는 신화급 성좌였을 테니까.
아니, 성좌를 보는 거 자체가 처음인가?
“이 녀석, 앞으론 적응해야 할 거다.”
“끄응, 끄응.”
“그나저나 중노동이 되겠네.”
겁먹은 설기를 안아서 진정시켜주며 막막한 앞날에 내가 한숨을 쉴 때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에녹 씨!”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휴가를 다녀온 에녹이 멋진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개운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아기 진돗개 모드 설기를 쓰다듬어주었다.
“이 녀석은 무섭다더니 아직도 잘 자고 있네.”
토르를 보고 겁을 먹은 설기 녀석이 어젯밤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해서 같이 재워줬더니 지금은 팔자 좋게 자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휴가에서 복귀한 에녹이 일찌감치 가게에 나와서 청소를 하다가 나를 반겨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에녹 씨.”
흡혈귀에게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도 되나 싶었지만, 내 특제 미역부각으로 [증혈] 효과를 누리고 있는 에녹의 안색은 밝았다.
나는 흡혈귀답지 않게 얼굴에 불그스레 혈색이 도는 에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 주는 낮에 손님을 안 받으니까 청소할 필요는 없었는데, 고마워요.”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내 감사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에녹.
정말 성실한 사람, 아니 권속이라니까.
그 성실함이 카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길러진 거라는 게 살짝 슬프지만 말이야.
“에녹 씨, 청소는 그만하고 이리로 와 보시겠어요?”
나는 그런 에녹을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에녹이 주방에 들어와서 일을 도와주는 건 처음이네.
에녹도 그걸 느꼈는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요리에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다만······.”
“오늘은 에녹 씨가 잘하는 일을 부탁드릴 거예요.”
“제가 잘하는 일 말입니까?”
“네. 아마 이 요리는 에녹 씨도 좋아하게 될걸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녹.
하지만 오늘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전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조금 나중의 일이고 우선 가장 먼저 할 건,
“자, 일단 돼지 창자부터 씻어볼까요?”
순대의 껍질이 될 돼지 창자를 깨끗이 씻는 것이 순대의 첫걸음이었다.
“아무래도 창자라서 잘 씻지 않으면 냄새가 심하게 나거든요.”
우선은 밀가루를 돼지 창자 위로 뿌려준 뒤, 심하지 않을 정도로 문질러 준다.
너무 심하게 문지르면 창자가 찢어지거나 조직이 파괴되거든.
“밀가루를 세척에 쓰다니 신기합니다.”
“그렇죠? 이 밀가루가 창자 안의 불순물이랑 엉켜서 그걸 빨아들이거든요.”
밀가루는 흡착력이 강해 문어나 낙지의 빨판을 씻을 때도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밀가루가 불순물을 빨아들이고 나면,
“이렇게 물을 흘려줘서 밀가루와 불순물을 한꺼번에 씻어내면 됩니다.”
밀가루와 함께 불순물을 씻어내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창자 세척이 끝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게, 이 과정을 허투루 하면 돼지 특유의 냄새와 분변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먹기가 힘들어진다.
“우리가 세척 해야 할 부위는 세 가지에요.”
순대에 쓰이는 돼지 창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은 소창.
돼지의 작은창자로 속이 비칠 정도로 얇고 흔히 말하는 ‘곱’이 없어서 깔끔하고 냄새가 거의 안 나는 부위였다.
“그래서 순대의 껍질로 쓰거나 삶거나 볶아서 먹기도 하죠.”
순대국밥 속 쫄깃쫄깃한 얇은 고기가 바로 이 돼지 소창이다.
부추 넣고 볶으면 또 그게 맛이 일품이지.
다음은 대창.
돼지의 큰창자로 ‘곱’이 많고 쫄깃해서 맛과 식감 모두 좋지만,
“냄새가 심해요.”
아무래도 창자라는 부위가 동물의 변이 만들어지고 통과하는 길이다 보니깐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대창은 특히 주름이 많은 터라 불순물이 끼기 쉬워서 깨끗하게 씻어주지 않으면 먹을 게 못 되었다.
내 설명을 들은 에녹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그런 데도 먹는 겁니까?
“대창으로 만든 순대는 소창 순대보다 더 특별한 맛이 있어요.”
대창은 소창과 연결된 부위는 비교적 얇은 편이고 뒤로 갈수록 두꺼워진다.
이 두꺼운 부위는 두꺼운데 쫄깃해서 씹는 맛도 있고 곱, 그러니까 지방이 많아서 순대로 만들어 먹으면 쫄깃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이래서 포기할 수 없는 부위지.
“마지막으로 막창이 있죠.”
막창은 돼지의 직장 부위로 항문과 연결된 장의 끝부분이라고 해서 막창이라고 한다.
막창은 대창의 마지막 부분과 비슷하게 두껍고 쫄깃하지만, 곱이랑 기름이 없어서 담백한 맛이 특징인 부위였다.
보통은 구이로 먹어서 그 담백한 맛과 식감을 즐기는 부위지만, 순대용으로 쓸 때도 있었다.
“돼지의 창자를 모두 쓰는군요.”
“맞아요. 버릴 게 없죠.”
돼지의 창자는 소창, 대창, 막창 세 가지로 나뉘는 데, 순대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쓰일 수 있었다.
어떤 창자를 쓰느냐에 따라서도 또 맛과 식감이 달라지기에 다양한 순대를 만들 수 있지.
“자, 일단 열심히 씻읍시다.”
둘이서 그렇게 한참을 창자를 씻고 나서야 창자 손질이 끝났다.
“끄응, 허리야.”
창자 씻는 데만 오전을 다 쓴 거 같네.
허리를 펴는 내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가 씻은 창자의 양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돼지는 흔히 창자의 길이가 몸길이의 15배 정도나 되는 생물.
블러디 보어도 다를 게 없어서 경차 크기의 블러디 보어 길이의 15배나 되는 창자를 씻어야 했으니까.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의 창자가 말이다.
암만 내가 넥타르를 먹고 환골탈태를 한 몸이라도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에녹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천오가 그리워집니다.”
“하하, 동감이에요.”
천오, 천육, 천칠, 천팔 형제가 있었다면, 씻는 게 훨씬 빨라졌을 텐데.
천오 녀석, 돌아오면 순대 안 줄 거다.
“자, 그럼, 이제 에녹 씨가 좋아하고 잘 다룰만한 재료를 준비해볼까요?”
“제가 좋아하는 재료 말입니까? 분명 아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의아해하는 에녹을 보며 나는 히죽 웃으며 답해주었다.
“순대에는 돼지 피가 들어가거든요.”
에녹은 혈액을 조종하는 [블러드 컨트롤]의 능력을 가진 흡혈귀의 진조였으니까.
이 재료는 에녹만큼 다룰 자가 없었다.
“그거라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맞습니다.”
에녹의 얼굴에 기쁨으로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뭐랬어?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고 했지?
블러디 메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