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순대 입문
꽈르릉!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번개와 천둥이 가게 창문 밖에서 번쩍인다.
드디어 도착했군.
“에녹 씨, 잠깐 가게를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손님을 맞이해야 해서 직녀가 만들어준 업무용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설기 녀석은 아무래도 성좌를 직접적으로 접객하는 건 힘들 것 같아서 내 방에 둔 상태였다.
나는 ‘신야식당’의 문을 열고 오늘의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하루 만이군.”
“처음 뵙겠어요.”
“오랜만이야, 인간 요리사!”
각양각색의 인사들.
인사말만 봐도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특색있는 가족이었다.
토르와 스루드는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고, 아름다운 금발을 한 저 여신이 토르의 아내이자 스루드의 어머니인 시프겠지.
나 역시 다시 인사를 하며 그들을 반겼다.
“토르 님, 시프 님, 그리고 스루드님. ‘연성이네 신야식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계속 밖에 두고 인사를 나눌 수는 없기에 토르 일가를 안으로 들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에서 에녹이 정중하게 토르 일가를 맞이하는 소리가 들릴 때, 스루드가 몰래 다가와서 내게 속삭였다.
“인간 요리사, 고마워. 내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아닙니다. 스루드 님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내가 당연하다는 듯 씨익 웃자, 스루드도 마주 웃어주었다.
한참 순대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스루드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당신에게 부탁 한 가지를 하고자 합니다.]그 부탁이란 다름 아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도 오늘 초청해달라는 것.
토르가 막무가내로 지인 찬스권을 쓴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이런 부탁까지 한다면서 더더욱 미안해하는 스루드였지만,
“제가 스루드 님께 받은 게 더 많은걸요.”
스루드에게 ‘전장의 축복’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팔팔하게 힘이 넘치는 상태로 요리할 수 없었을 터였다.
거기에 [마나 번] 스킬이 각인된 [나우드 룬 반지]는 내가 권속급의 육체로 환골탈태하기 전까지는 내 목숨을 살려주던 아이템이었고.
그것뿐인가?
스루드가 알비스를 불러 개조해준 주방 덕분에 한층 더 쉽게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나였다.
그러니 이 정도 부탁은 언제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런 내 대답에 스루드가 감동한 듯 눈을 글썽였다.
“인간 요리사······.”
“스루드, 뭐 하고 있니? 예의 있게 얼른 와서 앉으렴.”
그때,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시프가 그녀를 불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식당 안쪽으로 보냈다.
“자, 얼른 가셔서 제가 만든 요리를 맛보셔야죠.”
“응, 내가 꼭 보답할게. 엄마, 가요!”
그렇게 말하고 신이 나서 오픈 키친 바로 향하는 스루드.
그 뒷모습이 영락없이 부모님이랑 외식하러 온 10대 여학생 같았다.
“여기 따뜻한 마력수로 데운 물수건이 있습니다.”
“상남자는 손을 닦지 않는다.”
“어머, 이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람?”
“크헉!”
에녹이 나눠준 물수건을 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는 토르의 옆구리에 시프의 팔꿈치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와우, 역시 전사의 아내이자 전사의 어머니가 되려면 저 정도 무력은 갖춰야 하는구나.
시프는 그렇게 토르를 무력화시키고 에녹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제 남편이 좀 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이해해줘요.”
“아닙니다, 부인.”
“호호호, 고마워요. 아량이 넓은 분이군요.”
에녹의 미모는 신화급 성좌의 여신의 분노도 녹이는 모양이네.
그 모습을 보고 토르가 다시 구시렁댔지만, 시프의 눈빛 한 방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왜 스루드가 시프까지 함께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는지 알겠다.
그녀는 완벽한 토르의 억제 수단이었다.
토르가 어떤 난동을 부려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는, 최종병기라고 해야 하나?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오픈 키친 안으로 들어가 셰프로서 그들을 다시 한번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다시 인사드립니다. ‘연성이네 신야식당’의 셰프, 도연성이라고 합니다.”
“내 남편과 딸이 무리한 부탁을 했죠? 미안해요.”
토르를 눈빛 한 방으로 잠재울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여신이 내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해왔다.
그런 사과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스루드 님께는 제가 받은 은혜가 많아서요. 이렇게 두 분에게 함께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머. 말도 예쁘게 하시네요.”
내 말에 시프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부모는 자식 칭찬할 때 제일 기쁜 법이지.
토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입꼬리가 작게 씰룩이고 있었다.
시프는 그런 남편을 슬쩍 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남편이 최근 요르문간드와의 일전을 앞두고 조금 예민해져 있어요. 혹시라도 질까 봐요.”
“이 몸이 진다고? 이제는 그런 뱀과 싸우는 것도 귀찮아져서 그런 거야! 확실히 승리하고 그 결투를 끝낼 거다.”
코에서 김을 푹푹 내뿜으며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아 하는 토르를 보며 시프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번에는 이겨요. 하계에 폐를 끼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어야죠.”
“그, 그건 그렇지······.”
하계에 폐를 끼친다는 소리에 토르가 기가 팍 죽은 채 중얼거렸다.
폐라니? 무슨 소리지?
“어머, 몰랐나요? 5년에 한 번 남편과 요르문간드의 결투가 벌어질 때마다 하계의 땅에 지진과 천둥 번개가 치거든요.”
성좌들의 영역에서 싸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그 규모가 강력한지 지구에 그 여파가 미친다는 시프의 소리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설마 ‘북방의 정화’가 그럼······?”
북방의 정화.
5년 주기로 스칸디나비아반도에 거대한 쓰나미와 번개 폭풍이 쏟아지는 현상을 부르는 용어였다.
땅에 있는 모든 게 1초에 3천 번도 넘게 내려치는 낙뢰에 타버리고 그 잔해가 쓰나미에 휩쓸려 나가는 끔찍한 재앙.
이 재앙을 ‘정화’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의 스칸디나비아반도는 게이트 사태 이후 거대한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사람이 전혀 살지 않고 몬스터만 사는 몬스터 랜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5년 주기마다 몬스터를 모조리 휩쓸어버리는 ‘북방의 정화’ 덕분에 유럽인들은 이를 고마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토르와 시프에게 설명해주었다.
“어머, 그게 정말인가요?
“흐하하하. 그럼 그렇지. 다 내가 하계에 문제가 생기라고 그렇게 싸웠겠어?”
“······몰랐던 것 같은데.”
내 말에 놀라는 시프와 의기양양해하는 토르.
미심쩍은 눈으로 보면서 중얼거리는 스루드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못 본 척하자.
토르는 자신의 가슴을 퉁퉁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이번에 요르문간드, 그 교활한 뱀한테 이기면 그 땅의 던전은 내가 책임지고 모두 없애주지.”
“정말입니까?”
놀라서 묻는 내 질문에 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력이 조금 들겠지만, 그 땅은 옛날 우리를 믿어주던 사람들이 살던 곳 아닌가.”
“맞아요. 옛날엔 좋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젠 거기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토르의 말에 시프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오딘은 나서지 않을 테니, 나라도 나서야지.”
신화 속에서 오딘은 뛰어난 지식과 힘을 가졌고 전사들을 다스리는 위대한 신이었지만, 인간에게 친절하다면 그건 아니었다.
반면, 토르는 농사의 신이기도 했고 전사들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였다.
신이라기보다는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랄까.
그런 토르였기에 사람들의 고난을 알고 나니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요르문간드에게 이겨야 그럴 수 있겠지?”
“토르 님께서 그러실 수 있도록 제가 멋진 요리를 대접해 드리죠.”
토르는 그렇게 말한 뒤 나를 보며 씨익 웃었고 나 역시 그런 토르를 보며 마주 씨익 웃어주었다.
요리 하나로 북유럽을 구할 수 있다니.
이거 각 잡고 요리해야겠는데?
그런 김에 나는 순대 오마카세의 첫 음식으로 비장의 요리를 꺼내기로 했다.
“저희 ‘연성이네’에서 밀키트로도 팔고 있는 떡볶이입니다.”
암, 순대에는 역시 떡볶이잖아?
* * *
보통 코스 요리에서 전채 요리는 식욕을 돋우고 뱃속에 음식이 들어간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짭짤하거나 시거나 매운 맛인 경우가 많은데, 그래야 입안이 자극되고 식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식 오마카세에서 짭짤한 차완무시가 나오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렇다면 매콤한 떡볶이가 애피타이저로 나와도 괜찮잖아?
그래서 나는 순대 오마카세의 전채 요리로 떡볶이를 준비했다.
“탁포키?”
“똑보끼?”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토르와 스루드.
부녀의 모습이 똑같아서 나는 터질 뻔한 웃음을 간신히 속으로 삼켰다.
반면, 시프는 떡볶이를 아는 눈치였다.
“이게 그 떡볶이군요. 먹고 싶었는데 주문이 밀려서 먹어 보질 못했어요.”
“그러셨나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밀키트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서 처리할 수 있는 주문이 한정되어 있어서요.”
“그런가요?”
나도 사람이기에 ‘연성이네’와 ‘신야식당’을 운영하면서 밀키트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평소에는 미야가 도와줬지만, 지금은 휴가 중이라서 말이지.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시프의 앞에 떡볶이를 조금 덜어놓은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그 덕분에 여기서 제가 직접 만드는 떡볶이를 드실 수 있게 되셨네요.”
“그건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무래도 밀키트로 만드는 거랑 내가 직접 만드는 떡볶이는 맛의 차이가 확실하거든.
성좌 마켓의 ‘연성이네 포장마차’에서 만드는 것도 내가 직접 만드는 것에 비해선 맛이 덜하다.
그러니 성좌들이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으면 ‘연성이네 신야식당’으로 오는 게 정답이란 소리.
“이 떡볶이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너무 맛있어! 역시 인간 요리사다!”
“하지만 양이 너무 적은데.”
이미 떡볶이 그릇을 싹싹 비운 토르와 스루드.
아니, 전채 요리로 내놓은 거라 양이 적다지만, 내가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 먹어버리다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떡볶이를 조금씩 더 덜어주었다.
그러곤 설명을 시작했다.
“이 떡볶이는 육수와 채수로 맛을 내고 오래 숙성시킨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만든 요리입니다. 핵심 재료인 떡은 자청비와 페르세포네, 두 여신께 축복을 받은 쌀로 만든 떡으로 마력도 맛도 아주 좋습니다.”
“정말이네요.”
남편과 딸과 달리 시프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떡볶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역사는 깊지 않지만, 이 땅의 인간들에게는 영혼의 음식이라고 불릴 정도죠.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왜죠?”
“떡볶이의 재료 대부분이 탄수화물이거든요. 먹으면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맛이죠.”
누군가 떡볶이야말로 다이어트의 최악의 적이라고 했던가.
그만큼 떡볶이는 탄수화물 폭탄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뇌는 쉽게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법이었다.
거기에 여성들이 좋아하는 매콤함까지.
남자들도 떡볶이를 많이 좋아하지만, 여성들에게 떡볶이는 소울 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 매콤한 걸 먹었더니 배가 더 고파지는걸?”
“맞아요. 더 먹고 싶은데 전채 요리로 배 채우는 건 좀 그런데······.”
이미 떡볶이를 세 번이나 리필한 토르와 스루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웃으며 두 번째 음식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릇에 정갈히 썰어놓은 거무튀튀한 타원형의 조각들, 그리고 그 위로 꽂힌 이쑤시개들.
바로,
“이건 당면순대라고 불리는 가장 서민적인 순대입니다.”
당면순대는 돼지 선지와 당면만 넣고 만드는 기초적이고 저렴한 순대였다.
들어가는 야채도 거의 없고 당면만 들어가 있는 터라 싸구려 순대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순대 자체의 맛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애피타이저로 나온 떡볶이 국물에 이 순대를 찍어 드셔보시겠어요?”
이게 또 떡볶이랑 궁합이 기가 막히거든.
분식집에서 순대를 시켜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였다.
“순대 안의 당면 사이사이에 스며든 떡볶이 국물이 조금 비어 보일 수 있는 순대의 맛을 한층 더 뛰어나게 해줍니다.”
내 말을 듣고 동시에 당면순대를 떡볶이에 찍어서 입에 가져가는 토르 일가.
“음, 괜찮군.”
“떡볶이 소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이 순대라는 것과 같이 먹으니 더 좋은데?”
“궁합이 좋다는 말이 뭔지 알겠어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순대를 싫어할 사람은 없지.
사실 순대 중에 가장 취급이 안 좋은 당면 순대를 처음으로 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달콤하고 매콤한 떡볶이 소스는 피를 넣은 음식인 순대에 대한 거부감을 밀어내줄 수 있었으니까.
이는 순대를 처음 먹는 이들을 위한 나의 배려였다.
“자, 그러면 본격적인 순대를 드셔보시죠.”
나는 순대 오마카세의 세 번째 요리를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에 선보인 순대는 다른 순대들에 비해 밝은색을 띠면서 풍부한 야채가 들어가 있었다.
“백암순대라고 불리는 순대입니다.”
순대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으면, 다음에는 순대의 맛을 즐기게 해줘야지.
백암순대는 돼지 선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소의 선지가 조금 들어가서 피 맛이 거의 나지 않는 순대였다.
거기다 찹쌀 당면이 들어가는 대신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 잡내도 잡고 야채의 맛이 진하게 우러나는 순대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순대보다는 소시지에 가까운 순대라고나 할까?
순대 초보자에게 딱 적당한 맛이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해보세요.”
순대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초보자에게 적합한 순대를 준다.
그리고 점점 다양한 맛의 순대를 제공해서 그들을 완전히 순대의 맛에 빠뜨리는 것.
그것이 오늘 열린 순대 오마카세의 주목적이었다.
“맛있구나!”
“어머, 고기 맛이 너무 좋아요.”
“인간 요리사, 최고!”
이미 반쯤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나는 순식간에 순대 접시를 해치워버리는 토르 일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세상의 모든 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