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당신을 캐스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에녹 씨는 냉면을 먹지는 않고 서빙하는 엑스트라로 나온다는 거죠?”
“네, 네. 맞습니다.”
나와 에녹의 앞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남자는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내게서 에녹이 ‘군벌 헌터’가 아니냐는 오해를 하고 돌아간 사람이었다.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는데.
“헌드레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는 캐스팅 매니저, 황준우라고 합니다.”
황준우는 나와 에녹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건넸다.
아니, 나한테까지 이럴 필요는 없는데.
일단 명함을 받아서 확인하니 그가 말한 정보와 틀린 건 없어 보였다.
“캐스팅 매니저?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직업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에녹은 하계 사람들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나라도 물어봐야지.
내가 일일 매니저가 되어주기로 했으니깐 말이야.
그러자 내 질문에 황준우가 대답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SNS를 보면서 우리 엔터가 원하는 인재를 찾아 컨택해서 섭외하는 게 제 일입니다.”
“광고 모델로 추천도 해주시고요?”
“하하, 그건 캐스팅 디렉터님이 하시는 거고 저는 그 밑에서 일하고 있어요.”
캐스팅 디렉터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의견을 전달받아 자신의 소속사에서 해당 광고와 적합한 모델을 추천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광고주와 광고 제작자가 원하는 모델을 알잘딱깔센으로 준비해서 추천하는 것이 그 일이라나?
“이번 냉면 광고 컨셉은 고급화된 냉면이거든요. 그래서 토핑도 고급 재료로 올라갔고 육수도······.”
“오호? 어떤 재료를 쓰나요? 양산형 제품인데 노하우는 따로 있나요?”
고급화된 냉면이라니.
황준우의 말에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준우는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는 내 태도에 당황해서 눈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그, 그게, 저도 자세한 건 잘······.”
“아, 그러겠네요. 식품회사 직원이 아니셨지.”
쩝, 아쉽네.
에녹의 일일 매니저로 광고 현장에 따라가면 맛볼 수 있으려나?
광고 내용보다 냉면에 더 관심이 많은 나를 황준우가 이상하게 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고급 냉면이기에 광고 컨셉이 귀족 아가씨만 먹는 럭셔리 냉면이라는 느낌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에녹 님은 여기서 귀족 아가씨에게 서빙을 하는 꽃미남 집사로 출연하시게 될 겁니다.”
“아.”
너무 잘 어울린다.
사실 외모나 분위기만 따지면 에녹이야말로 귀족 그 자체지만, 그런 멋진 남자를 집사로 쓴다는 로망은 또 무시 못 하지.
그래도 기왕 하는 거 광고 메인모델로 쓰이면 좋겠지만, 저쪽에서도 아무 경력도 없는 에녹을 메인으로 쓰긴 좀 어려웠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녹을 바라보았다.
“에녹 씨는 어때요? 괜찮아요?”
“저로서는 대사 없이 빨리 끝내는 편이 더 좋습니다.”
에녹은 그렇게 말하고 흐린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불쌍한 에녹.
성좌력을 지나치게 소모해 자신의 영역에 봉인된 아버지와 삼촌의 땡깡을 들어주려고 광고를 억지로 찍어야 한다니.
하지만 효자인 에녹은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기······, 에녹 님은 광고 촬영이 내키지 않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자기 말에 단칼로 대답하는 에녹의 태도에 황준우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우리 직원이 영업할 때 외에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질 않아서.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일단 컨셉도 나쁘지 않고 에녹 씨도 찍는 것에 동의해서 광고 촬영 자체는 괜찮은데, 이렇게 촉박하게 찍을 필요가 있나요?”
연준이와 윤진하, 그리고 마철성의 활약으로 던전 브레이크가 생긴 당일 새벽에 마무리되긴 했지만, 아직 거리는 던전에서 나온 마력으로 오염되어 있는 상태.
마력 제거가 점점 되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사람이 돌아다닐 시점은 아니었다.
그런 내 물음에 황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모르셨나요? 최근 급격히 마력 오염도가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 며칠 전에 이틀 연속으로 일어난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 이후로요.”
“아······.”
나는 황준우의 말에 잠시 말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토르가 왔다 가면서 쳤던 번개가 이 근방의 마력을 싹 다 태워버린 모양이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던전과 몬스터를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는데, 이건 서비스였나?
아무튼, 그 덕분에 이 일대의 마력이 다 사라지면서 자가 격리까지는 모두 풀린 모양이었다.
아직 영업 재개 허가는 안 났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 더 천천히 해도 될 텐데.”
뭐, 사실 내 입장에서는 다른 직원들도 휴가가 있는 마당에 가게가 쉬는 지금이 좋긴 하지만, 그런 내 사정을 고려해서 서두르는 건 아닐 테니까.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그게······.”
잠시 머뭇거리며 할 말을 찾던 황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메인모델인 공주하 씨가 조금 서두르고 싶어 하셔서요. 공주하 씨 아시죠?”
“알다마다요.”
공주하.
어릴 적부터 해왔던 현대 무용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몸에 청순한 매력을 지닌 얼굴로 국민 첫사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배우였다.
아이돌을 거쳐서 지금은 당당하게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로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준이랑 화보도 찍은 적이 있었지?
그때 화보 이름이 ‘나무꾼과 선남’이었다.
재밌는 건, 공주하가 나무꾼이었고 연준이가 선남이었지.
목욕하는 컨셉 사진에서 연준이의 근육이 훌륭하게 도드라져서 판매량이 평소의 수십 배로 뛰었다던가?
정작 본인은 이를 갈며 보이는 족족 검으로 썰어버렸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 공주하가 이번 광고의 메인모델인 모양이었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공주하 씨가 조만간 각성 테스트를 받을 모양입니다.”
“공주하 씨가 각성 테스트를요?”
일반인이 헌터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
나처럼 어느 날 자연스럽게 각성이 되어서 각성자 등록을 하고 헌터로 활동하던가.
아니면 각성자 협회에서 주관하는 각성 테스트를 통해 인위적으로 각성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참고로 각성 테스트로는 각성할 수 있는 클래스가 한정적이어서 진지하게 헌터를 노리는 이들은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이러다가 각성 못 하고 평생 일반인으로 살겠다 싶은 사람들만 받는 것이 바로 각성 테스트였다.
“어떻게든 헌터가 되고 싶다나 봐요. 그래서 조만간 있을 각성 테스트 전에 모든 스케쥴을 마무리하고 싶으시다고······.”
아니,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잘나가는 배우가 왜 헌터가 되려고 하는 거지?
물론 연준이나 윤진하 같은 S급 헌터에 비하면 인기가 살짝 못 미치지만, 공주하라면 길 가던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S급 연예인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지만,
“뭐, 사람마다 꿈은 있는 거니까요.”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나는 그저 가게가 쉬는 동안 에녹이랑 기분 전환 삼아 광고 촬영 현장을 구경, 아니 일일 매니저로 동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인 에녹은,
“집사라······. 후우.”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기획안에 나와 있는 컨셉대로 포즈를 잡으면서 연습하고 있었다.
역시 성실한 사람, 아니 권속이라니까.
“와, 진짜 그림이다······.”
황준우 이 사람은 그걸 보고 또 입을 헤 벌리며 감탄 중이었고.
내가 슬쩍 눈치를 주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너무 잘생기셔서.”
“우리 에녹 씨가 절세 미남이긴 하죠.”
무려 기독교의 신이 직접 빚은 아담의 손자다.
당연히 그 유전자가 우월하다 못해 유전자 단위로 빛이 나는 외모를 가졌지.
거기다 흡혈귀 특유의 퇴폐적인 미모와 반전미 있는 부드러운 매너까지.
이 광고가 방영되면 그 반응이 기대가 될 정도였다.
“그럼, 내일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황준우는 연습 삼매경인 에녹이 아닌 내게 내일 촬영 장소의 주소를 건네고 갔다.
“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뇨, 여기 주소가 익숙해서요.”
“그렇습니까? 어렵게 섭외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황준우가 보내준 주소를 확인했다.
아니, 이거 몇 번을 봐도 도대경 던전재해자치료재단과 도대경 기념관이 있던 그 건물인데?
왜 여기서 광고를 촬영해?
* * *
다음 날, 나는 에녹과 아기 진돗개로 변신한 설기를 데리고 도대경 재단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진짜 여기였을 줄이야.”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촬영 스탭들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어제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국밥 할아버지에게 걸었던 통화를 떠올렸다.
‘몰랐던 게냐? 그 냉면 만든 회사 삼천 그룹 거다.’
‘삼천 그룹이 냉면도 만들어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안 만드는 것도 있더냐?’
아무튼, 국밥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재단 건물을 빌려준 건 아니고 혹여나 추후에 재단을 확장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지어둔 옆 건물을 촬영 스튜디오로 빌려준 거라나?
‘건물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재단 홍보 광고에 공주하가 나와주기로 했다.’
역시 국밥 할아버지, 아니 삼천 그룹 천 회장님.
그냥 같은 그룹 광고라고 빌려주는 게 아니라 받을 건 철저히 받아내는 분이셨구나.
나야 공주하 정도 되는 배우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재단 홍보 광고에 나와주면 땡큐지.
“이럴 게 아니네. 정 여사한테도 알려줘야지.”
우리 어머니가 또 공주하가 나온 드라마 팬이셨거든.
나는 대충 공주하가 도대경 재단을 홍보한다는 사실을 문자로 보내곤 에녹과 설기와 함께 재단 건물 입구로 향했다.
“엇? VVIP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경비 직원이 저번에 봤던 내 얼굴을 기억했는지 놀라며 달려왔다.
그러곤 허겁지겁 안으로 무전을 치려고 무전기를 드는 걸 내가 말렸다.
“오늘은 재단 일로 온 것도 아니고 회장님 만나러 온 것도 아니에요.”
“네? 그럼 무슨 일로······.”
“일일 매니저 하러 왔습니다.”
“······네?”
삼천 그룹의 VVIP가 일일 매니저?!
라는 표정을 짓던 경비 직원은 에녹의 얼굴을 보고는 바로 홀린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VVIP가 매니저를 할 정도의 외모긴 하군요.”
“역대급 칭찬이네요. 그러면 들어가도 되죠?”
“당연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경비 직원과 헤어진 우리는 재단 건물이 아닌 그 옆 건물로 향했다.
그러자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황준우가 우리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셨군요. 그런데 그 강아지는 뭡니까?”
“아, 제가 키우는 강아지인데 혼자 둘 수가 없어서요.”
“아, 새끼라서 그런가 보군요. 그래도 광고 현장에 강아지를 데려오신 건 좀······.”
아, 역시 조금 그런가?
정확히는 새끼가 아니라 설기 녀석 혼자 가게에 두고 오면 불안해할까 데려온 거였지만, 그래도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설기를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끼잉.”
황준우의 표정을 읽은 설기가 낑낑거리자 에녹이 평소와 다르게 차가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설기와 함께 하지 못하면 광고 촬영도 없을 겁니다.”
“아니, 이미 계약하시고 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 위약금이 얼마든 물어드리죠.”
에녹이 우리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어도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의 수장이다.
돈에 아쉬워할 신분이 아니라는 거지.
나 역시 돈이라면 통장에 그득그득하니까 내가 대신 내줘도 되고.
하지만 그런 우리의 당당함을 황준우는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여, 역시 군벌 헌터······!”
다른 의미지만, 마찬가지로 도시 하나를 점령해서 왕으로 군림하며 사는 군벌 헌터들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 마찬가지로 돈에 아쉬울 리가 없다.
오히려 수틀리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이들이기도 하고.
그 사실, 아니 오해를 떠올린 황준우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때였다.
“뭐야? 왜 촬영 현장에 개새끼가 돌아다녀?”
“디, 디렉터 님!”
황준우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오만상을 쓰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스터, 죽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