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소년 왕 단종
“추, 추워요!”
방한복을 겹겹이 껴입은 윤진하가 몸을 덜덜덜 떨면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에취!”
저 방한복, 제림니르를 잡으러 갔을 때 함께 잡았던 A급 블러디 보어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래도 이 추위를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림니르와 부하 블러디 보어들이 북유럽 신화 계열 몬스터라서 추위에는 강할 텐데 저러는 걸 보니 춥긴 추운 모양이었다.
······물론 나한테는 쌀쌀한 정도였지만.
“괜찮아요? 좀 쌀쌀하긴 한데.”
“이, 이, 이게 싸, 쌀쌀, 에취!”
쌀쌀이 얼어 죽었다고 말하려던 윤진하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크게 재채기를 했다.
“이, 이렇게 추운 곳이 아니었는데!”
그야 평소보다 더 추울 수밖에.
우린 지금 안 그래도 춥기로 유명한 설산 던전 [몬테 네바다]의 상공을 천우혁선을 타고 날고 있었으니까.
아마 못해도 영하 40도, 체감 온도는 영하 55도를 넘을 터였다.
“이거라도 마셔요.”
이럴 줄 알고 미리 챙겨온 보온병에 담긴 차를 컵에 따라서 윤진하에게 넘겼다.
양기 계열 영약의 재료로 쓰이는 레드 데이트를 우린 대추차, 아니 레드 데이트차였다.
내가 마력을 태운 뒤 건넨 차를 마신 윤진하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어흐, 조금 낫네요.”
“그렇죠?”
마력을 태우지 않고 적합한 마력으로 바꿨으면 나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쯤 몸에서 열양지기가 샘솟았을 터였다.
하지만 윤진하의 스킬과 마력이 냉기에 기반하고 있어서 일부러 마력을 태워서 주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몸이 꽤 따뜻해진 모양인지 윤진하는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굳은 몸을 풀었다.
그러곤 나를 슬쩍 노려보았다.
“대체 왜 사장님은 멀쩡한 거죠?”
“하하, 몸에 좋은 걸 많이 먹어서 그래요.”
“얼마나 좋은 걸 먹으면 S급 헌터보다도 냉기 저항이 좋아지는 건지.”
그 말로는 납득이 가지 않은 건지 윤진하가 입을 삐죽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넥타르를 먹고 환골탈태한 뒤부터 더위나 추위를 안 타게 되었으니까.
윤진하는 짧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장님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할래요.”
나에 대한 건 평범한 상식으로 생각해봤자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진즉에 깨우친 모양인지 윤진하가 한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 또 오네요.”
[몬테 네바다] 안의 산맥 중 한 봉우리 근처를 지나자 봉우리 꼭대기에 머물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하늘에 뜬 천우혁선으로 어떻게 달려드냐고?
“저 지긋지긋한 비호(飛虎).”
비호라고 불리는 저 몬스터들은 새하얀 날개가 달린 백호의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
높게, 그리고 멀리 날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봉우리 근처로 접근하면 날개를 펼쳐서 우리를 습격하러 왔다.
“금방 처리하고 올게요. [전장의 날개]!”
물론 이 배에는 S급 헌터인 데다 마찬가지로 잠깐이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발키리 윤진하가 있단 말이지.
윤진하는 파앗하고 빛나는 빛의 날개를 꺼내서 천우혁선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순식간에 창을 휘둘러 비호들을 처리한 뒤, 마정석을 챙겨 다시 천우혁선으로 돌아왔다.
“쳇, 몸풀기 거리도 안 되네요. 움직이니 더 춥기만 하고.”
“한 잔 더 드세요.”
나는 몸이 식은 윤진하에게 레드 데이트 차를 한 잔 더 주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비호들을 물리치며 날아가자 [몬테 네바다]에서 가장 큰 봉우리, 카라드라스가 나왔다.
천우혁선으로 산맥 위를 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올라가야 할 정도로 높은 봉우리였다.
내가 그렇게 카라드라스의 험준한 광경에 감탄하고 있을 때, 옆에서 윤진하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만요, 저기 몬스터가!”
윤진하가 가리킨 곳을 보니 지금까지 보았던 비호와는 차원이 다른 덩치의 거대한 백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호왕(飛虎王)이에요!”
비호들의 왕,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자신은 차원이 다른 몬스터라는 걸 보여주듯 날개가 3쌍으로 총 6장이었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눈보라가 마치 비호왕을 보호하듯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네임드 몬스터예요. 보통의 비호왕은 저런 스킬이 없어요.”
설산 정상에서 만난 설상가상의 상황에 나와 윤진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저 비호왕이 있는 곳에 던전 어수리 나물이 난다고 채하나한테 들었거든.
“평소에는 비호왕도 거의 보이지 않는데 하필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났네요.”
어쩐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추운 이유가 있었다며 윤진하가 창을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보스 몬스터인 비호왕의 힘이 클수록 [몬테 네바다]의 온도도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윤진하는 나를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비호왕이라면 제가 혼자서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네임드 비호왕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강한가요?”
“네. 스루드 님께 전설급 퀘스트를 받아 잡은 제림니르만큼 강한 상대예요.”
당시 A급이었던 윤진하는 삼천 길드의 정예 헌터들과 함께 파티를 맺고 나서야 겨우 제림니르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녀도 S급으로 강해졌기에 상대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닐 테지만, 혼자서는 아무래도 불안하겠지.
······혹시나 몰라서 가져온 그걸 써볼까?
나는 품에 챙겨왔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그게 뭐예요?”
“아, 장난감 아이템이에요.”
내가 가져온 건 토르가 순대값으로 주고 갔던 [묠니르의 장난감 레플리카(전설급)]였다.
전설급이지만 실제로 전투력은 0인 물건으로 던지면 토르가 쓰는 것과 모습만 똑같은 번개의 환상이 퍼져서 몬스터들이 도망가게 만드는 아이템.
이걸 쓰면 네임드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도망가지 않을까?
“장난감이요?”
“네. 전설급이지만요.”
“저, 저, 저, 전설급?!”
이젠 춥지도 않을 텐데 윤진하가 말을 더듬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한테는 전설급이 이제 흔하지만, 헌터 사회에서는 거의 풀린 적 없는 꿈의 아이템이지.
“전설급 아이템도 가지고 계셨어요?”
“토르 님이 주신 거예요.”
“그럼 묠니르······?”
“레플리카에요. 거기다 장난감이니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나는 윤진하의 기대감을 가라앉히고 묠니르의 레플리카를 뒤로 당겨서 던질 준비를 했다.
분명 묠니르의 끈을 잡고 빙빙 돌려서 던지라고 했지?
부웅! 부웅! 부우웅!
전투 능력이나 센스는 없지만 그래도 힘은 강했기에 내 손에서 묠니르의 레플리카가 미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잡고 있던 끈을 놓았다.
“앗차.”
내 빈약한 전투 센스 덕분에 묠니르의 레플리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묠니르가 저절로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저절로 비호왕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푸른 번개를 사방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흐응!”
자신에게 날아오는 묠니르의 레플리카를 발견한 비호왕이 우습다는 듯 크게 포효를 한 번 하고 날개를 펼쳐서 묠니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겁먹어서 도망친다더니 전혀 겁을 안 먹잖아?
내가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고 있는 순간,
번쩍!
눈부신 섬광과 함께 거대한 전격이 비호왕의 전신을 관통했다.
“크허어엉!”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호왕의 소리에 나는 눈을 끔뻑끔뻑 떴다.
······번개는 환상이라고 하지 않았나? 거기다 장난감이라고 했잖아?
털썩.
푸른 번개에 관통된 비호왕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투 불능에 빠진 건 확실했다.
“사장님? 장난감이라면서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릴 때 묠니르가 다시 내 손으로 착 감기듯 돌아왔다.
그리고 난 발견했다.
묠니르의 표면에 빛나는 글씨로 쓰인 신어(神語)를.
‘환상 번개는 성좌들 대상이니 권속 이하의 대상에겐 위험할 수도 있음.’
······아니, 이걸 안 알려주면 어쩌자는 거야?!
성좌들에겐 장난감이었지만, 네임드 보스 몬스터에겐 즉사기에 가까운 묠니르의 레플리카로 나는 무사히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쓰러진 영향은 금방 드러났다.
“눈이 녹고 있네요?”
“비호왕이 품은 눈보라가 없어졌으니까요. 다시 보스 몬스터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눈이 천천히 녹을 거예요.”
윤진하의 설명에 나는 서둘러 카라드라스 정상으로 천우혁선을 몰고 갔다.
그리고 눈이 녹아서 땅이 조금씩 드러나는 곳에서 푸릇하게 나오는 던전 어수리 나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 분 냄새가 나는구나.”
단종이 정순왕후를 떠올리게 만든 은은하게 분 냄새가 은은히 설산으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이 향을 그대로 단종에게 전해주고자 조심스럽게 어수리 나물을 채취하고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참고로 비호왕의 사체는 요리에 쓸 게 하나도 없어서 윤진하에게 선물로 주고 왔다.
돌아가서 바로 연준이에게 자랑했는지 연준이 녀석이 ‘-_-’라고 문자를 보내온 게 웃겼다.
* * *
가장 중요한 재료인 어수리 나물을 챙겨와 손질하고 다른 요리의 준비도 모두 끝났을 때쯤, 세종과 단종의 예약 날짜가 다가왔다.
다른 성좌와 다르게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인 지라 두 임금님이 오기 한참 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긴장되네.”
“마스터가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미야가 놀랄 정도로 나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국인에게 세종대왕님은 특별한 분이니까요. 단종도 남다른 분이고.”
특히 단종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알고 난 뒤에는 사극 등장인물처럼 보는 게 힘들어졌다.
내가 만든 요리로 단종 이홍위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했다.
“토르 님이나 하데스 님이 와도 멀쩡하던 사장님이 저러시는 게 참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서왕모 앞에서도 할 말 안 할 말 다 했으면서.”
그 모습이 신기한 건지 에녹도 천오도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놀려먹기도 하고 말이야.
“주상 전하 납시오!”
“장난치지 마라.”
으악!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내가 일부러 장난을 친 천오를 째려보면서 으르렁대는 사이였다.
“놀랍군. 우리가 오는 걸 어찌 알았소?”
진짜로 세종이 ‘신야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덩치 큰 세종의 뒤에서 키는 크지만 아직 앳된 끼가 남아있는 청소년이 세종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홍위야, 무얼 하느냐?.”
“······만나서 반갑다. 이홍위라고 한다.”
오래 관리하지 않은 듯한, 그러나 덜 여물어서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난 수염과 얼굴에 핀 여드름, 그리고 변성기가 갓 지나 아직도 불안정한 목소리의 주인공.
그리고 스스로를 단종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말하는 소년.
그가 바로 비운의 소년 왕, 단종 이홍위였다.
왕의 유산