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세상의 모든 순대
“백암순대는 이 소금에 찍어 드셔보세요.”
나는 토르 일가의 앞에 소금 접시를 하나씩 놔주었다.
순대를 먹을 때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뭘까?
선지의 양? 당면의 유무? 소창과 대창의 차이?
아니었다.
순대 논쟁에서 가장 치열한 말다툼이 오가는 부분은 바로 ‘무엇에 찍어 먹냐?’였다.
“백암순대는 이 땅의 경기도란 지역에서 유래된 순대입니다. 그리고 서울을 포함해,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양념 소금에 순대를 찍어 먹습니다.”
“음, 나는 이 빨간 게 피인 줄 알았는데 아니군?”
토르가 내가 준 양념 소금을 보더니 하는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던전산 암염을 곱게 갈아서 고춧가루를 살짝 섞어 준 것인데 피라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피는 이미 순대에 들어간 걸로 충분하니까요. 그 빨간 건 고춧가루입니다.”
소금이 짭짤한 맛으로 순대의 간을 맞춰준다면, 고춧가루는 순대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순대 특유의 돼지 냄새를 잡아줄 후춧가루를 섞기도 하지만, 나는 던전산 약초를 배합한 향신료를 살짝 넣었다.
덕분에 순대를 물리게 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계속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도연성 표 양념 소금이 완성된 거지.
“확실히 그냥 먹어도 맛있긴 한데, 이 양념 소금에 찍어 먹으니 더 맛있네.”
“고기가 많은지라 입안이 텁텁했는데 양념 소금 안의 향신료 덕분에 뒷맛이 깔끔하네요.”
스루드와 시프도 내 양념 소금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두 번째로는 병천순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내갈 순대는 천안 지역의 대표 순대인 병천순대였다.
단언컨대 남한 지역에서 가장 순대다운 순대라고 할 수 있는 순대이기도 했다.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백암순대랑 같지만, 여기에는 고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찹쌀과 당면, 그리고 돼지 선지가 많이 들어가죠.”
고기가 적게 들어가는 대신 찹쌀과 당면, 선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기에 색이 훨씬 짙고 순대 특유의 향이 강하다.
거기다 선지가 많이 들어간 터라 식감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백암순대로 순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 먹기 좋은 순대이기도 했다.
“확실히 향이 아까보다 강하네.”
“피 맛이 이 정도로는 나야 전사의 맛이지!”
소 선지가 살짝 들어갔을 뿐, 돼지 선지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백암순대에 비해 돼지 선지가 많이 들어간 병천순대의 맛에 스루드와 토르의 맛 평가가 갈렸다.
스루드는 선지 대신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던 백암순대가, 토르는 피 맛이 잔뜩 나는 병천순대가 좋은 모양이었다.
“왜 순대마다 피가 들어가는 양이 다른 거야?”
“그건 날씨 때문입니다.”
스루드의 불만 섞인 물음에 나는 웃으며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날씨?”
“네. 날이 추운 지방일수록 채소를 먹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겨울이 길어서 채소를 기르기 힘든 북쪽 지방에선 조금이라도 채소를 많이 먹기 위해 순대에도 채소를 듬뿍 넣는다.
반면, 짧은 겨울을 제외하면 언제나 채소를 구해 먹기 쉬운 남쪽 지방에서는 굳이 순대에까지 채소를 넣지 않는다.
전주의 피순대의 경우에는 선지의 양이 95%가 넘어갈 정도로 야채가 적었다.
“난 추운 지방에 있다 와서 그런가? 야채가 많고 고기가 많은 쪽이 더 마음에 들어.”
“흐허허허, 그러면 다음에는 무스펠 헤임으로 보내면 되겠군.”
불과 얼마 전까지 요툰 헤임에서 서리 거인들과 싸우다가 왔다는 스루드의 말에 토르가 웃으며 불의 거인들이 사는 불의 왕국, 무스펠 헤임에 보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
그러자 살벌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스루드.
손에 쥔 포크 끝이 묘하게 토르를 향해 있는 건 내 착각이겠지? 그렇지?
“저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
한편, 시프는 병천순대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아까와 달리 고기 맛이 진하지 않아서 좋아요. 향은 상관없는데, 느끼한 건 별로라.”
아무래도 고기와 비계가 많이 들어간 백암순대의 느끼한 맛보다는 부드럽고 비교적 더 담백한 병천순대가 그녀의 취향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느끼함을 덜어줄 소스를 시프와 토르 부녀에게 내어주었다.
“여기에 찍어 드셔보시겠습니까?”
내가 내민 건 같은 소스였지만, 두 가지 타입을 가진 소스, 새우젓이었다.
하나는 새우젓 그대로, 하나는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다진 고추를 함께 넣어 섞은 양념 새우젓이었다.
“이 소스는 새우젓, 그중에서도 제일 맛이 좋다는 육젓으로 만든 소스입니다.”
육젓은 고기 육(肉)을 써서 육젓이 아니라 음력 6월에 산란기를 맞아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젓새우로 젓갈을 담근다고 해서 육젓이라고 부른다.
한창 더울 때인 지금 7월이 딱 음력으로 6월이었기에 지금 잡은 젓새우로 만들어 2~3개월 발효시키면 김장철 때 많이 쓰는 새우젓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사시사철 더운 [남국의 해안]에서 셀키가 잡아다 준 새우로 젓갈을 담아 [숙성의 수레바퀴]로 숙성시켰기에, 지금도 육젓을 쓸 수 있었지만 말이다.
“새우? 이 자그마한 게? 이거 미끼 새우 아닌가?”
토르가 육젓을 보더니 의아해했다.
그가 오해할만한 게 육젓용 젓새우는 노르웨이 바다에서 미끼용으로 쓰는 크릴새우랑 비슷한 크기에 색도 비슷했다.
엄밀히 말하면 크릴새우는 새우가 아니라 새우와 가까운 갑각류긴 했지만.
그쪽에서 식용으로 먹는 새우는 엄지손가락만 한 오동통한 크기의 북쪽 분홍 새우였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그런 그에게 웃으며 육젓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육젓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젓새우는 고기를 먹는다기보다는 소금에 절이고 발효해서 소스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작은 새우일수록 예민해서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린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껍데기만 남기고 내장과 살점이 흐물흐물하게 곯아서 썩어버린다.
그래서 잡자마자 소금에 절여야 새우젓으로 만들 수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그러면 왜 이걸 먹지?”
여전히 작은 새우를 왜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토르에게 나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새우가 발효되면서 독특한 풍미를 만들기 때문이죠. 아주 훌륭한 소스가 됩니다.”
단순히 소금을 넣은 요리와 새우젓을 넣은 요리는 그 풍미부터 다르다.
국물에 넣으면 국물이 개운해지는 것은 물론이며, 김치에 넣으면 김치 맛이 아주 시원해지거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새우젓에는 단백질, 특히 돼지고기를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고기 요리랑 궁합이 잘 맞죠.”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능 덕분에 족발, 보쌈 등 고기 요리와 함께 먹으면 소화가 잘되어서 궁합이 아주 좋다.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순대 역시 마찬가지.
거기다 새우젓 특유의 그윽한 향이 순대의 잡내도 잡아주기 때문에 더더욱 좋았다.
실제로 강원도나 충청남도에서는 순대를 먹을 때 소금 대신 새우젓을 주로 먹거든.
지금 나간 백암순대도 사실 소금이 아니라 새우젓과 같이 먹는 게 원조였다.
“어머, 정말 맛이 달라요. 소금처럼 짭짤하면서 매콤한 게 느끼한 맛이 사라져서 더 좋아요.”
아니나 다를까, 시프는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양념 새우젓을 더 좋아했다.
아까 보니 매콤한 떡볶이도 가볍게 잘 먹기에 양념 새우젓을 살짝 더 매콤하게 만들었는데, 역시 이것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소화가 잘된다는 소리는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소리지?”
한편, 시프는 순대와 새우젓 맛의 조화를 중시했지만, 스루드는 그 효능에 더 집중한 모양이었다.
‘소화를 돕는다=더 많이 먹을 수 있다.’라는 논리를 펼친 스루드는 빠르게 병천순대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뭣이?!”
이에 뺏길 수 없다는 듯 허겁지겁 순대를 먹기 시작하는 토르.
아니, 오마카세라서 개인 접시에 똑같은 양으로 담아줬는데, 왜 서로 뺏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시프도 그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못난 두 성좌에게 순대를 더 줄 수 있겠어요? 안 그러면 여기서 서로 싸울지도 모르겠네요.”
요르문간드와의 결투보다 부녀지간의 비극이 먼저겠다며 시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줄 거냐? 그럼 좋지!”
“난 아까 하얀 순대로 더 줘, 인간 요리사!”
순대를 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난 토르와 스루드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더 드릴 순 없습니다. 지금은요.”
“아니, 왜?”
“왜지?!”
기대하는 것부터 실망하는 것까지 너무나 똑닮은 부녀의 모습에 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나올 순대의 종류가 다양하니까요. 그걸 다 드시고 나서 모자라시면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음 순대들을 차례로 꺼내왔다.
“이건 전라북도 전주의 피순대입니다.”
야채가 거의 들어가 있지 않고 내용물 대부분이 선지이고 순대 외피는 소창이 아니라 대창이라는 게 특징이다.
덕분에 겉은 쫄깃하고 속은 진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었다.
“이건 전라도 식으로 초장에 찍어 드셔보세요.”
익은 선지의 질감이 회랑 비슷해서 은근히 초장이랑 잘 어울린단 말이지.
지금까지의 순대와 달리 선지가 많아서 스루드는 질색했지만, 토르와 시프는 맛있게 먹었다.
그다음은 경상도 예천식 순대, 용궁순대였다.
“용궁순대는 막창을 외피로 써서 대창보다 더 쫄깃하고 씹는 맛이 더 좋습니다.”
소창이 비닐처럼 얇아서 안의 내용물이 보일 정도라면, 대창은 적당히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두께가 있는 편.
반면, 막창 순대는 순대 소와 껍데기가 1:1의 비율을 자랑할 정도로 껍데기가 두꺼웠다.
그래서 오히려 순대 속보다 막창의 맛이 더 진하고 고소하게 나는 것이 특징인 순대였다.
“경상도는 쌈장과 생양파를 순대와 같이 먹는 게 특징이죠.”
나는 경상도식 순대 소스인 쌈장과 생양파를 함께 주었다.
경상도가 순대를 쌈장에 먹게 된 이유도 회와 관련이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회를 먹을 때 비린 맛을 잡기 위해서 막장 혹은 쌈장에 찍어 먹어왔는데, 초창기 순대 역시 선지와 돼지 비린내가 있었기에 쌈장에 찍어 먹었다나?
“완전 맛있어! 내 취향이야!”
막창 특유의 씹는 맛과 전라도에 비해 덜 들어가는 선지 때문인지 스루드가 특히 용궁 순대를 좋아했다.
나는 웃으며 다음 순대를 내어놓았다.
“다음은 제주도의 돗수애라는 순대입니다. 다른 순대와 달리 뻑뻑한 식감이 특징이죠. 이건 간장에 찍어 드시면 좋습니다.”
돗수애의 ‘돗’은 돼지, ‘수애’는 순대를 뜻했다.
이름 그대로 돼지 순대였지만, 육지와 달리 척박한 섬인 제주도에서는 찹쌀을 구하기 힘들었기에, 흔한 메밀을 갈아서 가루로 넣었다고 한다.
덕분에 메밀가루가 선지를 모조리 빨아들여 케이크처럼 익어버리는 바람에 식감이 뻑뻑해진다.
오트밀을 선지에 넣어 소시지로 만드는 영국의 블랙 푸딩과 굉장히 유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은 북한의 3종 순대입니다.”
남한에 병천순대, 백암순대, 피순대가 있다면 북한에서 유래한 순대에는 아바이 순대, 오징어순대, 명태 순대가 있었다.
“세 순대는 내용물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선지가 들어가고 고기와 야채, 찹쌀이 많이 들어가죠.”
추운 지방에서는 열량을 많이 내는 음식이 필요했기에 순대 하나를 만들어도 내용물을 꽉꽉 들어차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소창이 아니라 직경이 넓은 대창을 두툼하게 만든 아바이 순대가 탄생했다.
대창 자체의 열량도 뛰어났으니까.
오징어순대와 명태 순대는 그런 대창이 없을 경우, 껍질을 해산물로 대체해 만든 순대였다.
오징어나 명태의 몸통에 순대 속을 넣고, 오징어의 경우에는 끝을 막대로 꿰어서 찜통에서 찌면 되었고, 명태는 그대로 직화해서 익혀 먹었다.
“주로 새우젓이나 소금에 찍어 드셔도 되지만, 다른 소스에 찍어 드셔도 무방합니다.”
내 말에 이젠 말도 하지 않고 토르 일가가 눈을 빛내며 순대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건 특히 배부를 거다.
아바이 순대는 그 크기가 큰 걸로 유명하거든.
“맛있는걸?”
“하지만 모자라네요.”
“지금까지 먹은 걸 곱절로 먹어도 모자랄 거다. 쩝.”
하지만 순대 접시가 다 비워졌을 때, 아직도 양이 부족한 듯 눈을 빛내고 있는 토르 일가.
아니, 밑도 끝도 없이 배에 들어가는 거 사실이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토르를 보며 나는 지금까지 나간 순대를 세어보았다.
경기도의 백암순대, 충청도의 병천순대, 전라도의 피순대, 경상도의 용궁순대, 제주도의 돗수애, 강원도와 그 이북의 아바이 순대까지.
일반인이라면, 아니 일반 성좌라면 슬슬 배부름을 알고 물러날 양이었지만, 이들은 달랐다.
“더 없나?”
결정적으로 순대 접시를 내려다보며 슬픈 얼굴을 하는 토르를 보니 왈칵 자존심이 상했다.
음식으로 손님을 웃게 하지는 못할망정 슬프게 했다니.
“기다리시죠.”
가네샤도 배부르게 했던 내 프라이드를 여기서 꺾을 수는 없지.
내 순대 요리는 지금부터라고.
성좌의 마스터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