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카르페 디엠
성좌.
인간을 초월한 신, 혹은 신과 같은 존재들.
그들은 누구인가.
누군가는 밤하늘에서 빛나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그저 인간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신’은 아니라고 평한다.
하지만 게이트 사태 이후, 인류가 성좌들의 등장과 후원 계약으로 인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좌를 일컬어 ‘구원자’라고 부르곤 했다.
“제가 다시 성좌가 되어도 좋을까요?”
미야의 속마음은 자신이 그런 ‘구원자’로 불릴 자격이 있냐는 것이었다.
“전 서왕모 님의 말씀대로 한때 인간들의 칭송을 받던 성좌였어요. 정말 많은 사람이 제게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었죠.”
게르만족에게 미야, 아니 프라우 홀레는 최고신에 가까운 격 높은 여신이었다.
아마로 아마포를 만드는 기술을 인간에게 전래한 여신이었고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 그것도 겨울 날씨를 다스리는 여신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생일로 기념되고 있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낮이 다시 길어져 태양이 태어난다고 여겨진 동지 축제가 있었다.
그리고 프라우 홀레는 게르만족의 동지 축제의 주인이었다.
즉, 게르만족은 최고의 명절인 동지 축제 때 프라우 홀레를 기렸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전 그 자리에 너무 안주해버렸죠.”
한때 한 성계의 최고신이었던 프라우 홀레, 아니 미야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다른 믿음의 종교가 들어오는 걸 그저 방치했어요.”
유럽에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기존의 종교가 탄압받기 시작되었다.
서왕모는 그런 미야의 설명을 들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더냐.”
종교는 인간의 믿음.
그렇기에 인간이 이동하고 섞이는 가운데 종교 역시 섞이거나 소멸하는 것을 반복해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느니라.”
초창기엔 민간 신앙 속 죽음의 여신이었던 그녀가 도교에 편입되면서 최고신 원시천존의 딸이자, 최고신 옥황상제의 아내가 되어 모든 여신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 역시 민간 신앙과 도교의 융합 속에서 처지가 바뀐 여신이었다.
하지만 미야는 고개를 저었다.
“제 처지가 바뀐 걸 한탄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후회하는 건······.”
미야는 슬픈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를 찾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외면했다는 거예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을 구슬리거나 탄압하면서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신들은 악마가 되거나 부정한 존재가 되어 탄압을 받아야 했다.
운이 좋으면 기독교의 성인이나 천사가 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미야는 운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미야 같이 운이 좋지 못했던 신들을 믿었던 사람들 역시 탄압을 받았다.
“그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섞이고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죠.”
미야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기독교 세력은 빠르게 다른 신앙을 ‘이교’라고 배척하면서 이교도들을 탄압했다.
“제가 도와줬다면, 아니 직접 나서서 싸우려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미야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그렇게 미야, 아니 프라우 홀레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죽거나 기독교로 전향하면서 그녀에 대한 신앙 역시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때문에 최고신에 가까워 한없이 빛나던 성좌였던 그녀가 한순간에 마녀로 전락해버렸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원망도 해보고 다른 종교의 신을 미워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실제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성좌들은 사람들의 오해대로 정말 악신이나 악마가 되었다.
미야는 그런 성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품었던 그 원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마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녀가 된 뒤에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다시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그 결과 ‘숲의 마녀’는 기독교 성직자에겐 배척하고 탄압해야 할 이교도였지만, 평범한 마을 사람들에겐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는 마녀, 바바 야가.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을 단 한 방에 박살 내는 이들이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
“······맞아요.”
그녀의 사정을 대충 아는 내 중얼거림에 미야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 잃은 아이들을 위해 그녀의 오두막에 초대해 맛있는 과자를 대접까지 했건만,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으로 마녀를 미워하게 된 두 남매는 그녀를 화덕에 밀어버리고 도망쳤다.
한때 성좌였던 그녀가 화덕에 들어간다고 다칠 일 따윈 없었지만, 정작 다친 건 그녀의 마음이었다.
“아이들에게까지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된 거죠, 저는.”
“미야, 그건······.”
아이들의 오해라고 말하려던 나를 보며 미야가 고개를 저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한 대가라고 생각해요.”
가장 힘들 때 자신에게 기도하던 사람들의 믿음을 안일하게 넘겼던 벌이었다며 미야는 씁쓸히 웃었다.
“그런 제가 다시 성좌가 되어도 좋을까요? 아니, 될 자격이 있을까요?”
성좌력이 충분히 쌓인 미야가 다시 성좌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
그것은 단순한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한 자신이 다시 사람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 * *
“······.”
미야의 자기 고백이 끝난 뒤, 반도원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던 미야의 속마음, 그리고 그녀가 겪어야 했던 오욕의 세월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기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때 입을 연 건, 놀랍게도 설기였다.
“난 그래도 미야가 좋왕!”
어느새 아기 진돗개로 변한 설기 녀석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미야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자신을 안아주는 미야의 볼에 묻은 눈물을 할짝였다.
“미야는 언제나 내 털을 씻겨주고 산책을 시켜줘. 미야는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 설기야.”
나도 열심히 해주고 있지만, 식당 일이 바쁠 때는 미야에게 부탁할 때가 많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산책 역시 거리가 아닌 [에덴의 동쪽]에서 미야가 시켜주고 있었다.
그런 미야는 설기에게 좋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미야 씨가 없었으면 사장님이 식당을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죠.”
에녹도 설기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리고 아침마다 미야 씨는 제게 미리의 양젖을 가져다줬습니다. 번거롭고 귀찮았을 텐데도 말이죠. 그런 미야 씨가 자격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에녹에게 마력이 깃든 양젖은 구하기 힘든 몬스터의 피를 대신할 소중한 양식이었다.
미야는 귀찮을 텐데도 매일 아침 에녹을 위해 신선한 양젖을 짜주었다.
“모두 고마워요. 하지만······.”
설기와 에녹의 위로에 미야는 잠시나마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자책을 걷어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천오, 아니 손오공이 입을 열었다.
“미야는 너무 결벽한 게 흠이야.”
“······네?”
손오공의 말에 미야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런 미야에게 손오공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성좌가 꼭 그렇게 착해야 하고 인간에게 다 해줘야 하는 법은 없잖아?”
“아닌가요?”
“날 보면 딱 답이 나오지 않아?”
“아······.”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던 손오공의 말에 미야가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런 미야의 모습을 본 손오공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예전에 최고신이었던 게 너 스스로를 한계에 가둬두고 있다고 봐, 나는.”
최고신이란 해당 신화에서 가장 격 높고 위대하며, 신화에 속하는 모든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
제멋대로이고 망나니인 성좌가 최고신이라면 그 신앙이 널리 퍼질 일은 없다.
심지어 난봉꾼으로 유명한 제우스도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웅을 태어나게 만든다는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래서 태어난 헤라클레스의 활약으로 기간토마키아가 끝나자 더는 인간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지 않기도 했고.
여하튼 그렇기에 최고신은 온전하고 위대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손오공은 바로 그걸 지적하고 있었다.
“나를 봐. 그리고 내 동생들을 봐.”
손오공은 자신과 저팔계, 사오정을 차례로 가리켰다.
갑자기 자신들이 지목되자 어리둥절해하는 저팔계와 사오정.
그런 동생들을 향해 손오공이 엄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요괴가 되었는지 말한다, 실시!”
“시, 실시!”
“실시!”
큰형 손오공의 말에 얼떨결에 저팔계와 사오정이 자신들의 옛 과오를 말하기 시작했다.
“취해서 월궁항아에게 작업 걸다가 철퇴 2천 대를 맞고 지상으로 추방되었다!”
“연회 때 실수로 옥황상제의 보물 잔을 깨뜨려서 800대의 태형을 맞고 지상으로 떨어졌습니다!”
듣기만 해도 천계의 장수들이었던 저팔계와 사오정이 요괴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서유기를 알고 자랐던 나와 달리 유럽에 있던 미야는 처음 듣는 둘의 죄명에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바로, 이 제천대성 님의 죄는,”
“동해 용궁에서 여의금고봉을, 다른 용왕에게 갑옷 한 벌을 훔쳤지.”
“큰형님은 염라대왕을 협박해서 생사부에 적힌 자신과 원숭이들, 그리고 여섯 요괴왕의 이름을 지워버렸소.”
“이, 이 자식들이?”
얼떨결에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 저팔계와 사오정이 심술이 났는지 손오공의 죄를 자신들의 입으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것뿐이겠어? 스스로 제천대성이라고 칭해서 옥황상제의 권위에 도전했지.”
“태상노군의 귀하디귀한 영약인 금단도 다 먹어버렸죠.”
“그 태상노군의 팔괘로에 넣고 태워버렸더니, 심술이 나서 천계의 황궁을 다 때려 부수었지 아마?”
“······.”
전부 맞는 말이었기에 대꾸도 못 하고 얼굴만 시뻘게지는 손오공에게 최후의 팩트 폭력을 날린 건 서왕모였다.
“거기다 내 반도를 모조리 훔쳐 먹었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천하의 망나니 원숭이 제천대성도 투전승불이 된 후에는 사과할 줄 아는 원숭이 부처가 되었기에 고개를 꾸벅 숙여 서왕모에게 사과했다.
그러곤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죄를 지은 우리도 속죄하고 공덕을 세우니 다시 이렇게 성좌가 될 수 있었어. 그러니까 너 역시도 과거의 잘못에 너무 얽매여 있지 마.”
“······그런가요.”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을 실제 사례로 들어가며 설명하는 손오공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실제로 미야 역시 뭔가 느낀 바가 있는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내게 손오공이 다가와서 어깨를 척 두드렸다.
“사장도 한마디 하지 그래?”
“내가?”
나는 성좌였던 적도 없고 이들에 비하면 찰나와 같이 짧은 세월을 산 인간이었기에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미야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면 주저할 수는 없지.
“미야.”
“네, 마스터.”
내 말에 고민에 빠져 있던 미야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미야의 두 눈을 보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나도 천오, 아니 손오공의 말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야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겠죠.”
“······맞아요.”
“그럴 땐 복잡하게 옛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만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인가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야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미야가 가지고 있던 영광이나 잘못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지금의 미야를 알아요.”
그리고 나는 우리가 함께 서왕모에게 대접했던 접시를 가리켰다.
“내가 아는 미야는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기 좋아하며 그걸 먹는 손님들의 반응에 행복해하는 요리사예요. 안 그런가요?”
한때 최고신이었건 마녀였건 내게 미야는 우리 식당의 수 셰프이자 파티시에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연성이네’의 주방을 이끌어가는 소중한 동료였다.
“과거가 버거울 때는 지금, 그리고 앞의 일만 생각해요.”
“지금, 그리고 앞······.”
“나는 미야가 어떤 모습의 성좌여도 상관없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성좌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저 미야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금 행복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야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성좌가 되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러니 성좌라는 과거의 기억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지금을 즐기기에도,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게 인생 아니겠어?
나보다 더 오래 살아왔고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갈 미야에게 난 그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마스터······.”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미야가 고개를 들었을 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슬픔과 후회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
“이제야 알겠어요. 제가 왜 망설이고 있었는지.”
환한 미소를 짓는 미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뚝 떨어지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전설급 성좌를 뜻하는 황금빛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인디펜던스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